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78
래원은 드라마 종방까지는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식구들이라는 생각으로 애정 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 큰일인데요? 이러다 우리 너무 대박 날 거 같은데요?”
성격 좋은 우종세 배우가 분위기를 띄우자,
동갑 라인으로 벌써 친해진 원준혁과 엄하늘이 질 수 없다는 듯이 거들었다.
“그러게요. 시청률 30% 넘으면 어떡하죠? 그러면 다른 팀에 너무 미안해지는데···.”
“어떡하긴, 연말 시상식 우리가 다 휩쓰는 거죠.”
이에 대회의실을 가득 메운 스텝과 배우들이 모두 빵 터졌다.
낯을 가리는지 오늘 유독 차분하고 조용하게 있던 함현우와 류소현 마저도, 대본으로 입을 가리며 크게 웃었다.
뒤에서 이 모습을 흡족하게 지켜보는 월미도88과 JC그룹의 홍 실장.
래원의 눈에 두 사람의 환한 표정이 보이자 래원은 왠지 안심됐다.
이어서,
차여름, 차가을 작가와 황태수CP 그리고 래원을 중심으로 스텝들과 관계자들이 몰려들어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동안.
배우들은 대본 리딩 메이킹 영상에 들어갈 인터뷰를 따고, 사진을 찍는 시간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현수]-[강다원]-[소종선] 조합의
남자 주연 셋 ‘함현우-원준혁-우종세’가 중심이 됐다.
다음은, 연상연하 커플 [강다원]-[하지나] 조합으로 ‘원준혁-엄하늘’의 인터뷰와 투샷이었다.
둘 다 경험 많은 베테랑인 데다가 동갑이라 홍보팀 스텝과 포토그래퍼가 따로 뭐라 주문할 것도 없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현수]의 딸 [현세민]과 연인이 될 [이소이]까지 합세한 ‘함현우-정지예-류소현’ 조합도 주목을 받았다.
“현세민, 아빠한테 조금 더 붙을게요. 팔짱도 끼고 더 친한 척 좀 해주세요.”
홍보 스텝의 주문.
이에 뜻밖에도 정지예가 인상을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무심코 배우들을 지켜보던 래원도 정지예의 이 모습을 목격했다.
‘뭐지···? 함현우 성격에 갓 20살 된 여배우를 함부로 터치했을 리도 없고. 저 과민 반응은 뭐야?’
래원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지예.
지난 삶을 비추어봤을 때, 연기는 곧잘 하지만 스타성은 끝까지 없었던 배우였다.
한마디로 저렇게 까탈스럽고 도도할 이유가 없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타입인가? 그렇다기에는 과한데? 함현우가 저렇게까지 당황해하잖아.’
옆에 서 있는 류소현 역시 함현우의 당황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대신 그녀가 함현우에게 더 살갑게 붙으며 웃었다.
찰칵- 찰칵-
“마지막으로 아빠랑 딸 투샷 갈게요.”
포토그래퍼의 주문에,
함현우가 애써 어색한 기색을 감추려 정지예의 어깨를 감싸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충분히 아빠와 딸이 지을 수 있는 포즈였다.
래원을 비롯한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보기에 그랬다.
허나 정지예에게는 아니었나보다.
그녀는 끝내 함현우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붙지 않았다.
자꾸 붙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상하기에
홍보팀 스텝과 포토그래퍼는 적당한 선에서 촬영을 마무리 짓는 듯했다.
‘뭐지? 촬영 때도 저러면 곤란한데? 정지예랑 따로 이야기를 해봐야겠네···.’
래원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사이,
홍 실장이 다가와 래원을 툭 쳤다.
오늘 상견례와 대본 리딩이 만족스러웠는지 그의 목소리가 한껏 고조돼 있었다.
“도 감독, 내가 우리 스텝 배우들한테 오늘 대접 좀 하고 싶은데··· 괜찮겠어?”
“어우, 그럼 감사하죠. 저한테 물으실 필요 있나요.”
“에이, 그래도 여기서는 선장님 허락을 받아야 하잖아. 내가 그 정도 눈치는 있다고.”
홍 실장이 껄껄껄 웃더니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이대로 헤어지긴 아쉽네요. 다 같이 저녁 드시러 가시죠? 제가 쏘겠습니다.”
이에 아까 박수 소리 만큼이나 커다란 호응이 쏟아졌고, 대회의실이 다시 한번 요란하게 울렸다.
이 드라마의 닻이 성공적으로 올려진 순간이었다.
* * *
산타마리아노벨라.
이탈리아 피렌체의 약재 상점에서 시작된 니치 향수 브랜드이다.
래원은 「 멜라그라노 」 라고 적힌 이 향수를 래미에게 건넸다.
대본 리딩을 치르고 난 후, 오늘 밤에야 비로소 캐리어를 열어볼 정신이 생겼더랬다.
“출장 선물.”
“우와앙!! 산타마리아노벨라 멜라그라노! 대박! 우와앙! 고마워 오빠.”
파자마를 입은 채로 눈에 잠이 잔뜩 왔던 래미는 뜻밖의 선물에 잠이 달아난 듯 환호했다.
단숨에 상자를 뜯더니 곧장 향수를 뿌려본다.
칙칙-
석류 향 같으면서도 비누 향 같은 자연스러운 느낌의 향이 래원의 집에 퍼지기 시작했다.
래원이 이 브랜드나 향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이것이 래미가 좋아하는 향수인 것만은 알고 있었다.
