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가리비가 담긴 어항 (1)
달리아가 지금껏 안고 있던 토끼 인형을 던졌다.
“토끼야!”
토끼 인형은 땅에 떨어지기 직전, 검은 먹물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퍽!’ 하는 과격한 소리와 함께 체격을 키웠다. 인형은 점점 거대해지더니 시커멓고 거대한 괴물로 변했다.
“물어.”
괴물이 된 인형이 먹물을 흩날리며 네 발로 뛰어갔다. 놈은 머리가 반으로 갈린 것처럼 입을 쫙 벌리며 무식한 이를 드러냈다. 두꺼운 이빨이 브랙큰의 목을 물어뜯었다. 브랙큰이 몸부림을 치며 토끼를 공격하자, 검은 먹물이 피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흩어졌던 먹물 방울은 다시 작은 토끼 인형으로 변하며 브랙큰을 향해 달려갔다.
“…….”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달리아를 돌아보자, 소녀가 멋쩍은 듯 웃으며 엔비에게 매달렸다.
“오라버니. 달리아가 무서워요? 예전에,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예전이라면 언제를 말하는 거지?
잠깐 눈알을 굴렸다가, 나는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다. 달리아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내가 달리아를 왜 무서워하겠어. 우리 귀여운 공녀님을.”
“응!”
“엔비, 달리아와 데이지를 부탁해.”
오히려 달리아와 데이지가 엔비를 지켜줄 것 같다만. 아무튼 나는 토끼 인형을 따라 브랙큰을 향해 달려갔다.
[시에라! 꽤 날쌔야 할 텐데? 사방팔방에서 마력을 흡수하는 구멍이 발생하고 있어. 성수가 만들어내는 것 같은데……. 피하지 못하면 고생 좀 할걸? 저승에서 말이야! 하하하핫!]라기아의 말대로 빛의 그림자, 그러니까 브랙큰의 털 뭉치가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브랙큰과 가까워질수록 털 뭉치는 크고 빨라졌다. 저 이상한 물체에 닿았다가는, 아까 골목에서 본 사람처럼 기력을 빼앗기고 쓰러지고 말 것이다.
“라기아! 노 저을 줄 알아?”
[노 젓기라면 글쎄? 설마 나더러, 노로 변하라는 건 아니지?]“똑똑한데?”
[하여간 너는 나한테 이상한 것만 시킨단 말이야, 하하하핫!]라기아는 불평하면서도 넓적한 노의 모습으로 변했다. 물살을 가르기에 딱 좋은 형태지만, 지금은 물살 대신 털 뭉치를 헤쳐 나갈 때였다.
“아자!”
라기아의 넓적한 부분으로 털 뭉치를 받아쳤다. 테니스를 한다고 생각하면 좀 수월한 듯도 했다.
“쿠키 소환!”
초록색 털 뭉치가 튕겨 나가는 동시에, 공간을 가르며 쿠키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키는 말은 느리지만 눈치는 빠른 사령이었다.
쿠키가 민첩하게 움직이며 브랙큰의 털 뭉치를 공격하자, 빛의 그림자는 과자 덩어리로 변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주인님……. 오래는 못해요……. 마력, 빼앗겨…….]“내가 성전에 도착할 때까지만 견뎌줘!”
빛의 그림자를 내던지고, 부숴가며 빠르게 성전 앞에 도달했다. 성전은 브랙큰에 의해 다 부서져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브랙큰의 보라색 피와 달리아의 먹물이 어지럽게 엉켜 웅덩이를 만들었다.
독약 같은 물길을 라기아로 긁어내며, 나는 걸음 속도를 늦췄다.
[맛있어, 맛있다! 아하하하! 이거 맛이 좋은데?]보기만 해도 역겨워지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라기아에게는 음료수와 다름없는 모양이었다. 평소보다 강한 무기의 떨림이, 라기아가 얼마나 들떠 있는지 증명해주는 듯했다.
“저 산양, 머지않아 쓰러지겠어.”
