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42
툭. 장내가 얼마나 조용했는지 누군가 내려놓는 와인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돌아보니 중국군 사령관이었다.
한신이라고 했지. 그가 입을 열었다.
“근래에 타운센드 장군에게 괴상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영국 원정군 사령부가 오스만과 항복 협상을 시작한다더군요. 그 과정에서 중동의 평화를 위해 예루살렘을 오스만의 술탄 지배 아래 두는 방안이 상정되었답니다.”
바이츠만으로서도 처음 듣는 얘기.
이건 또 뭔 소리래?
한신이 말을 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탈환한 예루살렘을 오스만의 조기 항복을 대가로 다시 헌납한다니···. 이 이야기가 근래 들은 가장 이상한 이야기였습니다만. 방금 경신이 됐군요. 유대인의 국가적 고향이라···. 고향이 언제부터 발명품으로 취급되었습니까?”
바이츠만은 그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임을 알았다.
“발명이라니 당치않은 말입니다. 예루살렘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유대인의 고향입니다.”
“2,000년 전에 말입니까?”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우리의 뿌리가 예루살렘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진실입니다.”
“그럼 예루살렘에 살던 주민은 어떻게 되는 건지요? 90퍼센트 이상이 아랍인들입니다.”
바이츠만은 꿋꿋하게 말했다.
“선언문에도 적혀있듯이 비유대계 공동체의 권리는 보장될 겁니다. 종교를 이유로 차별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할 계획입니다.”
아랍인들의 거센 반발이 불을 보듯 뻔했으니.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끼워 넣은 문구였다.
한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 용어가 문제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일진대, 어찌 유대계와 비유대계를 구분한단 말입니까. 세심하지 못한 용어 사용이 오히려 분열과 대립을 조장할 겁니다. 예루살렘에는 이미 아랍에 동화되어, 아랍의 의복을 입고 아랍의 음식을 먹고 아랍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이 다수입니다. 그들은 유대계입니까, 비유대계입니까? 유대인입니까, 아랍인입니까?”
조목조목 따져오는 한신의 논리에 바이츠만은 대꾸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몇 가지 반박을 떠올렸으나 모두 충분치 않았다.
바이츠만이 우물쭈물하자 한신의 시선은 영국 대사에게로 향했다.
“대사님. 지금 상황이 맞습니까?”
“어···. 어떤 상황 말이오?”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 신사의 나라 대영제국이 예루살렘의 소유권을 두고 프랑스와 아랍, 유대인들과 오스만에 4중 계약을 맺은 것이 사실인지 묻는 겁니다.”
“아, 아직 오스만과의 협상은 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
“제가 실수했군요. 맞습니다. 4중 계약은 아니고 3중 계약입니다. 물론 다음 주에 오스만이 항복 선언을 한다면 팔켄하인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온다고 해도 저는 놀라지 않을 겁니다. 작금 영국의 행태가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맥마흔은 깊이 침묵하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겠소.”
“알아본다고 뾰족한 방도가 생기진 않을 겁니다. 계약 건은 모두 진실이니까요.”
연회장은 적막에 잠겼다.
평소 같으면 영국의 실정을 놀려댔을 프랑스 특사도 뜻밖의 상황에 고뇌에 빠졌다.
하지만 바이츠만은 오히려 불타올랐다.
시온주의 운동에 참여한 지 20년.
더한 수모와 고난도 겪어봤다. 고지가 눈앞인데 단념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저 중국의 젊은 사령관이었다.
바이츠만은 속에서 은은하게 노기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대관절 예루살렘의 사정에 중국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힐난하듯 외쳤다.
“그럼 사령관의 방안은 뭡니까? 예루살렘은 사령관의 소관이라 하셨는데, 이 도시의 운명을 어찌 정하려 그러십니까?”
당연히 머뭇거릴 거라 생각했는데.
한신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운명은 시민들이 정합니다. 임시군정부의 사령관으로서 제 역할은 그들이 숙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고요.”
“시민들이 뭘 어떻게 정한다는 건지···?”
“군정부는 팔레스타인 전역이 안정될 때까지만 유지할 겁니다. 민간정부의 구성원은 예루살렘의 토박이들로 채울 것이며, 이후에는 아랍인과 유대인이 함께 참여하는 의회를 설립해야지요.”
바이츠만의 계획과는 너무도 다르다.
