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414
열일하는 과금 기사 413화
* * *
시간이 흐른다. 현실에서 반년, 미궁 속에서는 50년의 세월이 지났다.
물론 그 50년을 다 경험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나 금낭 정도나 그렇게 하지.’
만약 1,000배의, 100배의 시간 배율을 모든 사람이 경험했다면 이미 현세대의 사람은 다 늙어 죽었을 것이다.
현실에서 1년이 지나면 미궁에서는 1,000년이 지나는데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시간 배율이 다른 탓에 미궁에서는 정신에 부하까지 걸리니, 사람들은 기껏해야 1~2분을 보냈을 뿐이고 극도로 오래 버텨 봐야 20~30분을 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누군가는 미궁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간과 나이가 뒤죽박죽이지. 요새 내가 어리다는 소리가 쏙 들어간 이유가 그것 때문이기도 하고.’
똑같이 2,077년생인데 누구는 50살이고 누구는 100살이다.
분명히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어느 순간 자신의 나이를 따라잡다 못해 추월한다.
온 우주가 새로운 환경과 그 환경이 불러 온 변화에 진통을 겪고 있다. 아무리 대단한 권력이 있어도 미궁을 돌아야 했고, 재능이 없다면 미궁 안에서 엄청난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죽어야 했다.
노력으로 많은 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만큼 타고난 재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누군가는 1층의 전투에서 스스로 마나를 깨우치지만, 누군가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얻을 수 없어 귀중한 특성칸 중 하나에 [마나 각성]을 넣어야 하는 게 그 예시 중 하나.
대격변(大激變).
온 우주가 격변하는 시기에 98지구라고 영향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너! 이 배은망덕한 것! 어르신이 베푸신 은혜가 있는데!!”
이주민의 평균 연령층은 굉장히 높다.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주민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니 당연한 일.
심지어 이 노인들은 노약자도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젊은 사람보다 노인이 돈이 많은 게 정상이듯.
영능학이 발달한 세상에선 노인이 강한 게 정상이다. 수련을 오래 했어야 내공이 1년이라도 많기 때문!
그러나 아무리 돈 많은 노인이라도 죽을 때 그 돈을 안고 갈 수 없듯 강한 노인이라도 죽으면 끝.
아무리 강하고 정정해 보여도 노인만 가득한 단체는 미래가 없다.
‘기적과도 같다는 미궁의 특성조차 장생(張生)과 불노(不老)는 가능해도 영생을 보장하지는 않지.’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내가 선처를 빌겠다! 어리석은 짓하지 말고…….”
[죄송합니다, 어르신.]이미 야반도주한 통화기 너머의 상대가 사과한다.
[저는 피그 양이 아니면 살 수 없어요.]“이, 이이……!! 그건 섹스 프렌드 시리즈야! 그 더러운, 어떻게 굴렀을지도 모른…….”
[그만.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이성을 찾아 어리석은 것아!”
노인이 외쳤지만 이성(理性)을 마비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이성(異性).
실로 어마어마한 수의 젊은 남성들이 리전으로, 그로테스크로 빠져나갔다. 처음에 코웃음 치던 천상회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땐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 상황.
남성뿐이 아니라 젊은 여성들 역시 대거 빠져나갔다.
스스로 아이를 낳는 게 목적인 그로테스크는 인간 여성을 노리지 않았지만 34지구를 떠나온 적은 수의 이주민 여성은, 리전만으로도 충분하다.
충분한 부와 능력을 갖춘 데다 매너가 넘치고 사랑만을 갈구하는 절세 미남이 대시한다고?
물론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다.
리전은 자식을 낳을 수 없고.
그로테스크는 여러 사람한테서 자식을 낳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고, 칼부림이 났네…….”
[다행히 사망자는 없습니다. 98지구의 그로테스크 수준이 낮지 않기도 하고 그로테스크는 원래부터 생명력이 강한 편이라서…… 그나저나 어찌할까요?]“알아서 하라고 해. 뭔 치정 싸움을.”
헛웃음 짓고 98지구에 들어오기를 희망하는 세력들을 살폈다.
리전과 그로테스크의 추가 세력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몬스터의 공격으로 고향 별에서 탈출한 우주 난민들이다.
“끝! 나가지.”
[요새 자주 나가시는군요.]“내 행성이니 자주 둘러봐야지.”
쿵!
단 한 걸음에 대기권을 돌파. 리전들의 본거지인 공장(factory)으로 이동한다.
“와. 뭐 마음먹는 순간 와 버리네.”
