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213
‘내 영화 속 [현아]도 이 둘과 비슷한 인식 변화를 겪지 않았을까?’
며칠 전, 촬영을 중단했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현아]가 스케줄을 펑크내고 방황하는 몽타주 말이다.돌연, 콘티가 저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광각 렌즈와 망원 렌즈를 번갈아 쓰는 몽타주로 [현아]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면 되겠다고.
영화 의 ‘아서’처럼, 버츄얼 팝스타 로 사는 ‘제니’처럼 말이다.
“무슨 생각 하세요?”
래원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눈치챈 제니의 물음.
“아⋯. 말씀 들으면서 요즘 찍고 있는 영화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요.”
“어머, 그럼 제가 영감을 드린 거예요?”
“하하하. 그렇죠.”
“영광인데요?”
“아무래도 오늘 식사는 제가 대접해야겠죠?”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막혔던 장면에 대한 실마디를 얻었고,
루아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한 데다가,
루아의 비밀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좋아요. 오늘 밥은 감독님께 얻어먹을게요. 대신,”
말을 멈춘 제니가 옆자리 금발의 여인과 뭐라 뭐라 영어로 속삭이더니 다시 말했다.
“대신 감독님 지금 찍고 계신 영화 OST에도 저에게 맞는 곡이 있다면, 제가 부르게 해주세요.”
제니는 루아의 가치와 파급력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보답의 방법 역시 확실히 아는 사람이었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209화 – 리디북스
* * *
“컷! 좋습니다! 모니터하고 가겠습니다.”
오늘은 며칠 전 촬영을 중단했던 장면의 촬영이 이어지고 있었다.
래원이 준비해온 새로운 콘티로 말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래원의 주위로,
경훈 촬감과 래미를 비롯한 스텝, 배우들이 모여들었다.
모니터 속, [현아]는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커다란 옷으로 스스로를 가린 채 인파 속을 방황한다.
그런 [현아]의 모습이 길거리 풍경 속에 녹아들어 그 일부처럼 보인다.
광각 렌즈로 담은 풀샷이었으니까.
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사체를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때문에 이 커트에서 관객들은 [현아]를 몰래 살펴보는 시선이 될 것이다.
“확실히 지난번 콘티보다 좋네요.”
“기계적인 느낌 대신 커트가 살아있어요. 시선이 살아있달까?”
“나도요. 제가 연기로 보여주고자 했던 감정선이 온전히 담긴 것 같아요.”
스텝들과 래미가 만족스러운 듯 운을 뗐다.
래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도 만족스럽네요. 좋습니다! 이걸로 오케이하고, 이번에는 [현아]를 망원 렌즈로 멀리서 따볼게요.”
방금과 같은 장면을 다른 렌즈와 다른 샷으로 다른 각도에서 촬영하는 것이었다.
이 커트를 한 데 모아 편집하여, 감독이 관객의 시선을 컨트롤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래원이 생각해온 새로운 콘티, 새로운 연출적 의도였다.
같은 장면이라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관객의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조금 전 커트에서는 세상이 [현아]의 진짜 모습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광각 렌즈로 풀샷에 담았더랬다.
“도 감독님, 지금 굳이 망원 렌즈로 배경을 흐리시려는 이유가 [현아]와 세상을 분리해보려는 의도, 맞나요?”
경훈 촬감이 장비를 바꾸며 래원에게 물어왔다.
“네, 피사체의 화면 장악력을 최소로 만들어서 주변 환경에서 소외된 [현아]를 표현하고 싶어요.”
“좋네요. 굉장히 좋은 선택 같아요!”
경훈 촬감의 목소리가 상기되더니 손이 바빠졌다.
‘드라마틱한 꼭지 하나 만들 수 있겠는데?’
지금 촬영장 한쪽에서 이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구지성 PD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번 촬영 중간 때, 안 좋았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는지라 더욱더 흥미진진한 얼굴로 지켜보는 중이었다.
“자, 갑니다. 레디- 액션!”
숨죽인 채 촬영이 재개됐다.
지켜보던 구지성의 촉이 말했다.
쓸 만한 것을 건질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컷! 좋았는데 한 번 더 가볼게요.”
래원이 메가폰에 대고 외쳤다.
“[현아]는 지금 워낙 멀리서 풀샷이니까 다음 테이크는 움직임을 좀 더 크게 해주시고요.”
래미를 잡고 있는 경훈 촬감의 카메라,
이를 래원에게 비춰주는 모니터,
그리고 그런 래원을 찍고 있는 구지성의 카메라.
모두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컷! 오케이!”
몇 번의 테이크 끝에 얻어낸 래원의 오케이 사인.
현장의 스텝과 배우 모두가 속 시원한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래원의 주위로 다가왔다.
이대로 촬영을 마무리해도 될지 최종 모니터를 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촬영한 망원 렌즈 풀샷과,
아까 촬영한 광각 렌즈 클로즈업이 번갈아 띄워졌다.
