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unted Foreword Genius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그대와 나의 마지막 연주회 (1)
나는 그가 떠나간 후에도.
한동안,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 나를 돌려세운 것은, 바로.
“김리듬…….”
민아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그녀도, 윤성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이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안겼다.
“민아야. 선생님이, 선생님이……!”
“그래. 알아.”
그녀는, 더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나를 그저 안아 주기만 했다.
“흐윽, 흐으윽, 흐아앙……!”
나는 민아의 품에 안긴 채 하염없이 울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는데.
묻고 싶은 것들이 아직도 너무 많은데.
실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약속해 놓고도.
그는, 너무 빨리 내 곁을 떠나가 버렸다.
* * *
사건들은 차분히 해결되었다.
반서준은 학교 구석 어딘가에서 발견되었고.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두 세계가 분리되고, 모든 일이 해결된 후.
나는 쏟아지다 못해 폭주하는 나에 대한 인터뷰 요청과 취재 경쟁, 온갖 요청 전화에 정신이 없어.
며칠 후 조용히 나를 찾아온 전수정을 통해서야, 간신히 녀석의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반서준은?”
“여전해.”
다친 곳은 한 군데도 없지만.
녀석은 지금 다른 의미로 정상이 아니라고 한다.
“호흡도, 건강 상태도 모두 정상이지만, 사실상 넋이 나갔어. 나조차도 못 알아보더라고.”
모두가 그를 외면했지만.
전수정만큼은, 그를 직접 찾아간 것이다.
물론, 그녀는 절대 호의로 녀석을 찾아간 것이 아니다.
“김리듬. 직접 찾아갈 생각은 아니지?”
“아니.”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녀석에게 위로를 건넬 호구는 아니지만.
직접 찾아가 무너진 모습을 조롱하고 싶지도 않다.
이제 내게, 반서준이란 그런 존재일 뿐이다.
설령 녀석이 거짓으로 넋이 나간 척하더라도.
나는 녀석을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녀석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결말일 테니까.
* * *
사실, 전수정은 김리듬에게 진실을 다 말해 준 것이 아니다.
과일 바구니를 가지고 직접 반서준의 병문안을 간 그녀는, 차분하고 냉정한 말투로 선언했다.
“생각보다는 편안해 보이네, 반서준.”
“…….”
반서준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녀는 반서준이 알아듣는 것처럼 말했다.
“진심으로 조롱하고, 비웃어 주고 싶었는데. 정작 이 모습을 보니 그럴 마음이 조금은 사라지네.”
“…….”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만큼은 알아. 지금 너는,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기억하면서도 일부러 다 망각한 것처럼 구는 거라는 거.”
“…….”
“네가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일은 앞으로 영원히 불문에 붙일 거야. 그러니, 이제부터는 조용히 속죄하면서 살아. 더 이상 쓰레기 같은 짓 저지르지 말고.”
그녀는 과일 바구니를 놓고는 일어섰다.
“그러면, 이만. 앞으로는 나와, 나의 친구들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날 일이 없기를 바랄게. 영원히.”
전수정이 조용히 병실을 나간 후.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던 반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크흑…… 흐흐흑…….”
회한과, 통분과, 고통이 뒤엉킨 눈물.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속죄하는 눈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병실 밖의 전수정은 그가 흐느껴 우는 것을 듣고서야 발걸음을 돌려 병원을 나섰다.
* * *
시간의 속도는 무섭게 빠르다.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까.
그 2년 동안 쉼 없이 달린 나와 우리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는, 지금 잘츠부르크에 있다.
“역대 최초지, 아마?”
“그러게.”
평균 연령 20.9세의 젊디젊은 오케스트라가, 세계 최고의 고전음악 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초청을 받아 연주를 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물론, 이 한 번의 초청을 위해서 마에스트로 빌헬름 폰 노이만부터 시작해서 필리프 로제, 에밀리오 아르날디 등 세계 최고의 거장들이 꼰대 같은 주 정부와 주최 측을 설득하고, ‘축제 참여 안 한다?’는 반협박까지 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함구해야 하지만.
그리고, 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김리듬.”
부드러운 머리칼을 빗어 넘긴 용모.
이제는 훤칠하게 자란 키에.
원숙한 기품까지 엿보이는.
젊디젊은 거장이, 포디엄에 선다.
“반가워요. 다들 잘 잤어요?”
“아니요오.”
“아니라고 한 놈 누구야.”
“김가인 빼고 다 잘 잤습니다.”
“네. 그럴 줄 알았어요. 자, 오늘 우리가 연주할 레퍼토리는, 바로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입니다.”
사라지기 전의 윤성이, 내게서 가장 듣고 싶은 곡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 라벨의 위대한 사랑의 발레.
[이 곡이 아니면 안 돼.]그는, 내게 단호하게 말했었다.
