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29
하지만 래원의 일상은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을 위해 움직였다.
오늘은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원준혁 배우가 래원과 차여름, 박은정 작가를 초대하여 식사 자리를 마련한 것.
보통은 프러덕션에서 배우에게 접대하기 마련인데,
원준혁은 그런 관례와 상관없이 마이웨이로 움직이는 배우였고,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 작가들과 다시 의기투합한다는 것에 상당히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원준혁이 예약해두었다며 주소를 띄운 곳은,
서울 청담동의 미슐랭 3스타에 빛나는 프렌치 코스 다이닝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대박 내자고요.”
래원과 차여름, 박은정이 먼저 도착하여 서로 신정에 어울리는 덕담을 나누었다.
원준혁이 예약해둔 프라이빗 룸에서 그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이때, 돌연.
드르르륵——
룸의 문이 열리더니 한 사내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의 1/3을 덮은 덥수룩한 머리에,
선글라스 마냥 어두운 색이 진하게 들어간 두꺼운 렌즈의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
래원은 전에도 본 적이 있었기에 그의 정체가 원준혁임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두 작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아, 작가님들은 저 사석에서 처음 보시는 구나.”
사내가 덥수룩한 가발과 거적때기 같은 겉옷, 그리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벗었다.
어느새 그는 멀쩡한 마스크의 원준혁이 되었고,
이에 두 작가들의 눈이 똥그랗게 커졌다.
“어머···! 설마 했는데···.”
“와우. 완전 감쪽같은데요? 분명 여기 들어올 사람은 준혁 씨밖에 없는데, 초면인 분이길래 누군가 했잖아요.”
원준혁은 두 사람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모습이 재밌다는 듯 해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고 다니면 아무도 못 알아봐서 편하거든요.”
원준혁이 자리에 앉자,
애피타이저로 토마토를 곁들인 치즈가 나왔다.
코스 요리의 시작이었다.
돌연,
원준혁이 플레이팅 된 꽃 한 송이를 집어 들며 연기 톤으로 말했다.
“연애를 꽃 피우는 남자, 고필우였습니다.”
테이블에는 함박웃음이 번졌다.
차여름 작가도 전에 원준혁과 로 호흡을 같이 맞춘 바 있던 터라 분위기는 편하게 흘러갔다.
“푸하하. 준혁 씨 진짜 겁나 잘 어울려요.”
“생각했던 거보다 안 느끼한데요? 엄청 오글거릴 줄 알았는데, 완전 찰떡이네!”
“완벽한 캐스팅이에요, 정말로.”
박은정도 적당히 말을 섞으며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
“저 캐스팅 된 후로 요즘 틈만 나면 이 대사 연습하잖아요. 연애 유튜버도 엄청 찾아보고요.”
“준혁이 형, 연애에 일가견 좀 있으세요?”
“글쎄요. 제가 연예인이긴 한데, 연애에는 잼병이라···.”
“뭐예요, 준혁 씨 지금 그거 웃으라고 치는 말장난이에요?”
“원래 그랬는데 아무도 안 웃으시는 거 보니 실패네요. 하아, 개그 센스도 연애도 고필우 연기하면서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래원은 식전 빵에 버터와 블루베리 콤포드를 발라먹으며, 원준혁의 넋두리를 들어주었다.
“[급식 동생]이 일종의 서브 남주죠?”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남자 배역 중에는 두 번째니까.”
“이재윤 그 친구, 감독님 말씀 듣고 찾아보니까 연기 꽤 하대요?”
“그렇더라고요. 나이는 아직 20대 초중반인데, 대학로에서 일찍 데뷔해서 잔뼈가 굵은가 봐요.”
“[서울 여자]는 누구랑 이야기 중이세요?”
“······.”
원준혁의 물음에 작가들이 래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 아직 여쭤보면 안 되는 거예요? 대외비?”
“그건 아니고요. 미정이에요. 정말 말 그대로 미정.”
“후보는 있을 거 아녜요?”
“있긴 해요. 준혁이 형도 아는 여배우분들. 근데 그분들이랑 안 할 가능성이 커서 아직은 말씀드리기 좀 그러네요.”
“아···. 상대역이 뉴페이스면 저야 좋죠.”
원준혁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이는 원준혁이 매너가 있다는 방증일 뿐.
실제로 그가 뉴페이스를 달가워하는 지는 미지수였다.
드라마는 조별 과제나 소꿉장난이 아니니까.
[고필우]-[서울여자]-[학식 누나]-[급식 동생]주연 라인업 중에 본인만 스타성이 독보적이고 나머지 배우 캐스팅이 약하다면, 해당 배우는 보통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를 보인다.
혼자 튈 수 있다고 좋아하거나,
혹은 본인이 작품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경우.
홀로 튀는 것보다, 다 같이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좋아하는 원준혁의 평소 성품을 생각한다면 분명 후자였다.
배려심을 발휘해서 안 그런 척하고 있는 것일 뿐 부담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급식 동생]도 뉴페이스로 가는 마당에, [서울 여자]까지 전미호로 가면 준혁이 형한테 너무 부담을 지우는 걸까···?’
