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04
945화 군자, 동료, 퇴로 (1)
2처를 담당하는 연로한 수장은 여덟 처 원로 수장 중에서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었다. 범한이 감찰원 제사가 된 뒤로 조금씩 권력을 접수하기 시작하자 진평평은 범한이 순조롭게 권력을 이양받을 수 있도록 여덟 처 원로 수장들에게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권유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진 원장을 따라 감찰원을 세운 인물들이었기에 섭가 주인의 아들인 범한이 감찰원을 넘겨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흔쾌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에 목철은 1처 수장을 맡았고 독에 정통한 범한의 사형이 3처의 수장을 맡았으며 언빙운은 4처 수장을 맡게 되었다. 또 흑기를 이끄는 수장도 은색 가면을 쓴 형과로 바뀌었고 7처 대머리 수장도 일찌감치 물러났으며, 8처 수장은 범한이 계년조 안에서 뽑은 사람이 되었다.
유일하게 2처만이 정보를 다루는 중요성 때문에 기존의 원로 수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처 수장은 책임을 다해 성실히 부하들을 가르치며, 부하들이 경국 정보 체계를 완벽하게 파악하기만 한다면 범 원장의 측근에게 흔쾌히 자리를 물려줄 생각이었다.
감찰원과 도찰원이 계속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다가 작은 범 원장이 하 대학사를 유독 미워했기에 하종위는 감찰원이 은밀하게 감시하는 대상 중 한 명이었다. 비록 폐하는 감찰원이 하종위를 감시하는 데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셨지만, 감찰원이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 만큼 조정도 참견할 수는 없었다. 감찰원 2처 수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하종위는 오늘 폐하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안색이 죽상이 돼서 황궁을 나간 걸까?’
금군의 방어 체계가 향상되고, 경도 수비사 병력이 갑작스럽게 이동한 것도 아주 민감한 정보였다. 2처 수장은 인상을 구기며 한참 동안 고민했지만, 도무지 이러한 움직임을 설명할 만한 합당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오늘 경국 경도 안에는 조정이 이렇게 힘을 들여서 대응할 일이 전혀 없었다. 더욱이 조정이 이처럼 긴밀하게 움직일 만한 일이라면, 감찰원도 참여를 하는 데 당연했음에도 황궁에서는 아무런 통보도 없었다. 이건 분명 평상시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보고서들을 든 2처 수장이 마른기침을 하며 방을 나갔다. 그리고는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더니 조용한 밀실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감찰원의 음침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백색 옷을 입은 젊은 관리가 큰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2처 수장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언빙운을 바라보다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그가 앞으로 걸어가 들고 있던 보고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진 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작은 범 대인이 마침내 정식으로 원장이 되었으니 4처 수장인 작은 언 공자도 곧이어 범한을 대신해 새로운 제사가 될 거였다. 몇 년 동안 진평평은 줄곧 병을 치료하는 데만 시간을 쏟았고 범한도 세세한 일을 처리하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감찰원의 모든 사무는 언빙운이 혼자서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니 언빙운은 앞으로 잡다한 일을 모두 관리하는 제사 대인이 될 거였다. 물론 감찰원 관리들도 그가 감찰원 일을 처리하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감찰원 원로 관리들은 작은 범 대인이 혀를 내두를 만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섭가 여주인과 진 원장의 관계도 생각해서 범한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충성했다. 하지만 이런 존경심과 충성심에는 약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에 감찰원 원로 관리들 입장에서는 언약해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감찰원에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북제에서 감찰원을 위해 상당한 대가를 치른 언빙운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유 숙부, 이건 뭡니까? 번거롭게 직접 가지고 오신 겁니까?”
언빙운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범한 앞에서 얼음처럼 차갑게 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가 앞에 서 있는 2처 수장에게 앉으라고 말하고는 책상에 놓인 보고서를 펼쳤다.
“금군이 방어 체계를 올리고 경도 수비사 병력이 갑자기 이동한 건 모두 군대 쪽과 관련된 일이니 궁정과 추밀원에만 보고하고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것도 말이 되네.”
2처 수장이 언빙운을 바라보며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평상시와는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네. 금군의 방어 체계가 올라간 점이나 경도 수비사 병력이 갑자기 이동했다는 건 분명 목적이 있어서라는 데 감찰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네…….”
보고서들을 다 읽은 언빙운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동이성 쪽 정세가 요즘 들어 불안해지지 않았습니까. 그곳에 고수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다가 강호 사람들은 항상 살기를 품고 있으니까요. 황궁에서 현공 상당 같은 일이 터지거나 살수들이 침입해올까 걱정해 금군의 방어 체계를 향상시킨 걸 겁니다.”
“그리고 경도 수비사 병력이 움직인 건…….”
언빙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잠시 뒤 추밀원에 문서를 보내 물어보도록 하지요.”
“추밀원은 우리의 물음에 대답해주려 하지 않을 거네.”
2처 수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게다가 지금 문제는 사비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갔다는 거네. 분명 황궁에서 무슨 명령이 내려진 게 틀림없어.”
그러더니 2처 수장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든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속으로 진 원장의 마차 행렬이 경도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는 말도 안 된다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러십니까?”
언빙운이 그윽한 눈빛으로 2처 수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야.”
2처 수장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네.”
