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332
673화 성난 파도로 뛰어들다 (1)
“미친 건가?”
운지란이 혼잣말하듯 구시렁거리며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사제는 사문 사람이 온 걸 알면서도 왜 맹장처럼 이 산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걸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스승님께서 너를 범한에게 보내신 건 너에게 정말로 범한의 조력자가 되란 뜻은 아니셨다.’
운지란이 저 멀리 문 아래에 있는 사제를 바라보고 있다가 너무나도 곤혹스러워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일을 할 때마다 충성을 바치는 게냐? 심지어 사문의 이익도 생각 않고? 그건 광기 때문인 게냐······ 아니면 스승님께서 살생을 광명정대하게 하는 심성을 가장 좋아하시기 때문이냐?’
“미친 마귀가 아니라면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까 운지란이 내뱉은 감탄에 검은 옷을 입은 자가 담담하게 화답했다.
이번에도 운지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기만 하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린 사제가 왜 저리 행동하는지 그로서도 알지 못했지만, 검려의 전수자로서 그는 사제를 존중했다. 그래서 검은 옷을 입은 자 앞에서 어린 사제와 관련한 내막을 노출하지 않았다.
운지란은 검은 옷을 입은 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전체 군대를 통솔하는 걸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이자의 용병술은 확실히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옷을 입은 자는 절대 위험한 묘수 따위는 쓰지 않고 차근차근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만 동원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모든 반란군 자원의 활용도를 완벽에 가까운 경지로 끌어 올리면서 경국 금군에게 반격해 포위를 뚫을 기회 자체를 주지 않고 있었다.
운지란은 검려 대부분의 고수들을 총동원한 가운데 연소을의 친위대와 합류한 것이었다. 양측은 손발을 맞추는 데 많이 삐걱거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만약 산 위에서 감찰원 6처의 검수 또는 무공이 고강한 호위(虎衛)가 포위망을 뚫으려 했다면 그 상태에서는 쉽게 봉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말 위에 있는 검은색 옷을 입은 자는 전장의 모든 세부사항까지 꿰뚫어 보는 신의 안목이라도 가진 듯했다. 이에 돌격에 앞서 동이성 고수들에게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곳으로 가 매복하고 있으란 강제 명령을 내렸다.
운지란은 처음에는 그의 명령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암흑 속에서 여러 차례 급습이 이루어지고, 대동산에서 포위를 뚫으려는 시도가 매번 검은 옷을 입은 자의 술책에 매섭게 저지당하자······ 그제야 운지란은 저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절대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검은 옷을 입은 자는 전장의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틈새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용병술은 전쟁터에서 수십 년을 구르지 않으면 익힐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소을이 왜 직접 병사들을 지휘해 이곳까지 오지 않았으며, 이 검은 옷을 입은 자가 대체 누구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운지란도 추측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반란군에 있는 많은 이들도 검은 옷을 입은 자의 신분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자는 자신의 병사를 딱 둘만 데리고 반란군 대열에 합류했다. 제멋대로인 것 같았지만 그의 용병술은 섬세하면서도 시원시원하고 위엄 있어 모두를 탄복하게 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왜 공격 중지를 명령한 건지 부하들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저 앞쪽에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산만 싸늘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 반란군을 이끌고 와서 급습을 하는 건 협의의 일부였다. 이 세력들을 잠시 자신의 수중에 두지 않는다면 황제 폐하께서······ 그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워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와 밝은 달을 모두 가려버렸다. 산 입구의 문 부근도 온통 어둠뿐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말에 타고 있던 자는 곧바로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자 곁에 있는 측근이 들고 있는 주머니 속 짧은 무기만 그윽한 빛을 발할 뿐이었다.
* * *
범한은 저 먹구름들이 달빛을 얼마나 오래 가려줄지 알 수 없었다. 이에 그는 조용히 산 아래를 향해 미끄러지듯 내려가기만 했다. 속도를 늦추지도, 올리지도 않고 무서울 정도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내려갔다.
