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선물은 ‘내 돈 주고 사기 아깝지만 갖고는 싶은 것’을 고르는 게 좋다 (4)
쿠키의 수많은 팔이 주변을 더듬었다. 닿는 것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지 과자 부스러기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쿠키의 손에 무언가 닿도록 유도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우리가 있는 공간은 마치 슬라임처럼 움직이며 우리의 손길을 피하는 것 같았다. 공간의 경계를 알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가능한 파괴해 보는 것.
“몰포나비!”
콰과광! 코스모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나비 폭탄이 허공에서 터졌다. 허공처럼 보였지만 사실 ‘벽’이 있었다는 증거였다.
[이상한 기술을 시키는걸. 쩝.]코스모가 입맛을 다시더니 입을 쩍 벌렸다. 코스모는 나의 마력에 공명하며 입으로 폭탄을 쏘아냈다. 지금 내겐 라기아가 없기 때문에, 코스모를 무기 대신으로 쓰고 있다.
쿠키와 코스모가 한바탕 날뛴 덕분인지, 바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코스모! 저 위로 마구 뛰어!”
[그랬다간 떨어질 것 같은데? 난 날 수 없어!]“괜찮아! 어차피 다 환각이야. 어서!”
내 성화에 못 이겨 코스모가 균열 위로 섰다. 녀석의 등에 올라탄 채 빨리 움직이라고 다그쳤다.
코스모는 머뭇거리다가 쿵쿵 균열 위에서 뛰었다. 코스모의 발이 닿을 때마다 균열은 더 커졌다.
“쿠키. 균열을 과자로 바꿔버려. 완전히 바스러뜨리자.”
[네.]사사사삭! 거미처럼 날쌔게 움직인 쿠키가 코스모의 근처로 다가가 균열을 매만졌다. 유리처럼 날카롭게 깨지려던 균열은 과자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쿠쿠궁,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무너져내렸다.
“쿠키! 돌아와!”
재빨리 몸을 피한 쿠키가 코스모의 입 안으로 피했다. 나는 몸을 낮춰 코스모에게 바짝 붙었다. 코스모는 찡얼거리면서 모습을 변화시켰다. 좀 더 육중하고 무시무시한 괴물의 모습이었다.
[이대로 바닥까지 간다……!]우리는 목적지를 모르는 채 추락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떨어지면서 여러 공간의 경계와 마주쳤다. 그때마다 쨍그랑, 쨍그랑 공간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주변을 둘러보면 무너진 세계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파티를 하느라 분주한 성의 모습, 가을바람이 부는 정원, 도서관, 데지데리움을 돌보는 황태자와 불꽃놀이에 빠진 아네모네까지.
우리가 지나치고 있는 건 달리아가 만든 환상이면서, 동시에 이전에 있었던 사건들이었다. 게임을 할 때 봤던 익숙한 장면들이 보였기에 알 수 있었다. 추억을 되새기는 동시에 오한이 들었다.
“게임 속에 들어온다는 게, 유쾌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네. 게임을 리셋하는 게 내가 아닌 심연의 악마였다니…….”
여러 장면들을 지나 끝도 없이 떨어지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나으리!”
“피핀이다! 환각의 일부인가?”
[아냐! 저건 진짜야! 달리아도 같이 있어!]코스모의 가죽을 그러쥔 채 방향을 틀었다. 코스모는 나름대로 날렵하게, 공간의 틈에 네 다리를 걸치며 조심조심 걸어 나갔다.
[달리아! 달리아의 기운이 느껴진다!]“여기 전체가 달리아의 기운으로 가득한데……. 너 진짜 오해하고 있는 거 아냐?”
[아니야!]코스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두컴컴한 저택의 안으로 들어섰을 때, 코스모는 저택의 벽을 무작정 부수며 침입해 들어갔다.
“으아악!”
[달리아!]코스모가 개처럼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갔다. 오래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에는 정말 달리아가 있었다. 달리아뿐만 아니라, 피핀과 코카도 있었다.
“다들 여기에 있었구나!”
