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12
“다..담백한 버전부터 진지한 버전까지 한 번씩 연습해볼게!”
오버하다시피 씩씩하게 뱉은 래미의 말에 이재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오..오빠가 상대역 대사 좀 쳐줘!”
“알겠어. [은우] 대사부터 가보자.”
그는 어느새 래미와 달리 사뭇 진지한 얼굴이 되어 대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이제 그 일기장 말고, 나한테 털어놔요. 다 들어줄게! 까짓 거 내가 당신의 대나무 숲, 갈대밭⋯ 다 해줄게요. 그러니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나한테 다 털어놔! 제발 이렇게 혼자 울지말라고⋯.”
[현아]가, 아니 래미가 이재윤의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한다.그러자 [은우]인지 이재윤인지 모를 남자가 씨익 웃으며 래미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건넸다.
“이..이게 그러니까 담백한 버전!”
래미가 괜스레 헛기침까지 하며 소리치자,
이재윤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 웃었다.
“그럼 그 다음은 조금 더 진한 버전으로 가볼까?”
“우웅⋯. 그..그래!”
이재윤은 가까스로 웃음을 참고는 다시 [은우]가 된다.
“이제 그 일기장 말고, 나한테 털어놔요. 다 들어줄게! 까짓거 내가 당신의 대나무 숲, 갈대밭⋯ 다 해줄게요. 그러니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나한테 다 털어놔! 제발 이렇게 혼자 울지말라고⋯.”
쪽—!
[현아]인척 하는 래미가 그의 입술에 입술을 가볍게 포갰다.그 순간, 남자는 멀어지려는 래미의 허리를 훅 감싸 안고서, 다시 입술과 입술을 맞대며 깊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듯 눈이 동그랗게 커진 래미.
허나 이내 온몸에 힘이 스르르 풀리는 듯 손에 든 대본을 툭! 떨어트리고 만다.
이제 [은우]와 [현아]는 없었다.
두 사람은 온전히 이재윤과 도래미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게 찐한 버전이야. 알겠어, 도래미?”
이재윤이 입술을 떼며 말했다.
래미의 양 볼은 술에 취한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재윤은 그런 래미가 귀여워 볼을 꼬집어 보았다.
그런데 그때,
“너희, 껴안고 뭐하..는 거냐? 그러다 뽀뽀라도 할 기세다?”
연습실 방 문이 제대로 안 닫혔었나 보다.
살짝 열린 문 사이, 래원이 벙찐 표정으로 서 있었다. 과일 접시를 손에 든 채로.
“가..감독님!”
“오빠!!”
래미와 이재윤은 화들짝 놀라 사색이 된 얼굴로, 차마 래원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와중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래원이 키스 연습까지는 못 보고 포옹만 목격한 듯했으니까.
래원은 인상을 팍 쓴 채 래미의 연습실 안으로 들어섰다.
속으로는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으면서,
그리고 민망해하는 그들에게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할까 단어를 고르면서 말이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208화 – 리디북스
털썩—
퍽—
이재윤의 무릎과 방바닥이 빚어낸 마찰음이었다.
래원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재윤은 먼저 래원의 앞에 반듯하게 무릎을 꿇었다.
“도 감독님, 저 래미 많이 좋아합니다.”
순간, 래원의 머릿속에는 잊고 지냈던 이전의 삶이 떠올랐다.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래미와 결혼하겠다며 래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구차하게 매달리던 그 개자식의 모습이 겹쳤으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어 떨쳐내는 래원이었다.
‘그 자식이랑은 다르지⋯.’
괜스레 냉랭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서?”
“⋯ 래미랑 진지하게 만나고 싶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하는 이재윤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진심인 것 같았다.
예전 촬영장이나 런던에서 래원이 지켜본, 래미를 향한 이재윤의 눈빛 그리고 지금의 이 말과 행동까지도 전부.
‘적어도 전생의 그 개새끼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전생의 그놈은 래원에게 망나니처럼 흐트러진 모습만 보여줬더랬다.
래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며 허락해주기 전까지는 놓치 않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첫 만남부터가 그랬다.
허나 이재윤은 달랐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보호자에게 최대한 예를 갖추려는 듯 반듯한 정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래미나 이재윤이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
“근데 래미 너⋯. 연애 안 하기로 약속했다며, 멤버들이랑.”
“그..그건 브잇걸이 자리 잡기 전까지는 그러기로 했지⋯.”
“자리 잡았으니까 괜찮다는 거야?”
“조.. 조심할 거야! 멤버들한테도 먼저 양해 구하고 피해 안 가게 할 거고!”
“그럼 팬들한테는?”
“팬들한테는, 들키지 않는 게 예의겠지⋯. 내가 재윤 오빠랑 더 행복해져서, 그 에너지로 팬들한테 내가 받은 사랑보다 더 크게 보답할 거야. 그럼 되는 거 아닐까?”