바다와 마주 보고 있는 대동산 절벽은 대낮에는 매끄러운 옥처럼 보였고 한밤에는 그윽한 빛을 발했다. 이에 야행복을 입은 범한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대동산에는 산 양측을 따라 칼 같은 경계선이 있었다. 이 경계선은 곧장 해변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동이성 고수가 잠복해 있었다. 그러니 그 길은 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범한에게 남은 건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게 되는 그쪽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에서 범한을 제외하면 이렇게 가파른 절벽을 미끄러지듯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범한은 바다 쪽에 있는 사람, 육지 쪽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흔적을 발견할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건 있었다. 왜냐하면 어둠을 뚫고, 그리고 ‘휘잉’ 소리를 내며 몰아치는 바닷바람을 뚫고 누군가 가만히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게 느껴져서였다.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범한은 자신이 착각하는 중이란 걸 알았다. 지난 번 북제 상경성 밖에서 서산 절벽에 있을 때 뒤쪽 숲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느낀 것과 동일한 현상이었다.
이는 대개는 힘들고 절박한 환경에 처했을 때 감정이 요동쳐 나타나는 스트레스 반응이고, 특히나 범한과 같은 관념론자에게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1년 전, 흰 돛이 달린 배를 타고 담주로 할머니를 만나 뵈러 갈 때도 범한은 천신(天神)이 검으로 쪼개 놓은 듯한 대동산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대동산의 매끄러운 옥과 같은 절벽을 바라보며 자신이 저 산을 오를 일은 없을 거라고 자조적으로 생각했었다.
한데 그 모든 게 현실이 되어버릴 줄이야.
‘착한 일, 나쁜 일, 모두 응당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으니, 시시비비를 모두 하늘께서 가려주신다고 하던데. 설마 하늘께서 정말로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는 거야?’
대동산의 절벽은 서산보다 훨씬 위험하고 매끄러웠다. 그래서 범한은 어느새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내공 소모가 심해 이미 근력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범한은 어쩌다 만난 절벽 틈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박쥐처럼 최대한 유순하게 절벽에 붙어 잠깐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이때 범한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산꼭대기에 있는 등불은 안 보인지 이미 오래였다. 고개를 돌려 힐끔 보니 먹물 같은 바닷물과 자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점과 바닷물 위에서 출렁이는 몇 척의 병선(兵船)이 보였다.
교주 수군의 배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호위 중이기는 해도 반대쪽 산에서 일어난 반란군의 습격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기에서 벗어나 고을 관아에 이곳 사정을 알릴 수는 있었다.
그런데 사태가 이 정도로 심각해졌는데도 수군 병선은 이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범한은 황제와 이 일에 관해서 논의해 본 적은 없었지만 두 사람 모두 진씨 가문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건 자연스레 알고 있었다.
달이 얼굴 한쪽을 빼꼼 내밀었다. 범한은 서둘러 이동하지 않고 얼굴을 차가운 절벽에 바짝 붙였다. 찬 기운이 느껴지는 가운데 범한에게 무언가가 떠올랐다.
진씨 가문도 포함시켜야 한다면······ 천하의 모든 힘이 제대로 하나로 뭉쳐 대동산에 집결해 급습에 나선 것이었다. 그러니 황제 폐하께서 어림짐작도 못하신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천하 모든 적에게 불화는 잠시 잊고 긴밀히 단결하도록 만들다니. 이건 대체 어떤 경지인 걸까?’
이게 바로 경국 황제의 경지였다.
북제가 나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연소을의 친위대 병사 5천이 대동산 아래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분명 장 공주와 상삼호가 극비리에 계획을 짰기 때문이었다. 범한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위 절벽에 얼굴을 비비며 생각했다.
‘이 큰일을 해당타타도 알고 있을까?’
