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집 잘 지키고 있으라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냐 (4)
나는 코스모를 끌고 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게 했다.
테네리페가 준 선물 아닌 선물 중 하나가 바로 코스모의 변신. 코스모는 테네리페가 준 구슬을 삼킨 뒤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테네리페와 매우 흡사한 모습으로. 나이는 더 어려 보였지만, 사람으로 변한 코스모는 테네리페와 일가친척이라고 해도 믿음직할 정도로 닮았다.
“이 정도면 증거가 되겠지?”
나는 코코넛 앞에 사람의 모습을 한 코스모를 들이밀었다. 코스모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냉기가 풀풀 풍기는 지적인 소년으로 보였다. 이 얼굴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비어있는 내용물을 숨기는 힘이랄까.
“…….”
연신 무뚝뚝하게 반응하던 코코넛이 몸을 숙여 코스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코스모가 킁킁거리려고 하기에, 나는 어깨를 잡아 살포시 눌렀다. 코코넛이 코스모를 탐색할 동안,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코스모의 귓가에 속삭였다.
“잠시만 얌전히 있으면 나중에 마수 고기를 잔뜩 줄게.”
코스모는 그 말에 금방 혹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
한참 코스모를 요모조모 뜯어보던 코코넛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미안 도련님.”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 나오자 나는 흠칫했다.
데미안?
코스모의 얼굴을 나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됐다.
‘이게 데미안의 실제 모습과 닮았다는 건가?’
테네리페와 데미안은 확실히 가족관계가 맞았던 모양이다. 테네리페를 닮은 줄 알았던 코스모가 사실은 데미안을 닮았던 거라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데미안이 괴물이 된 사실을 모르는 건가. 코코넛은 코스모를 데미안으로 완전히 오인한 듯했다.
코스모의 손을 잡고 그 손등에 건조하게 입을 맞춘 코코넛이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성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아무튼 정답을 고르기는 한 듯하다.
“이제 러스트 성까지 방해 없이 갈 수 있겠어.”
“그러게.”
우리는 코코넛의 뒤를 따라 걸었다. 가는 길에도 기사단이나 정체불명의 마수가 있었지만 코코넛을 보면 스르륵 물러났다.
만일 코코넛을 쓰러뜨리거나 따돌려서 이 길을 찾았다면, 다른 적들을 하나하나 상대해야 했다는 뜻이었다.
생각만 해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네모네도 같은 것을 깨달았는지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동조했다.
“이번엔 네가 옳았어. 기절시키는 게 아니라 회유하는 게 좋은 선택이었네. 길에 이렇게나 적이 많을 줄이야.”
“여긴 은둔자의 땅이잖아. 악의 없이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마수도 한가득이었다고. 하나하나 공격하면서 지나가다간 끝도 없어.”
어느새 러스트 성이 코앞에 있었다.
코코넛은 우리를 돌아보지도 않고 묵묵히 걷기만 했는데, 완전히 무신경한 건 아니었다. 산만한 코스모가 벌레에게 정신이 팔리거나 내게 매달릴 때, 조금씩 걸음을 늦추며 기다려주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명령받은 것만 수행하는 꼭두각시와는 다른 듯 보인다.
“곧 성문입니다. 서둘러 문을 열겠습니다.”
코코넛의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나의 상념을 깨뜨렸다.
“있잖아, 도련님.”
아네모네가 나를 쿡쿡 찌르며 묘한 눈빛을 보냈다.
“왜? 또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냐? 이제 와서 도망치고 싶어진 건 아니지?”
“그건 아니고. 저 코코넛이라는 애. 인형이라고 했는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감정?”
아네모네의 말을 듣고 코코넛을 돌아봤다. 아까와 표정이 크게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입은 다시 꾹 다물고 있었고.
“어떤 점에서?”
“들떠 보이잖아!”
“뭐?”
아네모네의 말을 듣고 한 번 더 쳐다봤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저 얼굴에 표정이 어디 있다는 거야?”
“아까랑은 확실히 달라.”
“착각이겠지.”
