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37
동시에 늘 못 미더워했던 자신의 엄마와 화해하며,
진정으로 두 아이의 엄마이자 딸이 되어가는 한 여인의 성장 스토리.
류소현의 옆에는 ‘도래미’가 자리했다.
자신의 차례가 오자 벌떡 일어나 인사하는 래미.
“드라마를 찍는 동안은 브라이트 걸스가 아닌 배우 ‘도래미’로! 우리 작품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감독님, 작가님, 선배님들, 많이 가르쳐주세요.”
래미는 주인공의 사춘기 시절 아역을 맡았다.
극 중 중학생부터 대학생 시절까지의 주인공이 엄마와 다투던 모습이 꾸준히 교차하는데,
그 장면에 등장하는 역할이었다.
주인공이 직접 엄마가 되어본 후,
과거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행동과 마음을 하나둘씩 알아차리게 된다는 성장 서사를 위해 필요한 인물.
래미는 이 작품을 잘 해내고 싶었다.
처음으로 오빠 래원이 아닌 다른 감독과 하는 드라마 작업이었고,
‘류소현’ 배우와도 더욱 친해지고 싶었으니까.
래미는 류소현과 ‘소철않’에 사제 간으로 출연했기에, 그래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거나 회식 때 같이 앉을 수 있는 사이는 되었으나,
그 이상으로 깊게 친해지지는 못했다.
류소현이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친해지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래미는 과거 브라이트 걸스 데뷔 전, 원더빅에서 했던 연말 발표 공연에
오빠 래원이 데려온 여자가 류소현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류소현을 향한 호기심과 관심의 시작이었다.
어느덧 1화부터 3화까지 대본 리딩을 모두 마친 후, 유찬이 흡족한 얼굴로 인사했다.
“혼자 눈으로 읽었을 때보다 너무 좋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장에서 뵙겠습니다.”
다들 지친 기색이었으나,
눈빛만큼은 기대감이 잔뜩 어려있었다.
래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래미의 눈썹은 팔자를 그리며 근심을 한가득 얹고 있었다.
래미의 대본에 붙여진 포스트잇 개수만큼 말이다.
SBC 건물을 나와 밴에 올라탄 래미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오빠 래원이었다.
– 여보세요?
“오빠!”
– 어. 래미야!
“오빠 지금 밖이야? 시끄럽네. 촬영장?”
– 어. 잠깐 쉬는 시간. 무슨 일있어?
“아니, 일은 아니고⋯. 오빠 오늘 집에 언제 들어가?”
– 오늘? 밤 촬영 있던 거 미뤄져서⋯. 가만있자, 저녁 늦지 않게 들어갈 거 같은데? 왜?
“그럼 나 연기 좀 봐줘.”
그렇게 래미를 실은 밴은 방향을 틀어 브라이트 걸스의 숙소가 아닌, 래원의 집으로 향했다.
* * *
저녁.
촬영을 마치고 집에 들어선 래원을,
래미가 환호하며 반겨주었다.
“엄청 기다렸어, 오빠!”
“나 부려먹으려고 기다린 거겠지.”
“에이, 부려먹는 건 아니다!”
래미는 의 최신 수정고를 래원의 앞에 내밀었다.
“거기 포스트잇 붙여놓은 장면만 봐주면 돼.”
“포스트잇 붙여놓은 장면’만’ 이라기에는 양이 좀 많다, 도래미?”
“웬 약한 소리? 백상 작품상에다가, 그 뭐냐, 밴프 상? 그거랑 또, 연말에 2년 연속으로 SBC 작품상까지 다 휩쓰신 도래원 감독님께서 웬 약한 모습?”
래미의 농담과 애교에 지고만 래원.
래원은 래미와 함께 대본을 분석했다.
그리고는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디렉팅 해주었고, 래원의 특훈은 자정이 넘는 시각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장면을 마치기가 무섭게,
알람처럼 울린 래미의 휴대폰.
지이이이이잉——
“매니저 오빠다!”
래미는 부리나케 전화를 받았다.
“오빠, 다 끝났어. 아, 벌써 앞에 온 거야? 알겠어. 곧 나갈게요.”
배시시 웃으며 짐을 챙기는 래미.
“오빠, 완전 고마웠어! 오빠가 내 구세주야!”
“말이라도 못 하면⋯.”
“오늘 이거 유찬 감독님이나 차가을 작가님한테는 비밀로 해줘. 오빠한테 코치 받은 거.”
“비밀?”
“웅.”
“알았어.”