한신의 말대로 예루살렘에는 아랍인이 절대다수다. 의회를 세웠다가는 유대인이 아닌 아랍인의 나라가 되고 말 거다.
바이츠만은 재빨리 외쳤다.
“그건 예루살렘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은 종교도시이므로 무엇보다 근간이 되는 종교기관이 중요한데, 유대인과 아랍인이 어찌 같이 참여한단 말입니까.”
“저도 압니다. 의회의 대의원들은 랍비(유대교의 율법 학자)와 무프티(이슬람교의 종교 고문)로 채워질 겁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랍비청과 무프티 종무청이 필요하겠지요. 민간정부는 가장 먼저 종교기관 설립부터 착수할 겁니다.”
바이츠만은 머리가 아득해져 왔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랍비와 무프티가 어찌 같은 의회에서 활동할 수···.”
“왜 안됩니까?”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되물어오니 더욱 기가 막혔다.
“불가능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는 섞일 수 없습니다.”
“해보고 안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죠.”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말을···.”
연회장에 한신의 방안을 듣고 맞장구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그렇다고 나서서 거부하는 사람도 바이츠만 말고는 없었다.
만찬은 흐지부지 끝났다.
각자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바이츠만은 한신을 방임에 가깝게 놓아두는 영국과 프랑스 정부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아직 전쟁 중이니.
모든 것은 전후 회담에서 결정된다. 진짜 싸움은 거기서 벌어질 거다.
지금은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중국 군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어도 대세에는 차질이 없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지내는 시일이 길어질수록 바이츠만은 묘한 기류를 감지하였다.
군정부는 패스트 호텔에 있었는데, 시민들은 각자 부르고 싶은 대로 사령부를 지칭했다.
유대인들은 솔로몬으로 부르고.
아랍인들은 술탄 술레이만으로 부르곤 했지만.
많은 사람은 또 다른 제3의 이름으로 불렀는데.
더 한신(The Han Shin).
예루살렘과 아무 관련 없는 중국인의 이름을 붙일 만큼, 그가 도시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한 것이었다.
처음 입성할 때만 해도 총리의 편지를 지니고 자신만만했던 바이츠만.
그러나 어쩐지 날로 초조해지고 있었다.
***
예루살렘에서의 눈치싸움을 끝내고 다시 전투 준비에 골몰하고 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북방의 철도를 타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차이어는 건조한 사막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쿨럭쿨럭, 한신 장군! 오랜만입니다!”
기침을 댄 손수건에 피가 묻어있었다.
“몸이···, 안 좋으십니까?”
“직접 말하려 했는데, 숨길 수가 없군요. 쿨럭.”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나는 잔뜩 침울해져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다음 말이 무엇일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죽을 겁니다.”
병약하지만 꼿꼿한 음성이 들렸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의사 말로는 서너 달 정도라더군요.”
실제 역사의 차이어도 그렇게 갔다.
병명은 결핵. 이 시대의 의학으로는 고칠 방도가 없는 병이다.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묵묵히 땅바닥만 응시했다.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차이어가 말했다.
“한신 장군.”
“예.”
“절 봐 주십시오.”
고개를 들자 차이어는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입가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슬퍼할 것 없습니다. 저는 이번 생에 이루고 싶은 것을 모두 이뤘습니다. 호국을 위해 떨쳐 일어났고 공화정이 탄생하였으니. 여한이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슬픈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인간의 감정이니까요.”
“인간의 감정이라···. 하하···.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역사에 길이 남을 국사무쌍의 장수가 절 위해 슬퍼해 주다니요.”
“장군이야말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방안이 조용해졌다.
한동안 차이어와 나는 말없이 딴청만 피웠다.
차이어가 그만 가겠다는 표시로 일어섰다.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차이어 또한 답례했다.
“먼저 가겠습니다. 더 수고해주십시오.”
금방 헤어져 내일 다시 만날 것 같은 분위기.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게 차이어와 마지막이라는 걸.
승기를 잡은 영중 연합군은 거침없이 북상하였다.
1917년 8월에는 베이루트 지역을 평정하였고.
9월에는 다마스커스를 함락시켰다.
10월에 들어서자 오스만은 아나톨리아에 국한되어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중동 전역은 평화를 되찾았고.
나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더 진격할 이유가 없었다.
