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5)
천인이 되고 싶었던 혼령
“저기 있다.”
아인의 손가락이 저 멀리 있는 희끄무레한 무언가를 가리켰다.
인간처럼 보이는 그것은 히든 네임드인 레오파드다.
그가 밟고 선 얼음의 대지에는 이미 한바탕 전투를 마친 것처럼 격렬한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왜 보스가 꺼내져 있냐? 우리 전에 누군가 잡으려고 시도했다가 못 잡은 건가?”
“그런 거 같아.”
“누군지 몰라도 멍청한 놈들이군. 게임이 나온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레오파드를 잡으려 했단 말야?”
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 우린 최초 킬 업적만 얻을 수 있다면 상관없지… 저게 리젠 된 몹은 아니길 빌자고.”
현은 레오파드가 지금 시점에서 유저들에게 공략 당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95레벨의 네임드란 30레벨 언저리의 유저들 수천이서 다굴을 놓는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다.
특히 레오파드가 지닌 ‘눈보라 방패’라는 스킬은 현재 유저들 수준으로 대응조차 못할 것이다.
자신의 주위에 수천의 얼음조각을 회전시키는 기술.
그 얼음조각은 모든 투사체들을 방어할 수 있을뿐더러 얼음조각 자체 데미지까지 존재하니 접근조차 힘들었다.
게임 초반인 지금 레오파드는 유저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존재이리라.
물론, 그런 정론들은 일반 직업들 기준에서 말한 것이고 항상 예외는 있지만 말이다.
현은 음침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히든 몬스터라 해봤자 우리에게 걸리면 경험치와 아이템에 불과하지.”
“정말 괜찮은 거야? 95레벨 보스인데….”
“뭐? 지금 날 못 믿는 거야?”
“음… 네임드 공략에서의 현이라면 믿을 수 있지.”
아인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은 심리전에 있어서 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그것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선 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현을 향한 감정은 어느새 동경이 된 지 오래였다.
그렇게 아인이 현을 동경하게 만든 그 능력은 아스리안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여태껏 둘이서 잡은 히든 네임드는 총 17마리!
현은 기발한 방법으로 보스들의 패턴을 카운터치거나, 때로는 야비하다고 느껴질 방법까지 동원해 기어이 공략을 성공시켰다.
그 때는 같은 아스라 랭커였던 아인도 감탄해 절로 박수가 나왔다.
‘현이 된다고 말하니까. 일단 해 볼 수밖에 없겠네.’
아인은 살짝 몸을 풀며 앞을 바라보았다.
마침 히든 네임드인 레오파드도 자신들의 존재를 눈치 챈 듯 다가오고 있었다.
“조무래기들이 남아 있었나? 어차피 지상의 인간이로군.”
레오파드는 중얼거리며 지팡이를 앞으로 향했다.
“너희도 저승으로 보내주마.”
아이스 탑.
방금도 그 마법을 피한 자는 아무도 없었고, 스치기만 해도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레오파드는 확신했다.
벌레를 죽이듯 귀찮은 손짓으로 마법을 발사했고, 관심을 끄며 그대로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뭐라고?”
조그만 여자아이가 겁도 없이 자신에게 다가오길래 별 생각 없이 마법을 쏴 주었다.
그 한 방으로 목을 떨어뜨려버릴 생각이었지만, 잠시 후 기함하고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진심을 담아 공격했는데도 상대가 멀쩡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오파드는 눈썹을 좁혔다.
대충 공격하고 몸을 돌렸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보지 못했다.
우연인가?
이 몸의 마법이 실수로 빗나갈 수가 있는가?
다시 지팡이를 겨누고 마법을 발사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끝내버리려는 생각으로 끝까지 지켜보았다.
얼음덩어리가 파공성을 흩뿌리며 허공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나서.
“무슨…!”
이번엔 똑똑히 보았다.
자신의 마법이 어째서 닿지 않았는지.