래원은 피식 웃음이 났다.
감독과 작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배우 도래미’의 마음이 읽혔기 때문이었다.
“너, 이번에 개인 활동하면, 유닛은 언제 해?”
“가을에. 나랑 노노카 언니가 하는 보컬 유닛은 가을에 나와.”
“그럼 이나는? 우리 드라마 다 찍고 겨울?”
“웅. 이나 언니랑 솔라 퍼포먼스 유닛은 우리 다음이래.”
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이거 비밀인 거 알지? 우리 유닛 활동하는 거.”
“그럼.”
“ 팀에도 안 알렸어.”
“알겠어, 알겠어. 오빠 쓸데없는 말 안 하고 다니는 거 알잖아.”
래미가 해사하게 웃었고,
“뭐, 그건 인정.”
래원은 오늘, 래미가 이제 정말 성인이 됐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래미는 더 이상 래원의 품 안에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오빠, 나 갈게! ‘골드 버튼’ 파이팅 해!”
래원은 래미의 짐을 밴에 실어주었고, 밴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오늘 래원이 마주한 것은,
연기를 향한 래미의 독기 품은 열정이었다.
그것은 래원이 촬영장에서 여느 프로 성인 배우들에게 느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래원에게 이는 80%의 뿌듯함과 왠지 모를 10%의 섭섭함 그리고 10%의 씁쓸함이 뒤섞인,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 * *
며칠 후.
오늘은 간만에 연이은 촬영 오프였다.
때문에 래원은 편집실에 짱박혀있기 위해 드라마국에 출근했다.
오전 내내 자리에 앉아서 밀렸던 잡무를 처리하고,
오후부터는 편집에만 몰두할 계획이었다.
어느새 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키자,
래원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오늘 구내식당 메뉴가 뭐지?”
그때.
저쪽 복도에서 하인혁이 래원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도래원! 잠깐만.”
래원은 어리둥절했다.
‘뭐지? 설마 점심 같이 먹자는 건 아니겠지? 저 새끼랑 내가 맨정신에 같이 밥 먹고 그럴 사이는 아니지 않나?’
하인혁이 가까이 왔을 때,
래원은 비로소 그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인혁의 등 뒤에 한 사람이 더 따라오고 있었으니까.
“⋯ 임현서?”
하인혁이 임현서를 래원의 앞에 세우며 인사시켰다.
“안녕하세요, 임현서입니다.”
“⋯ 아, 네. 도래원이에요.”
래원은 일단 같이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레장여’, ‘시간사’, ‘소철않’ 그리고 ‘페르소나’로 많이 배웠습니다. 이번 ‘골드 버튼’에 뼈를 묻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인혁이 어찌나 교육을 잘 시켰는지,
기합이 빡! 들어가있는 임현서.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임현서를 내 조연출로 보내준다는 거? 하인혁이 뭐 잘못 먹었나? 아님 죽을 때가 됐나? 왜 이래?’
래원은 어찌 된 일인가 싶어서 하인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거절도 아니고, 이강호도 아니고, 임현서라고??’
임현서는 하인혁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재 신입 중 최고의 아웃풋이었다.
들어올 때는 그의 기수가 다 같이 노답이었으나, 지금은 혼자 일취월장한 상태.
그런 임현서를 하인혁이 순순히 내어준 것이다. 대체 왜?
“왜? 무지하게 감동이라도 한 얼굴이다?”
하인혁이 래원을 향해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웃었다.
“후배님들끼리 똘똘 뭉쳐서 ‘골드 버튼’을 사수하길래 나도 도움 주고 싶은 거지, 딴 뜻은 없다.”
래원은 ‘저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싶었다.
이윽고,
“모처럼 훈훈한 광경이네? 선후배 3대가 서로의 작품을 응원하며 어울리는 모습?”
황태수 국장이었다.
그의 등장에 하인혁이 돌연 꼿꼿하게 자세를 바로 했다.
“아, 네. 안 그래도 래원이네가 조연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대서, 제가 현서 소개해 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혁이가 선배 노릇 톡톡히 하네?”
황태수는 이 말을 하면서,
눈으로는 래원을 향해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근데 인혁이는 무슨 바람이 분 거냐? 내가 애초에 주기훈 CP한테 그렇게 지시했는데, 네가 너네 조연출 인원이 딱 맞아서 못 준다고 했다며? 그래서 래원이네가 김지우 데려가기로 한 거 아녔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골드 버튼’은 올해 편성이고, 저는 내년 편성이니⋯. 임현서를 래원이한테 보내고, 대신 제가 김지우를 데려가려고요. ”
하인혁의 말에 래원은 다시 한번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김지우는 애교는 많은 여자 후배였으나, 민폐에 사고뭉치로 소문이 자자한 신입이었기 때문이다.
