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30
열일하는 과금 기사 129화
서바이벌 아일랜드.
20년이나 된 국민 예능 중 하나로, 이름처럼 섬 하나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대체로 과격하고 험난한 콘셉트로 진행되는데, 아무것도 없는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진행하기도 하고, 최대 100명에 달하는 출연자들이 서로를 탈락시키기 위해 경쟁하기도 한다.
34지구의 정서에 걸맞은 게임적인 전개와 현실에서 그런 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설비와 환경. 그리고 출연진이 맞물려 완성되는 결과물은 서바이벌 아일랜드를 34지구뿐 아니라 대우주 널리 이름이 알려진 인기 프로로 만들었다.
팟!
방송 작가들이 손짓하는 대로 텔레포트 게이트에 들어서자 어둑어둑하던 밤하늘이 단숨에 한낮의 그것으로 변한다.
‘지구 반대편이란 말이군.’
“이번~! 서바이벌 아일랜드에서 화끈한 생존력을 보여 주실 특별 게스트! 카리스마 넘치는 황제! 한재연 씨입니다!”
푸화악—!
솟구치는 불꽃을 가르며 카메라 앞으로 나선다.
“와, 진짜 보기 어려운 얼굴이네요.”
“저는 처음 봐요. 처음!”
“잘생겼다!”
일렬로 서 있던 남녀들이 웃으며 나를 반긴다. 방송을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죄다 초면이지만, 적어도 가운데 있는 사람만은 나 역시 아는 얼굴이다.
“황제님, 반가워요!”
귀여운 인상의 소녀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160센티 정도의 신장에 분홍색으로 염색한 머리칼, 프릴이 달린 치마와 앙증맞은 흰색 니트.
34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인물.
‘영원의 마법 소녀, 강보람.’
초월자는 아니지만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를 강자다. 8클래스 마스터급 결계사이자 화경의 초고수. 특급 무장 궁니르의 주인.
언터쳐블인 황금용신의 계약자이자, 인급 기가스 잔다르크의 주인.
그러나 34지구에서 그녀는 다른 별명으로 불린다.
‘국민 MC.’
그녀는 대한민국 MC 중 첫째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퍼스타였다. 깜찍한 외모와 친화력, 누구나 관심 있어 할 온갖 이력과 빼어난 말솜씨는 그녀를 정상의 자리까지 올려 주었다.
“여기서도 황제라고 부르시는 건 조금 부끄럽네요. 사실 영화에서도 제대로 된 황제는 아니었는데.”
“에이 뭐, 그 정도로 그래요. 여기 성재 씨는 자기 입으로 대차원 최고 미남이라고 하잖아요.”
“누님. 그건 사실인데요?”
“어휴. 또 꼴값 떤다.”
보람의 말에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성재가 억울해한다.
“하다못해 얼굴값이라고 해야지 꼴값이라뇨! 저 밖에서는 맨날 미남 소리 듣거든요?”
“어디 밖에서?”
보람이 생긋 웃으며 묻자 성재가 버벅거린다.
“밖에서…….”
“어느 밖?”
“그러니까…… 밖…….”
“그러면 여기는 안이세요?”
연속되는 갈굼에 삽시간에 쭈그러지는 성재.
궁지에 몰린 녀석은 그만 금기어를 내뱉었다.
“……할머니.”
“…….”
보람의 얼굴이 장난스런 미소 그대로 박제되었다.
그리고.
Fly away now~♪ Fly away right now~♩ Gold dragon~~♬
‘이게 뭐야…… 노래?’
느닷없이 빠른 템포의 노랫소리가 주변 공간을 장악하듯 퍼져 나간다. 나는 슬쩍 귀를 막아 보았다.
여전히 들린다.
‘이게 무슨, 물리적인 소리가 아닌데 나한테 들린다고?’
나는 기겁했다. 폐급 마나 적성을 가진 내게 [영적인 정보]가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진짜 기겁하는 건 내가 아니라 기존의 출연진들이었다.
“으아아악! 이건 변신곡이잖아!? 말려! 말려!”
“아니, 언니 진정하세요! 저놈이 미쳐서 그래요 미쳐서!”
Gold dragon~~♬ Dragon lady~~♪
“으아악! 계속 나온다! 계속 나와! 이러다 변신하겠어!”
“방송 망한다! 우리 다 죽는다!”
“성재 이 미친놈 제가 때려 드릴게요! 이렇게! 이렇게!”
“악! 아파! 내가 뭘 잘못했어!”
……
한바탕 소란 후 상황이 진정된다.
어안이 벙벙한 나와 달리 출연진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빠르게 상황을 수습했고, 나는 별 문제 없이 카메라 앞에서 인사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 지망생에 출현했었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는 한재연입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몇 가지 근황을 늘어놓는다. 보람을 비롯한 MC와 패널들이 적당히 맞장구를 치거나 질문을 하는 식으로 상황을 끌고 나간다.