나는 반가움을 숨길 수 없었다. 매일 보는 바보 같은 녀석들이 오늘따라 왜 이리 반가운지.
코스모가 달려 나가 달리아를 마구 핥았다. 달리아는 코스모의 멱살을 붙잡은 채 맥없이 흔들렸다.
“추, 축축해…….”
“다들 용케 환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구나?”
피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 괴로웠습니다. 환각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았지만, 영 벗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었어요.”
“나도. 피핀, 넌 어떤 환각을 봤는데?”
피핀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예전에 살던 마을에서, 누나랑 스승님이랑 제가 함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봤어요. 누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게 현실인 줄 알고 머물러 있으려 했을 거예요. 나으리는요?”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는 처음부터 속지 않았지. 속기는커녕 알베르토가 내준 숙제를 해결했어.”
“거짓말쟁이…….”
“거짓말이라니? 건방진 소리 하기는.”
우리의 시선은 코카에게로 넘어갔다.
“코카, 넌 무슨 환각을 봤지?”’
내 질문에 코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로반체를 만난 건가?’
괜히 물어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코카는 오로반체 후작이 키운 암살자로, 가족은커녕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오로반체의 친아들인데도 그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니…….
코카는 아마 오로반체의 인정을 받는 후작가의 적장자로 사는 꿈을 꿨을 것이다.
“물어본 내가 미안하다.”
“아니, 그게 말이죠.”
내가 머쓱해하는데, 피핀이 코카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말했다.
“이 자식은 저랑 달리아 아가씨가 환각에서 꺼내왔습니다. 아주 터무니없는 환각을 보고 있던데요?”
“뭐, 뭔데? 나도 알아도 돼?”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코카가 무척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제 방이 생기는 환각을 봤어요…….”
“어?”
“이 자식, 지하감옥에서 생활하는 게 어지간히 서러웠나 봐요. 자기 방이 생기는 꿈을 꾸고 있더라고요.”
코카의 환각은 매우 소박했다. 아직까지 지하감옥을 개조한 방에 살고 있는 코카. 그게 얼마나 서러웠으면 본관에서도 햇빛 잘 드는 3층 중심의 방을 하사받는 꿈을 꾼단 말인가.
“가구를 옮기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도저히 환각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길래 골치 좀 썩었습니다.”
“…….”
코카는 엄청나게 쑥스러워했다.
“진짜 소박하다…….”
왠지 내가 잘못한 것 같지 않나. 나는 돌아가면 코카에게 새 방을 주기로 결심했다.
“달리아. 이제 이런 놀이는 그만하자. 이건 놀이가 아니야. 혼나야 마땅한 일이라고.”
몸을 숙이며 달리아의 콧잔등을 건드렸다. 달리아는 쑥스러워하며 내 손이 닿았던 부분을 긁었다.
“잘못했어요.”
“마법을 써야 할 때가 있고, 쓰면 안 될 때가 있어. 남들을 조종하기 위해 마법을 쓰는 건…….”
안 된다고 하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이 위험한 세상에서, 남들을 조종할 때 마법을 쓰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이제 심연의 악마, 그러니까 세라를 상대로, 나서야 할 수도 있는데…….
한참 표현을 고른 나는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
“당분간 마법을 쓰기 전에 오라버니의 허락을 받자. 특히 이런 거대한 마법 말이야.”
“네.”
“어서 환각을 풀어. 다들 제자리로 돌려놔야지.”
“하지만…….”
달리아가 머뭇거렸다.
“달리아. 어서.”
“안 돼요. 아까 피핀도 그랬어요. 환각을 전부 풀어달라고. 하지만 못해요. 왜냐면, 여기는 달리아의 공간인데 달리아의 공간이 아니야.”
“음? 그게 무슨 뜻이야?”
달리아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어떻게든 표현해보려 애를 썼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참 팔을 휘적거리던 달리아의 눈이 반짝였다.
“아! 퍼즐!”
“퍼즐? 갑자기 무슨 퍼즐?”
“여긴 달리아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곳이 맞아요. 하지만 퍼즐이 생겼어. 달리아가 만든 적 없는 퍼즐이 생겼어요.”
