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77
77화. 할머니는 배고픈 아이를 지나칠 수 없어 (5)
“느리네요.”
“많이 다쳤으니까. 살아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야.”
이미 치명상을 입은 마수는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다. 놈은 다 잘린 팔로 몸을 지탱하며 애써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종종 돌려 우리가 따라오는지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숲의 구석을 파고 들어갔다. 호숫가에서 멀리 떨어지지는 않지만, 오솔길 따위 없이 험한 풀숲을 그대로 가로질러 가야 했다. 덩치가 큰 코스모가 풀밭에 온몸을 문지르며 마수를 뒤따랐기 때문에, 다행히 우리가 길을 오르는 건 약간 편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피핀이 의아하다는 듯 내게 말을 붙였다.
“저 녀석, 점점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것 같은데요.”
나는 괜히 손등으로 코를 문지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게나 말이야.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
“사연이 있는 척하고 사실 꿍꿍이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럼 죽이면 돼. 조금만 더 가보고 아무것도 없거나 낌새가 이상하면 네가 바로 처리하던지.”
얼핏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 내 말에 순간 피핀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아마 아까 본 마수의 모습에서 동정심 같은 거라도 느낀 거겠지.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놈이 진정 얄팍한 꿍꿍이 따위를 숨겨둔 것이라면 그건 명백한 적이라는 의미. 살려둘 필요가 없었다.
나도, 동정심 따위 느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다행히 놈의 목적지를 아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거, 인간 아냐?”
엔비가 마수가 향하는 방향 언저리를 가리켰다. 그 소리에 자극을 받기라도 한 듯, 마수가 움직임을 서둘렀다.
엔비의 말대로 저편에 옷더미가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신발은 양쪽이 짝짝이로 널려 있었고,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끄, 끄어…….”
마수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옷더미에 달려갔다. 나는 피핀을 멈춰 세우고 내가 먼저 다가갔다. 인간이 누워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피핀에게 안겨 있는 달리아가 못 볼 꼴을 보여줄 순 없지. 그렇게 자세히 살펴보니.
‘이건……’
역시나. 달리아가 볼만한 광경은 아니었다.
완전히 백골이 된 시체가 옷에 싸여 있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파바 선생님의 손녀를 찾은 것 같네.”
내 말에 엔비가 어깨를 으쓱이며 시체 주변을 배회했다. 마수가 키에에- 키에에- 묘한 소리를 내며 나를 쳐다봤다.
백골을 쭉 둘러본 엔비가 “죽은 지 한참은 됐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혹시 죽은 자의 사령이 남아 있다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검은 눈.”
주변을 둘러봤지만 인간의 사령은 보이지 않았다. 숲에서 볼 수 있는 사령은 언제나 비슷하다. 덜떨어진 산짐승 사령들뿐.
나는 마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수는 백골 위에 너덜너덜해진 몸을 덮었다. 이젠 확실했다. 마수는 이 사체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이곳까지 데려온 거였다.
“엔비 님. 아까 말했죠. 이 마수가 당신을 공격할 의사가 없었다고.”
“그래. 나한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 그저 긁고 지나가기만 했어.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이런 전투는 성에 차지 않아.”
“우리가 이 사람을 찾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가?”
쿠에에, 키에에……. 마수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울었다. 눈알은 없이 오직 입만 있는 마수. 다리도 몇 개 잘려서 온전하지 않은 몸으로, 인간에게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 괴상한 놈이었다.
저렇게 우는 것도 어쩌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
분명 뭔가 말하고 싶은 거야.
“코스모. 저 마수가 하는 말 알아들을 수 있어?”
코스모가 귀를 세우며 마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수가 턱을 움직이며 ‘키에에’ 하고 힘 빠지는 울음소리를 냈다.
[전혀 모르겠는데.]“너랑 비슷한 거 아냐?”
[주인. 날 뭘로 생각하는 거야?]“저거랑 비슷한……. 비슷한 거…….”
순간 말이 사라진 코스모가 꼬리로 내 정강이를 퍽 쳤다. 나는 가까스로 버티며 코스모를 끌고 마수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모르겠어도 알아들으려고 노력해봐.”
[노력해서 될 거 같진 않은데!]“노력을 해 보고 말해! 네가 아직 노력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몰라서 그래.”
코스모의 눈알이 불안한 듯 흔들리다가, 마수에게로 향했다. 쉭쉭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마수를 향해 코스모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놈이 입을 쩌억 벌리자 끈적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마수는 순순히 머리를 내놓았다. 코스모가 “왑!” 소리를 내며 마수의 머리를 단숨에 삼켰다.