사뭇 진지해진 래미의 태도에,
이재윤도 거들었다. 계속해서 무릎을 꿇은 채로.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서로에게 보탬이 되는 관계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시너지를 낼 수 있게요.”
“말이라도 못 하면⋯. 그 약속 지켜라.”
이에 래미와 이재윤이 물음표와 느낌표가 뒤섞인 표정으로 래원을 올려다보았다.
“더 행복해지겠다는 그 말. 꼭 지키라고.”
이제야 래원의 뜻을 이해한 듯, 래미가 벅찬 표정으로 래원에게 와락 안겼다.
“고마워, 오빠! 나 더 좋은 배우가 될게!”
둘의 관계가 래미에게 나쁠 건 없어 보였다.
배우에게는 다양한 감정의 경험이 필요하니까.
게다가 이렇게나 서로를 좋아하는 게 느껴지는 데 말이다.
서로를 보는 둘의 눈에 꿀이 아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감독님께 실망시켜 드리는 일, 절대 없을 겁니다. 래미한테 잘 할게요.”
이재윤은 환하게 피어난 얼굴로, 무릎을 펴고 일어서서 래원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여태껏 촬영장에서도 사석에서도 단 한 번도 래원의 말을 거역하거나 실망을 줬던 적이 없는 이재윤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이 말도 믿고 싶어졌다.
이들의 관계를 지켜주고 싶어졌다.
래미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말이다.
‘내 동생 래미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이번 생에는 꼭 행복해져야 하는 아이니까⋯.’
* * *
지난 몇 주간 안정원 실장은 다리오와 함께, 래원의 요청대로 루아와 만날 수 있게 추진했다.
하지만 사이큐스X 측은 끝까지 루아와의 만남에 대해 확답을 주지 않았더랬다.
래원의 기대와 달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대신, 사이큐스X의 직원이 직접 래원을 만나러 한국에 온다고 했다.
마침 한국의 아이돌 기획사와의 협업 체결 일정이 있어서 겸사겸사 들를 수 있게 됐다며.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때문에, 오늘은 여느 공식 일정과 달리 ‘그사알’ 팀이 래원에게 붙지 않았고,
사이큐스X 측은 업무 보안상의 이유를 들며 안정원 실장도 제외하고 오직 래원과 독대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도래원 감독님, 안녕하세요. 사이큐스X의 루아 담당 매니저입니다.)”
약속 장소인 청담동의 어느 한정식집 VIP룸에 들어서자, 단발의 금발 여인이 래원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버츄얼 휴먼 기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접목을 연구 중인 사이큐스X.
그곳의 직원으로 보이는 2명의 여인이었다.
한 명은 금발의 서양인, 한 명은 흑발의 동양계 영국인이라 생각했는데,
“안녕하세요, 제니 입니다.”
나머지 한 명은 한국계인 듯했다.
한국의 아이돌 기획사와 협업차 서울에 온 것이라 하니 한국어가 능통한 직원이 동행한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도래원 입니다.”
덕분에 래원도 편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의 이 자리가 루아와의 만남을 향한 초석이 되길 바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루아의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루아는 앞으로 더 잘 될 거예요.”
저들에게는 인사치레처럼 들렸겠지만 이는 사실이었다.
래원은 그녀의 스타성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완벽한 몸매와 얼굴, 영원한 젊음,
그리고 아름다운 음색에, 기계의 힘까지 빌려 완벽한 가창력.
게다가 감정 기복도 없고, 악플에 상처받지도 않으며, 논란을 일으킬 사생활도 없는 데다가,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니즈를 빠르게 반영하여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존재.
‘루아’의 선전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고,
아직 전성기의 근처도 가지 않았다.
“이런 건 루아를 직접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다음 기회에라도 꼭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래원이 아쉬움을 토로하자,
곧바로 제니가 금발의 여인에게 래원의 말을 영어로 번역해주었다.
‘아⋯. 제니는 사이큐스X 직원이 아니라 통역사인가보다.’
라고 생각하던 순간,
돌연 래원은 뭔가를 알아차렸더랬다.
‘어어? 저 목소리⋯?’
통역사 제니가 영어를 내뱉자 한국어를 말할 때와 달리 한층 낮은 톤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목소리 어디서 들어봤는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 제니? 누구였더라? 내가 전생에 알던 사람인가?’
래원이 기억을 더듬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찰나,
“(제니, 루아를 직접 소개해드려도 될 것 같아요.)”
금발의 여인이 건넨 말에
통역사 제니가 다시 입을 떼더니,
“도 감독님, 사실은.”
잠깐 뜸을 들이며, 목이 탔는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실은 제가 루아 입니다. 정확히는 루아의 목소리를 맡고 있어요.”
그랬다.
그녀의 목소리는 루아가 맞았다.