달리아는 손가락을 꼽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엔비랑 엘세노테는 공간을 깨뜨려서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아네모네가 묶여 있어요. 마력을 커튼처럼 걷고 싶은데 못하겠어.”
“흠…….”
내가 아까 심연의 악마와 만났던 것처럼, 아네모네도 그 녀석과 마주친 걸까? 그렇다면 당장 달리아의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퍼즐이 있다 하더라도, 더 큰 힘으로 부수면 그만이겠지. 달리아. 도와줄 수 있어? 도와주는 게 아니지. 달리아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야.”
“네.”
“그럼 한번 상상해 보자. 아네모네를 구하러 갈 수 있을 만큼 강한 것을.”
“흐음…….”
잠시 고민하던 달리아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났다! 엄청 강한 거!”
***
쿠구구구구구……. 쿠구구구구구…….
공사라도 하는 듯이 땅이 진동했다. 시커먼 어둠을 뚫고 나타난 것은 전철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크기의 흰 뱀이었다.
뱀의 붉은 눈에서는 헤드라이트처럼 진한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우리는 각자 뱀의 이빨을 하나씩 붙잡고 이동했다. 멀미가 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생리적으로 그저 부담스러운 건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달리아……. 왜 하필 뱀이야……?”
뱀의 혓바닥이 묘하게 푹신푹신한 것도 불쾌하다.
송곳니를 매만지며 달리아는 웃었다.
“귀엽잖아요!”
“…….”
나는 코카와 피핀을 돌아보며 진심을 담아 물었다.
“이것도 가정교육의 문제일까?”
“글쎄요…….”
“그건 아닐 거예요.”
아까 나와 코스모가 공간을 깨뜨리며 이동했듯이, 흰 뱀은 겹겹이 쌓인 환각을 부숴가며 이동했다. 공간의 파편은 먹물로 변해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네모네의 마력을 쫓아 달리는 동안, 뱀의 꼬리를 타고 엔비와 엘세노테가 도착했다. 엘세노테를 품에 꼭 끌어안은 엔비는 ‘재미있는 꿈을 꿨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처음부터 환각에 속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지독한 녀석.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뱀이 머뭇거리며 속도를 늦췄다.
“왜 이러지? 끝까지 온 건가?”
달리아가 뱀의 송곳니를 매만지며 고개를 들었다. 쉭쉭, 뱀이 우는 소리가 났는데, 그저 역겹고 무서울 뿐이었다.
하지만 달리아는 뱀의 쉭쉭 소리에 담긴 뜻을 용케 해석해 냈다.
“저 안쪽에 아네모네가 갇혀 있어요.”
“예전 같았으면 구해주고 싶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 아네모네는 달리아를 위해서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나는 코스모의 위에 올라탄 뒤 뱀의 입에서 뛰어내렸다.
“무조건 부수고 들어간다. 아네모네만 구하면 이 환각도 끝이야.”
몰포나비! 몰포나비! 다시 한번!
포탄 공격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내 마력이 흡수당하는 기분인데…….”
코를 긁적이며 고민하고 있던 찰나, 뱀이 부드럽게 머리를 내려 달리아를 내려주었다. 달리아는 코스모의 옆에 바짝 붙어 내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응, 달리아.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서 있어.”
“아네모네를 꼭 구해야 해요?”
달리아는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꼭 구해야 하냐니?”
내가 아네모네에게 보인 적의가 달리아에게 영향을 주었던 걸까.
“그건…….”
아네모네를 구하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있었나? 하지만 녀석을 구하지 않는다면…….
달리아는 고민하면서 말했다.
“아네모네는 어쩌면 이곳에 있을 때 더 안전할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뜻이야? 여기가 아네모네에게 더 안전하다니.”
뒤에 도사리고 있는 전철만 한 뱀만 봐도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겠다.
달리아는 의아해하는 나에게, 더 의심스러운 말을 던졌다.
“또 다른 내가 말했어요. 그 계획이 실패하면 아네모네가 제일 먼저 위험해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