‘아이스 탑’이 작은 소녀의 가슴을 관통하기 직전, 그녀는 손바닥으로 얼음을 튕겨서 빗겨냈던 것이다.
궤도가 비틀린 마법은 그대로 뒤쪽의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 묘기와 같은 광경에는 레오파드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한 거지…?”
마도국의 마법사로 살아오고 죽어서 혼령이 되기까지 레오파드는 수많은 적들을 만났다.
그중엔 물론 자신의 마법을 보고 막아내던 자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방패로 차단하거나,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드물게 눈이 좋은 적들은 검으로 튕겨내기도 했다.
하지만 손으로 마법을 튕겨낸다?
그런 시도를 하는 적은 난생 처음 보았다.
비상식적인 광경을 목격하니 레오파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저 여린 손으로 강철도 뚫는 얼음을 쳐낼 수 있을까.
하지만 레오파드의 생각과는 달리, 아인도 그저 여유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손으로 마법을 쳐내는 건 어찌 보면 굉장해 보일지 몰라도, 그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한 번의 실수는 곧 죽음.
한 번도 실수하면 안 된다.
아인은 아까 전 현의 설명을 끊임없이 기억에 되새기는 중이었다.
“보스의 주력기술은 아이스 탑이라는 이름의 마법이야.”
“그저 얼음조각을 날리는 단순한 기술이지만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아무리 너라고 해도 보고 피하기는 힘들 거야.”
“데미지도 10000이 넘으니까 스치기만 해도 그대로 죽음이지.”
“내 1초 무적 스킬도 마법방어력을 고작 50 올려주는 정도라 10000의 데미지까진 막아낼 수 없어.”
처음 현의 설명을 들었을 땐 보스의 공략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마법은 너무 빨라서 못 피한다.
유일한 방어스킬, ‘1초 무적’으로 막기엔 데미지가 너무 강하다.
누구나 공략을 포기할 상황에서도 현은 기어코 답을 찾아냈다.
“마법이 날아오는 순간 빗겨 튕겨내는 거야.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스치기만 해도 오히려 자신의 팔이 날아가겠지만….”
“그 짧은 순간에 1초 무적으로 방어력을 강화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
현이 생각한 방법은 이렇다.
일반적으로는 1만의 피해에 달하는 공격을 튕겨낸다 해도 팔이 멀쩡할 리 없다.
아스리안 온라인엔 최대 체력의 33퍼센트 이상의 피해를 한 번에 받으면 신체가 손상되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법방어력이 50 증가한 상태라면?
아스라와 아스리안에는 데미지 명중 보정률이 존재한다.
급소를 때리면 치명타가 터지는 것처럼, 공격을 빗겨 맞으면 튕겨낸 각도에 따라 데미지가 감소한다.
만약 데미지를 경감시켜 피해량을 일정수준이하로 줄일 수만 있다면, 1초 무적으로 완벽한 방어가 가능해진다.
문제는, 이론상의 방법을 실현해 낼 수 있는가.
“마법이 날아오는 건 보스의 지팡이가 빛나는 순간이야.”
“여유는 약 0.2초에서 0.3초 정도 뿐이지만… 아마도 너라면 반응할 수 있겠지.”
팟-.
레오파드의 지팡이가 순간 빛을 내뿜었다.
아인은 눈을 깜빡이지 않도록 주의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허리를 회전시키는 동시에 날아오는 물체를 손등으로 빗겨낸다.
그리고 얼음과 손등이 부딪치기 직전, 아인에게로 씌워지는 1초 무적!
콰직- 얼음조각은 아인을 빗겨나가 옆쪽의 나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인에게 들어온 피해는 제로. 노 데미지다.
후우- 아인은 짧은 숨결을 내쉬었다.
「될 거 같아?」
현이 아인에게 물었다.
「이 정도야 뭐. 손이 좀 찌릿찌릿하긴 하네.」
「좋아, 그럼 해 보자고.」
대화는 친구 전용 귓속말 기능으로 해뒀다.
