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has become the older brother of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76
76화. 할머니는 배고픈 아이를 지나칠 수 없어 (4)
내 마음을 읽었는지 라기아가 진동하며 웃었다.
[하하하핫! 시에라, 너답지 않은 살기가 느껴져. 이거 재밌는데? 상냥한 시에라에게 이런 고슴도치 같은 면모가 있다니 말이야. 참, 나는 고슴도치를 본 적이 없어. 눈이 없으니까! 하하하핫!]라기아가 한심한 농담을 내뱉었다. 코스모를 완전히 밀어내고 엔비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엔비는 다시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런 놈의 목을 틀어잡고, 나는 라기아를 흘겼다.
“엔비가 소중하다고 난리를 칠 때는 언제고. 날 놀리는 거야?”
[나는 인어 왕의 증표. 왕이 되기 전에 죽은 인어는 섬기지 않아. 엔비가 죽는다면 나도 새로운 왕의 후보를 찾아야겠지. 하하핫. 그게 야생이니까.]라기아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는…….
“잠깐. 상처가 이상해.”
엔비의 목을 누른 채 몸을 뒤집었다. 엔비가 나무에 부딪혀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엔비의 몸 일부가 마치 돌처럼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이상해진 부분을 손으로 만져보자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건조한 흙먼지 같았다.
“아냐, 이건 좀 더 가벼운…….”
손에서 부서지는 엔비의 살점에서 고소한 향이 풍겼다.
“과자 냄새.”
쿵, 쿵, 쿵! 굉음이 들렸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설탕 군체가 돌덩이처럼 굳어 떨어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군체는 바닥에 닿자마자 유리처럼 깨지며 바스라졌다. 엔비의 상처와 같은 모습이었다. 숲속에 어울리지 않는 과자 향기가 확 끼쳤다.
동료를 크게 잃은 군체는 갈피를 잃고 우왕좌왕했다. 마수의 다리를 뜯기는커녕 오히려 당했다. 그것도 처참하게.
“저 마수의 능력인가?”
[시에라!]불쑥 코스모 내 앞을 막아서며 몸을 부풀렸다. 문제의 마수가 내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놈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 이걸 마주쳤다고 할 수 있을까? 괴물의 눈자위는 텅 비어 퀭했다.
너덜너덜한 턱근육이 움직였다. 뭔가 말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마수 주제에, 무언가 말하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먹는다!]코스모가 마수에게 달려들었다. 마수는 거미 같은 다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놈은 엔비의 다리를 쥐고 달아나는 듯하더니, 엔비를 휙 내던졌다.
“뭐 하는 짓이야!”
코스모가 자세를 낮추며 마수를 경계했다. 마수는 멀찍이 떨어진 채 우리에게서 시선 아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코스모를 방패 삼아 뒷걸음질 치며 엔비 쪽으로 다가갔다. 엔비가 몸을 부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에게서 과자 부스러기와 굳은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한눈에 봐도 상처가 다 회복된 모습이었다.
[참, 엔비는 조금의 수분만 있어도 몸을 금방 회복할 수 있지. 시에라, 야생이라는 건 너에게도 통하는 말이야.]라기아가 키들키들 웃었다.
“재수 없는 날붙이 같으니…….”
마수가 슬쩍 움직일 때마다 우리 모두 긴장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엔비가 다시 놈에게 달려들려 했다. 나는 재빨리 발을 놀려 엔비의 팔목을 붙잡았다.
“함부로 나대지 마세요. 괜히 저놈의 신경을 거스르기라도 했다간 나까지 위험해지니까.”
“재미있는 능력을 가진 상대야. 하지만 싸워주지 않아. 싸우고 싶은데!”
“무슨 개소리입니까? 지금까지 싸워서 가루가 되도록 처맞은 것 같은데.”
코스모가 내게 엉덩이를 들이밀며 꼬리를 흔들었다.
[주인, 주인. 물까? 내가 달려가서 물까?]코스모가 살랑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피핀이 없는 지금, 코스모는 나의 주전력이었다. 군체는 놈에게 다가가기 전에 가루가 되어버린다. 이 상황에서 코스모까지 전투 불능이 된다면 달아날 길도 없어진다.