“야! 이해하라고 했지, 언제 먹으라고 했냐!”
코스모의 몸통을 붙잡아 마수에게서 떼어내려고 노력했다. 코스모의 입가에서 침이 질질 흘렀다. 마수는 반항할 힘도 없는지 코스모에게 물린 채 이리저리 힘없이 흔들렸다.
“코스모! 뱉어! 안 돼! 뱉어! 코스모!”
[뇸, 냠, 뇸…….]한참을 쩝쩝거리던 코스모가 마수를 퉷 뱉어냈다. 삼키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코스모의 뿔을 붙잡아 마구 흔들었다.
“널 믿은 내가 멍청이다.”
침 범벅이 된 마수가 백골 위로 엎어졌다. 가뜩이나 치명상을 입은 채로 몸을 끌고 이동해 왔던 마수는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때 코스모가 자랑스럽다는 듯 꼬리와 머리를 흔들며 소리쳤다.
[할머니!]“뭐?”
[할머니!]“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정신없이 흔들어대는 코스모의 뿔을 붙잡아 고정시켰다. 코스모가 헥헥거리며 칭찬을 바라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보랏빛 혀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할머니라고 하고 있어! 저 마수 말이야.]“마수가 하는 말을 알아들은 거야?”
[먹으니까 좀 알겠던데.]“아……. 그러셔…….”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마수가 움찔했다. 나와 코스모의 대화를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른 말은?”
코스모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씨익 웃었다.
[보고 싶어.]“…….”
“아…….”
[저 마수는 계속 저렇게 말하고 있어.]코스모는 뭔가 재밌다는 듯 킥킥 웃었다. 하지만 내 표정은 어두워질 뿐이었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니. 설마 인간이 마수가 되기라도 했다는 건가?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수를 다시 쳐다봤지만, 분명 인간적인 외모는 아니었다. 그래, 인간의 요소는 있었지만, 인간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사체가 따로 있잖아. 마수가 되었다면 좀비처럼 움직였겠지. 다른 육체가 새로 뿅 생기며 마수가 된다는 게 말이나 돼? 인간이 마수가 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지만.
이 게임에서 그런 설정은 없었단 말이야.
‘진짜 설마.’
우리가 찾고 있던 손녀 ‘쿠키’가 사실, 인간이 아니라 마수였다고?
그러고 보니 그 노인네, 쿠키를 집에 데려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무사한지만 살펴봐달라고 했지. 한동안 보지 못했다고 했을 뿐, 죽어서 백골이 될 정도로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는 말도 안 했다.
혹시나 해서 상태창을 열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때 달리아가 칭얼거리며 보채는 소리가 들렸다.
“쿠키.”
피핀이 달리아의 눈을 가린 채 내게 다가왔다.
“나으리. 아가씨가 많이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요. 아까부터 엄청 보채시는데…….”
“조금만 더 안고 있어.”
나는 피핀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어때? 저 마수의 정체, 좀 알 것 같아?”
피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보니 알겠네요. 기생 마수 실라쿠아예요. 직접 사냥을 하기보다 버려진 사체를 주워 먹습니다. 사체에 남은 마력을 뺏어서 비슷한 생김새를 흉내 내기도 하는데…….”
“기생 마수?”
“오래 못 가서 금방 쓰러집니다. 사체에 남아 있는 마력은 별 볼 일 없으니까요.”
“저놈은 예외야. 인간이 죽은 지 한참 지났는데도 튼튼하게 뛰어다녔던 걸 보면.”
“누가 돌봐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력이 보충되면 마수는 얼마든지 활력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엎어져 있는 마수에게 다가갔다. 마수가 위협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야, 시에라! 위험해!”
“나으리!”
피핀과 엔비가 답지 않게 한목소리를 냈다. 마수의 보랏빛 피가 꿀렁거리며 내 발치에도 닿았다. 나는 코스모를 앞으로 밀어 가며 마수에게 아주 가까이, 마수의 다 꺼져가는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다가갔다.
“너, 우리한테 이 시체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냐? 왜?”
“…….”
마수가 쉭쉭 소리를 내자, 코스모가 가까이 다가가며 입을 벌렸다. 이 녀석은 소리를 입천장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건가.
아무튼 침범벅 주둥이를 벌리는 게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다.
