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미아 (5)
“저기 용 선생님? 왜 착륙하지 않는 건가요?”
쿠어어어어!
도망치려는 나를 본 테네리페는 평소의 온화하고 의뭉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날 돕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그래? 데미안이 없는 세상을 내가 내버려 둘 것 같아?”
테네리페가 활짝 웃으며 덧붙였다.
“다 죽여버릴 거야. 다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극단적이시네요.”
으레 하는 협박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테네리페라면 정말 무슨 짓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협박하셔도…….”
나는 마른세수를 벅벅 반복하며 고뇌했다.
“제가 심연의 악마를 어디서 찾아요…….”
심연의 악마가 어디 맛집 이름이라서, 검색하면 나온다든지 하면 몰라.
아니, 그래도 불가능하잖아? 이 세계에는 인터넷이 없으니까.
심연의 악마가 사는 곳이 관광명소여도 편했겠지. 혹은 어디 유명인이라서 어딜 가든 사람들 시선이 따라붙는다면 찾기 쉬울 테지.
하지만 심연의 악마는 악마답게 지옥 어딘가에서 은신하고 있을 것이다. 가끔 꿈 같은 환상 속에서 운 좋게 만날 수 있는 존재인데, 내가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스승님은 혹시 알고 계세요?”
“아니.”
“예?”
테네리페는 담백하게,
“그건 이제부터 네가 알아봐야지. 기대할게.”
하고 말한 뒤 사라져버렸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레크로파다스와 함께 날아가 버린 테네리페.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멍하니 온갖 욕을 중얼거리다가 입을 닫았다.
“심연의 악마를 어디서 찾아. 빌어먹을.”
“어이! 시에라!”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나를 향해 아네모네가 달려왔다.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숨어 있었어. 어떻게 된 거야? 그 커다란 쓰레기 더미는 완벽히 처리한 거야?”
“완벽히 처리된 건 아닌데, 처리되는 과정이라 문제야. 그리고 쓰레기 더미가 아니라 네가 구하겠다고 난리 친 세 번째 초월자다.”
“뭐? 그게? 사람이 아니었어? 난 또! 네가 사람을 죽이러 간다는 줄 알았잖아!”
“한때는 사람이었겠지. 그 쓰레기 더미도 말이야…….”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던 도중에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까 아네모네를 달리아와 함께 도망치게 하지 않았던가?
“잠깐만. 야!”
나는 아네모네의 어깨를 잡고 뒤흔들었다.
“네가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해!”
아네모네 뒤를 살피며 혹시 달리아가 여기 남아있었던 건 아닌지 확인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달리아와 코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달리아랑 코카 둘만 보낸 거야?”
“데지데리움이 같이 갔으니 괜찮을 거야. 네가 시간을 끄는 동안 빠르게 도망쳤지.”
“너는 왜?”
“나야 뭐.”
음흉한 기색 하나 없는 아네모네 앞에서, 나 혼자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아네모네가 혹시 다른 마음을 품은 건 아닐까, 내가 그렇듯 이 녀석도 언제든 나를 배신할 준비가 돼 있는 게 아닐까.
“너, 나 의심하고 있지?”
“아니라고는 못 해.”
“그래, 네 마음도 이해는 한다.”
아네모네가 너그러운 척 내 어깨를 다독였다.
“나도 무슨 상황인지는 이해했다. 초월자 셋 중 하나가 죽어야 어떤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거지? 그 위기에 얽힌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서 이렇게 상황이 복잡해진 거고.”
“그래.”
“그러면 더 내가 여기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아네모네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내가 달리아랑 같이 있으면, 달리아가 위험해질 게 뻔하잖아! 누가 너랑 같은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해봐. 초월자 중 한 사람은 죽어야 하는데, 하나는 말도 안 통하는 거대 괴물이지. 하나는 강한 이 몸이시고, 마지막은 달리아. 여기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게 누구겠냐?”