“코스모, 너는 가능한 몸을 사려.”
나는 코스모 위에 올라탄 다음 엔비를 내 뒤에 앉혔다.
“독으로 처리하는 게 낫겠어. 안 써본 스킬이긴 하지만…….”
무식하게 사령을 파견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지휘하는 게 나을 듯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 써볼 만한 스킬로 아직 어둠의 숨결이 남아 있었다.
“설탕아. 군체를 좀 더 보내줘.”
코스모의 턱을 긁었다. 코스모가 입을 쩌억 벌렸다. 코스모의 목구멍이 죽음의 문을 대신하며 그 안에서 군체를 쏟아냈다.
“군체, 주변의 모든 걸 삼켜. 그리고 저 마수를 향해 입 냄새 공격이다.”
군체가 뿌연 연기처럼 사방으로 퍼지며 숲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마수가 움칠 떨더니 숲 안쪽으로 도망쳤다.
“따라가자.”
코스모가 휙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거미처럼 다리를 휘적여 도망치는 마수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노려봤다.
“결정했어. 저놈, 죽여서 내 사령으로 삼아야겠어.”
***
마수는 군체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우리를 숲 안쪽으로 몰았다. 놈의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추기는 아까웠다.
“어둠의 숨결!”
설탕 군체가 녹색의 독액을 뿜어내며 마수를 쫓았다. 마수는 이리저리 도망치며 군체의 공격을 피했다. 지독하게 날쌘 놈이었다. 놈이 손바닥으로 움켜쥔 개미 사령은 금방 과자가루로 변했다.
“시에라, 저 녀석은 우리를 공격할 의사가 없어.”
엔비가 한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 말 그대로지. 엔비는 멍청하지만 살기를 읽어내는 능력은 출중하거든. 나도 마찬가지고. 저 괴물에서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아.”
코스모를 타고 달리는 와중에 라기아로 한 차례 더 허공을 긁었다. 죽음의 문을 열고 정원사 사령이 뛰쳐나왔다. 정원사 사령 두 개체가 가위를 들고 마수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성과가 있었다. 사령의 가위가 마수의 머리털을 한 움큼 잘라냈다. 마수가 도망치면 정원사 하나가 쫓아가며 가위를 휘둘렀고, 다른 정원사가 숲의 나무를 쓰러뜨렸다.
쿵! 나무가 쓰러지며 마수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나는 코스모의 머리를 손으로 짚으며 앞으로 뛰어내렸다. 정원사 사령이 마수의 다리 하나를 잘라냈다.
“라기아! 창의 모습으로 바뀌어줘!”
[원하시는 대로!]라기아의 모습이 순간 변했다.
“군체! 궤도를 잡아줘!”
나는 창을 집어던졌다. 창은 군체의 도움을 받아 마수의 몸통에 꽂혔다.
끼에에엑! 마수가 기괴한 비명소리를 내며 바닥을 손으로 긁었다. 정원사 둘이 가위로 놈의 다리를 자를 듯 위협하며 움직임을 봉쇄했다.
마수에게 다가가 꽂혀 있던 라기아를 뽑아냈다. 보라색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피의 냄새는 잼처럼 달콤했다.
“마수라면 핵이 있을 테지.”
마수의 핵이 어디에 있는지는 찔러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그 말은 즉, 계속 찌르다 보면 언젠가는 나올 거란 뜻이었다.
팔을 높게 들어 다시 놈을 찌르려던 순간, 엔비가 달려와 내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뭡니까. 마무리는 네가 하고 싶어요?”
“그런 게 아니야. 싸우는 건……. 싸우기 싫어하는 상대를 두고 억지로 싸우는 건 명예롭지 않아.”
엔비가 멍청한 소리를 지껄였다. 나는 엔비를 팔로 툭 쳐서 밀었다.
“아까까지 이 녀석한테 당한 건 기억도 안 납니까?”
“이 녀석은……. 우리랑 싸우려는 게 아니야. 우리를 이끌고 있어. 어딘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라고.”
마수가 끼엑끼엑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우리를 올려다봤다. 턱관절이 움직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나오는 소리는 기괴한 울음뿐이다.