팀의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혹을 떼어내려다가 더 큰 혹을 달게 된 꼴이었다.
‘처치 곤란했던 혹을 이렇게 손수 떼어준다고? 하인혁이 왜?’
래원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하인혁과 황태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황태수는 껄껄껄 웃고 있었고,
하인혁은 황태수의 옆에서 예전과 달리 유독 꼿꼿하게 예의를 차리는 눈치였다.
“임현서, 너는 운 좋은 줄 알아. 첫 사수가 나고 두 번째가 도래원이면 실력이 안 늘래야 안 늘 수가 없거든.”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인혁의 말에 임현서가 힘차게 외쳤다.
이에 황태수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래원을 쳐다보았다.
누가 봐도 래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 상황.
그것도 하인혁이 손을 내밀었다.
‘정말로 하인혁이 달라진 건가? 전에 강채령이 했던 말처럼, 사람은 상대에 따라 변할 수도 있는 거였나?’
하지만 래원은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윤지협 선배도 경고했었잖아. 하인혁은 조심해서 나쁠 거 없는 놈이라고⋯.’
래원은 지난번 술자리로 하인혁의 비밀을 알게 됐고, 그날 이후로 그와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오늘 하인혁의 이 같은 과잉 친절까지 쉽사리 납득되는 것은 아니었다.
‘임현서를 순순히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놀랄 노 자인데, 김지우까지 처리해준다고⋯?’
때문에,
래원은 전생의 ‘임현서’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임현서는 래원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래원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었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29화 – 리디북스
“자, 그럼. 현서는 래원이랑 점심 하면서 바로 조연출 모드로 들어가라.”
하인혁의 말에 임현서가 래원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넵! 제가 구내식당까지 모시겠습니다, 래원 선배님!”
“황 국장님은 간만에 저랑 점심 어떠세요?”
하인혁이 어울리지 않게 눈웃음을 치며 황태수 앞에 섰다.
황태수는 슬쩍 래원을 보며 웃었고,
래원은 여기까지 지켜보며 일단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한테 임현서를 바친 거 안에는, 황태수 선배한테 잘 보이기 위한 계산이 숨어있었던 거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김지우까지 알아서 처리해준 것을 고려했을 때,
래원은 분명 뭔가가 더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덧 임현서와 함께 지하 구내식당에 다다른 래원.
임현서는 해사한 얼굴을 하고 잘 웃는 후배였다.
기본적으로 선배를 챙길 줄 알았고 눈치도 빨랐기 때문에, 조연출로서는 손색이 없어 보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녀석은 하인혁 사람인데⋯.’
적어도 전생에는 확실히 그랬다.
하인혁처럼 남을 뒤에서 해코지하거나 대놓고 파렴치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늘상 하인혁의 곁에 붙어있었다.
임현서는 첫 조연출도, 첫 B팀 감독도 하인혁의 밑에서 치렀으며,
연출 입봉작도 하인혁 사단의 작가와 했고,
선배인 래원의 입봉보다 빨랐더랬다.
‘그랬던 임현서가 이번 생에는 첫 조연출로 내 작품에 들어온다고⋯?’
임현서를 보는 래원의 눈이 어느새 가늘어졌다.
“왜요?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선배?”
래원의 앞에 식판을 놓고 밥숟갈을 뜨던 임현서가, 해맑게 물었다.
“아냐, 야냐. 든든히 많이 먹으라고.”
“넵! 선배님도요!”
임현서는 어쨌든 지금 이 순간부터 래원의 조연출이 됐다.
그는 이제 래원의 손과 발이 되어줄 것이다.
‘함부로 믿어서도, 함부로 의심해서도 안 돼.’
때문에 래원은 일단 중립 기어를 박고 지켜보기로 했다.
설사 하인혁이 래원을 자기 손바닥 안에 두기 위해 임현서를 보낸 것이라 해도,
래원은 그 판을 뒤집어서 반대로 하인혁을 래원의 손바닥안에 둘 자신이 있었으니까.
* * *
그날 저녁.
곱창전골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냄비를 앞에 두고,
쪼르르르——
하인혁이 임현서의 빈 소주잔을 채워주며 입을 열었다.
“현서야, 내가 너 많이 아끼는 거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