제니이자 루아는 래원에게 기나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영국의 지방 도시 코츠월즈로 이민을 갔던 것,
어린 그녀가 학교 친구들에게 인종 차별을 당했던 사건들,
가수를 꿈꿨으나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인정받기 쉽지 않았던 이야기,
무작정 한국에 와서 오디션을 봤지만 인형 같은 외모가 아니라서 번번이 퇴짜를 맞았던 일화,
아무리 연습하고 실력을 갈고닦아도 유럽은 물론 한국에서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연들,
결국은 다시 부모님이 계신 영국으로 돌아가 지금의 회사에 취직했던 사연까지 말이다.
“가수가 될 수 없다면, 가수 옆에라도 붙어 있고 싶었거든요. 팝스타를 가까이서 서포트 하는 사람이 되고자 사이큐스 뮤직에 입사했어요. 마침 신기술 접목 프로젝트에 투입이 됐고, ‘사이큐스X의 루아’가 됐죠.”
래원에게는 그녀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들렸다.
제니이자 루아.
그녀는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기술 개발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보니까 회사 입장에서 ‘루아’ 프로젝트는 적자였어요. 접을까 말까 하는 기로에서 OST를 만났고,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됐죠. 감독님 덕분입니다.”
“제니의 목소리 덕분이죠. OST를 워낙 잘 불러주셔서 드라마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 정말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진심이에요.”
제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루아의 성공이 ‘제니의 목소리 덕분’이라고 말한 사람은 래원이 처음이었으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신 분은 지금껏 없었는데⋯.”
제니의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제니의 성공이 루아라는 버츄얼 휴먼 덕분이라 말하곤 했더랬다.
– 제니가 노래는 잘해도 스타가 될만한 얼굴이나 몸매는 아니잖아.
– 좋은 세상이야? 끝내주게 예쁜 버츄얼 휴먼 뒤에 숨어서 성공을 누릴 수도 있고.
제니는 본인의 목소리 자체를 인정해준 래원에게 감동받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마음이 열린 듯 상기된 목소리로 재잘대기 시작했다.
“사실 에서 저를 적극적으로 기용해주신 분이 감독님이고, 게다가 한국인 감독님이라고 해서 정말 놀랐어요.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밖에 받은 기억이 없는데⋯. 신기했죠.”
“저도 루아가 한국인일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습니다.”
이생은 물론 전생에도 역시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 래원과 루아 사이에는 보이지 않은 끈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저희 엄마가 한국 드라마 광이세요. 감독님의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 ‘페르소나’, ‘골드 버튼’, 최근 ‘월미도의 선물’까지 다 저희 엄마가 즐겨 보시던 거더라고요!”
“어머님의 안목이 꽤나 훌륭하시네요. 하하. 역시 제니 씨 같은 아티스트를 낳고 키우신 분 답네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타고 래원이 농담을 던졌다.
“제니는요? 드라마 좋아하세요?”
“아⋯. 저는 사실 드라마보다 영화를 더 좋아해요.”
몹시도 솔직한 그녀였다.
“영화 ‘조커’를 진짜 좋아하거든요. 열 번은 넘게 본 거 같아요. 여기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영화 리스트에 있어서 또 보면서 왔어요.”
“조커! 저도 인상 깊게 봤어요.”
‘토드 필립스’ 감독하고 ‘호아킨 피닉스’가 출연한 영화 .
래원도 영화 연출 공부를 위해 봤던 작품이었다.
“왜 하필 ‘조커’예요?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요?”
문득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다.
이토록 영화 같은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있는 여인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 말이다.
“⋯ 저 같더라고요.”
루아이자 제니가 내뱉은 이 한 마디는 사람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극 중 아서는 광대로 일하다가 갑자기 해고당해요. 그대로 광대 조커 분장을 한 채로 집에 가다가 지하철에서 취객 3명에게 폭행까지 당하죠. 아서는 그들 모두를 총으로 쏘고 도망쳐요. 이튿날, 광대가 대기업 직원 3명을 살해한 이 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돼요.”
“아, 기억나요, 그 시퀀스.”
“극심한 빈부격차로 힘든 삶을 살고 있던 하층민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광대 분장을 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요.”
“맞아요. 아서의 총격 사건은 결국 상류층을 향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계기가 됐죠.”
“그때 아서가 털어놓은 대사가 볼 때마다 제 심장을 건드려요.”
“어떤 대사요?”
“‘지금껏 평생 나 자신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불분명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라고요. 저는 이 대사가 제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
“⋯⋯.”
래원은 왠지 모르게 숙연해졌다.
영화 속 ‘조커’이자 아서,
그리고, ‘루아’이자 제니.
둘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래원의 머릿속에 다음의 힌트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탑스타 현아’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현아’
래원에게 느낌표가 한가득 띄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