답은 간단했다.
“우리 달리아겠지.”
“그래! 아직 앞니도 다 안 자란 달리아 아가씨가 제일 만만할 거라고. 내가 달리아랑 붙어 있으면 어떤 놈이 나를 먼저 상대하고 싶겠어? 나보다는 다섯 살짜리를 해치우는 게 빠르다고 생각하겠지.”
“…….”
“코카와 아젤이 함께 갔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데지데리움에게 내 마력도 충분히 전해줬거든. 빠르고 안전하게 공작성으로 가겠다고 약속했어.”
“…….”
퍽 합당한 논리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
“…….”
코스모가 내 손을 핥을 때까지도 나는 조용히 침묵하다가, 어렵게 입을 달싹였다.
“고마워.”
나는 아네모네를 어떻게든 처리해 버릴 생각뿐이었는데, 이렇게 도움을 받다니. 심지어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게 되다니.
이게 주인공의 힘인가.
“고맙긴 뭘! 정말 고마우면 돈으로 보상하는 것도 좋지. 아니, 돈이 좋겠다!”
별로 주인공다운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서. 뭘 도와주면 돼?”
아네모네가 팔을 걷어붙이며 의욕을 보였다.
그래. 폭풍의 마녀라면 심연의 악마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초월자야말로 심연의 악마와 가장 가까운 존재니까 말이다.
“심연의 악마를 찾아야 한대.”
아네모네가 도와준다면 수월하겠지? 나는 기대감을 숨기지 못했다.
“아까 본 두 사람은 심연의 악마가 있는 곳으로 향했을 거야. 우리도 뒤쫓아가자. 심연의 악마랑 담판을 짓든 시체포식자까지 구하든. 아무튼 뭐든 하는 거야.”
“음.”
아네모네가 걷어붙인 옷을 쓱쓱 내렸다.
“심연의 악마를 어디서 찾아.”
“…….”
“그건 못하지.”
“…….”
“다른 건 없어?”
아네모네가 짝다리를 짚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아네모네를 잡고 흔들었다.
“넌 초월자잖아! 심연의 악마랑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심연의 악마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건 너뿐이야!”
“글쎄……. 심연의 악마가 가끔 내 꿈에 나타나기는 하는데……. 이 정도는 단서가 되지 않겠지?”
곰곰이 생각하던 아네모네가 괜히 버럭 소리쳤다.
“이건 나도 정말 몰라! 심연의 악마가 내 꿈속에 나타날 때마다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보고하지는 않잖아!”
“그건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찾는 게 더 빨라! 심연의 악마가 어디에 있을지 알 만한 사람이 분명 어디 있을 거라고!”
“그런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나와 아네모네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우리 한 사람을 잊고 있지 않았나?
그때까지 우리를 보고 있었던 유스카가 방긋 웃었다.
“어때. 내 도움이 필요해?”
나와 아네모네의 고개가 다시 끼기긱 돌아갔다. 아네모네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며 속삭였다.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근데 방법이 없잖아.”
답이 나오지 않는 작전회의는 길지 않았다.
우리 둘은 한숨을 쉬면서 유스카에게 다가갔다.
***
공작성으로 서둘러 날아간 데지데리움은 쉽게 착륙하지 못했다. 공작성 위를 빙글빙글 돌며 상황을 살피기를 한참.
답답해하던 코카가 데지데리움에게 물었다.
통역기가 없는 상황에서 데지데리움은 그저 포효하는 한 마리 용에 지나지 않았다.
“음. 달리아 아가씨. 데지데리움이 뭐라고 하는지 알겠나요?”
코카의 질문에 달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데!”
“아아…….”
데지데리움은 공작성 근처를 몇 번 더 배회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피핀의 작업실 쪽으로 돌진했다.
“으아아아아!”
“아하하하하!”
쿠웅!