그렇다. 2처 수장은 황제 폐하가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진 원장을 공격할 거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었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추측을 즉시 떨쳐냈다. 궁전과 섭중이 이해하지 못하고, 대장 사비가 불안에 떨 만큼 이 일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빙운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찰원이 군대 쪽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공개적으로 밝힐 수는 없으니 추밀원에 문서를 보내 물어봐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군대 쪽은 우리가 개입할 수 없으니 보고서를 작성해 황궁에 올린 뒤 폐하께 읽어보시라 권했지.”
2처 수장이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말했다.
“오늘과 같은 수상한 동향이 있을 때는 우리도 빨리 반응을 해야 할 필요가 있네.”
“알겠습니다.”
언빙운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당장 이 보고서들을 은밀한 경로를 통해서 어서방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무의식적으로 부하에게 말하듯이 대답하던 2처 수장은 언빙운의 반응이 수상한 점을 감지했다. 줄곧 예의 없이 고개를 들지 않는 게 수상했기 때문이다. 2처 수장은 순간 자신과 동급 관리가 된 언빙운이 제사직에 오르기도 전에 벌써 거만해진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
터무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언빙운이 어려서부터 성장해온 모습을 지켜봐 왔기에 그런 성격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에 언씨 집안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보다고 생각하고는 보고서를 들고 밀실을 나왔다.
이렇게 감찰원은 가장 빠르게 대응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물론 지금 이 상황에서는 특수 기구인 감찰원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경국, 조정, 심지어 정방형 검은색 건물의 안전을 위한…… 가장 좋은 반응이었다.
다시 조용해진 밀실 안에서 언빙운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만약 이때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작은 언 공자의 눈동자에서 망설이고 괴로워하는 감정이 점점 짙어지는 모습을 보았을 거였다.
언빙운이 책상 위에 올려둔 두 손을 꽉 쥐고는 한참 동안 풀지 않았다. 그래도 괴로운지 그가 얇은 입술이 깨물자 붉은 피가 입술 아래로 흘렀다. 천천히 일어난 그가 창가로 걸어가 검은색 천을 걷고는 밖을 바라봤다. 초가을의 맑은 하늘과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는 금색 황궁이 보였다.
이때 언빙운의 머릿속에 자신이 처음 감찰원에 들어왔을 때가 떠올랐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노인은 이 방에서 그를 만났었다. 창문을 가린 검은 천은 한 번도 들린 적이 없는 것 같았고, 노인은 어둠에 익숙해져서 이제 더는 햇빛을 볼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이후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노인은 이 방을 떠나 진원으로 돌아갔고, 범한도 매일 엄숙하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감찰원 안에 머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밀실에 가장 오래 머무는 사람은 언빙운 자신이었다.
이전에 여덟 처 수장들은 모두 긴 탁자 양쪽에 앉아서 일을 보고했지만, 오늘 긴 탁자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전에 긴 탁자 끝에는 바퀴 달린 의자가 있었고 그 뒤에는 항상 그림자가 지키고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퀴 달린 의자는 없었다. 언빙운이 손에 쥐고 있던 검은색 천을 내려놓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 비치던 망설임과 괴로움은 사라진 상태이었다. 이 밀실의 두 번째 주인인 그는 이전 주인의 성정과 의지를 계승해야 했다. 그러니 결정을 내린 이상 망설여서는 안 됐다.
언빙운은 과거 경제가 조정에 젊은 인재들을 들일 때 황실에 입궁한 일곱 젊은 관리들 중 한 명이었다. 일곱 명의 젊은 관리들은 경제가 경국의 미래를 위해 준비한 사람들로 반란 중에 사망한 진항을 제외한 여섯 명은 이미 경국 조당에서 스스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섯 명의 사람 중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하종위였다. 젊은 나이에 그는 이미 문하중서의 대학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찰원 좌도어사도 겸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빙운과 범문사자 중 한 명인 성가림은 의심할 여지 없이 범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다만 경국의 위대한 황제 폐하가 그날 밤 대화를 하면서 감찰원의 작은 언 공자에게 얼마나 많은 위협을 가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소위 칠군자 중에서 황제 폐하는 하종위와 언빙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언빙운이 천천히 의자에 앉아 두 손바닥을 책상 위에 펴고는 감찰원의 복잡한 명령 문서와 정보 보고 상주문을 쓰다듬었다. 잠시 뒤 그가 방울을 흔들어 자신의 직속 관리와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계년조 요원들을 부른 뒤 작은 목소리로 뭐라 명령했다.
이 명령들은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감찰원은 이제 앞으로 십여 일 동안 동이성의 증원과 서량로 등자월과 접촉하는 데 가진 힘 대부분을 할애하게 되었다.
총 네 개의 명령이 내려졌다. 이로써 경도 감찰원 본부의 힘 중에서 거의 대부분이 경국 각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동은 이상할 게 없었기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조치들로 인해서 감찰원은 당분간 경도 안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범한도 언빙운처럼 신속하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범한은 세세한 일까지 신경 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감찰원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언빙운처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작은 언 공자는 자신의 탁월한 계획 능력을 사용해 거대한 감찰 전문 기구인 감찰원의 몇몇 부분을 움직여 감찰원이 가진 거의 대부분의 힘을 분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