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자동차도 사람도 무리해 끼어들면 사고가 난다 (6)
피핀이 외침과 동시에 릴리가 밝게 빛나는 전기의 창으로 그림자를 공격했다.
그림자는 속수무책으로 펑펑 터졌다.
“빛이! 빛이 그림자를 이겼어!”
주변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퍼졌다. 다들 릴리의 빛이 기적처럼 괴물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킁.”
진정한 달리아가 콧물을 훌쩍였다. 울음을 멈추고 릴리를 구경하는 달리아를 보자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빛이 그림자를 이긴 게 아니다. 놀란 달리아가 잠투정을 멈췄을 뿐이다.
소동이 진정되는 와중에, 미미가 내게 다가왔다.
“달리아 아가씨를 내게 넘겨줘.”
혼란을 틈타 우리 애를 허락받고 납치하려는 미친 수작이었다.
“내가 넘겨주겠냐?”
“흥.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지만, 오늘은 아가씨를 모셔가지 않겠어. 하지만 내 도움 없이 돌아갔다간 마차 안에서 폭주하실 수도 있어. 그래도 상관없겠어?”
“…….”
껄끄럽지만 미미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은 잠시 얌전해졌지만, 마차 안에서 다시 잠투정이라도 시작한다면 이번에야말로 큰일을 낼지 모른다.
“방법이 있어?”
“달리아 아가씨.”
미미는 내게 설명하는 대신 달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함부로 달리아를 내어줄 수는 없었기에 내가 달리아를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달리아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내게 안긴 채로 손을 뻗었다. 미미가 달리아의 작은 손을 살짝 잡았다. 연약한 꽃을 잡듯 조심스러운 손짓이었다.
이어 미미의 마력이 달리아에게 흘러 들어갔다. 미미에게 반응하듯 달리아의 마력이 들쑥날쑥 요동치더니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한결 진정된 달리아는 미미의 손을 뿌리치고 내게 고개를 파묻었다.
“뭘 어떻게 한 거야?”
“마력을 정돈해 드렸을 뿐이야. 아직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시니까…….”
미미는 돌연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네가 제대로 된 사도였다면 달리아 아가씨한테 도움이 됐겠지!”
“내가 할 말이야. 네 녀석이 붙잡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우리 달리아는 집에서 쿨쿨 자고 있었어. 어린이한테 수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네가 알아? 오늘 일로 달리아의 최종 신장이 작아졌을 수도 있다고!”
“달리아 아가씨한테 중요한 건 키 따위가 아니야! 너와 레크로파다스가 제 역할을 못 하니까 여신께서 날 대신 보낸 거야. 환각의 마녀께서 해야 할 중요한 임무를, 내가 보좌하게 될 거라고.”
미미는 스스로 말하고도 조금 감격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달리아는 환각의 마녀인지 뭔지가 아냐. 달리아는 달리아야. 헛소리하지 말고 꺼져.”
미미의 말을 들은 달리아가 혹 홀리기라도 할까 봐, 나는 부러 날카롭게 말하며 자리를 떴다.
“토로제 경이 또 한 번 활약해 주었군. 이번에는 글러토니 공작의 호위 기사까지 합세해서 말이야.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군.”
프라이드 후작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 한 번 나를 띄워주는 듯 행동했다. 나와 눈을 마주치며 웃는 걸 보니 일부러 과장해 하는 말이 틀림없었다.
그의 속 보이는 활약은 꽤 잘 먹혀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파티에 놀러 온 귀족들은 충격적인 사건 때문인지 쉽게 휘말렸다.
“글러토니 공작님이 아니었더라면……!”
“역시 토로제 기사단장이야!”
“슬로스, 슬로스 경이라고요? 처음 들어보는 가문인데!”
사람들이 우리에게 더 관심을 갖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 나는 피핀을 미끼 삼아 사람들 사이에 버려두고 후다닥 자리를 떴다.
“두고 봐. 달리아 아가씨는 결국 나를 선택하게 될 거야!”
미미의 경고를 뒤로한 채.
***
“우편물 말입니다만……. 파티 초대장이 부쩍 늘었습니다.”
“무시해.”
