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어떻게 해석하려 해도 불길한 쪽으로밖에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축제가 끝났다니?
야시장의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는 여전했다. 골목 저편의 민가는 조용하기만 했다. 쓰레기를 뒤지는 까마귀나 고양이도 없었다.
그러나 데이지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다시금 말했다.
“축제. 끝.”
오직 달리아와 데이지만 감지하고 있는 위험이었다. 은근슬쩍 우리 뒤를 쫓아오던 호위 기사들은 우리가 멈춰 서 있자 괜히 주변을 어슬렁거리고만 있었다. 위험한 일을 발견했다면 벌써 경계 태세를 갖추고 데이지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이만 돌아가자.”
야시장도 즐길 만큼 즐겼겠다, 돌아가는 것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데이지의 무뚝뚝한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피로가 확 몰려오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빠르게 돌아서려는 나의 발걸음을 잡은 것도, 데이지의 예언이었다.
“글러토니 공작… 아니, 시에라 형님이 원하는 걸 얻고자 한다면, 저쪽으로 가야 해요.”
“…….”
데이지는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곳에 무언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예지하고 있는 것처럼.
“데이지. 저 너머에서 어떤 걸 보고 있는 거야?”
“아주 많은 것.”
“…내가 얻는 건 확실하고?”
“달리아도, 형님도 원하던 것을 얻을 겁니다.”
“그럼 고민할 거 없지.”
나는 달리아와 데이지를 엔비의 품에 떠넘겼다.
“나 혼자 가볼게. 너희는 엔비와 함께 있어. 호위 기사랑 같이 숙소에 먼저 돌아가.”
“시에라. 괜찮겠어?”
엔비가 걱정스럽다는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전히 울적한 목소리였고, 살짝 긴장한 티가 났다. 엔비 또한 두 꼬맹이가 평범한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저 골목길에 뭔가 이상한 게 있으리라는 걸, 적당히 눈치챘겠지.
“엔비 님은 오늘 이 이상 싸우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딱히, 예정에 없던 나들이라서요.”
라기아에 손을 얹고 골목길로 성큼 걸음을 내딛는 순간, 데이지와 달리아가 동시에 나를 붙들었다. 멈칫하고 돌아보자, 두 꼬맹이가 눈을 반짝이며 내 바짓자락을 쭉쭉 잡아당겼다.
“같이 가요!”
“오라버니, 달리아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두 사람은 사탕 먹으면서 숙소로 돌아가. 위험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 특히 데이지는, 다치게 되면 그 형님이 나한테 화낼 게 분명하거든.”
단호하게 말했는데 둘의 눈빛이 이상했다. 호기심 때문에 나를 붙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두 꼬맹이는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필요할 거예요.”
데이지가 덧붙였다.
“너희가 필요하다고……?”
호위 기사를 다 떼어놓아야 안전한 일인데, 다섯 살짜리는 둘이나 데려가야 하는 상황이라.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상상해도 무슨 일인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일단 알겠으니까, 그러면 내가 먼저 확인하고…….”
내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달리아와 데이지가 손을 잡고 달려 나갔다. 찹찹찹찹- 발소리가 산책하느라 들뜬 개처럼 성급하면서도 재빨랐다.
“얘들아! 잠깐!”
두 사람을 쫓아 나 또한 골목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엔비도 나를 쫓아 달려왔고, 뒤이어 우리를 쫓아오던 호위 기사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달리아! 데이지!”
둘의 작은 뒤통수에 시선을 고정한 채 구불구불 복잡한 골목을 빠르게 돌파했다. 조그만 것들이 발은 어찌나 빠른지,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멈춰!”
다른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이 방향 저 방향을 비틀어가며 달렸다. 두 사람은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계속 달려 나갔다. 루고사에 온 적도 없을 텐데, 두 사람은 어디로 가면 무엇이 나오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막힘 없이 달리던 아이들이 멈췄다.