범한은 곧이어 가볍고 부드럽게 몇 차례 숨을 들이쉬었다. 사실 지금의 이 위험한 국면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모두 진평평 이 늙은 절름발이가 몇 년에 걸쳐 빚어낸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몇 수 거든 게 있었다. 그러니 장 공주든, 진씨와 섭씨 가문이든, 그들이 황제 폐하와 양립할 수 없는 대립 면에 서도록 한 건 진평평과 범한 자신이 매우 신경 써서 이들을 내몬 결과였다.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걸 진평평이 안다면 지금 절벽에 있는 나처럼 인간 세상의 일들이 정말로 기묘하게 느껴지려나?’
* * *
절벽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범한의 손과 미끄러운 바위면 사이의 흡착력은 매우 강했다. 체내 패도의 정기는 굵고 거친 경맥을 따라 부드럽게 확장되고 합쳐지면서 내부에서의 힘이 중간에 빠지는 현상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천일도의 온유하고 자연스러운 기운이 천천히 경맥 내부의 불안정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있었다.
범한이 침을 삼켰다. 그리고 옅은 달빛에 기대어 수직으로 머리 꼭대기까지 곧게 솟은 바위 선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혹시라도 절벽에 제대로 붙어 있지 못하면 이대로 암초로 가득한 위험한 파도 속으로 떨어져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이었다.
바다와 마주한 절벽이라 그런지 바닷바람이 쌨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람이 범한의 사지로 파고들었다. 범한은 오죽이 아니기에 높은 곳에서 직선 하강하는 신묘한 무공을 펼칠 수 없었다. 그래서 벽에 바짝 붙어 있는 것이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오죽 아저씨가 대동산에 있는 걸 어찌 아신 걸까?’
갑자기 묻지 못한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황제 폐하는 신묘와 암암리에 연락을 하고 계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년에 대제사가 비정상적으로 사망했으니······ 그건 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구름이 다시 달빛을 가렸다. 이에 범한도 다시 절벽 아래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내려왔는지 모를 무렵, 먹물 같은 바닷물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범한은 갈수록 경계를 강화했다. 자신의 공력을 끝까지 끌어 올려 미지의 위험에 시시각각 대응할 준비를 했다.
바다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 수군 병선에 있는 반란군에게 더 쉽게 발각될 수 있다는 거였다. 아울러 바다 위에 있는 그 작은 배와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수군의 선박에 있는 반란군의 경우는 어쩌면 칠흑 같은 밤에 바닷가 절벽 위를 천천히 기고 있는 작은 점을 제대로 못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섭류운은 어쩌면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범한은 양 손바닥을 미끄러운 절벽 위에 바짝 붙였다. 그런데 갑자기 동공이 살짝 수축하면서 뒤쪽에서 스산한 살기를 느꼈다.
‘누가 날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시력이 좋은 거지?’
범한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큰 파장을 내고 있는 정기를 본능적으로 강제로 끊어버렸다. 그러자 양 손바닥과 벽을 붙어 있도록 해주었던 정기가 갑자기 사라져 그 즉시 아래로 쭉 미끄러져 내려가고 말았다.
턱!
시커먼 화살이 범한이 붙어 있던 곳에 꽂혔다.
금속의 화살촉이 대동산 암석 절벽에 깊숙이 박혀 수십 개의 돌 파편이 생겼다.
만약 범한의 반응이 조금이라도 느렸다면 갑자기 날아온 화살이 그의 몸을 뚫고 들어가 그를 절벽에 고정시켜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범한은 여전히 위험한 상태였다. 빠른 속도로 절벽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어서였다.
범한이 방금 전 끊어버렸던 정기의 흐름을 순식간에 최대치로 끌어올린 후 양 손바닥으로 가볍게 절벽을 내리쳐 가까스로 몸을 고정시켰다.
슉!
두 번째 검은 화살이 날아와 인정사정없이 범한의 발아래 쪽 절벽에 꽂혔다.
범한의 발뒤꿈치에서 겨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떨어진 위치였다.
그야말로 위험의 연속이었다. 화살을 쏜 자는 분명 사전에 범한의 떨어지는 속도를 계산한 것이었다.
만약 범한이 앞서 추락을 계속해서 갑자기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려 했다면 분명 이 재난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