“모조리 무시하면 평판에 흠이 갈 텐데요. 사귀어두면 좋을 법한 집안에서 다과회를 청해오기도 하니까요. 검토를 해보심이 어떻습니까?”
“검토고 뭐고 안 돼. 알베르토도 봤잖아. 파티 얘기만 나오면…….”
나의 시선이 책상 너머로 향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인형을 휘두르고 있는 달리아가 보였다. 졸지에 달리아의 놀이 친구가 된 코카는 바닥에 엎드려 바다거북을 연기하고 있었다.
“평범한 인형 놀이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역할 분배가 창의적이야.”
달리아 본인은 바다를 구하러 온 공주였는데, 바다가 왜 위험에 빠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설정이 그랬다. 실제 바다 출신인 엔비는 악당이었고, 그의 악행은 모호했으나 아주 악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해자는 아까부터 누워있는 저 바다거북이고.
심지어는 성수 엘세노테까지 구형의 물속에서 뻐끔거리며 달리아의 장단에 놀아나고 있었다. 엘세노테는 왕자님 역할이었는데, 나중에 달리아와 결혼할 운명이라고 했다. 말도 못 하는 가리비에게 왜 그런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은 그저 달리아의 뜻대로…….
“거북아, 걱정하지 마! 내가 구해줄게! 엘리제랑 내가!”
달리아는 악당인 엔비를 마구 때리며 정의를 구현하려 들었다. 나는 엔비가 맞으면서 어색하게 연기하는 꼴을 그저 지켜만 봤다. 달리아가 직접 남주인공을 폭행하고 있는 장면이 사뭇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피핀은 없었다.
욕심 많은 피핀은 감히 자신이 왕자 역할을 맡겠다고 자원했으나 결정권자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에게 할당된 역할은 가련한 인어 어린이였는데, 엔비가 몹시 비웃었다. 이에 상처받은 피핀은 아예 자신의 작업실로 달아나 버렸다. 아무래도 엔비보다 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에 삐친 듯했다.
“콰아아앙!”
“아아. 나는 죽는 것인가? 매우 고통스럽군.”
엔비의 연기는 가관이었으나 달리아를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달리아는 곰 인형과 토끼 인형을 친구라고 부르며 무기로 사용했다. 인형으로 얻어맞은 엔비가 쓰러지자 달리아가 나를 휙 돌아봤다. 코를 씰룩이며 입술을 달싹이는 게, 나한테 잔소리를 들을 만한 말을 할 심산인 듯했다.
“아아. 언니가 있었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
“미미가 있었으면 재밌었을 텐데. 미미는 기사 역할 했을 텐데.”
달리아의 발음은 평소보다 또렷했다.
최근 앞니가 흔들리기 시작해서인지, 달리아의 발음이 부쩍 어색해졌다. 남몰래 혀로 앞니를 밀어내며 놀기 때문이었다. 혹여 새로 나오는 이에 문제가 생길까 뮤리엘이 혼내도 보고 달래도 봤지만, 달리아의 새로운 취미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런 달리아가 미미 얘기를 할 때만큼은 어른처럼 똘똘하게 말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영악한 게 아주 기특하다. 악역 영애가 될 자질이 보인다.
“기사라면 피핀을 시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알베르토는 조용히 해.”
“어허…….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달리아 아가씨, 제가 조용히 하면 이따 단델이 간식을 가져오지 않을 텐데요?”
“…….”
알베르토가 물 흐르듯 달리아를 홀려냈다. 달리아는 흠칫하더니 흔들리지 않고 나에게 시선을 다시 고정했다. 요즘은 알베르토의 수작도 통하지 않는다.
이게 다, 그날의 파티 때문이었다.
“오라버니 파티 또 안 가요?”
“파티 안 가. 파티 없어.”
“우리 집도 파티했으면 좋겠다…….”
“오라버니가 바빠서 파티 못 해.”
“파티 가고 싶다. 달리아도 초대장 받고 싶다. 오라버니, 달리아한테 온 파티 초대장은 없어요?”
“없는데, 어떻게 하지.”
“있을 텐데?”