98지구의 위성 궤도를 돌고 있던 공장에 도착한 내 모습에 엘리스의 본체가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녀의 기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뭐야, 너 수련해?”
“정말 자기다운 소릴…… 98지구의 중요성이 재조명되면서 아버지께서 부품 하나를 내려 주셨어.”
“아하, 아담.”
“기계신님이라고 불러, 기계신님! 여기 공장도 그분의 신앙이 깃든 곳인데. 천벌 받고 싶어?”
두 눈을 부라리는 엘리스의 윽박을 무시한 채 공장을 살핀다.
대우주에서도 유명한 리전의 공장이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원리에 따라 우렁차게 굴러가고 있다. 거기에는 우주 곳곳에서 모여든 리전들이 가지고 온 물자, 내가 이곳까지 이동하며 나포했던 해적선, 그리고 98지구에서 채굴하거나 거래한 광물 등이 소모되고 있다.
“기가스 개발은 어때? 인급은 다수 만들기로 했잖아.”
현실의 돈을 세탁하기 위해 녀석에게 맡긴 일들은 많고 그중에는 기가스 생산도 있다.
인류제국에서 훈련시킨 파일럿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뜻밖에도 엘리스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아, 그게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좀 늦을 것 같아.”
“왜?”
“숙련공들이 바빠서.”
“바쁘다니. 리전들이 뭐가 바빠?”
“사랑하느라…….”
“…….”
어이없어 그녀를 잠시 바라본다. 그러고 보면 요새 리전이 사랑으로 참 말이 많은 상태이긴 하다. 여기에 오는 동안 본 일들이 바로 그 예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게 일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다르다.
“적당히 하라고 해.”
“하하…….”
멋쩍어하는 엘리스를 좀 더 갈궈 준 후 땅을 박찬다. 다음 목적지는 그로테스크의 본진이다.
탓.
단 한 걸음에 공간을 넘어 목적지에 도착한다.
리전의 본진이 우주에 있다면 그로테스크의 본진은 바닷속에 있다. 한때 98지구를 가득 메웠던, 그러나 몬스터들의 손에 박살이 난 그로테스크의 시체들을 잡아 삼킨 초거대 생명체 위에 마련된 도시.
“아이, 막지 마~!”
“거기 서~!”
“우아아앙!! 내 거! 내 거라고!!”
밖에서 보면 심해의 괴물처럼 보이는 거대 생명체 안에서는 수많은 아이가 뛰어다니고 있다.
“……성장이 너무 빠른데?”
“임산부도, 아이도 미궁으로 끌려가 벌어지는 일이지요. 그 망할 신 놈들이 막 태어난 아이도 납치해 버리니.”
한탄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보라색 머리칼에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 미남이다.
눈 밑이 검고 피부가 창백해 좀 퇴폐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누가 봐도 인간으로밖에 안 보이는 그는 그로테스크의 왕자 프린스이다.
“아! 재연 씨 오셨군요?”
그 뒤로 쿵쿵 하고 공룡족 여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훤칠한 키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 봐야 일반적인 인간에 불과한 프린스를 압도하는 덩치!
“한참 연구 중인 모양이군요.”
“새롭게 태어난 아이들의 반응성과 적응력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요! 지금은 신의 권능이 거하는 98지구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언젠간 이 밖에 있는 그로테스크들도 태생적인 저주에서 벗어나…….”
그녀는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자신의 연구에 대해 보고한다.
“……솔직히 다 세릴 하룩 박사님이 해 낸 일입니다. 그로테스크에서 별다른 지원도 못해 드렸는데.”
“지원을 못하다니요! 솔직히 말해 왕자님이 아니었으면 연구는 진행되지도 못했을 거예요.”
서로의 얼굴에 금칠하는 두 남녀를 바라본다. 당장이라도 세릴이 프린스를 한 입에 잡아먹을 것 같은 구도지만, 뜻밖에도 둘의 시선에는 숨길 수 없는 친밀함이 느껴진다.
‘이거야, 원. 그냥 놔둬도 될 정도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세히 살펴보지만 역시나 리전과 그로테스크는 악의 한 점 없이 호의로 가득하다.
그들은 진심으로 98지구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고, 그 어떤 음모의 기색도 없다.
물론 그게 저 두 집단이 천사처럼 착하고 정의로운 단체여서는 아니다.
‘우주 삼대 주적이 설마 그저 오해와 편견만으로 만들어졌을 리는 없으니까.’