데지데리움은 피핀의 작업실 지붕을 덮치며 내려앉았다. 굉음과 함께 작업실이 무너졌는데, 다행히 데지데리움과 위의 사람들은 다치지 않았다.
“이거 피핀 경이 기겁하겠는걸요.”
코카가 달리아를 에스코트하며 중얼거렸다. 달리아는 코카의 손을 잡고 내려오면서, 고양이처럼 주변을 경계했다.
“다시는 이런 경험 하고 싶지 않아.”
아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빠르게 내려왔다.
“그런데……. 주변이 좀 소란스럽긴 하네요.”
코카가 달리아의 손을 잡고 작업실의 잔해를 발로 쓱쓱 밀었다.
“싸우는 소리가 나.”
달리아도 미심쩍은 기운을 감지했는지 퍽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봐요, 쥐새끼처럼 숨어들어온 아젤 님. 무슨 일인지 확인해 주겠어요?”
“나? 내가 왜? 난 숨어있을 거야.”
아젤이 작업실 뒤편으로 달아났다.
그때 무너진 작업실 입구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코카는 달리아를 제 뒤로 보내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잔인한 장면을 보여드리면 공작님이 화내실 텐데…….”
잠시 머뭇거린 코카가 달리아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가씨. 제가 비교육적인 행동을 하거든 두 눈을 꼭 감고 계세요. 아셨죠?”
“응! 근데 비교육적인 게 뭐야?”
“그건 말이죠…….”
우당탕!
괴한들이 다 무너져가는 작업실로 쳐들어왔다. 코카는 날렵하게 달려가 괴한을 하나씩 처리했다.
맨 앞의 놈을 발로 걷어차 전열을 흐트러뜨린 뒤, 뒤에서부터 숨통을 끊고 도미노처럼 쓰러뜨렸다. 거추장스러운 무기를 들고 있는 놈들은 코카의 민첩한 공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모두를 처리한 코카가 뒤를 돌아보며 머쓱하게 말했다.
“이런 게 비교육적인 장면이에요, 아가씨.”
“응!”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던 달리아가 배시시 웃었다.
“나 안 보고 있었어!”
“감사합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리를 좀 정리해야겠죠? 바깥 상황을 모르니 섣불리 아가씨와 나갈 수는 없을 것 같고…….”
코카가 빗자루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때에, 바깥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손님이 왜 이렇게 많은지…….”
코카가 나이프에 묻은 피를 옷으로 슥슥 닦으며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나 이번에 찾아온 사람은 손님이 아니었다.
“내 작업실!”
주인이었다.
“피피!”
달리아가 반갑게 소리치며 피핀을 향해 달려갔다. 원숭이처럼 피핀에게 달라붙은 달리아는 피로 범벅된 옷을 붙잡고 위로 올라갔다.
“에구, 냄새.”
달리아가 코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피핀은 달리아의 몸통을 받쳐주며 머쓱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정리되면 빨리 씻고 옷을 갈아입을게요. 그건 그렇고…….”
피핀이 억울하게 소리쳤다.
“내 작업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데지데리움이 쩌억 입을 벌리며 하품을 했다. 코카는 피핀에게 다가갔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내 작업실 꼴이 왜 이래?”
“아 그건 말이죠…….”
코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어쩌다 보니…….”
피핀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씩씩거리며 응원가를 들었다. 응원가를 보자마자 달리아가 깔깔깔 웃었는데, 코카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뒤로 물러섰다.
“같은 편끼리는 싸우고 싶지 않아요! 제가 나중에 다 정리하고, 사비로 수리해 드릴게요!”
“뭐? 아. 됐어. 작업실은 나중에 더 크게 지으면 돼. 그건 그렇고, 이상한 놈들 들어오지 않았어?”
“이상한 놈들이요?”
“들어왔어! 저기 봐! 코카가 다! 비교육적인 거 했어.”
달리아는 아까 코카가 처리한 놈들을 손가락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