[신화의 이야기에서 건져 올린 근사한 스토리라인. 풋풋하고 여리며 투명해서 빵 굽는 냄새처럼 달콤하고, 빵을 굽는 아침처럼 찬란한, 그런 남프랑스의 화음으로 가득한 음악이니까.]연주란 무엇일까.
아직 오지도 않은.
아직 보지도 못한.
아직 듣지도 못한.
아직 닿지도 않은.
그 작디작은 세계를.
그 푸르스름한 박명의 언어를.
현악기의 활줄로.
금속으로 이루어진 관으로.
그리고 지휘봉 끝으로.
팽팽하게 건져 내 번역하는 것이 아닐까.
“호른은 조금 더 작게! 현악기는 끊어지지 않게!”
어둠에서 어스름으로.
어스름에서 연보라색으로.
연보라색에서 엷은 남색으로.
그렇게, 풍성한 물감을 붓에 묻혀.
차츰차츰, 남프랑스의 해돋이를 이끌어 내는.
“트럼펫. 포르티시모!”
어둠이 색채의 주도권을 빛에게 내주는 순간.
밤의 장막에 갇혀 있던 모든 물상들이.
이제, 제 영혼을 되찾고 환희의 함성을 지른다.
오래된 그림엽서 속 풍경 같은 언덕과.
투명하다 못해 아쿠아마린의 색채를 띠는 바다.
그 모든 것들이, 살아서 환호성을 지르는 이 순간에.
남김없이, 아낌없이, 온전하게 뛰어들어라.
* * *
리허설을 마친 나는, 바로 잘츠부르크까지 나를 찾아온 지와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피아노와 지휘 양쪽에서 세계적인 업적을 쌓은 음악가는 많지만, 고작 21세의 청년이 이런 업적을 쌓은 경우는 전무후무합니다.]”
“[하하하. 제게는 아직 좀 무거운 말이네요.]”
나를 인터뷰하는 인터뷰어의 눈빛에는, 강한 경의와 약간의 질시가 섞여 있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하기 전에, 인용문 하나를 읽는 것으로 시작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의 음악은 스스로 하나의 서사가 되어, 신화와 전설에 매혹되는 인류의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한다.’
마에스트로에 대한 세계적인 평론가 요하임 카이저의 평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보다 마에스트로를 잘 표현한 구절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하임 카이저가 나의 리스트 공연을 보고 남긴 평론은, 이제 내게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가 되어 있다.
‘스스로 하나의 서사가 되어 버린 음악가.’
평범한 한국의 예고생에 불과했던 아이가, 가공할 노력을 통해 천재성을 개화시켜 마침내 정점에 선.
그런, 기적 같은 신화의 주인공.
하지만.
“[카이저 씨의 평론은 제게 정말 감사하지만, 저는 그 평론에 대해서는 항상 선을 그어 왔습니다.]”
나는, 그의 평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호오. 이렇게 단호한 마에스트로의 말은 처음 듣네요. 어떤 의미에서인가요?]”
“[저는 거창하거나 위대한 신화나 전설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음악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음악을 항상 즐기면서 연주하고 싶어 하니까요.]”
연주는 감정을 절제하는 과정이지만.
감정 없는 기계가 되어서도 안 되니까.
거창한 신화나 전설 같은 말들은.
나를 질식시키고, 기계처럼 만든다.
진정한 연주는 항상 살아 있어야 한다.
기쁨, 슬픔, 즐거움, 분노, 안타까움, 사랑, 환희, 열정, 좌절, 행복 같은 감정들을, 음악에 녹여 내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윤성에게 선언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죠. 마에스트로 본인은, 본인이 지금까지 이룬 업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직 업적이라고 할 것이 없지요.]”
“[어째서죠? 혹시, 겸손의 표현인가요?]”
“[아니요.]
나는 다시 한번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의 진정한 음악은, 이제부터 시작될 테니까요.]”
인터뷰어는 처음으로 웃음소리를 냈다.
“[네,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 질문만 남아 있군요.]”
그는 새파란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면서 물었다.
“[당신의 가장 존경하는 스승은 누구인가요.]”
많은 이들이 내게 이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은 필리프 로제 교수님을 생각했다.
더러는 희성예고에서 나를 직접 가르친 최선희 선생님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분들에 대한 진심 어린 고마움과는 별도로 이 질문에서만큼은 항상 같은 답을 내놓았다.
“[가장 슬픈 순간에, 좌절하고 싶은 순간에, 마치 기적처럼 나타난 그가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습니다.]”
“[그게 대체 누구인가요?]”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비록 이곳은 아니지만.
가느다란 음악의 끈으로.
우리와 연결된 어느 곳에서.
그가, 나의 말을 듣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바로, 마에스트로 정윤성입니다.]”