이를 인지한 래원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갔다.
‘그렇지만 계속 전미호가 눈에 밟히는데···.’
전미호는 전생을 생각하면 충무로 스타가 될 운명이었고, 이번 생에서 래원이 직접 본 연기도 굉장히 훌륭했으니까.
원준혁이 래원의 안색을 보고 대충 눈치를 챈 듯,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바가 있으신 거 같은데, 전 도래원 감독님 선택은 뭐든 믿습니다. [서울 여자], 저 염려하지 마시고 캐스팅해주세요. 저 슈퍼 인싸잖아요. 누구랑도 슈퍼 케미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크하하!”
래원은 원준혁에게 새삼 고마웠다.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도 척하면 척, 말이 통하는 배우였으니까.
“혹여 [서울 여자]도 뉴페이스로 가게 되면, [학식 누나]만큼은 인지도나 스타성 어느 정도 있는 분으로 캐스팅할 거예요.”
“독박 쓰게 안 할 테니 걱정 말라는 뜻이죠? 알겠습니다. 저는 [고필우] 빙의 준비하면서 딱 기다릴게요.”
이후 메인 요리와 디저트까지 의 대본 이야기로, 입도 즐겁고 기분도 좋은 대화가 이어졌다.
전부 일 이야기였지만, 지금 이 테이블에 둘러앉은 4명에게 이 드라마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
특히 원준혁은 자신의 역할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연애 유튜버라니. 잘 만들어봐야지. 실제 연애 유튜버보다 더 매력적으로! 원준혁답게!’
실버 버튼 유튜버 [고필우]가 골드 버튼을 얻어내기까지의 성공 서사는 물론,
극 중에서 연애를 이론으로만 빠삭하게 아는 탓에 100일을 넘겨본 적이 없던 [고필우]가 [서울 여자]와 티격태격하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로맨스 서사까지.
배우로서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배역이었다.
때문에 래원 및 두 작가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원준혁의 가슴은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원준혁은 무엇보다 래원에게서 강력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원준혁의 눈에 래원은 ‘예능 드라마’의 포맷을 신선하면서도 차질없이 구현하겠다는 추진력을 갖추었고,
이미 머리로 그리고 있는 그림이 명확한 감독이었다.
믿을 수 있는 감독과 함께하는 새로운 작업.
배우에게 이보다 설레는 일은 없었다.
원준혁은 새해 벽두부터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 * *
다음날.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거대한 빌딩 숲 사이로
[ DIA SAND ] 로고가 박혀있는 어느 건물 앞.래원과, 지혜영, 조연출까지 3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여의도에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죠?”
“다이아샌드 대표, 이선필입니다. 반갑습니다.”
임원진이 로비까지 래원의 일행을 마중 나왔다.
JC ENM 홍 대표 덕분이었다.
오늘의 만남이 성사된 것도 이 같은 처우도 모두 말이다.
‘주기훈 CP님이 이 장면을 보셨어야 하는 건데! 아깝다, 아까워!’
지혜영은 주기훈의 기우와 달리 래원의 뜻대로 척척 풀려가는 이 상황이, 신기하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주기훈 CP님이 우리 래원 오빠를 너무 얕보고 있는 거지.’
다이아샌드는 이 고층 빌딩의 9층부터 11층까지 쓰고 있었다.
래원의 연출부는 임원진의 안내를 받으며,
먼저 9층에 위치한 유튜브 스튜디오를 둘러보았다.
“감독님, 뚜룹쓰 아시죠?”
“네. 엄청 인기 있는 유튜버시잖아요.”
“지금 이 안에서 인터뷰 영상 찍고 있는 분이 뚜룹쓰입니다.”
‘스튜디오A’ 라고 적혀진 룸을 지나면서 촬영 중인 뚜룹쓰를 볼 수 있었다.
래원에게는 유명 유튜버를 보는 게 연예인을 만나는 것보다 더 신기했다.
지혜영도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저분이 연애 유튜버 1위 ‘박차’세요.”
다음 ‘스튜디오B’에는 [고필우]의 래퍼런스 중 하나인 유튜버가 촬영 중이었다.
지혜영과 조연출이 입을 떡 벌리고 구경했다.
“와. 영상보다 실물이 더 꽃미남이시네요?”
래원은 예리한 눈으로 살피며 임원진에게 물었다.
“이렇게 매번 스튜디오 나오셔서 찍으시나 봐요?”
“아뇨. 그건 아니고 다들 각자 집이나 작업실에 스튜디오를 갖고 계시는데, 특별한 촬영이 있는 날만 저희한테 요청하셔서 회사 스튜디오를 쓰시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크리에이터들의 모습에
래원은 의욕이 샘솟았다.
‘[고필우], [서울 여자], [학식 누나]와 [급식 동생] 그리고 [심덕분]···. 우리 인물들도 저렇게 멋지게, 열정적으로 찍고 싶다!’
머릿속에 콘티가 떠오르기도 했다.
‘오! 여기 이 스튜디오가 [심덕분]의 덕분입니다 찍으면 컨셉에 딱 이겠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의 영감을 얻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11층의 대표실로 안내받은 래원의 연출부.
