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34
975화 쉴 틈이 없는 영웅을 비웃다 (6)
작은 범 대인이 돌아오시다니! 성 꼭대기에 있던 장수 관원들은 오늘 황궁 앞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잘 알고 있던 터라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런데 이들 장수들은 황명을 받들어 경도성을 지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황궁 안에서는 감찰원이 조정의 나머지 세력을 끌어들일 것만 걱정했지 애당초…… 작은 범 대인이 경도 정양문 아래에 느닷없이 떡하니 나타나는 건 예상도 못하고 있던 터였다.
엄청난 노기를 냉담함으로 억누르고 있는 경국 황제 폐하든, 어떻게든 범한이 경도로 돌아오는 걸 막으려던 진평평이든, 오늘 범한이 경도에 나타난 건 그들에게는 예상외의 일이었다!
경국 조정으로 들어온 마지막 정보에 따르면, 범한은 지금 이 시각 저 멀리 국경 밖에 있어야 했고, 아직 동이성에서 경도로 돌아오는 길 위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범한이 날아온다 하더라도 시간을 맞출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도 믿지 못한 일이 일어난 거였다. 범한이 어떻게든 돌아온 거였다!
“성문을 사수하라! 쇠뇌와 활을 든 궁수들은 모두 준비하라!”
정양문 통령이 첫 번째 대응에 들어갔다. 그가 전달 받은 황명은 오늘 경도성을 굳건히 닫고 출입을 엄금하라는 거였다. 그는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스물 몇 명의 흑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흑기가 순간 성을 공격하려는 천군만마처럼 느껴졌는지 정양문 통령이 살짝 질린 표정이 되어 떨리는 음성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작은 범 대인이 아무리 서둘러 돌아왔다고는 해도 오늘은,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경도로 들일 수 없어서였다!
“작은 범 대인, 오늘은…….”
정양문 통령이 말 위에 있는 범한을 향해 잠시 사정을 말해주려 했다. 하지만 범한에게는 그의 설명 따위 들을 시간이 없었다. 이에 범한은 타고 있는 말의 속력을 줄이지 않고 정양문 성벽 위를 훑어보기만 했다.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는 군사들이 보이자 그는 마음이 위축되었다. 자신이 사력을 다해 경도로 들어간다 해도 이미 늦어서였다.
말에 타고 있는 범한의 눈에서 두 줄기 사늘한 빛이 폭발했다. 그가 성 위에 있는 관병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자 관병들은 겁을 먹고 시선을 거둬들였다.
흑기가 성문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범한이 오른손을 들었다. 그런 후 있는 힘껏 오른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뒤에 있던 스물 몇 명의 흑기가 삼각대형을 만들더니 속도를 늦추어 성벽 위 궁수들의 사정거리 밖에 머물렀다.
경도성 성벽 위에 있는 이들은 일단 마음을 놓았다. 스물 몇 명의 흑기가 압도적 기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성벽을 무너뜨릴 리는 만무해서였다. 단, 흑기와 정면 대결을 한다면, 나중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흑기가 멈추어 서서 더는 강공을 펼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지극히 잘 된 거였다.
하지만 범한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여전히 정양문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뒤쪽에 있는 스물 몇 명의 흑기는 등에 메고 있던 힘이 좋은 쇠뇌를 차분하게 꺼내들었다.
슝슝슝, 하며 빽빽하게 화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성 머리 쪽을 향해 갈고리 줄이 달린 쇠뇌의 화살이 발사되었다. 갈고리가 띵땅, 하는 소리와 함께 성벽 위 푸른 벽돌을 제대로 물었다! 수십 발의 검은색 갈고리가 성벽 위아래에 걸쳐 마치 그물로 엮은 듯한 다리를, 그것도 생사를 넘나들도록 해주는 다리를 만들었다.
이는 3처가 여러 해 전에 연구 제작한 갈고리 밧줄이었다. 과거 범한이 북제 사절단으로 갈 때 감찰원에서 사용해보기를 권했었지만, 그때 범한은 자신만의 절기가 있던 터라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시간 절약을 위해 억지로라도 성벽을 넘어가야만 했다. 이에 범한은 일찌감치 이 갈고리 밧줄을 준비한 거였다.