전투의지를 상실한 오스만은 중동 전역을 다시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할 것이 아니라면 중동에서의 전쟁은 끝이었다.
예루살렘에는 군정부를 대신하여 민간정부가 들어섰고.
나는 중동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남은 과제는 예루살렘의 시민들에게 달려있었다.
카이로의 병원에서 차이어가 죽었다는 전보가 왔을 때.
나는 결심이 섰다.
때가 되었다.
귀환이다.
아랍의 안정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파이살.
그런 왕자를 곁에서 보좌하는 로렌스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장군과 함께 자유를 위해 싸웠던 나날들을 아랍은 기억할 것입니다.”
“부디 합의가 잘 이루어져 아랍에 봄이 찾아오길 기원하겠습니다.”
파이살 왕자가 중국식으로 포권을 해왔다.
로렌스는 귓속말로 속삭였다.
“기다리고 있으라고, 곧 찾아갈 테니까.”
왜 온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걸 탐구하기 좋아하는 로렌스이니 아랍을 좋아했던 것처럼 중국에도 관심을 갖게 될지도.
카이로에서 만난 량치차오는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차이어가 십대 소년이었을 때부터 거두어 키웠으니.
그들에게는 부자지간에 가까운 정이 있었다.
“그의 마지막은 어땠습니까?”
내 물음에 량치차오는 조용히 대답했다.
“정신이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놀랄 만큼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더구려. 윈난성에 있는 아내를 잘 돌봐달라고.”
평생을 군인으로 살며 공화의 이름을 드높였지만.
마지막에는 아내를 챙기는 모습이 사려 깊은 차이어답다 여겨졌다.
차이어의 관을 실은 배가 수에즈항을 출항하였다.
배는 홍해의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항구가 점점 멀어지며 익숙한 모래 냄새 대신 바다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옆에서 샤즈광이 투덜거렸다.
“어휴, 또 뱃멀미하겠네.”
근 2년 만의 귀환.
6만에 달하는 참전용사들과 함께였다.
차이어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다.
중화민국 개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윈난성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대총통 리위안훙을 비롯하여 수백 명의 관료와 장군들이 참석하였다.
수천의 시민들도 함께였다.
차이어의 관을 실은 장의차가 출발하자 예포가 발사되었다.
운구행렬이 울음바다가 되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가 윈난 시민들에게 얼마만큼 사랑받는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장의차를 따라가던 행렬이 모두 사라지고.
사위가 적막해졌다.
량치차오는 그때까지도 우두커니 차이어가 떠난 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도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이쪽을 보지도 않고 량치차오가 말했다.
“나는 일찍이 익무와 무쌍, 두 사람이면 능히 중화민국을 변혁시킬 수 있다고 보았소. 그런데 새삼 허무하게 익무가 가버렸으니, 이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소.”
익무와 무쌍은 호국전쟁 이후, 차이어와 내가 받은 장군의 칭호였다.
“차이 장군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무슨 말이오?”
“중국을 바꿀 사람은 저나 차이 장군이 아닌 중국 민중입니다. 그들 개개인의 삶에 달렸지요.”
량치차오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제자의 이른 죽음으로 비탄에 잠긴 스승이었는데.
점점 눈에 생기가 돌아오더니 천천히 표정이 바뀌었다.
어느새 정면으로 마주 보는 량치차오는 굳건하고 사려깊은 한 시대 사상가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다.
“맞는 말씀이오. 우리 역시 중국 민중의 한 사람이니, 각자의 삶에 충실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중국에 도움이 되겠지.”
“동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녀석에게도 나름의 삶이 있었을 텐데. 스승이랍시고 너무 다그친 건 아닌지 후회가 되는구려. 그 녀석이 아무리 영특했다 하더라도 특별히 계시를 받아 중국을 구하라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한신 장군도 마찬가지이고.”
어? 나는 계시를 받은 것 같기도 한데.
음···. 잘 모르겄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량치차오가 나직하게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뭐요?”
“일단은 쉬고 싶은 마음입니다. 해외파병 생활을 오래 했더니 삭신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고생 많으셨소. 푹 쉬셔야지.”
“량 선생님은 괜찮으십니까? 선생님도 이번에 머문 시간이 길었잖습니까..”
량치차오는 엄숙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몸은 힘들지 않소. 다만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어질어질할 뿐이오.”