래원은 이선필 대표를 인터뷰하듯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유튜브’라는 매체에 대해, 그리고 ‘크리에이터’라는 신종 직업에 대해서 말이다.
이선필 대표는 술술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최초의 유튜브 영상은 2006년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동물원 앞에서 코끼리 코를 찍은 18초짜리 콘텐츠였습니다. 그 이후 유튜브는 전 세계를 무대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죠. 요즘 아이들은 한 손에는 우유를, 한 손에는 유튜브를 들고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때문에 앞으로의 전망도 굉장히 밝습니다.”
이선필은 외견상으로도, 실제 나이도 30대 중반이었다.
스타트 업으로 작게 시작해서 지금은 여느 중소 기업과 중견 기업 사이의 독보적인 연 매출을 올리는 회사의 대표라기에는, 과하게 젊은 사람.
하지만 그의 말속에는 그 나이 이상의 여유와 경험 그리고 나름의 철학이 묻어나왔다.
“유튜브 콘텐츠의 종류는 무궁무진하고, 구글의 AI 기술로 전세계 시청자 각자에게 각기 다른 콘텐츠 처방이 내려집니다.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예요. 가장 중요한 건 ‘개성’과 ‘정체성’이죠. 일단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해요.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 지를요. 크리에이터는 콘텐츠 기획부터 출연, 연출과 편집까지 모두 해내야 하는 종합예술가니까요.”
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간중간 추가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그의 말을 경청하며 반응을 보이며, 이선필이 더욱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끌어냈다.
일종의 자료조사랄까, 업계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옆에서 지혜영은 래원을 보면서 메인 연출의 처세에 대해 배우고 있었으며,
조연출은 노트북에 손을 얹고 래원과 다이아샌드 측의 대화를 받아적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의 시간이 저희 드라마를 만드는 데에 굉장한 자양분이 될 것 같습니다.”
래원이 이필선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전하며,
테이블 위에 서류 봉투를 스윽 내밀었다.
“사전에 말씀드렸던 PPL 제안서입니다.”
이필선은 이를 받아들며 웃었다.
“공중파에서 우리 회사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찍으시고 싶다 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하하하. 주말 중에 고민해서 다음 주까지 회신 드리겠습니다.”
* * *
주말이 지난 월요일.
래원은 퇴근 중,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다이아샌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PPL 및 촬영 장소 제공 승낙 연락이었다.
“야호!”
퇴근길. 막히는 도로 안에 갇혀있었으나
래원의 기분은 뻥 뚫린 듯 신이 났다.
승전을 축하하는 음악을 틀었다.
브루노마스의 ‘24K Magic’이 차 안 가득히 울려 퍼졌고,
래원은 비트에 몸을 싣고 혼자만의 파티를 즐겼다.
그러다가 문득,
“24캐럿의 매직이라···.”
래원은 본인도 지금 이 음악 속 ‘24캐럿 반지’ 만큼의 치트키를 갖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회귀’로 다시 얻은 삶은, 비유하자면 24캐럿의 마법이었으니까.
미래 정보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서울 주민], [학식 누나] 퍼즐만 맞추면, 프리 프러덕션의 대략적인 스케치는 완성인데···.”
노래 덕분일까?
래원은 깨달음과 자신감을 충전하고는,
휴대폰 속 연락처를 열어
ㅈㅁㅎ
초성 3개를 입력했다.
지난주, 배우 ‘이재윤’과 계약할 때 미리 얻어둔 ‘전미호’의 연락처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스피커의 음악 소리는 멈추고, 차 안에는 신호음이 울렸다.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전미호 배우님 되시죠?”
– ··· 네, 그런데요.
“저는 SBC 드라마국 PD 도래원이라고 합니다.”
– 아! 안녕..하세요.
전화 너머 전미호는 래원의 이름 듣고 반응했다. 아는 눈치였다.
다행히 시작이 좋았다.
“다름이 아니고, 지금 출연 중이신 연극 을 재밌게 봤거든요. 전미호 씨 연기가 너무 좋아서, 재윤 씨 통해서 번호 땄습니다.”
– 아아, 재윤이요? 어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준비 중인 드라마 캐스팅 건으로, 전미호 씨를 한 번 뵙고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데, 혹시 가능하실까요?”
– 그.. 그럼요.
전화 너머로 전미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언제가 편하세요?”
– 요즘 연습도 없고 공연만 하고 있어서 평일 낮이면 다 괜찮습니다. 저녁은 월요일이 괜찮고요.
대학로 공연장은 보통 월요일에 문을 닫는다는 것을 래원도 알고 있었고,
마침 오늘이 월요일이었기에,
래원은 [서울 여자] 캐스팅을 더는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오늘 저녁도 괜찮으실까요?”
– 네.
“댁이 어느 쪽이세요? 제가 갑자기 뵙자고 청했으니 근처로 가겠습니다. 카페에서 뵙죠.”
– 저 대학로 가까이에 살아요.
“좋습니다. 지금 좀 막혀서 대학로 가면 8시 반쯤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