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30
– 네. 곧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래원은 차를 돌려 한강 이북의 대학로로 향했다.
전미호를 바로 앞에서 만나는 건 전생에도 없던 일이다.
미래에 천만 영화와 대작 드라마에 이름을 올리며 충무로와 상암동 캐스팅 1순위로 떠오르게 될 전미호.
재야의 고수를 발굴하러 대학로로 가는 길은 몹시 두근거렸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22화 – 리디북스
* * *
월요일 저녁 8시의 대학로.
한산하다 못해 텅 비어있는 이곳.
여느 날 저녁 8시라면 각 극장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며 공연이 시작될 순간이었지만,
월요일의 대학로는 모든 게 멈춘 듯 고요했다.
전미호는 아무도 없는 카페에 들어서서 구석 창가에 자리 잡았다.
근처 연습실에서 연기 레슨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바로 약속 장소로 넘어온 전미호.
도래원 감독과의 약속 30분 전이었다.
따뜻한 루이보스차를 홀짝이며 창문 밖을 내다보는 전미호의 눈에,
어둡고 투명한 유리 너머로 그녀 자신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아주 예쁘거나 화려한 개성을 지닌 얼굴은 아니었지만, 무대 위에서 연기하기에는 모자람 없는 페이스의 소유자.
전미호는 자기 비하를 일삼는 타입은 아니었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으며, 대학로에서 일이 끊이지 않고 연기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나를 드라마에⋯? 왜? 조연은 커녕 단역으로도 카메라 앞에 서 본 적 없는데⋯.”
전미호로서는 불쑥 연락해온 도래원의 의중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대학 연영과 3학년 때 대학로에서 데뷔해서 20대 후반인 지금까지 줄곧 연극과 뮤지컬 무대만 지켜왔던 그녀였다.
전미호는 휴대폰으로 포털 사이트 창을 켜고는 ‘도래원’ 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4부작 드라마 로 메인 연출로 입봉하여,
, , 까지.
길 가는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다들 알만한 드라마를 줄줄이 연출한 감독이었다.
뉴스 탭에는 제작 발표회 사진도 올라와 있었다.
많아야 30살 정도 돼 보이는 얼굴이었고, 배우들 사이에서 꿇리지 않는 비주얼.
“뭐야? 되게 젊네?”
게다가 도래원은 나이나 연차에 비해 수상 경력도 제법 됐다.
– 밴프 상 멜로드라마 부문
– 백상예술대상 TV작품상
– SBC 연기 대상 작품상 2년 연속 수상
“이런 사람이 배우 하나 못 구해서 나한테까지 연락하진 않았을 거고⋯. 근데 왜 나를? 왜지?”
도래원에 대해 검색하면 할수록 전미호의 의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질문에 대한 답은 15분 후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약속 시각 8시 반까지 15분이 남았으니까.
전미호는 초조한 듯이 자꾸 시계를 확인했다.
호기심과 기대감 그리고, 혹여 실망할 일이 생길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뒤섞인 채로.
오늘 도래원 감독과의 만남이, 전미호의 잔잔한 일상에 돌멩이처럼 날아들어 상처를 남기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이에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히 났고,
전미호는 가방에서 전자 담배를 꺼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시각,
래원은 주차 후에 전미호를 만나러 카페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어⋯?”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익숙한 얼굴.
“이나⋯?”
브라이트 걸스 ‘이나’였다.
캡 모자를 눌러써서 얼굴을 가리고 빅사이즈 맨투맨으로 몸을 가렸지만, 래원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한적한 길거리라 눈에 더욱 잘 띄었으니까.
래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 가는 그녀를 붙잡아 인사했다.
“어머, 래원 오빠!”
지난 1년 사이, 래원에게는 래미 말고도 3명의 여동생이 더 생겼더랬다. 노노카, 이나, 솔라.
이제 래미의 오빠는 곧 브라이트의 걸스 멤버 전원의 오빠였으니까.
래원을 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짓는 이나였으나,
곧 이어진 래원의 질문에 당황하는 기색이 되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매니저도 없이 혼자서?”
“아⋯. 여..연극 공연 보러요!”
“오늘? 월요일에 하는 공연이 있나?”
“아⋯. 네. 이..있더라고요! 헤헤헤.”
그때.
래원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나야, 이제 가는 거야?”
뒤돌아보니 전미호였다.
희뿌연 입김과 뒤엉킨 담배 연기를 내뿜는 그녀.
“어? 쌤?”
이나와 전미호는 아는 사이인 듯했다.
전미호가 전자 담배를 끄고 다가왔다.
“이나 너 레슨 끝난 지가 언젠데 이제 가? 오늘도 남아서 연습한 거야?”
“아⋯.”
전미호의 물음.