만약 내게 지닌 보물을 지키거나 주도할 힘이 없었다면 저들은 어느 누구보다 냉혹하게 이빨을 드러냈을 것이다.
‘저들이 저토록 순순히 나를 따르는 건 감히 뭘 어찌하기 힘들 정도로 힘의 격차가 벌어져 있기 때문이지.’
그 사실에 환멸을 느끼지는 않는다. 황제 노릇을 몇 년을 했는데 새삼스레 그러겠는가?
다만.
“나 한 명 세다고 정치가 이렇게 쉽나.”
야만의 중세랜드, 아르데니아에서 고작 영지민 3,000명을 수습하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툭하면 사고 치는 병사들, 영지 세금을 90퍼센트에서 70퍼센트로 내렸다고 지랄하는 옆 영지의 사절, 심심하다고 스포츠로 백성의 목을 따고 다니는 귀족 놈들…….
그 시절의 정치는 너무 어려워서 언제 죽을지도 몰랐던 용병 생활을 그리워했을 정도인데, 솔직히 억 단위의 사람을 어우르는 지금은 너무나 간단하다.
정치는 어려운 것이지만, 돈 치트, 무력 치트, 내정 치트까지 쳤는데도 어려우면, 그땐 플레이어의 문제다.
“그럼 수고해.”
“앗! 재연 씨 이왕 오신 거 식사라도 하.”
팟!
땅을 박차 수천 킬로미터 이동한다. 어느새 난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한 집단의 공사 현장에 도착해 있다.
“자자 거기! 땅을 더 다지고!”
“아버지! 여기가 거긴가요?”
“그래.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이곳이 바로 과거의 대한제국이란다. 저 무시무시하다는 황제. 한재연의 출신인 신왕가가 지배하던 땅이지.”
팟!
폐허가 된 도시를 가로지르는 십수 개의 집단들도 보인다.
“돌아왔다…… 내가 미국에……!”
“그 웅장하던 도시가 흔적도 없네.”
“다시 세우면 그만이야!”
팟!
“여기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로테스크도, 몬스터도 건들지 않은 종들이 꽤 되는군. 연구해 볼 가치가 있어.”
이런저런 학술적인 자료를 찾는 사람도.
팟!
“자자!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98지구에 와 있는데요!”
“감회가 새롭네요. 아버지와 할아버님께 이야기만 듣던 땅인데.”
온갖 설비를 챙겨 와 촬영을 시작하는 사람도.
팟!
“이곳이 우리의 새로운 고향.”
“울어?”
“하하. 그게 뭔가 벅차오르네.”
그리고 모든 걸 버리고 자신의 집단을 떠나온 개인들도.
팟!
“아, 이게 뭐야! 98지구에 오기만 하면 막 호강할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뭐 제대로 되는 것도 없이 니르바나에서 미궁만 깨고 있네…….”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98지구를 빠르게 일주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본다. 웃는 사람, 우는 사람, 기대에 벅차오른 사람, 짜증 내는 사람.
나는 사람들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꼈다.
‘……활기차군. 평화롭고.’
그리고 이 생명력 넘치는 도시가. 나아가 이 행성 전체가 나의 영토다.
나를 싫어하는 천상회조차 쉽사리 반박하지 못하는 사실.
내 안의 인류제국은. 나아가 98지구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아직은 이 행성에 번성하는 정도지만, 언젠가 레온하르트 제국이 그러하듯 온 우주에 이름을 떨칠 거대한 세력이 될 것이다.
“…….”
[……폐하.]도시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자 에드워드가 고개를 돌려 의문을 표한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어떠한 예지와도 같은 선명한 예감을 느꼈다.
‘여기가…… 내 고점(高點)인가.’
성계신의 도움으로 원래의 목포였던 주식이 해결되자 그것이 명확하게 인식된다.
여전히 나는 미궁에서 매일 싸우고 수련 역시 계속 하고 있지만, 무인으로서의 내 성장은 완전히 정체되어 버렸다.
이렇게 매일 싸우고 수련해도. 그렇게 100년, 아니 1,000년을 더 연마해도…… 내 수준에 유의미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아쉬운 대로 마법을 수련해 7클래스에 올랐지만 지금 내 전력에 고위 마법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심지어 돈조차도 더 이상은 필요 없다.
나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나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돈을 벌었고, 또 벌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제는 지금까지처럼 득달같이 돈을 벌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네메시스가 내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의 주식을 가지고 있고, 과금을 위한 돈이라면 넘치도록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할 필요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이상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