급박한 가운데 대화를 잘 듣지 못할 수도 있고, 거리가 떨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어그로를 분산시키기 위해 현은 보스의 뒤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팟- 다시 한 번 지팡이가 빛났다.
아인은 이번에도 자신에게 쇄도하는 얼음의 탄환을 빗겨냈다.
튕겨내기 직전과 직후에 1초 무적의 지속시간이 시작되고 끝난다.
‘아이스 탑’의 캐스팅 시간이 ‘1초 무적’의 재사용 대기시간인 10초보다 길다는 것까지 계산을 끝마쳐 두었기에 스킬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었다.
딱 알맞은 때에 시전되는 현의 완벽한 버프 타이밍!
둘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죽는 생사의 경계에서 조화를 이룬 그 모습은 아름다울 정도였다.
보스의 공격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지팡이의 방향이 돌연히 바뀌고 빛이 빛난다.
현의 눈이 커졌다.
이번에는, 자신이다!
반응속도는 현도 아인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해 자신에게 날아오는 얼음조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완벽하게 쳐냈다…라고 생각했지만 아인과는 달리 완벽하게 처리하지는 못했다.
[15의 피해를 입었습니다!]피해를 입은 까닭은 쳐내는 각도에 따른 충격량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의 체력은 아직도 많기에 공략에 차질은 없었다.
‘난 아인과는 달리 스킬을 쓰면서 방어까지 하잖아… 집중이 분산된 상황에서 이 정도면 대단한 거지.’
자신의 마법이 무력화되는 도중에도 레오파드는 쉬지 않고 마법을 캐스팅했다.
녀석의 지팡이가 다시 아인을 겨누고 있었다.
현도 따라서 타겟팅을 바꾸었다.
‘1초 무적!’
우우웅- 레오파드의 지팡이가 빛나는 순간.
아인의 코앞에서 직격으로 얼음조각이 쏘아졌다!
가까이서 쏘아지는 마법을 튕겨내기란 좀 더 난이도가 높았다.
“큿….”
급박한 상황에 아인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렀다.
왼손으로 레오파드의 마법을 튕겨내는 동시에 오른 손은 앞으로 내질렀다.
드디어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한 아인의 첫 공격이 시작되었다.
화염이 레오파드의 새하얀 로브 위를 긁고 지나갔다.
[치명타! 82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크윽… 미천한 년이 감히 나에게! 좋아, 네놈의 존재를 이 세상에서 지워주마!”
갑자기 레오파드는 땅에 지팡이를 박아 넣었다.
우우웅- 그의 주위로 마법진이 떠오르며 주위의 공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현은 그 현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빠져!」
현이 외치기 전부터 아인은 뒤로 물러서 있었다.
녀석의 캐스팅이 끝나는 찰나.
수천의 얼음으로 이루어진 자잘한 칼날의 비가 폭풍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물리공격과 마법공격을 막아내는 완전무결한 방패.
혹은 모든 것을 꽁꽁 얼리며 난도질하는 칼날.
레오파드의 절대적인 방어기술, 눈보라 방패가 펼쳐졌다.
“자, 이제 어쩔 거냐. 천인의 앞에 선 범인의 보잘 것 없음을 느끼느냐!”
회전하는 눈보라가 꺼지지 않는 한 중심에 선 레오파드는 무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으니 공격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은 공략전에 모든 대비책을 생각해 뒀다.
당연히 눈보라 방패를 파훼할 방안이 없었다면 레오파드를 사냥할 시도조차 않았을 것이다.
‘지금!’
현은 레오파드의 뒤쪽에서부터 틈을 노리다가 눈보라 속에 뛰어들었다!
수천의 얼음칼날이 회전하는 폭풍 속에 맨몸을 던지는 모습은 너무나 무모해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자살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거다.
물론 현은 죽어줄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1초 무적]. [반탄].현은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자신에게 걸었다.