* * *
한창 공연 준비를 하던 와중에.
반가운 손님이 나를 직접 찾아왔다.
“반가워요,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 여러분!”
“안유경 씨!”
바로, 전직 ‘세라핀즈’ 리더인 유경 누나.
‘세라핀즈’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작년에 은퇴한 그녀는, 지금 연기와 공부를 병행하는 중이다.
언젠가는, ‘아르스 노바’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멋진 오케스트라 곡을 써서 헌정하는 게 목표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돋보이는 탑스타로 나날이 명성을 높여 나가는 중이다.
스케줄을 마친 그녀는, 잠시 짬을 내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온 김에 여기 들른 것이다.
“어떻게 여기에? 회사에서 막지 않아요?”
“새 드라마 촬영을 위해 미리 여기 온 거야. 올가을에 찍을 드라마가 클래식 음악 드라마라서.”
“아, 그렇군요.”
만일 민아가 여기 있었다면.
긴장감과 불꽃, 스파크가 튀었을 것 같다.
“아이돌을 은퇴하고 유일하게 좋아진 점이라면, 역시 김리듬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다는 점 아닐까?”
“더 위험한 거 아닌가요? 이거 스캔들감이잖아요.”
“다행인 건, 해외라는 거. 배우 안유경은 내수용이라서 해외에서는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어?”
갑자기, 내 폰이 진동한다.
누군지 확인해 보니, 다름 아닌 박현성이다.
“여보세요?”
― 어디야?
“알면서 왜 물으세요? 잘츠부르크잖아요.”
― 지금 파리로 올 수 있어?
내 관자놀이에 바로 핏대가 섰다.
아니, 저기요. 박현성 선생님.
나는, 지금 여기서 공연 준비 중이라고요!
“이보세요. 지금 여기서 파리로 가려면, 내 황금 같은 시간이 얼마나 낭비되는지, 알기는 하세요? 네?”
― 아, 사실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러면 대체 왜 전화질을 하고 G…….”
― 바로, 지금 내가 잘츠부르크에 있거든.
맙소사.
나는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곧, ‘박현성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찾아냈다.
“박현성 씨. 그렇게 가린다고 가려질 것 같아요?”
“이런, 들켰네? 어쩔 수 없이 합석을 해야겠어.”
마스크만 벗었을 뿐인데도.
남자도 반할 용모가 바로 드러난다.
이제 ‘세계를 홀리는 미소’라 불리는 미소를 입가에 건 박현성이, 레스토랑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두 사람은 바로 주문 모드로 들어갔지만.
나는 여러 의미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둘 다 진짜 강심장이시네요. 파파라치한테 찍히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서 이렇게 조용히 왔잖아. 극비리에.”
“이게 극비리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어쨌거나, 나는 이른 저녁 메뉴를 주문했고.
내 메뉴를 본 두 사람의 표정이 묘해졌다.
“와, 이건 좀 인성이 의심스러운데.”
“네? 갑자기 왜죠?”
“맞아요, 선배. 저는 지금 리듬 군의 인성이 무지 의심스러워요.”
“유경 누나까지?”
두 사람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아직 체중 관리 중인 두 사람을 도발하기 위해, 윤기가 잘잘 흐르는 슈니첼을 시켰으니까.
박현성은 슈니첼을 보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지만, 안유경은 먹고 싶어서 죽겠다는 눈치다.
“아, 정말 미치겠네.”
배고프쥬? 그렇쥬?
“허기지면 한 조각 드세요. 양보하겠습니다.”
“아니야, 리듬 군. 난 참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나는 더 권하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메뉴도 도착했다.
간단한 연어 샐러드 하나와.
샐러드가 포함된 슈니첼.
“오? 박현성 씨가 슈니첼을?”
“아니야. 슈니첼은 안 먹어. 자, 김리듬.”
그는 내 접시에 슈니첼을 직접 덜어 주는 과도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한 점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 안 그러면, 잘츠부르크에서 떠나지 않을 테니까.”
“제발 그만해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을 좀 섬찟하게 하는 버릇이 있으시네요.
“그러고 보니 김리듬. 너를 소재로 한 영화 촬영 제안이 벌써 세 번째인데, 너 대체 왜 거절하는 거야?”
“그 얘기, 듣기만 해도 체할 것 같으니 그만하죠.”
내 인생을 영화로 찍겠다는 인간들은.
내게도 직접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지만.
문제는, 민아를 포함한 내 주위 반응이었다.
‘김리듬 전기 영화, 그거 정말 좋지요. 저도 적극 돕겠습니다, 감독님. 제게 맡겨만 주세요. 가장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전기 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도울게요.’
이런 식이었으니까.
결국, 나의 전기 영화 촬영 시도는.
나의 격렬한 거부로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