범한이 홀로 말을 몰아 정양문 아래까지 왔다. 가을비 때문에 검은색의 갈고리 밧줄은 마치 무수히 많은 그림자처럼 하늘에서 반짝였다. 범한이 끄응 소리를 냈다. 이로써 범한은 극에 달한 피로와 정력 소진으로 인해 들뜬 정기를 억지로 억누른 후 패도 정기를 맹렬하게 방출시켰다. 그러고는 한 발로 말 등을 밟고 올라가 주변 공기 흐름과 미묘하게 감응하며 곧바로 직선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범한에게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우레와도 같은 놀라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은 마치 검은색의 거대한 새가 경도의 음산한 성문 앞에서 춤을 추며 점점 높이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줄을 끊어라! 줄을 끊어!”
정양문 통령이 갈라진 목소리로 있는 힘껏 소리쳤다. 하지만 관병들에게 저 검은 괴물처럼 보이는 이를 향해 화살을 쏘라는 명을 내리지는 못했다. 작은 범 대인을 죽이면 황제 폐하께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어서였다.
정양문 통령이 머뭇거리는 사이 범한은 전혀 머뭇거리지 않았다. 크게 소리를 내질러 체내 정기를 억지로 더 끌어올린 후 손가락 끝을 검은색 갈고리 밧줄에 얹었다. 그리고 밧줄을 따라 검은 연기처럼 스르륵 미끄러지듯 날며 성벽 높은 곳을 향해 갔다.
밧줄 하나가 끊어졌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13성문사 사병이 전속력으로 십여 가닥의 갈고리 밧줄을 끊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먼지 투성에 피로가 극에 달해 있던 범함도 성문 위에 막 도착한 상태였다. 범한은 스산하게 번쩍이는 빛을 보는 순간 등에 메고 있던 북위 천자의 검을 칼집에서 빼들었다.
검 끝이 정양문 통령의 목을 꿰뚫고 선혈이 솟구쳤다. 이어 검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순간 통령도 땅바닥으로 넘어갔다.
범한이 바람처럼 그의 시신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몸 세 군데에 가볍게 상처를 입는 대가를 치른 후 성벽 위에 있는 강력한 경국 군의 방어를 뚫고 긴 돌계단을 따라 날아 내려갔다. 검이 다시 한 차례 빛을 번뜩였고, 이내 세 사람이 즉사했다. 범한은 말을 빼앗아 올라탄 후 곧게 뻗은 길을 따라 황궁 쪽으로 질주했다.
정말 빨랐다. 모든 행동이 ‘빠르다’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형용할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예전에 담주 절벽에서 오죽의 막대기를 피할 때보다도 빨랐고, 황궁을 급습해 맹렬하게 황태후를 제압할 때보다도 빨랐다. 그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지금 이렇게 경도로 들어오기까지, 수일 밤낮 동안 범한은 매 순간마다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어야만 했다. 그리고 마음속 공포는 그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냉혈한으로 만들어 주었다.
선혈이 검과 몸에 묻어 있었지만 범한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공포와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경도의 정세를 보니, 어쩌면 그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이 이제 더는 기다리지 못하는 지경이 된 것만 같아서였다.
“기다려줘요!”
범한이 같은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그리고 가을비가 먼지투성이가 된 얼굴을 때리든 말든 상관 않고 미친 듯이 황궁을 향해 질주했다.
황궁 근처에 다다르자 가을비가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리에 행인이 별로 없는데, 모두들 어디로 간 거지? 범한에게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일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의 환호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소리가 잦아들며 죽음 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하는 소리’는 경도 사람은 듣지 못하는, 오로지 범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것은 대단히 공포감을 자아내는 소리였다.
반면 경도 사람들에게는 침묵 속에서 전해져오는 말발굽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달그닥, 달그닥, 달그닥, 달그닥.
침묵 속에서 말발굽 소리를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곧이어 전광석화처럼 달려오는 검은 기마병이 보였다. 그리고 또 가을비를 맞고 있는 낡고 찢어진 검은색 관복과 말 위에서 엄숙하게 살의 가득 뿜어내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황궁 앞 광장에서 형 집행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이리저리 뛰기 시작하고 동시에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뒤쪽에 큰 혼란이 일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짓밟히고 다쳤다.