촤라라라라- 수천의 얼음조각이 몸을 난자하지만 간지러울 뿐이다.
실제로도 눈보라 속에서 현의 체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1초 무적의 마법 방어력 50의 효과!
이런 자잘한 연타형 기술이 상대라면 1초 무적은 그야말로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후두두둑-.
또한, 회전하던 얼음조각들이 장대비처럼 한꺼번에 땅으로 떨어졌다.
반탄에 걸린 레오파드의 스킬이 캔슬되었기 때문이었다.
반탄은 대부분의 상태이상 기술들과 다른 발동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발동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적에게 있다.
한때는 수동적인 스킬 운용방식이라며 욕을 내뱉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점이 결정적인 이득으로 작용했다.
현은 레오파드의 방어를 뚫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반탄을 켜고 눈보라에 뛰어드는 것만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반탄’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초기화되었습니다!]게다가 한 가지 더.
맞을 때마다 5초씩 재사용 대기시간이 줄어드는 반탄의 패시브가 한꺼번에 발동!
눈보라 방패의 다단히트 속성을 이용한 전략이다.
한편 눈보라의 영향에 들어갔던 현은 동상처럼 꽁꽁 얼어붙게 되었다.
데미지는 막을 수 있어도 상태이상까지 막을 방법은 없었다.
「이거 풀어줘!」
하지만 현의 외침과 동시.
아인이 재빨리 불꽃을 덮어 빙결을 해제시켰다.
파티원끼리는 데미지를 주지 못하기에 불꽃에 의한 피해는 없었다.
그리고 아직 반탄으로 인한 스턴의 지속시간도 끝나지 않았다.
화르르륵- 아인은 재빨리 양손을 점화시켰다.
무방비한 레오파드는 아인의 공격에 노출된 상태였다.
[치명타! 852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치명타! 84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치명타! 83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치명타! 848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모든 공격을 치명타로, 아인은 순식간에 10번 이상의 공격을 레오파드에게 꽂아 넣었다.
마치 고양이가 마구 할퀴는 것처럼 보였기에 멋은 없었지만.
“크윽… 감히 나에게 수치를 주다니…! 놀이는 끝이다 곧바로 죽여주마!”
기절의 지속시간이 끝났을 때 레오파드의 새하얀 로브는 불타서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하지만 분노 때문에 옷차림은 신경 쓰지도 못하는 기색이었다.
우우우웅- 레오파드의 지팡이가 크게 진동했다.
이것은 ‘눈보라 방패’의 전조.
아인은 발빠르게 공격을 멈추고 뒤로 빠졌다.
현은 재차 눈보라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침 스킬의 재사용 시간도 모두 돌아와 있었다.
화아아아아- 레오파드가 자랑하던 눈보라 방패는 또 다시, 회전하기도 전에 시들어 버린다.
아인은 현에게 걸린 ‘빙결’을 해제하는 동시에 레오파드에게 극딜을 넣었다.
“커억…!”
레오파드의 눈가가 붉게 변색되었다.
하얗던 피부도 로브와 함께 그을려 있었다.
일반적으로 인간형 보스들은 방어 기술이 출중한 반면 체력은 낮다.
눈보라 방패를 사용하지 못하는 레오파드는 공격이 빠르고 강한 정예몹일 뿐!
아니, 물론 그 정도까진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 완전히 틀린 비유는 아닐 거다.
「이제 그거 안 쓰네.」
「인공지능 수준이 훨씬 높은 것 같아. 실제 사람하고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어.」
눈보라 방패가 두 번이나 캔슬 당한 이후로 레오파드는 같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법이 쉽게 파훼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 때부터 본격적인 난전이 시작되었다.
현은 조금 떨어져서 보조스킬을 사용했고, 아인과 레오파드는 각각 불과 얼음을 내뿜었다.
화염과 냉기가 가까이에서 얽힌다.
마법사들의 싸움인데도 마치 전사들의 난투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인이 근접 전투를 강제하니 레오파드는 근접전을 피할 수 없었다.