“아냐. 섬세하고 사려 깊은 이 아네모네 님의 눈에는 보여. 코코넛 저 녀석, 집에 돌아오니 좋은가 봐.”
“…….”
나는 코코넛을 조금 더 살펴보다가, 아네모네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바보야. 처음 본 사람을 주먹으로 기절시키려고 하는 놈을 누가 섬세하고 사려 깊다고 하냐.”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었잖아.”
“인형인 줄 몰랐으면서.”
쓸데없는 소리를 나누며 우리는 러스트 성으로 진입했다.
“으윽.”
“으음…….”
나와 아네모네는 눈앞의 풍경에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고장 난 인형이 한가득이야.”
아네모네가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나의 감상도 같았다. 징그럽게 파손된 인형이 잔뜩이었다. 그저 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또 몰라. 인간을 닮았으나 중요한 부품이 하나둘씩 없거나 깨진 인형들은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주인님을 기다렸습니다.”
코코넛이 말했다. 내가 듣기에는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말투였는데, 아네모네는 다르게 느꼈나 보다. 내 옆구리를 팔로 치면서 거 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성안으로 들어온 건 좋다고 쳐. 여기서 뭘 찾아야 하는데? 솔직히 너도 모르지? 그 파란 머리 아저씨가 무작정 여기로 보낸 거니까.”
아네모네가 정곡을 찔렀다.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을 찾아봤는데 마땅한 게 있을 리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웃었다.
“잘 뒤지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나오긴 뭐가 나와! 저 규모를 봐! 너네 집이랑 크기도 비슷한 것 같은데!”
“뭐……. 일주일 안에는 찾겠지.”
“일주일? 그 안에 굶어 죽겠다!”
가만히 있던 코스모가 덧붙였다.
“굶는 거 싫어. 먹는 거 좋아.”
러스트 성에 들어온 건 좋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인데…….
‘게임에서도 체험해 본 적 없는 곳이니 신중하게 판단해야 해.’
나는 이제는 가물가물하기까지 한 과거의 삶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
새로운 지역을 탐사할 때의 기본은 퀘스트를 받는 것.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다 보면 어떻게든 내용이 진행되게 되어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는 게 우선이야.”
결론은 이랬다.
“말이 통하는 사람. 말이 통하는 거라면…….”
아네모네는 코코넛을 쳐다보더니,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야. 너 말 통해?”
“…….”
코코넛은 대답하지 않았다.
“얜 아닌가 봐.”
“그런 식으로…….”
아네모네의 방식이 뭔가 잘못된 것 같기는 했는데,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코스모가 물어보면 어떨까?”
지금 코코넛은 코스모를 데미안으로 오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인의 말은 잘 들을지 모르지.
“코스모. 코코넛한테 무슨 말이라도 걸어 봐.”
나는 코스모를 무기 삼아보기로 했다.
“무슨 말?”
코스모가 순진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자!”
아네모네가 갑자기 탐욕스러운 안건을 꺼내 들었다. 게임 속에서 검소한 모습을 보여준 여주인공이 얘 맞나? 동명이인이 있는 거지? 이 정도면 동명이인이 있다고 해야 한다.
“웅! 물어보고 올게!”
그 와중에 순진한 코스모는 물어보란다고 정말 물어보러 갔다.
“있잖아. 보물은 어디에 있어?”
코스모가 코코넛을 불러세워 물었다. 코코넛은 키가 작은 코스모를 향해 몸을 굽히며, 내가 느끼기에도 친절한 어조로 대답했다.
“보물의 위치는 주인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실 테지요. 저는 함부로 여쭤보지 않겠습니다. 저의 보물은 데미안 주인님, 테네리페 도련님 두 분입니다.”
대답을 들은 코스모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보물이 어딨는지 모르겠어…….”
“우리도 들었어.”
“웅.”
“잘했어. 이리 와. 다음 질문을 생각해 보자.”
“웅!”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았다. 코코넛은 코스모가 질문하면 제대로 대답해 준다는 사실을.
“심연의 악마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면 될 것 같아.”