나는 라기아로 물웅덩이를 마구 휘저으며 상황을 살폈다. 달리아의 토끼는 산양을 완전히 잡아먹을 듯했다. 와작와작 씹는 소리는 폭력적이었다. 나풀거리는 귀가 아니었다면 토끼라고 상상도 못 할 괴물의 모습이다. 날카로운 발톱이 초록색 털을 붙잡아 찢었고, 묵직한 이빨 하나하나가 산양의 살코기를 뜯어댔다.
“저런 마법은 게임 속에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
괴물 토끼가 두려운 한편, 경외심이 들었다. 저 정도 괴물을 마음대로 부리다니. 초월자라는 게 보통 존재가 아니구나 싶었다. 달리아가 사춘기를 겪으면 세상이 뒤집힐지도 모른다.
나는 라기아에게 브랙큰의 피를 먹이며 타이밍을 쟀다. 브랙큰이 쓰러지면 성전 안으로 쳐들어갈 생각이었다.
빛의 그림자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자, 내가 원하는 건 오직 마력 성장 포션이었다. 데이지의 말을 내가 제대로 해석한 게 맞다면, 성전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포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재주는 달리아가 부리고 포션은 시에라가 얻는 상황이었다.
“달리아한테 먹일까도 생각했지만, 저 실력을 보자면 차라리 내가 먹는 게 낫겠어.”
괴물들의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산양은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쿠웅, 쿵 성전의 외벽을 무너뜨리며 괴물의 몸이 기울었다.
“마력 성장 포션은 성전 안에 있겠지.”
나는 먼지가 이는 성전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은 언제 완전히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원하는 것만 챙기면 빨리 그 안에서 달아나는 게 좋겠다.
성전 깊이 들어가자 아슬아슬하게 버티며 뻗어 있는 브랙큰의 다리가 보였다.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물러나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으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여차하면 저 통나무 같은 다리에 라기아를 박아넣고 마력 성장 포션 대신 성수의 피라도 뽑아갈 생각이었다.
나무꾼이 된 기분으로 라기아를 들어 올린 순간, 브랙큰의 다리 뒤에서 창백한 얼굴을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어……!”
브랙큰의 다리에 매달려 있던 남자가 비척거리며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남자가 로브의 후드를 걷자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쏟아졌다. 그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들어 나를 쳐다봤다. 무너지는 성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침착한 눈빛이었다.
“누구?”
그는 나를 모르는 듯했지만, 나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성자 에드먼드 마이셀리움.
“여기엔 어떻게 들어왔지? 도적인가?”
에드먼드는 브랙큰의 다리에 팔과 몸을 기댄 채, 멍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다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태가 영 별로였다. 성수를 모시는 성자인 만큼, 성수의 상태에 영향을 받는 건지도 모른다.
“훔쳐 갈 만한 물건이라면 좀 더 안쪽에 있어. 안내해 줄 생각은 없고.”
“…….”
“가 봐.”
에드먼드가 선심 쓰는 듯 말했다. 내가 공작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미안하지만, 난 도둑이 아니야.”
도둑은 아니지만, 마력 성장 포션을 훔칠 생각은 있었다.
“그럼?”
“…….”
나는 라기아를 에드먼드 쪽으로 겨누며 물었다.
“자기소개가 듣고 싶다면 그쪽부터 해줬으면 하는데. 넌 뭔데 저 괴물 다리를 붙잡고 있는 거야?”
에드먼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다가, 브랙큰에게 기대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봤다.
“내 이름은 에드먼드 마이셀리움. 브랙큰을 수호하는 성자. 내 설명은 이 정도로 충분하겠지.”
“충분하지는 않지만, 뭐. 그래.”
어차피 나는 상태창을 볼 수 있었다. 성자의 개인정보 따위 세상이 알아서 내게 떠먹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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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에드먼드 마이셀리움
직업 : 성자
성격 : 인색 – 타인의 호감도를 올리기는 어렵지만, 보상 획득 확률이 올라갑니다
특성 : 치유 – 대상의 제한 없이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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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그대로의 상태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이 녀석은 남주인공 중 하나인 에드먼드다. 오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어떻게 생긴 놈인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별 볼 일 없었다.