레오파드가 거리를 벌리려 할 때마다, 아인은 오히려 빠르게 파고든다.
순간적으로 불꽃을 점화시키며 대부분의 공격에 치명타를 터트린다.
그리고 레오파드의 지팡이가 번쩍 빛날 때마다 현의 1초 무적이 씌워졌다.
초근거리에서도 얼음을 쳐내는 아인의 모습은 절로 감탄이 나왔다.
현은 이러한 양상의 싸움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예전에 늑대인간이었다.
수읽기가 필요한 근접 전투는 자신도 따라가지 못한다.
거기에 가끔씩 심리의 빈틈까지 찌른다.
아무리 네임드라 할지라도 일개 마법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전투가 아니었다.
[치명타! 843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치명타! 835의 피해를 입혔습니다!]현의 예상대로, 아인의 시스템 메시지엔 공격 성공 알람만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전투는 일방적인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인은 공격에 페인트를 섞거나 타이밍에 엇박자를 주면서 레오파드를 농락했다.
레오파드가 간간히 눈보라 방패를 시도했지만 전부 실패로 돌아갈 뿐이었다.
상대의 스킬이 시전될 때마다 아인은 잠깐 물러섰고 3초 기절이 걸리면 곧장 파고들었다.
그 모습을 보는 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신명나게 얻어맞는 보스의 모습이 얼마 전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
만약 자신이 레오파드의 입장이었다면 이미 빡쳐서 로그아웃 했을지도 모른다.
“이럴 순 없다… 천인인 내가 지상의 미천한 것들에게 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드드득-!
공기가 얼어붙는 효과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냉기가 레오파드로부터 분출되었다.
마치 세상이 얼어붙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레오파드는 자신의 마나를 모조리 태워 한 번에 방출했다.
그 스킬은 데미지는 없지만, 주위의 모든 것을 꽁꽁 얼게 만들었다.
아주 멀리서 몰래 지켜보고 있던 타르타르마저도 20초간 빙결상태에 빠질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아인은 불꽃을 휘감고 있었기에 ‘빙결’에 저항할 수 있었다.
불꽃으로 재빨리 현의 빙결까지 풀었다.
그 직후에 날아오는 얼음.
자로 잰 듯한 타이밍에 현의 1초 무적이 걸렸다.
그와 동시에 아인의 손등이 ‘아이스 탑’을 튕겨냈다.
“끝났네.”
현이 중얼거렸다.
아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온 세상을 얼릴 기세로 쏘아졌던 그 마법은 레오파드의 마지막 패턴이었다.
체력이 5퍼센트 미만일 때만 사용하는 기술이 바로 저것이었다.
더 이상 숨겨둔 패턴도 없으니 이제 레오파드는 곧 찢어질 샌드백 신세인 것.
“봐,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했잖아.”
현이 승리의 미소와 함께 말하자 아인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렇네… 솔직히 현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서, 난 죽을 각오까지 했었어.”
“위험한 적이 없던 건 아니지만… 난 예전부터 항상 널 믿고 있었다고.”
“…어?”
현의 고백 같은 대답에 아인은 갑자기 허리를 빳빳하게 폈다.
그 말에 민망해진 기분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아인도 모르는 사이 손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꽃을 두른 채로 레오파드의 머리를 마구 쳐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잊혀진 마법사 레오파드가 쓰러졌습니다!] [2인 파티로 클리어 하였습니다!] [최초로 혼령 레오파드를 처치하여 마력이 영구적으로 5 상승합니다!]-레오파드는 지상의 인간으로 태어나 천인의 존재를 깨달은 순간부터 그들을 동경했습니다. 자신을 천인이라 믿으며 천공의 도시에 도달하는 방법을 평생 동안 연구했지만 결국 왕실에 의해 처형당하고 말았지요. 그의 어긋난 미련을 끊어낸 당신의 선의에 찬사를 보냅니다!