“한 번씩 더 확인할게요.”
초집중한 얼굴로 숨 죽인 채 모니터만을 응시하는 사람들.
화면 속의 [현아]는 관객들과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기도 하고, 동시에 몰래 관찰되는 시선으로 비치기도 했다.
“대중들에게 유리되고 소외된 [현아]를 강조하는 샷과, [현아]의 감정 변화가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클로즈업을 번갈아 배치했습니다.”
래원이 설명을 덧붙이는 모습.
구지성PD는 이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이렇게 오늘 장면으로 관객의 시선과 감정을 컨트롤 했다면, 이다음 장면에서는 온전히 [현아]의 시선으로 카메라가 움직일 거예요. [현아]가 세상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거죠.”
래원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술팀이 먼저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역시 도래원 감독님!”
“촬영 중단되던 날에도 믿고 있었다고요. 이렇게 더 나은 대안을 찾아오실 것을⋯.”
조명팀과 촬영팀도 거들었다.
“비 오는 장면도 아닌데 텅스텐 타입의 필름을 챙겨오라시길래 뭔가 했는데⋯. 개인적으로도 오늘 너무 흡족한 작업이었어요!”
“특히나 오늘 협업 호흡이 척척이었던 거 같습니다. 래미 연기도 좋았고요.”
래원이 오늘 결과물에 만족한 만큼,
다른 스텝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래원에게는 과한 반응처럼 느껴졌지만,
‘이렇게까지 반응이 나올 일 인가⋯? 영화 전체에서 꽤나 중요한 장면인데 당연히 이 정도는 찍어줘야 하는 거 아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풀지 못했던 퍼즐을 다시 완벽하게 맞춰낸 것처럼 뿌듯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수고 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밝은 얼굴로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퇴근 준비를 하는 사람들.
그 사이로,
“그간 협조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구지성PD와 ‘그사알’ 카메라 감독들이 인사를 건넸다.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거든요. 마지막 날에 대어 한 마리 크게 건져가네요. 크하하!”
호탕하게 웃는 구지성 역시 현장의 다른 스텝들만큼이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도 감독님, 인터뷰 따는 일정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들 퇴근 준비를 하다 멈추고 팀을 배웅했다.
이날 이후 촬영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잠시 막혔던 강물이 다시 봇물 터지듯 흐르기 시작한 것.
래원에게 새로운 영감들이 콸콸콸 떠오르며 후반부 촬영에 활기를 더했다.
그렇게 다다른 크랭크업.
모든 스텝과 배우들이 모여 간단한 회식을 가졌다.
영화 개봉 후에, 그때는 지금보다 더 활짝 웃는 얼굴로 모이기로 기약하면서.
회식을 끝으로, 래원은 이제 고독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지금껏 배우, 스텝들과 복작대며 작업했다면 이제는 편집실에서 사투를 벌여야 할 때였으니까.
물론 편집 감독, 음악 감독, CG 감독들과의 협업이 남아있지만 이는 촬영 현장의 협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홀로, 혹은 다른 감독 1~2명과 편집실에 보내는 시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집중하기도 좋았고, 드라마를 작업할 때보다 편집에 할애할 시간적 분량적 여유가 충분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 장면은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까? 내 의도를 읽어줄까?’
‘여기는 내 미장센이나 연출적 욕심보다, 오롯이 배우의 감정선이 더 잘 전달되는 커트를 골라보자.’
래원 혼자만의 싸움인 듯 보였으나,
이는 미래의 관객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외롭지 않았다.
* * *
영화의 후작업이 한창이던 어느 날,
래원은 간만에 편집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출근했다.
하람 음감과의 음악 회의가 잡혀있는 날이었다.
하람 음악감독.
이생에는 부터, 이전의 삶에서도 몇 차례 래원과 작업한 바 있는 음악감독이었다.
래원과 호흡이 곧잘 맞고 실력도 출중한 하람은 드라마 음악만 줄곧 해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 작업에 합류했다.
이는 물론 래원의 선택이었다.
자신의 음악을 펼치고 뽐내기보다, 한 발 뒤로 물러서 시청자들과 관객들이 더 편하고 재밌게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서포트 하는 음악 감독.
하람 감독은 이러한 면에서 수준급의 음악 연출력을 지닌 사람이었으니까.
“흐으흠⋯.”
래원이 편집해온 비디오와, 하람 음감이 준비한 오디오를 함께 재생시켜보던 중,
두 사람 모두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뭔가가 어긋나네⋯.’
‘음악이 너무 앞서는 거 같기도 하고⋯.’
영상 자체만 놓고 봤을 때 분명 수준급이었고, 음악도 따로 들으면 괜찮은 결과물이었다.
그러니 이 둘을 합치면 1+1=2 이상의 시너지를 내야 하는 상황.