연기를 할 때와는 여러모로 다른 분위기였기에 난감했지만, 다행히 그 시간이 길지 않았다. 나 말고도 게스트가 많았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불러 주셔서 영광입니다. 김혜영입니다!”
혜영 역시 게스트로 참가했다.
“TJ입니다. 반갑습니다!”
흑인에 거구. 모르는 녀석이다.
“강신원입니다!”
“토이X의 젤로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보이프랜드의 늘푸른입니다!”
모르는 남자들.
“샤베트 걸의 레아입니다!”
“블루핑크의 분홍입니다! 반가워요!”
“스피카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여자들까지.
‘이거야, 원. 연예인들 얼굴이라도 알아 둬야겠네.’
솔직히 하나도 관심 없지만, 앞으로도 연예계에서 활동하려면 아무래도 얼굴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듯했다. 번거롭지만 이 또한 사회생활이리라.
그런데 뜻밖의 얼굴이 있었다.
“오오. 유명한 연예인이 잔뜩! 반갑습니다! 올리야 그랜트입니다!”
또다시 불꽃이 뿜어져 나오면 올리야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람이 그녀의 모습에 기겁해 비명을 질렀다.
“악! 올리야 씨! 복장이 그게 뭐예요!?”
“네? 제 전투복입니다만.”
“안 돼요, 안 돼! 신성한 토요일 저녁에 이런 복장은 금지예요! 매지컬 체인지!”
팡!
가벼운 바람 소리와 함께 비키니 차림이었던 올리야의 복장이 활동성 있는 스포츠웨어로 변경된다.
“앗! 이런 게 어디 있어요! 방금 그건 제가 일할 때 입는 작업복이기도 하다고요!”
“하여튼 금지 금지! 이 망측한 속옷은 프로그램 끝나고 돌려 드릴게요!”
“속옷 아니거든요!”
나는 시끌시끌한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프로파이터인데 불려 오다니…… 확실히 유명하긴 한 모양이네. 오히려 다이아나 플래티넘 파이터는 안 보이는데.’
어쨌든 모든 게스트가 늘어서자 조명이 훅 하고 꺼지더니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다.
거기에는 한 마리의 샴 고양이가 서 있다.
“서바이벌 아일랜드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방송일 하는 슈퍼냥 나태석입니다.”
“궈여워!”
“PD님! 좀 자주 좀 불러 주세요! 제가 STN의 아들인 거 아시죠?”
“와. 저렇게 귀여운데 무슨 레벨이…… 심지어 아직 성체도 아니라던데.”
“와, 우리 아빠랑 동갑인데 아직도 새끼란 말이야?”
연예인들이 떠들어 댄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개, 고양이, 독수리, 곰 등의 스마트 펫들이 찍고 있다.
태석이 말한다.
“늘 그랬지만 이번엔 특히나 귀하신 게스트분들입니다. 모시기 정~ 말 힘들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나를 흘겨본 것은 아마 착각이 아닐 것이다.
“오프닝이 너무 길었으니 빠르게 소개하겠습니다. 오늘의 콘셉트는 [오룡님이 보고 계셔]입니다.”
태석의 설명에 스무 명가량의 게스트들이 술렁거린다.
“오룡……!”
“소문은 들었지만…… 진짜 F‧D가 나오는 거야?”
“오늘 드래곤을 직접 보게 되는 거야?”
사람들이 웅성거림 따윈 상관없다는 듯 태석이 설명을 이어 나간다.
“성재 씨, 오늘 우리가 뭘 할지 짐작이 가시나요?”
“솔직히…… 아주 기분이 쎄하네요. 오늘 게스트 면면이…… 너무 쎄해요.”
“하긴 멤버가 좀 티가 나긴 하죠.”
둘의 대화에 나는 게스트들의 면면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다들…… 자세가 아주 곧군. 기세들도 예사롭지 않고.’
성재가 내 짐작을 곧 확신으로 바꿔 주었다.
“여기 있는 사람 전부가 마스터급 고수잖아요!”
“아, 이거 대놓고 전투 콘텐츠네. 아놔~ PD님 저 요새 삭신이 쑤셔요. 삭신이~. 의사선생님이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고요!”
“설마 배틀 그라운드편처럼 죄다 흩어서 서바이벌하는 건 아니죠?”
서바이벌 아일랜드의 기존 멤버들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7클래스 주문을 사역하고 있는 성재나 8클래스 마스터 보람과 달리 나머지 고정 멤버들은 그냥 연예인이었다.