“죽었는데… 계속 때리게?”
“….”
아인은 레오파드가 쓰러지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시체가 있던 장소를 때리고만 있었다.
***
아스리안 온라인이 오픈한지도 3주 가까이 흘렀다.
명예의 전당의 랭커 기준도 슬슬 40레벨이 넘어가고 있었다.
랭킹 1위는 무려 50을 달성했다.
수많은 유저들이 발빠르게 레벨을 따라잡는 와중에도 현과 아인의 레벨은 그다지 오르지 않았다.
더 이상 비공식 랭킹 1위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자리걸음을 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상태창에서부터 확연히 달라진 스탯 때문이다.
현 (Lv. 47)
체력 : 658/658
마나 : 450/450
직업 : 서포터 (히든)
스킬목록 –
[※ 미사용 스킬 포인트가 46 존재합니다!]아인 (Lv. 46)
체력 : 460/460
마나 : 1680/1680
직업 : 근접 마법사 (히든)
[힘 23] [민첩 60] [생명력 10] [마력 153(+15)]스킬목록 –
[※ 미사용 스킬 포인트가 45 존재합니다!]칭호 –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스탯 수치들!
현은 상태창만 봐도 뿌듯했다.
오늘은 밥을 안 먹었음에도 배부른 기분이었다.
만약 상태창이 인터넷에 공개되기라도 했다간 게시판이 난리가 날 것이 뻔했다.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아이디가 난데없이 등장한 것에 한 번 놀라고, 결코 40레벨이라 볼 수 없을 만한 스탯 수치에 또 한 번 경악하겠지.
최초 킬 업적 보상 덕분이다.
둘이서 지난 몇 주간 잡은 히든 네임드의 수만 해도 18마리다.
레오파드를 잡았을 때는 무려 마력이 5나 올랐으니까 2~3레벨을 올린 것과 동일한 수치만큼 스탯을 얻었다.
1레벨 당 2의 능력치 포인트가 지급되는 걸 고려하면 스탯만은 무려 90레벨에 육박하는 수준.
이는 단순히 90레벨을 빨리 찍는 것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초반 성장 속도 자체가 아예 달라지지… 실제로 90레벨이 되었을 땐 130레벨 수준의 스탯을 갖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네임드 사냥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고레벨로 갈수록 네임드들은 훨씬 강력해지고 패턴도 다양해진다.
마지막으로 잡았던 95레벨의 레오파드가 안전하게 공략 가능한 마지노선이었다.
여러 네임드 공략을 어느 정도 끝내고 나니 보스들이 떨군 레어 아이템들이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다.
필요 없는 아이템들은 습득하자마자 도시의 대장간을 통해 최대한 고가에 처분했다.
유저 경매장에 처분하지 않은 이유는 지금 시점에서 레어 아이템들은 골드보다 현찰로써 거래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경매장에 올린다 쳐도 수천 골드를 가지고 있는 유저가 몇이나 될지도 의문이었고.
‘남은 건 이 아이템이군.’
서포터나 마법사에게 유용한 옵션의 아이템들은 팔지 않고 모아 두었지만 그중엔 처리가 애매한 것들도 있었다.
레오파드의 지팡이 (유니크)
착용제한 : [마력 130]
내구도 (130/130)
공격력 : 5
마력 증폭률 : 30%
치명타 피해 증가 : 30%
모든 원소 속성 마법 피해 증가 : 50%
-냉기 마법이 5회 적중하면 적을 빙결 상태로 만듭니다.
-투사체 마법의 날아가는 속도가 1.5배 증가합니다.
레오파드를 잡고 나온 유니크 지팡이가 처리 곤란한 아이템의 단적인 예시다.
성능 자체는 끝내준다.
만약 현찰 거래를 한다면 얼마나 가격이 붙을지 상상조차 안 갈 정도다.
지금 시점에서 유니크 아이템을 가진 유저는 거의 없을 테고, 유니크 아이템 치고도 옵션이 기가 막히게 붙어 있으니 말이다.