허나, 지금은 2에도 못 미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싱크가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
“음악이 너무 오바하네요. 음악은 반 발자국 뒤에서 영화의 흐름을 밀어줘야 하는데⋯.”
하람 음악감독이 먼저 입을 뗐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나 드라마였다면 더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음악을 수정하면 되는 일이었으나, 이것은 영화 작업이었다.
때문에 래원은 생각을 달리했다.
“하람 감독님, 영화에서는 음악 또한 미장센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이 음악의 템포가 적절한 것 같아요. 영상의 호흡을 당기면,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요?”
하람 감독이 다시 비디오와 오디오를 동시 재생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것도 방법이겠네요.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도 감독님 연출 의도에 따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이 시퀀스는 제가 비디오를 재편집해서 템포와 호흡을 당기는 걸로 정리할게요.”
이렇게 잠시 난관에 부딪혔다가도, 더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정이 래원에게는 굉장히 즐거웠다.
덕분에 하람 감독에게도 첫 영화의 긴장보다는 래원과 다시 작업하는 것에 대한 설렘이 더 컸다.
“도 감독님, 오신 김에 OST 보컬 작업물도 들어보고 가실래요? 아직 믹싱 전이긴 하지만요.”
“좋죠!”
영화 의 OST는 전체 15곡 정도 됐다.
그중 보컬이 들어가는 곡은 3~4곡 정도로 작업 중인 상황.
“녹음 뜬 보컬 곡은 2곡이에요.”
하람 음감이 래원의 앞에 종이를 4장 내밀었다. 최종 가사가 적힌 종이였다.
“우선 브라이트 걸스가 부른 거 들어보실게요.”
“제목이 ‘너였어’ 맞죠?”
“네넵.”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음악.
보컬곡 중 가장 밝은 노래였다.
불현듯 찾아온 사랑에 대한 설렘을 표현한 [현아]의 테마곡으로, 통통 튀는 리듬의 경쾌하고 밝은 템포감이 살아있었다.
여기에 맑고 러블리한 노노카와 이나의 보컬이 더해지며 발랄함 또한 느껴졌다.
“좋네요. 노노카랑 이나가 가이드 느낌을 아주 잘 살렸어요.”
“저도 만족스럽더라고요. 이제 믹싱, 마스터링만 잘하면 되는 곡이에요.”
래원이 가사 종이를 한 장 넘겼다.
“이게 래미 곡이었던가요? ‘세상이 모르는 나’⋯?”
그랬다. 하람 음감이 재생시킨 다음 트랙에서는 래미의 솔로곡이 흘러나왔다.
미디엄 템포의 팝발라드.
성숙한 느낌의 가사와, 초반에 건조하게 읊조리는 래미의 음색이 제법 잘 어울렸다.
후반으로 치닫자 래미가 폭발적인 가창력을 터뜨렸고, 이는 드라마틱한 선율에 실려 래원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기대 이상이었다.
다른 이였다면 벌써 칭찬을 내뱉었을 정도의 퀄리티였으나, 이것은 래미의 결과물이었기에, 래원은 말을 아꼈다.
먼저 입을 떼는 하람.
“정말 좋죠? 놀랐어요. 솔직히 래미 씨한테 맡길 때도 긴가민가했고, 녹음 들어가기 전까지도 반신반의했거든요.”
이에 래원은 자신의 귀가 틀리지 않았음을, 자신이 팔불출이 아님에 안도하며 싱긋 웃었다.
“래미 씨가 브잇걸에서 보여준 포지션이랑은 너무 다르잖아요. 이렇게 성숙한 노래도 부를 줄 아는구나 싶더라고요.”
래원은 생각했다.
‘도래미, 이재윤⋯. 약속 잘 지키고 있네?’
서로에게 시너지를 내겠다는 약속.
더 나은 배우가 되겠다는 약속.
둘의 연애가 래미의 감정선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데에 일조했음을 확인한 셈이었다.
“나머지 2곡은요? 아직 녹음 전인가요?”
래원이 가사 종이를 넘기자,
2장이 더 남아있었다.
“한 곡은 섭외 거절당했고요.”
“누구한테요?”
“레이첼유 한테요.”
“아, 결국 섭외 넣으셨구나⋯.”
‘레이첼 유’는 현재 국내 드라마와 영화 OST 섭외 1순위 솔로 여가수였다.
“작업이 워낙 밀려있어서 우리 스케줄을 맞춰줄 수가 없다더라고요.”
“예상했던 거잖아요. 할 수 없죠.”
“그리고 나머지 한 곡은 필요할 것 같아서 추가로 작곡한 곡이에요. 필요 없으면 안 쓰셔도 되고요.”
“가이드 있어요?”
“네, 잠시만요. 들려드릴게요.”
“아, 감독님! 틀어주시는 김에 2곡 다 틀어주세요. 레이첼유한테 갔던 곡도요.”
그 곡은 래원이 아는 곡이지만 다시 들려달라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