허나 이나는 래원의 눈치를 보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전미호는 그런 이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 보다가,
“어..어? 도래원..감독님?”
전미호가 래원을 알아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알아볼 줄은 몰랐던 래원.
“아, 전미호 배우님이시죠? 도래원 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미호 예요.”
래원과 전미호 사이의 어색한 기류.
옆에서 이나가 이를 비집고 끼어들었다.
“쌤, 오늘 약속이 래원 오빠랑 만나는 거였어요?”
“어. 이나랑 도 감독님, 아는 사이였구나.”
“저희 멤버 래미, 친오빠세요.”
“어..어? 정말요? 우와. 그러고 보니 좀 닮은 것 같네요?”
“하하. 다들 밝히기 전에는 매치 못 시키다가 말하면 그런 반응이더라고요.”
“오빠랑 래미가 애매하게 닮아서 그래요.”
“그건 그래. 근데 이나는 배우님이랑 어떻게 알아?”
“이나가 제 제자예요. 조금 전까지 요 앞 연습실에서 저한테 연기 레슨 받았거든요.
“아앗. 쌤⋯!”
래원이 묻자 전미호가 자연스레 답했고,
이에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이나.
“뭐야, 이나 너 공연 본 게 아니라 연기 레슨 받은 거였어? 근데 왜 나한테 아까ㄴ⋯. 아⋯.”
순간 래원은 깨달았다.
이나가 원더빅 몰래 개인적으로 연기 레슨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오빠, 비밀 지켜주실 거죠?”
“너 하는 거 봐서.”
“아..안 돼요! 이..이건 래미한테도 비밀이란 말이에요! 회사 귀에 들어가면 저 끝난다고요!”
펄쩍 뛰는 이나를 보며,
전미호도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어⋯. 그⋯. 도 감독님, 이나 비밀 지켜주세요. 부탁드려요. 제가 실언을 했네요.”
“으음. 배우님이랑 이나가 저한테 하는 거 봐서 생각해볼게요.”
물론 래원은 이나의 비밀을 함부로 발설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그저 지금 눈앞에 두 사람의 반응이 재밌을 뿐이었다.
그리고, 활동 휴식기에 대학로까지 나와서 연기 공부를 하는 이나의 모습이 기특했으니까.
‘원더빅 정도 되는 회사는 내부 경쟁이 심하긴 할 거야. 전미호 같은 숨은 고수한테 개인적으로 레슨 받을 정도면, 회사에서 붙여주는 연기 트레이너는 이나의 성에 안 찼나보네⋯.’
래원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나야, 더 늦기 전에 얼른 들어가 봐.”
“네⋯. 그럼 두 분이 이야기 나누세요. 가볼게요.”
래원은 꾸벅 인사하는 이나의 풀 죽은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그냥 두려다가, 한마디 보탰다.
“비밀 지킬 테니까 걱정 말고.”
“정말이죠, 오빠? 진짜죠?”
“그래. 래미한테도 말 안 할게.”
다시 밝아진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이나였다.
래원과 전미호는 그 모습을 보며 얼굴에 저절로 미소를 띄웠다.
“그럼 이제 ‘우리’ 이야기하러 들어가실까요?”
래원이 카페 문을 열었고,
뒤따라 들어오는 전미호에게서 알싸한 담배 향기가 은은하게 풍겼다.
‘향기’라고 표현할 만큼 매력적인 내음.
시크하고 도회적인 분위기를 뿜는 그녀에게 꽤나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은 전미호가 미리 자리 잡은 테이블로 가서 마주 앉았다.
둘 사이에 ‘이나’는 일종의 아이스 브레이커였다.
“이나 레슨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꽤 됐어요. 반년 넘었죠? 활동기에도 중간중간 시간 날 때마다 만났으니까.”
“이나 연기 잘하던가요?”
“그럼요.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잘해야죠. 요새 엄청 늘었어요. 지난달부터 완전 특훈해 줬거든요. 자기 이제 시간 많다고 어찌나 매달리던지⋯.”
래원은 전미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서울 주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첫인상에 말투도 요목조목 빈틈이 없었으니까.
“요즘에는 오히려 제가 이나 가르치면서 에너지 얻고 본받아요. 앞으로 더 잘 될 거예요, 이나는.”
“배우님도요.”
“네?”
“배우님도 앞으로 더 잘 되실 거라고요.”
“하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니에요.”
래원은 백팩에서 쪽대본 1장을 꺼내 내밀었다.
[서울 주민]의 핵심 대사가 쓰여 있는 장면 2개 정도를 추린 것이었다.그리고는 카페 내부를 빙 둘러보는 래원.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혹시 이거 두 장면, 한 번 읽어봐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냥 편하게 해주시면 돼요. 느낌만 보려는 거니까요.”