홀로 나타난 말이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고 밀집한 군중들 사이를 냉혹하게 뚫고 들어온 거였다.
이에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피하고, 피하지 못한 사람은 말에 부딪혀 날아갔다.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말발굽과 행인이 만나 이상하리만치 피도 눈물도 없는 상황이 펼쳐진 거였다.
인산인해 속에서 사망할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 일자 갑자기 넓게 길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사력을 다해 양측으로 몰려들어 말을 타고 있는 사람에게 황궁으로 그리고 자그마한 사형장으로 향하는 직통로를 만들어 주어서였다.
금군이 몰려들어 에워싸고는 곧바로 긴 창을 빽빽이 들어 말에 타고 있는 사람을 겨누었다.
그러자 범한이 조용히 날아올라 빽빽하게 솟아 있는 창을 뛰어넘고는 허공에서 전광석화처럼 칼을 횡으로 휘둘렀다. 촥촥촥, 하는 소리가 여러 차례 울리면서 여러 개의 장창이 잘려나가고, 궁정 시위 몇몇도 나가떨어졌다. 그러더니 범한은 어느새 사형장 상공으로 가 있었다.
어떤 동작을 하든 범한은 줄곧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무 형틀 위에는 피로 얼룩진 것 같은 겨우겨우 숨만 붙어 있는 노인이 있었다. 범한의 눈빛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독기가 찬 것처럼 변했다. 그런데 그에게 사방에서 습격해오는 듯한 강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베옷을 입은 무수히 많은 형체가 범한을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공중을 날아다니는 꽃잎처럼 가을비 속에서 범한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그의 앞길을 막았다.
하지만 범한은 뒤로 물러서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가슴과 등에 세 차례 손바닥 공격을 받기는 했지만, 범한의 칼도 베옷을 입은 사람의 얼굴 한가운데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범한의 검이 베옷을 입은 사람의 눈꺼풀 위를 매섭게 찌르자 안구의 내용물과 피가 동시에 밖으로 터져 나와 빗물과 섞였다.
범한이 미친 듯이 소리를 내지르며 왼손 손바닥으로 상대를 내리쳤다. 그러자 지극히 패도한 공격에 손목뼈에서 살짝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어 왼손 쪽에 있던 베옷을 입은 사람이 충격에 눈, 코, 잎, 귀에서 피를 쏟으며 땅바닥으로 툭 쓰러져 버렸다.
‘팍!’ 하는 소리가 울렸다. 범한의 양발이 드디어 축축해진 나무 대 위에 올라선 거였다. 하지만 범한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내상을 입은 게 순간 맹렬히 폭발해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범한은 자신의 몸 상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형틀에 묶인 노인을 얼빠진 사람처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노인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살점이 잘려나가 있었고, 사람들에게 온갖 치욕을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잠시 봤을 뿐이지만 범한은 자신이 늦었다는 걸, 그리고 자신에게는 상대방을 계속 살려둘 방도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범한이 마른 입술을 살짝 벌렸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을비가 대 위에 있는 노인과 젊은이 두 사람을 씻겨 주었다. 주변에서는 죽음과도 같은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모든 금군, 궁정 고수, 경묘의 강력한 고행자가 나무로 만든 대를 에워쌌다. 하지만 앞서 범한이 보여주었던 강력한 살의와 죽음도 불사한 공격에 모두들 몸이 꽁꽁 얼어붙어 그 누구도 감히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다가오지는 못했다.
범한이 너무나도 힘겹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끈을 풀어 진평평의 말라비틀어진 몸뚱이를 품에 안은 후 먼지와 진흙투성이에 여기저기 구멍까지 난 검은색 감찰원 관복을 벗어 그의 몸을 덮어 주었다.
진평평이 힘겹게 눈을 떴다. 늙고 혼탁해 초점이 없는 두 눈에서는 외려 지극히 순수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아이 같았다. 노인이 추위를 타는 아이처럼 범한의 품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제가 늦게 돌아왔군요.”
바짝 마른 몸을 품에 안고 있던 범한이 노인의 체온이 점점 떨어지는 걸 느끼며 깔깔해진 열고 말했다. 그의 마음속은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좌절감과 절망 그리고…… 상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