내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아네모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다고 답해줄까? 방금 대답하는 말 들었지? 주인님이 다 알고 있다면서 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그것도 그래. 그러니 힌트가 될 만한 말을 해줄 때까지 말을 걸어보면 되지 않을까?”
“그 질문을 하는 데 일주일이 걸리겠다.”
아네모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유스카가 한 말에 힌트가 있을지도 몰라. 유스카가 우리를 보내기 전에 뭐라고 말했더라?”
비록 새로운 지역이라 할지라도, 게임 속 지역과 퀘스트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기 마련이다. 그런 원칙이 지금 상황에도 적용된다고 하면 유스카는 분명 어떤 힌트를 남겼을 게 분명했다.
우리를 돌로레스에 태워 보냈고, 심연의 악마와 관련된 정보는 러스트의 성에 있다고 했지.
그리고…….
“바나나에게 안부를 전하라고 했어.”
바나나? 너무 뚱딴지같은 소리라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문득 머리를 띵하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안부를 전할 수 있다는 건 말이 통한다는 뜻이다. 곧 우리에게 퀘스트를 줄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되지.
“코스모!”
나는 코스모를 코코넛 쪽으로 다시 보냈다.
“바나나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봐.”
“바나나?”
코스모는 순순히 코코넛에게 다가가 물었다.
“바나나는 어디에 있어?”
“바나나는…….”
코코넛이 대답하려고 하는 찰나, 낯선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코코넛! 너 또 헛짓거리하고 왔지!”
우리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저 멀리서 다른 소녀가 달려왔다. 코코넛과 같은 의복을 입은 걸로 보아 러스트 가문의 메이드인 것 같았다. 한 손에는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있는 걸 보니, 청소를 하다 온 모양이었다.
“바나나는 저기 오고 있네요.”
역시나. 바나나가 정답이었구나! 언급하자마자 바로 나타나다니. 바나나라는 인물이야말로 퀘스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틀림없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네가 기다리는 데미안 주인님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으신다고. 안 그래도 수리할 게 많은데 정말 고달프게…….”
이쪽으로 달려온 바나나는 우리를 보더니 흠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코코넛……? 이게 뭐야?”
“데미안 주인님을 모셔 왔습니다.”
바나나의 시선이 끼기기긱, 고장 난 기계처럼 돌아가 코스모를 향했다.
“안녕!”
코스모가 해맑게 인사하자 바나나가 비명을 꽥 내질렀다.
“데미안 주인님!”
“음. 난 데미안이 아니야.”
코스모가 멋쩍은 듯 말했다.
“나는 코스모야!”
“아……. 하긴, 주인님은 더 이상…….”
잠시 고민하던 바나나의 표정이 대번 험악해졌다.
“그렇다면 너는 사기꾼이라는 말이네?”
바나나가 코코넛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코코넛! 아무리 그래도 사기꾼을 집에 들이다니! 너라도 용서하지 않겠어! 도련님이 집을 비우신 사이에…….”
그녀는 쥐고 있던 빗자루를 검처럼 잡았다.
“청소를 해두지 않으면 안 돼.”
“잠시만!”
나는 코스모와 바나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사기꾼이 아니야! 안부를! 유스카가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어.”
“…….”
유스카라는 이름을 듣자 바나나의 팔이 조금 내려갔다.
“유스카 님이……?”
“나는 시에라 글러토니. 테네리페는 지금 데미안을 구하러 갔어. 어떤 미치광이가 데미안을 납치했거든. 테네리페가 도와달라고 해서 여기로 온 거야.”
“도련님께서 도와달라 했다고? 나는, 나는 그런 얘기 들은 적 없어!”
“어허. 인형 아가씨. 말이 짧다?”
아네모네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것도 내 앞을 가로막으며, 내 편을 들어주겠다는 듯이. 그런데…….
“이쪽은 무려 공작님이시다. 우리 공작님께서는 친히 그 너네 주인을 도와주기 위해 발걸음을 하신 건데, 환영 인사가 이래도 되나? 참나. 일단 음식 좀 내오고. 주인장 집무실이 어디야? 거기부터 좀 뒤져봐야겠는데.”
어쩐지 우리가 악당 같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