뒤따라 달리던 내가 아이들의 뒷덜미를 낚아채며 헉헉, 거친 숨을 내뱉었다. 꼬맹이들은 숨소리까지 차분했다.
“허, 헉, 이 녀석들아. 위험하게, 보호자도 없이 내달리면 어쩌자는 거야?”
맹랑한 꼬맹이들은 쉽게 붙잡혔지만, 반성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둘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각자 특정한 방향을 가리키며 고개를 돌렸다.
“저기.”
“저쪽.”
손가락질은 멈추지 않았다. 둘은 여기저기를 짚어대더니, 나를 돌아보며 매달렸다.
“오라버니. 데이지가 말하던 빛의 그림자. 나타났어요.”
“쫓아가면, 원하던 것을 얻을 겁니다.”
두 사람이 말한 방향 중 한 곳으로 향했다.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이게 무슨! 이봐! 정신 차려요!”
쓰러진 사람의 뺨을 툭툭 치며 어깨를 흔들었다. 차가운 육체가 풀썩 옆으로 쓰러졌다. 달리아와 데이지는 이 광경을 예상했다는 듯이 놀라지 않았다.
“얘들아. 설마, 너희가 가리킨 방향에 모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전부는 아니에요. 오라버니가 방금 흔든 사람은 살아있는데, 다른 사람은 죽었거든요.”
달리아가 머리를 꼬아가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데이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잡았다.
“다시 나타날 거예요. 빛의 그림자.”
데이지의 말은 사실이었다. 저 멀리, 도깨비불처럼 무언가 흔들거리는 게 보였다. 녹색 신호등이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듯한 모양새였다.
“저게…….”
두 아이의 반응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저게 바로 빛의 그림자다.
“시에라!”
“시에라 공작님!”
엔비와 함께 우리를 따라붙었던 호위 기사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내 눈앞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 흠칫 놀라며 해명을 요구하는 듯 쳐다봤다. 동시에 데이지와 달리아가 나를 붙잡아 흔들며 보채기 시작했다.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는 듯했다.
“주변에 쓰러진 사람이 더 있을 거다. 찾아라.”
“그게 무슨……! 알겠습니다. 저희가 정황을 파악하는 동안, 여러분은 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기사가 부하들을 각 방향으로 보내며 내게 다가섰다.
“나는…….”
그때 달리아가 기사에게 손을 뻗었다.
“아직, 산책 안 끝났어.”
달리아의 눈이 고양이처럼 빛나는가 싶더니, 기사의 동공이 풀렸다. 그는 내가 아닌 허공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공작님. 어서, 이쪽으로.”
그는 보이지 않는 공작과 귀빈을 모시며 물러섰다. 우리는 그의 눈앞에 있었지만, 그의 시선에는 담기지 않았다.
그는 환각을 보고 있었다.
“달리아. 방금 네가 한 거야?”
“네.”
사람의 의식을 단숨에 잠식했는데, 나처럼 주문을 외운다거나 특정한 동작을 수행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달리아는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그런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초월자이기 때문인가?
엔비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엔비는 환각을 보는 기사를 붙잡으려다가 말고, 달리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이 순간, 엔비는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겠지.
의문과 경악.
“달리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너와 네 작은 인간 친구는 도대체 왜 달린 거야?”
달리아는 순수하고 또렷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데이지도 마찬가지였다. 둘의 눈빛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확신과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힘이 서려 있었다. 고작 다섯 살이 아니다. 다섯 살인데도 이 정도인 것이다.
“데이지랑 약속했어요. 오라버니가 낮잠 잘 때.”
“무슨, 약속을?”
“루고사를 지켜주자고. 나는 공작 영애고, 데이지는 황자니까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고.”
“너희들…….”
“우리는 가장 좋은 선택을 할 거예요.”
달리아와 데이지가 활짝 웃었다.
“이제 염소 구경할 시간!”