달리아는 알베르토가 들고 있는 우편물을 손가락질했다. 이미 파티 초대장이 많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 물어보는 것이다. 막상 가면 도토리나 자랑하다가 밤에 잠투정할 거면서 왜 자꾸 가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미미 모르포팔. 그 수상쩍은 작자가 우리 달리아를 꼬여낸 게 틀림없다.
“알베르토. 나도 보여줘. 편지.”
“죄송합니다, 아가씨. 전부 버릴 것들이라서요. 의원에서 보낸 광고지랍니다. 아가씨는 의원은 싫어하시지요?”
알베르토는 들고 있던 우편물을 죄다 옆구리에 끼며 숨겼다. 동시에 손을 빠르게 움직여 편지 봉투 중 하나를 골라냈다. 나는 달리아의 시선을 피해 바쁜 척을 해야 했기에, 편지를 받아 바로 뜯었다. 괜한 혼잣말도 덧붙였다.
“아, 바쁘다. 정말 너무 바쁘다. 일이 많아서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네.”
“…….”
의심으로 가득 찬 달리아의 눈빛을 애써 무시한 채, 나는 편지를 읽어나갔다. 또 파티 초대장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
[범블비 킨더가든 초대장]글러토니 공작 각하께 무한한 존경을 보내며.
프라이드 후작 각하의 추천장을 받고 몹시 설렜습니다.
달리아 글러토니 공녀께서 매우 영특하시어 프라이드 후작가에서 주최한 파티의 주인공이 되셨다 들었습니다.
후에 글러토니 공작 각하를 보필할 인재를 일찍이 교육하심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범블비 킨더가든에서는 추천장을 받은 어린 귀족 자제분들을 교육하고 있으며…….
—
길게도 이어지는 편지를 천천히 읽어봤다. 결론은 ‘달리아를 유치원에 보내라’라는 말이었다.
눈썹을 찌푸리며 알베르토를 쳐다봤다. 알베르토는 몸을 숙인 뒤 달리아에게 들리지 않도록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최근 달리아 아가씨가 투정을 부리는 건, 친구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언니를 갖고 싶다고 하거나, 새로운 놀이 친구가 필요하다고 하거나. 인형인 엘리제를 각별히 생각하시는 것도 그렇고요.”
“그건…….”
“조만간 앞니가 빠지면 급격히 의기소침해지실 겁니다. 그만큼 외로워하실 테지요. 유치원에 보낼 거라면 앞니가 빠지기 전에 보내드려야 합니다. 그 전에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알베르토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달리아에게는 친구가 필요했다. 코카를 비롯한 우리 집 오합지졸들이 언제까지 바다거북을 연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릴리와의 대결 이후 피핀에게는 적당한 검술 스승을 붙여놨는데, 번번이 결석하며 돈만 날리고 있다. 피핀은 달리아의 놀이에 차출되는 1순위라 공작성에서는 할 일 없이 제일 바쁜 사람이 됐다. 피핀은 달리아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고, 검술 스승은 감히 공작 영애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
“데이지 황자를 공작성에 매일매일 불러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유치원 전단지(?)를 요리조리 살피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보통 유치원으로는 안 돼.”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달리아를 살폈다. 지금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다섯 살짜리지만, 저 조그만 녀석의 정체는 ‘환각의 마녀’였다. 이 세계관에서는 초월자라고 불리며 위용을 떨치는 전설 속 존재라는데…….
달리아는 그림자를 조종하거나, 괴물을 불러내거나, 심지어는 용과 말할 수 있는 장치까지 만들어내는 능력자다. 평범한 유치원에 갔다간 애들도 선생도 달리아를 감당하지 못할 거다. 유치원을 터뜨려버릴지도 모르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마녀로 몰려 곤혹스러운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가능하다면 마법을 배울 수 있는 선생을 붙이고 싶어.”
달리아는 우선 마력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했다. 지난번처럼 무의식적으로 괴물들을 불러낸다면……. 남들 눈에 들킨 이상 쉽게 수습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편지를 보낸 원장의 이름을 보세요.”
알베르토가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무심코 넘겨버린 발신인을 확인했다.
“허……. 알라타. 알라타잖아?”
달리아를 유치원으로 초대한 건 그 유명한 알라타 교수였다.
후에 아네모네를 양녀로 거둬 마법 아카데미로 보내는 스승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