“차이 장군도 그리 걱정하는 것은 원치 않을···.”
“아니, 차이어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오.”
량치차오가 폐부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서구의 학문을 배운 이래 줄곧 생각해왔소. 문명에는 발전 단계가 있다고 말이오. 세계 4대 문명설을 주장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소.”
“예.”
“이름하여 사회진화론이라 하지. 나는 중국을 개화시켜 미성숙한 문명에서 진보된 문명으로 바꾸고자 노력을 기울여 왔소.”
사회진화론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생물학의 법칙이 사회학에도 적용된다는 이론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다소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이론이지만, 작금의 시대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론이기도 했다.
“사회진화론은 제국주의의 논리로 악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오. 하지만 나는 은연중에 생각했소.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이오. 우리가 호랑이가 되는 방법을 찾아야지, 사슴이길 한탄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이오.”
스스로 이런 고백까지 할 정도면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
과연 량치차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카이로와 런던뿐만 아니라, 파리에도 다녀왔소. 기회가 생겨 말로만 듣던 참호전의 실상을 가까이 견식한 적도 있었지. 서부전선은···. 지옥이었소.”
“들리는 얘기로는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상상하지 마시오. 꿈에 나오면 가위에 눌릴 테니. 이번 전쟁을 계기로 나는 그동안 문명국이라 칭해왔던 열강들의 맨얼굴을 보았소. 프랑스와 독일. 영국과 이탈리아. 중국과 아랍까지. 나는 구분할 수 없었소. 무엇이 진보요? 무엇이 야만이오? 경계는 흐릿하다 못해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 같았소.”
량치차오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 시체들! 시체를 파먹는 쥐들! 악취!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와 악수를 나눴던 프랑스 병사의 얼굴이 기억이 나오. 그가 속한 1,600명 규모의 대대가 일주일 만에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오. 우리가 그동안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견고하다고 생각하며 쌓아 올린 성벽이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 말이오.”
무서운 것은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아직 루덴도르프와 백일 공세가 남아있으니.
수백만 명이 더 죽고나서야 이 미친 짓이 종말을 맞을 거다 .
“나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생각을 크게 바꾸기로 결심하였소. 무작정 덩치를 불리고 식민지를 병합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오. 장군이 좀 전에 말했듯 민중 개개인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오. 그래서 정치개혁안을 구상하고 있소.”
“어떤 개혁이길래?”
“아직 논리정연하게 이야기는 못 하겠지만, 이름은 정했소. 연성자치론(聯省自治論)이오.”
연성자치론은 일종의 연방제를 말한다.
거대한 통일 중국을 강조하는 대신 지방의 특색을 살리는 제도이니.
구상 단계의 개혁안이라지만 나도 흥미가 생겼다.
량치차오와 연성자치론에 대한 세부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량치차오! 또 무슨 괴상한 논리를 만들어 우민을 현혹하려 드나!”
돌아보니 한 남자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눈은 초롱초롱하고 입술은 여자처럼 붉어 꼭 기생오라비 같은 얼굴이었다.
“왕징웨이(汪精衛)···. 언제 돌아왔지?”
“한 달쯤 됐어. 내가 없는 동안 중국에 부침이 많았던데.”
왕징웨이라는 말을 듣자 나는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중국 최고의 미남이자, 걸출한 수재.
쑨원의 오른팔이 장제스였다면.
왼팔이었던 사내가 왕징웨이였다.
단순한 수사가 아닌 우파와 좌파라는 개념에서 실제 그러했다.
“량치차오. 이제 신문 발행은 안 하나?”
“관에 몸을 담고 있으니 그럴 이유가 없지.”
“그런가. 자네와 논쟁하던 때가 그립군. 다시는 올 수 없는 우리의 황금 같은 시절이었어.”
왕징웨이는 신해혁명 이전, 혁명파와 입헌파의 논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시 양 파의 기관지에 여러 날에 걸쳐 게재되었던 논쟁은, 왕징웨이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었다.
혁명파의 중국동맹회가 입헌파를 누르고 최대 반청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왕징웨이의 공이 컸다.
“그때가 황금 시절이었다고? 청조에 지배당하던 때가? 헛소리도 정도껏 해.”
“오호호. 이거 이거. 못 본 사이에 량 선생님이 싸움닭이 되셨어. 쥐약을 잘못 드셨나?”