“이번 일로 뭍에서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이 괴물은 나를 죽일 수도 있었어. 하지만 약을 올려 가면서 나를 유인하기만 했지.”
“지능이 있다는 뜻이네요.”
나는 다시 라기아를 치켜들었다.
“역시 마음에 들어요. 죽여서 내 사령으로 쓸 겁니다.”
“시에라! 너는……!”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니까, 잔인한 처사는 아닐 겁니다. 이렇게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게 더 고통스럽겠죠.”
당황한 표정의 엔비가 내 팔을 붙잡고 말렸다. 놈을 밀치고 싶었지만 완력은 저쪽이 한 수 위였다. 코스모가 보다못해 엔비의 다리를 살짝 물어 잡아당겼다.
[우리 주인 방해하지 마! 내가 마수 먹어야 한단 말이야.]“코스모. 씹어도 좋아.”
[오예!]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코스모의 주둥이가 엔비를 덮쳤다.
[어라! 다시 한번! 어라!]코스모가 수차례 엔비를 씹었다. 잘근잘근 물기도 했다. 그러나 엔비의 몸에는 제대로 된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놀란 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엔비를 쳐다봤다. 이 쓰잘데기 없이 튼튼한 몸뚱이의 범고래가 자랑스럽게 웃었다.
“내 몸은 쉽게 다치지 않는다. 그리고 너, 아까 날 죽이려 했었지? 안타깝지만 아마 라기아로 내 목을 베었어도 난 죽지 않았을 거야.”
라기아가 진동하며 웃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가 한 번에 꺼졌다. 나는 한숨을 쉬며 창을 든 팔을 내려놓았다. 라기아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곧장 단검의 모습으로 변했다. 내가 공격을 포기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 마수를 데려다가 살뜰히 보살펴서 야생으로 방생할 겁니까?”
감동적인 동물 다큐멘터리라도 찍겠다는 거야?
마수가 머리를 돌리며 숲 어딘가를 향해 고갯짓을 반복했다. 길쭉한 손도 그 방향을 향해 바닥을 긁었다.
“확실히. 도망치려는 것보다, 저쪽으로 가보라고 하는 것 같긴 하네요.”
나는 마수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엔비가 내게 바짝 붙어 호들갑을 떨었다.
“무엇보다도 이 녀석, 이 몸에 상처를 입혔다. 보통 녀석이 아니야. 분명 무슨 대단한 목적이라도 품고 있는 거다. 대장이 있을지도 몰라. 대단한 싸움 상대 말이야. 놈이 가자는 대로 가보자.”
“그 싸움 상대한테 당신을 던져놓고, 당신이 죽으라고 기도해도 될까요?”
“인어에게 죽음은 명예로운 것이다.”
“말 나온 김에 명예롭게 죽어줬으면…….”
어차피 내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까지 눈치챘다. 이제 애써 속마음을 숨기는 것도 귀찮아졌다.
한숨을 쉬고 머리를 흐트러뜨리는데, 터벅터벅 발소리가 들렸다. 경계하며 라기아를 세게 쥐었다. 엔비가 고개를 저었다.
“긴장할 것 없어. 네 부하다.”
“나으리!”
엔비의 말대로였다. 숲길을 헤치고 나타난 건 달리아를 안고 있는 피핀이었다. 나는 서둘러 코스모의 몸통으로 마수의 처참한 모습을 가렸다. 다행히 달리아는 마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철없이 내 쪽으로 팔을 뻗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젓자, 피핀이 달리아의 시야를 가렸다.
“호숫가로 돌아온 건가.”
마수가 우리를 유인한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왔을 줄은 몰랐다.
“한번 따라가 보자. 시에라. 나는 궁금하다. 이렇게 강한 자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싶어하는 건지.”
엔비의 설득에 나는 못 이기는 척 손을 내저었다. 정원사 사령이 마수를 풀어줬다. 마수는 금방 도망치지 않고 우리를 곁눈질하며 몸통을 질질 끌었다.
‘싸우려는 게 아니라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던 거라고…….’
처절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대체 지능이 있는 녀석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