‘나한테는 있으나 마나 그게 그거지.’
하지만 서포터의 주 스탯은 공감력이기에 마력 증폭의 효과를 받지 못한다.
지원 계열의 무기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대부분 RPG 게임들의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아인이 사용할 수 있느냐?
그 또한 아니다.
‘걔는 지팡이를 쓸 일이 없고….’
손에 불꽃을 피워 공격하는 아인은 무기를 ‘드는’것이 불가능했다.
근접 마법사란 일반적인 마법사들과는 태생적으로 달랐다.
겨우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근접 마법사의 무기는 ‘장갑’이었다.
‘이걸 처리할 방법은… 역시 하나뿐인가?’
현이 생각한 것은 바로 마법부여다.
마법 부여란, 아이템의 옵션을 다른 아이템으로 전이시키는 기능.
왕도를 비롯한 큰 도시마다 존재하는 마법부여사에게 부탁하면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스라 온라인 시절에도 마법부여가 자주 사용되지 않는 두 가지 이유.
첫째로 돈이 어마어마하게 깨진다.
두 번째로, 확률 게임이다.
마법부여에 실패하게 되면 돈과 아이템을 날리며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
‘내가 다시는 마법부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아스라 온라인에서 절대자의 대검을 날려먹었던 악몽이 떠올랐다.
돈은 돈대로 바치고, 아이템은 아이템대로 날려먹었다.
그 날은 너무 분해서 눈물조차 안 나왔다.
잠들기 직전에야 침대에서 갑자기 질질 짰던 기억이 있었다.
현에게는 학사경고를 받는 것보다도 게임 속 무기를 날려먹은 게 큰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
마법부여로 장비를 맞출 수밖에 없다면 언젠가는 해야만 한다.
잠깐….
머릿속에 생각이 번쩍인 것은 현이 현실에 타협하며 막 포기하려던 때였다.
현은 원초적인 질문에 궁금증이 일어났다.
‘왜 내가 아인의 무기를 고민하고 있지? 원래 자기 무기는 자기가 알아서 구해야 되는 거 아닌가?’
무의식적으로 아인을 노예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무기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곤란에 빠지자 저절로 자급자족의 정신을 찾게 되었다.
필요할 때만 아인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부분부터 현의 인성이 드러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현은 자신의 졸렬함을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
레어 방어구 32개.
레어 장신구 8개.
레어 무기 9개.
그리고 유니크 무기 1개!
열여덟 마리의 히든 네임드를 잡고 나온 아이템들이다.
필요 없는 것들을 경매장에 처분해 2만 골드를 수급했다.
그리고 남은 아이템은 레어 9개와 유니크 1개가 전부.
현은 최대한 공평하게 아이템 분배를 했다.
“유니크 아이템은 아마 레어의 열 배 정도 가치쯤 되겠지. 아인, 네가 유니크 무기를 하나를 갖고 나머지는 전부 내 걸로 하면 딱 되겠네… 골드는 반반씩 나누면 되고… 계산은 아마도… 정확할 거야.”
그런 이유로 현이 레어 아이템을 모두 가져가고, 아인은 레오파드의 지팡이를 가져가게 되었다.
아인은 불만이 없는 것인지 딱히 토를 달지 않았다.
“이제 우리도 슬슬 장비를 맞춰야겠지. 아인 네 무기는 마법부여를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아, 만약 돈이 모자르거나 한다면 이제부턴 각자 사냥해서 메꾸기로 하자고.”
여기까지 말하고 현은 슬그머니 아인의 눈치를 보았다.
만약 자신의 몫이 적다고 생각된다면 성질이 더러운 일부의 사람들은 개소리 말라며 쌍욕을 박거나 정색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뭐, 상관없어.”
하지만 아인은 여전히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현은 주먹을 꽉 쥐며 쾌재를 불렀다.
물론 아인에게는 보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