“예의를 지켜라. 왕징웨이.”
“아이구, 그럼요 나으리. 관직에 계신 분이니, 민간인은 머리를 굽실거려야지요.”
왕징웨이가 진짜로 굽실거리는 것처럼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럼에도 천박해 보이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꽃미모 덕이었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이라도 미남이 하면 다르다더니. 정말 그랬다.
왕징웨이의 나이는 차이어보다 한 살 아래.
그런데도 량치차오와 맞먹으면서 그를 농락하는 풍모가 매우 자연스러웠다.
마주친 지 채 5분이 되지 않아 나는 그의 오만한 성격을 속속들이 알 것 같았다.
왕징웨이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번쩍거리는 눈빛을 받으며 나는 량치차오는 핑계일 뿐, 내게 용무가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무쌍장군 한신 각하. 야인, 왕징웨이가 인사드립니다.”
느끼할 정도로 과한 예.
오히려 빈정거리는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담담히 답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한신입니다. 프랑스에 계신 탓에 인사를 드리지 못해 아쉬웠는데, 오늘 만나게 되니 인연이다 싶습니다.”
“절 아십니까?”
“신해혁명이 성공한 이후, 출옥하신 선생님을 먼발치에서 한번 뵀었지요.”
“오오, 그때 인사를 나누었어야 했는데.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당시 저는 일개 하급 장교에 불과했으니까요.”
1911년, 내가 우창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당시.
왕징웨이는 베이징의 정치감옥에 갇혀있었다.
죄명은 섭정왕 짜이펑 암살 시도.
선고는 종신형이었다.
그때 짜이펑은 갓난아이였던 황제 푸이를 대신해 청나라를 통치하고 있었고.
왕징웨이의 시도는 황제 암살에 준하는 대역죄였다.
사형당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그의 잘생긴 얼굴과 뛰어난 글솜씨 덕이었다.
감옥에서 발표한 시편은 되레 그의 명성을 드높였고 그를 신화적인 혁명가로 만들어주었다.
청조가 몰락하자 왕징웨이는 돌연 공부를 더 하겠다며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지금 불쑥 나타난 것이었다.
“헌데 지금은 중국 최고의 장수가 되셨군요. 중동에서의 활약상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 일간지에도 장군을 다룬 기사가 올라올 정도이니 말입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왕징웨이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실은···. 일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 도쿄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으며, 프랑스 리옹대학에서는 사회학과 문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제 능력을 공화정부를 위해서 어떻게든 쓰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이게 목적이었나?
그러나 단순한 일자리 요청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왜 이걸 나한테 말해.
“저는 군인입니다. 선생님께 적합한 일자리를 제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천하에 어느 누가 한신 장군을 단순한 군인으로 여기겠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힘없는 중생 한 번 도와주시지요.”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관직을 원하면 채용시험을 치르셔야지요. 제게 말해보았자 소용없습니다.”
이쯤이면 잘 돌려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왕징웨이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아닙니다. 천하의 모든 이들이 압니다. 진짜는 한신이라는 걸.”
“예?”
“정치권에서 떨어져나와 멀리서 바라보니 명확해지더군요. 우창의 봉기 이후, 중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뒤에 누가 서 있는지를요.”
왕징웨이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나는 간단히 물었다.
“누구요?”
“푸하하! 누구냐고요? 기다리십시오. 지금 바로 알려드릴 테니. 우창의 병사들을 처음 꼬드겨 청에 반기를 들도록 만든 젊은 대대장! 한커우에 북양군 정예를 이끌고 온 펑궈장을 격퇴한 맹장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놀랍지요.”
“···.”
“그자는 후베이성의 도독으로 추대받아 과감한 투자로 단기간에 근대화를 이루어냈습니다. 그 와중에도 베이징 정치판에 들락거리며 영향력을 과시한 것은 덤입니다.”
나는 하고 싶은 말 다 해보라는 식으로 말없이 가만히 기다렸다.
왕징웨이는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혓바닥을 나불거렸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세계사에 유례 없는 대전쟁이 일어나자, 전쟁을 정확히 예측한 그자는 참전을 명분으로 군사를 모으기 시작하지요. 독일에 빼앗겼던 산둥반도를 탈환하고, 중동에까지 군사를 이끌어 중국의 이름을 드높인 것은 근 200년간 없던 일대 쾌거였습니다.”