이 녀석은 남주인공들 중 그나마 달리아에게 ‘덜’ 적대적인 놈이었다. 애당초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놈이니 그럴 것이다.
그래도 달리아를 무시하거나 면박 주는 못돼 먹은 남주인공 중 하나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내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곱씹으며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는 한편, 에드먼드가 떨떠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럼 이제 네가 대답해봐. 넌 뭐지?”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았다. 이름은 시에라 글러토니고, 지금 네가 붙잡고 있는 성수를 물어뜯는 괴물은 내 여동생의 것이고, 너에게 밑도 끝도 없는 악의를 가지고 있는 남자라고.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정확한 표현은 따로 있었다. 오늘에서야 깨달은 나는…….
“나는 애매한 악당이다!”
“뭐?”
[응?]라기아까지 진동하며 내 선언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나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애매한 악당이야. 이름은 나중에 밝힐 날이 오겠지.”
“애매, 애매하다니 그게 무슨…….”
“사람을 패고 죽이는 건 싫지만, 원하는 건 얻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악당. 이것보다 날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어.”
에드먼드의 미간이 묘하게 구겨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낄낄 웃는 라기아를 그의 목에 겨누며 덧붙였다.
“너에게 마력 성장 포션이 있다는 걸 다 알고 찾아왔어. 포션을 넘기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사람 죽이는 건 싫어한다며.”
“싫어한다고 했지 못한다고는 안 했어. 죄책감을 갖고 반성하며 여생을 살아가면 돼.”
“정신 나간 놈이군…….”
에드먼드는 브랙큰에게 기댄 채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내가 너무 당당해서 그런가 말문이 막힌 모습이었다.
“내놔. 시간 끌어봤자 너나 나나 이 성전에 깔려 죽을 뿐이야.”
“도둑질을 할 거면 얌전히 헌금이나 털어가도록 해.”
“브랙큰의 피가 사실 포션이라거나. 그런 거야? 그럼 피만 좀 뽑아가면 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나와 에드먼드는 실랑이를 이어갔다. 부상 당한 브랙큰의 거친 숨소리 때문에 성전의 기둥이 흔들릴 지경이었는데, 에드먼드는 당황하기는커녕 느긋한 자세로 나와 말다툼이나 하고 있었다.
착하게 나섰다가는 본전도 못 뽑겠다 싶어서, 나는 라기아를 좀 더 바짝 들이댔다. 날카로운 날이 에드먼드의 목을 눌렀다. 비실비실한 피가 배어 나오기 직전까지 몰아세운 뒤, 나는 다시 경고했다.
“있잖아. 난 시간 낭비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네 피를 뽑아갈지, 브랙큰의 피를 뽑아갈지 동전 던지기 하기 전에, 그냥 빨리 말하자. 마력 성장 포션, 어딨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이미 내 손에 없어.”
에드먼드가 나를 확 밀쳤다.
어라? 성자 주제에 힘이 왜 이렇게 세, 하고 의아해하기도 잠시. 나는 뒷덜미가 잡힌 걸 알고 화들짝 놀랐다.
“오늘 예상치도 못한 반가운 얼굴을 보네요?”
나는 라기아를 흔들며 인사했다. 상대방도 나를 반가워하고 있는 눈치였다.
자꾸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이 정도면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안녕. 시에라.”
테네리페 러스트. 그는 오늘도 예상치 못한 등장으로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테네리페 스승님을 또 보다니. 테네리페는 항상 반갑다기보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인물이었다. 오늘도 여지없이 그렇다. 사령술사가 브랙큰의 성전이 있는 루고사에는 무슨 일로 온 거야?
“스승님이 왜 여기 계세요?”
“오늘은 성자를 죽이면 안 돼.”
역시나. 이 인간에 순순히 대답해 줄 리가 없지.
“브랙큰이 쓰러졌을 때 뒷수습을 할 수 있는 건 쟤뿐이거든.”
테네리페는 나를 에드먼드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으며 실실 웃었다.
“시에라가 여기에 올 줄은 몰랐는데. 기도라도 하러 왔어? 참회?”
“참 나……. 참회 같은 소리 하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