일류 고수, 4클래스 마법사 정도는 되어 보이지만 게스트들에 비하면 확연하게 뒤떨어지는 게 보인다.
‘하지만 설마 게스트 전부가 마스터급이라니.’
34지구가 그 어떤 문명보다 경지를 올리기에 좋은 환경인 것은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전 인류의 이능을 강제 각성시키는 데다 관공서에 상주하는 선별사들이 재능의 방향성까지 알려 준다.
거기에 더불어 아주 저렴하게 영약 등을 구매할 수 있으며 모든 비전이 자유롭게 풀려 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완성자는 아무나 올라설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비범한 재능.
불굴의 의지.
능력자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34지구에서도 한 줌의, 한 줌밖에 안 되는 인재들만이 완성자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룰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놀라운 실력과 재능을 가진 용사들입니다. 여러분들은 각자 자신이 숭배할 용을 선택해 그들의 가호를 받으며 섬을 탐색하시면 됩니다. 섬 곳곳에는 던전, 퍼즐, 함정, 보물 상자 등이 존재하며 최종적으로 용의 신기를 완성하는 팀이 서바이벌의 승리자가 됩니다.”
태석의 설명에 고정 멤버 중 하나가 손을 든다.
“저기 그럼 용신을 선택하는 게 팀 결정인 거죠?”
그 말에 태석이 씨익 웃었다. 고양이인데도 그 속셈이 뻔히 드러나는, 마치 만화처럼 풍부한 표정.
태석이 당당하게 선언했다.
“지금부터 의견 조율 금지!”
대번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뭐, 뭐야? 갑자기 소리가 안 들려!”
“저기요? 와. 분명 여기 있다는 건 알겠는데 손짓·발짓도 전달이 안 되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뭐지?’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의 말과 달리 나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텔레파시 같은 걸 걸었나 보네. 아니면 환각이나.’
아까 그 변신곡인가 뭔가 하는 것과 달리 폐급 마나 적성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태석이 말한 의견 조율 금지가 내게는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태석이 말했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초콜릿빛 꼬리가 팔랑거린다.
“지금부터 오룡의 가호를 말씀드릴 테니 스스로의 판단으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다만 선착순이니 이미 자리가 찬 용신을 선택할 수 없어요.”
나는 가만히 서서 용신의 가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1. 적룡의 가호
레드 드래곤. 루비의 가디언이 나타나 스테이지 하나만큼의 진행을 도와준다. 쿨 타임 3시간.
2. 청룡의 가호.
블루 드래곤. 사파이어의 벙커가 소환된다. 벙커가 파괴되기 전까지 안정적인 공격이 가능. 쿨 타임 5시간.
3. 흑룡의 가호.
블랙 드래곤. 흑요의 힘으로 대기실에 지정해 둔 외부 장비 하나를 가져올 수 있다. 쿨 타임 24시간.
4. 백룡의 가호.
화이트 드래곤. 스노우의 힘으로 모든 부상을 치유한다. 쿨 타임 1시간.
5. 녹룡의 가호.
그린 드래곤. 플라워의 꽃마차를 소환할 수 있다. 다른 용도로는 쓸 수 없고 밤에 편안히 잘 수 있다. 쿨 타임 5시간.
“블랙 드래곤 흑요를 선택하겠습니다.”
“오! 이거 블랙 드래곤이면 기가스도 쓸 수 있는 거 아냐? 저 블랙 드래곤이요!”
“블랙 드래곤!”
외부 장비를 불러올 수 있는 블랙 드래곤이 인기가 많다.
‘하기야 기가스를 챙겨 왔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겠지. 기가스를 탄 것과 안 탄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으니까.’
“블랙 드래곤! 악! 다 찼어요? 아이고~!”
여기저기에서 소란이 이는 모습을 지켜보다 선택한다.
“녹룡 플라워를 선택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투력이 부족할 것 같지는 않다. 부상도 문제가 안 되고 가져올 장비는 애초에 없는 상황.
그리고 그 결과.
“앗! 선생! 여기 나온다고 왜 이야기 안 했어! 아까 보고 완전 당황했잖아! 설마 때마침 낸 휴가가 나랑 같은 프로 나가는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네.”
올리야가 내게 두 손을 붕붕 흔들며 반가워한다.
“재연 씨, 오랜만입니다.”
혜영이 카메라 앞에서와 달리 차분한 태도로 인사한다.
“헐, 뭐야. 우리 셋 다 녹룡 고른 거야? 아! 다시 인사드릴게요. 이성재입니다.”
신기할 정도로 아는 얼굴들만 모인다.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달콤한! 샤베트 걸의 레아입니다!”
올리야, 혜영, 성재, 나, 그리고 여자 아이돌 하나.
후에 ‘깡패 파티’라 불릴 조합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