[주인, 주인.]코스모가 뭉툭한 주둥이 끝으로 내 손을 툭툭 쳤다.
[이 녀석 할머니를 찾고 있어. 전해주고 싶대]“뭐를?”
[이거 말이야. 죽은 인간. 찾았다고 계속 그러고 있어. 자기가 찾았다고.]“…….”
[그런데 할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찾았다고 말해줄 수 없었대. 계속 기다렸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데. 근데 할머니가 뭐야? 먹어도 돼?]곧이어 마수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울컥 보라색 피가 더 쏟아졌다. 백골은 이제 마수의 피로 완전히 젖어 있었다.
[그리고 괴로워하는 거 같아.]“그 노인한테 손녀를 찾아주고 싶었던 건가.”
그때 피핀에게 안겨 있던 달리아가, 여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쿠키. 오라버니, 우리 쿠키를 찾은 거죠.”
순간 확신에 찬 달리아의 목소리와 함께, 상태창이 번뜩였다.
[색칠할 수 있는 마력이 충분합니다] [엑스트라 이벤트가 발생합니다]마수를 중심으로 정체불명의 먹물 방울이 터져나갔다. 황태자의 기억을 엿봤을 때처럼 주변의 모습이 변했다.
이어 나타난 건 파바 데어리, 우리에게 손녀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던 그 노인이었다. 노인과 마수는 호숫가에 있었다. 호수의 잔잔한 수면이 하얗게 반짝거렸다.
‘자, 먹으렴.’
노인이 바구니에서 간식거리를 꺼내 들었다. 뒤틀린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수가 노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노인은 겁먹은 기색 하나 없이, 간식을 손으로 나누어 마수의 입에 직접 넣어주었다. 마수는 천천히 노인의 정성을 맛봤다. 평생 과자를 구워온 노인의 솜씨는 마수의 뒤틀린 본능을 잠재울 만큼 달았다.
‘손녀의 소식을 듣지 못한 지도 1년이 넘었어. 혹시 네가 우리 손녀를 만나게 되면, 나한테 꼭 말해주기다?’
‘키에…… 키에에…….’
‘그래. 네게도 이름이 있어야겠지. 어디 보자. 괴물로 태어났어도, 삶은 달았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너는 쿠키라고 하자. 아주 오래전에 여행을 떠난 우리 손녀를 만나거든, 꼭 네 소개를 해주렴. 할머니의 또 다른 손녀라고.’
장면이 바뀌었다. 마수의 모습은 또 달라져 있었다. 발견한 사체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장소는 역시 호숫가. 자리는 옮겼지만 여전히 호수의 반짝임이 선명히 보이는 곳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항상 호숫가에서 이뤄졌다. 그러니 노인의 거동이 불편해진 이후로는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거겠지.
‘갈수록 못생겨지는구나, 쿠키.’
‘키엑.’
‘다음엔 어떤 모습일까. 우리 손녀를 닮아야 예쁠 텐데. 우리 손녀는 나를 닮아서 키가 작고,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이란다. 흔하지 않은 색이지. 아주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야. 우리 손녀가 또 어떻게 생겼냐면 말이지…….’
마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노인의 손에서 과자를 받아먹었다. 그 모습은 마치, 노인의 말을 귀담아듣는 듯 신중했다.
이윽고 퀭한 마수의 얼굴을 중심으로 먹물이 뭉치며 바스러졌다.
“방금, 이게 뭐지? 내가 뭘 본 거야?”
엔비가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피핀은 그나마 침착하게 내 옆에 서서 마수를 내려다봤다.
“이 녀석의 기억을 엿본 거겠죠? 이제 좀 확실해졌네요. 그 할머니가 종종 챙겨줬던 덕분에, 이 마수가 지금까지 오래, 강하게 버텼던 것 같습니다.”
“원래 모습은 이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모습이 된 건 최근 같습니다. 죽은 손녀의 마력을 빼앗긴 했지만, 이미 백골 상태여서 온전한 의태는 불가능했던 것 같네요.”
“퍽 감동적인 사연이긴 하다만. 마수를 더 이상 살려둘 순 없어. 이미 죽어가고 있기도 하고.”
“예……. 하지만 쿠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만일 노인이 찾던 손녀가 이 마수라면…….”
“지금 이 녀석의 꼴을 봐. 이대로 가져갔다간, 노인네가 손녀를 알아보기는커녕 놀라서 심장마비로 죽을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핀. 달리아 눈 가려.“
내가 할 일은 어차피, 정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