“대단한 친구군요.”
“황제자리를 두고 벌어진 너저분하기 이를 데 없던 복벽소란을 진압한 국사무쌍의 장수! 호국전쟁에서 펑궈장의 총공세를 수비해 낸 전략의 천재! 그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나는 량치차오를 한번 보았다가 입을 열었다.
“누구요?”
왕징웨이가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뜨고 말했다.
“한신이라는 자입니다.”
“저와 이름이 같군요.”
“왜냐하면 제가 말하는 자가 바로 당신이니까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왕징웨이가 다시 말했다.
“언론에서 예루살렘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더 한신’이랍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더 한신’은 예루살렘이 아닌 베이징이라는 것을요. 아니지요. 전 중국을 ‘더 한신’이라 일컬어도 좋습니다. 오늘날 ‘한신’은 중국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이름입니다.”
그는 첫인사부터 일관되게 말하고 있었다.
낯 간지러울 정도로 나를 띄워주면서, 동시에 그 밑에는 알 수 없는 적의가 은은히 흐르고 있었으니.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아닙니다. 실력입니다. 그래서 더 위험한 것이고요.”
왕징웨이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잘근잘근 씹듯이 그가 단어를 내뱉었다.
“장군. 천하는 넓습니다. 지금껏 잘 헤쳐 왔지만, 앞으로도 그럴까요?. 지금처럼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행동하다가는 크게 낭패를 볼 겁니다. 이건 진심으로 장군을 위해 드리는 충고입니다.”
누가 누구보고 안하무인이라는 건지.
나는 무심하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지요. 선생님의 빙빙 돌리는 화법은 참으로 골치가 아프군요.”
“예. 하겠습니다. 장군의 사상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상이요?”
“장군은 조선 출신. 그동안 중국에 헌신한 경력은 인정하지만, 그 노력들이 중국을 위한 것이 아닌 장군 개인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는 의심입니다.”
이 이야기는 꽤나 익숙한 레파토리다.
몇 년 전에 베이징의 고급요정에서 똑같은 말을 했던 사람이 있었지.
“당신은 진정한 애국자가 맞습니까? 중국인이 맞습니까?”
“물론, 저는 중국인입니다. 애국자이고요.”
김일성 개새끼 해보라는 거냐? 까짓 거 백 번도 더 해줄 수 있어.
내 대답에도 왕징웨이는 기죽지 않고 떠벌였다.
“그런데 어찌 하나의 중국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프랑스 언론의 ‘더 한신’ 기사는 단순하게 언급했다 수준이 아닙니다. 당신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있었지요.”
“뭐라 덥니까?”
문득 왕징웨이의 어투가 바뀌었다.
“나는 네 야심을 알아, 한신. 나폴레옹을 따라 황제가 되고 싶은 거지? 중국을 여러 개로 나누어 분열시켜 싸우게끔 만든 다음에, 약해지면 하나씩 집어삼킬 작정이지? 어때 내 말이 틀렸나?”
권력을 얻고 힘을 키우는 만큼.
적도 많아지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하지만 자꾸 나오는 황제 타령은 억울하다.
서구 언론들이 빈약한 중국 역사 지식으로 멋대로 떠들어대는.
무시무시하게 성장하는 군벌시대의 종국에는 황제 즉위의 수순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예측도 이해는 가지만.
나는 공화정에 미친 놈이라고.
지금껏 벌인 모든 일들은 다 공화주의를 위해서였다고. 이걸 왜 알아주지 않는 거냐!
그에게 답변 대신 질문을 던졌다.
“쑨원 선생님이 당신을 보냈습니까?”
왕징웨이는 놀랄 만큼 싸늘한 얼굴이 되었다.
좀전의 능글능글한 미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이 서 있었다.
그는 돌연 잽싸게 몸을 돌리더니 잰 걸음으로 광장을 떠나버렸다.
“무서운 친구군. 적이 한 명 더 생겨 기분이 좋으시겠소, 장군.”
량치차오의 축하를 받으며 차이어의 장례식장을 빠져나온 얼마 뒤.
나는 정당 정보지에서 왕징웨이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익숙한 이름과 함께였다.
국민당 당수. 쑨원.
최고위원. 왕징웨이.
타이밍을 잰 것처럼 중화민국 제2회 총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