그녀의 연기력이야 이미 무대 위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고, 전생의 이력으로도 익히 알고 있는 래원이었다.
오늘의 만남은 [서울 주민]과의 싱크로율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기존의 다른 후보군보다,
스타성과 인지도 면에서 부족한 전미호.
따라서, 해당 배역에 누구보다 잘 맞는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그녀를 택할 수 있었으니까.
전미호가 눈으로 쪽대본을 스윽 훑더니,
이내 두 입술을 떼었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들’ 이에요. 투자의 핵심은 결국 숫자를 예측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시장 상황에 대한 대응’이죠. 각종 지표는 투자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만 중요해요. 트레이딩을 시작하고 나면서부터 투자는 ‘인문학’입니다. 따라서 투자를 잘하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목소리에 신뢰감이 묻어났다.
조금 전까지 연기와 이나 대해 수다를 떨던 전미호는 사라지고, 어느 투자 전문가가 래원의 앞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전미호가 감정선을 바꾸더니 다음 씬을 읽어내려갔다.
“투자자의 마음을 읽고 대응하는 건 자신 있는데, 왜 당신 마음은 모르겠죠? 무슨 생각으로 내 앞에 계속 알짱거리는 건지, 정말이지 난 도저히 모르겠어요.”
[서울 주민]이 [고필우]와 쌓아갈 로맨스 서사 중, 숫자 놀음은 익숙하지만 사랑 놀음은 어려운 [서울 주민]의 캐릭터가 드러나는 대사였다.“잘 봤습니다.”
래원은 흡족한 얼굴로 전미호를 빤히 보았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이성적인 배우였다.
연기도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감정을 만들어내는 식이었고, 그래서인지 대사 톤이나 말투와 느낌도 래원이 그간 그려온 [서울 주민] 그 자체였다.
“배우님 연극 공연이 내달 까지던데, 그 이후에 다른 작품 준비 중인 거 있으세요?”
“아뇨. 이야기 중인 작품은 몇 개 있는데,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래원이 이번에는 기획안과 대본 뭉치를 꺼내어 전미호 앞에 내밀었다.
“그럼 저희랑 함께하시죠. 미니시리즈 , SBC 가을 편성이고요. 촬영은 3월 말부터 들어갈 것 같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배역은 [서울 주민] 입니다.”
전미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기획안을 넘겨보았다.
로그라인이 먼저 눈에 띄었고,
– 100만 구독자와 골드 버튼을 먼저 따내기 위한, 실버 유튜버 3인방의 좌충우돌 도전과 성공기
다음은 캐릭터 소개를 읽어 내려갔다.
[서울 주민]은 무려 두 번째로 적혀있는 배역이었으며, 여성 배역 중에서는 첫 번째였다.– 10%의 감정과 90%의 이성으로 작동하는 경제 유튜버 [서울 주민]
여기까지만 읽어도 전미호의 가슴은 이미 세차게 쿵쾅거렸다.
‘이건 기회야. 잡아야 해!’
래원이 그녀를 향해 말을 이었다.
“천천히 보시고 이번 주 중에 연락 부탁드릴게요. 시간 더 드리는 게 예의인데, 저희가 좀 급해서요.”
“저, 할게요! [서울 여자] 열심히, 잘하고 싶습니다!”
전생에 전해 듣던 대로 시원시원한 성격의 전미호였다.
래원이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잘 부탁드립니다. 전미호 배우님.”
전미호가 망설임도 없이 래원의 손을 맞잡았다.
“감사합니다. 저 캐스팅해주신 거 후회하실 일 없게, 최선을 다할게요. 잘 부탁드려요, 도 감독님.”
* * *
래원은 [서울 주민] 캐스팅 소식을 단톡방에 알렸다.
주기훈CP와, 지혜영PD, 차여름 및 박은정 작가진, 그리고 캐스팅 디렉터가 있는 방.
유튜브에서 전미호의 연극 무대 영상을 찾아 공유했다.
주기훈의 반응은 예상대로 떨떠름했으나,
래원은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판단하며 넘겼다.
차여름과 박은정은 도래원의 선택을 믿는다는 눈치였으며,
무엇보다 캐스팅 디렉터의 반응이,
[캐스팅디렉터] 대박! 이런 재야의 보석을 어찌 찾으셨어요?난리도 아니었다.
역시 캐스팅 디렉터의 안목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차여름] 그럼 이제 주요 캐스팅은 ‘학식 누나’만 남은 거죠^^? [박은정] ‘서울 주민’을 뉴페로 갈 거니깐, ‘학식 누나’는 인지도, 스타성 둘 다 겸비한 친구랑 해야겠어요! [캐스팅디렉터] 지난번에 드렸던 명단에서 일정 되는 애들로만 다시 추린 리스트업 입니다.– 정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