두 사람의 말을 진지한 눈빛으로 듣고 있던 엔비가 팔을 걷어붙였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알겠다. 너희도 너희 나름대로의 긍지가 있구나!”
“지금 나만 이해가 안 가는 거야?”
마른세수를 하며 머리를 쥐어뜯는데, 데이지와 달리아가 자연스럽게 엔비 몸 위로 올라탔다. 엔비는 두 사람을 받치며 소리쳤다.
“어느 쪽이냐! 네가 하자는 대로 하면, 이번엔 날 응원해줄 거지? 달리아!”
“저쪽으로! 엔비! 달려!”
엔비가 아이들을 데리고 무턱대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의 뒤를 쫓는 수밖에는 없었다.
“같이 가!”
***
우리는 초록색 불빛을 따라 마구 달렸다. 빛의 그림자는 역시나 브랙큰의 성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길 봐, 시에라!”
엔비의 외침에 주변을 둘러보자, 초록색 빛나는 털 뭉치가 사방팔방에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 둥둥 떠다니는 게 보였다. 그 불빛이 모두 성전을 향해 천천히 유영해 날아가고 있었다.
“브랙큰의 짓이야.”
이어 성전 근처에 다다랐을 때.
쿠우웅, 쿠우웅, 쿠우우웅!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충격에 나무가 흔들리고, 벽돌길이 갈라졌다.
“이제, 나올 거예요.”
데이지는 이 소란에도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뭐가 나오는데?”
“아주 커다란 염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짐승 울부짖는 소리가 땅을 흔들었다.
쿠워어어어어어!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멀리서 초록색 불빛이 폭발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다시금 굉음이 터졌다. 이어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성전 지붕을 뚫고 거대한 뿔이 튀어나왔다.
“염소…….”
나는 라기아를 빼 들어 낫의 모양으로 바꿨다. 엔비 또한 가죽을 검게 경화시키며 아이들을 뒤로 물렸다.
“거대한 염소라는 게, 브랙큰을 말하는 거였구나?”
초록빛으로 빛나는 뿔이 허공을 가르고, 새빨간 눈알에서 보라색 눈물이 흘러내렸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듯한 성수는 거대하고, 또 육중했다. 놈은 자신의 성전을 발굽으로 가차 없이 밟아가며 언덕 위에서 포효했다.
“근데, 그거 알아, 얘들아? 저건 염소가 아니라 산양이야.”
산의 지도자 브랙큰. 인간에게 지혜를 베풀어주는 보기 드문 성수였으나, 지금은 이성을 잃고 날뛰는 짐승으로 전락했다. 놈은 성전을 마구 부숴가며 발악했다.
[오오, 육지의 성수인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내는 것 같은데?]라기아가 특유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완전히 폭주하고 있군. 쓰러뜨리지 않는 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거야.]“쓰러뜨린다고? 하긴 쓰러뜨려야 할 것처럼 생기긴 했어. 저게 무슨 성수야?”
이젠 마수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는걸.
대부분의 성수는 침착하고 평화주의적인 성격이기에 저렇게까지 날뛰는 일은 없다. 성수마다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브랙큰은 그중에서도 차분한 편에 속했다. 놈은 빛의 그림자를 이용해 인간의 생명력을 훔치는 치졸한 방식을 사용할지언정, 직접 날뛰는 마수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원작과 다른 무언가가 저놈을 자극한 거야.”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달리아의 선택이었다.
달리아는 날뛰는 브랙큰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결정했다. 진정한 오라버니라면 동생의 기특한 결정을 응원하고 힘을 보태줘야 하는 법.
“싸우는 수밖엔 없겠지.”
지금껏 본 그 어떤 마수보다 위협적인 모습이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미래를 아는 두 꼬맹이가, 침착하고 여유롭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데이지 저하. 제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저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달리아를 믿고, 달리면 답을 만날 거예요.”
침착한 데이지의 조언에 달리아가 경쾌하게 덧붙였다.
“오라버니, 달리아의 첫 사냥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