지난 삶에서 성인이 된 래미가 처음으로 산 향수도, 래원이 해외 로케 출장 갈 때마다 부탁하던 향수도, 항상 이 ‘산타마리아노벨라 멜라그라노’ 였으니까.
“오빠, 내가 이 향수 갖고 싶어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어? 어···. 그게.. 그.. 저번에···”
“아, 저번 상담에서 우리 담임 쌤이 보여주셨구나? 내 50문 50답?”
“어? 어어···. 그..그래 그거!”
순간 래원은 겨우 위기를 넘겼구나 싶었다.
“근데 이 향수를 왜 갖고 싶어했던 거야? 래미 너 향수 같은 거 써 보지도 않았잖아.”
“내가 좋아하는 배우 ‘에바 페이지’랑 ‘소피 안젤라’가 쓰는 향수라 그래서 성인의 날이 되면 이걸 꼭 받고 싶었어.”
이건 몰랐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에바 페이지? 영화 본드걸?”
“웅. 에바 페이지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핸드백을 남자 주인공이 엎어버리는 장면, 오빠도 기억하지?”
래원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영화.
몇 년 후에도 몇 번이고 돌려보시던 영화.
“그 가방에서 나온 게 이 향수였어. 협찬이나 PPL이 아니고 에바 페이지 개인 소지품이었대. 이 향수가 좋아서 평생 이것만 뿌리고 있다더라고.”
“그랬구나···.”
“오빠한테 이거 받았으니 이제야 고백하는 거지만, 난 ‘에바 페이지’나 ‘소피 안젤라’ 같은 배우가 되고 싶거든. 외유내강! 팔색조!”
래미가 이처럼 말하며 활짝 웃었지만
래원은 놀라서 같이 웃을 수가 없었다.
‘뭐야···? 그럼 래미가 과거에도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거라고? 말도 안 돼···. 꿈 없이 그저 해맑게 살았던 게 아니었어?’
래원은 왠지 모를 죄책감에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가까스로 참으며,
대신 래미에게 말을 시켰다.
“브잇걸 준비는 잘 돼가?”
“웅. 멤버들끼리 사이가 엄청 좋아. 그래서 연습이 힘들어도 무지 재밌어.”
“누구랑 제일 친해?”
“움··· 으음···. 한 명만 딱 꼽기는 좀 그래. 노노카 언니는 보컬이 진짜 짱짱이고, 내가 한국말 가르쳐주면서 많이 친해졌어. 언니가 나 덕분에 발음 많이 늘었다고 떡볶이도 자주 사줘.”
“그리고?”
“이나 언니는 같은 팀 되기 전부터 내가 좋아했어. 춤을 완전 잘 추고 엄청 멋있거든.”
래원은 재잘거리는 래미를 보며 이내 브라이트 걸스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래원도 기억하는 이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니까.
“나머지 한 명이 ‘솔라’ 였나?”
“웅웅. 솔라는 나랑 동갑. 자꾸 챙겨주고 싶은 애야. 눈물도 많고 애교도 많아서.”
‘이나’와 ‘솔라’는 훗날 연기도 하게 된다.
당시 래원은 아이돌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배우로 전향한 아이돌만큼은 알았다.
그만큼 존재감 있던 이름들이기도 했다.
‘래미의 미래에 도움이 될 관계 같은데? 래미도 최종적으로는 배우를 하고 싶어하니까.’
그리고 어쩌면 래원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를 관계였다.
드라마 판은 안에 속해서 둘러보면 생각보다 너무나 좁은 업계이기 때문이다.
* * *
“으아. 시원-하다!”
클럽하우스에 딸린 뜨끈한 온천 속,
래원과 황태수 그리고 홍 실장은 지금 이곳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다.
두 달 만에 다시 모여 신나게 라운딩을 치른 직후였다.
“도 감독, 유럽 가서 뭘 어떻게 한 거야?”
“예?”
홍 실장의 물음에 래원이 반문했다.
“세르지오 보욜라, 기억하지? 3대 보욜라.”
“그럼요. 굉장히 인상적인 분이셨습니다.”
“그분이랑 무슨 일이 있었어?”
“무슨 일..은 딱히 없었지만 많이 배우고 왔습니다. 말 그대로 장인 그 자체셨어요. 인생 선배로서도 존경스러운 분이시고요.”
“그 양반이 사람 까다롭게 보기로 유명한데, 도 감독이 그분 눈에 제대로 들었나 봐?”
래원이 여전히 물음표를 띄우며 홍 실장을 바라보자,
그가 껄껄껄 웃었다.
“도 감독이 다녀간 뒤로 손수 원작 웹툰까지 찾아보셨다는군.”
“아, 를요? 그 웹툰 플랫폼이 올해부터 서유럽 5개국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이렇게 반응이 즉각적일 줄은 몰랐네요.”
황태수가 신나게 홍 실장의 말을 받았다.
“곧 K웹툰, K드라마의 전성기가 올 거야.”
“그럴 겁니다. 도 그 전성기를 만드는 작품이 될 수 있게, 저희도 열심히 뛰어야지요.”
“아무튼 보욜라가 우리 드라마에 관심이 생기셨는지, 당신이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알려달라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싶다는 말씀을 친히 주셨어.”
“··· 그분이 직접이요?”
“그렇다니까? 껄껄껄. 도 감독 뭐 원하는 거 있나?”
홍 실장의 상기된 말에 황태수는 물론 래원도 토끼 눈이 되었다.
종전까지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래원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면 천천히···”
“있습니다.”
지난 12월부터 화장실에서도 침대에서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이 드라마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래원이기에, 홍 실장의 물음에 대답하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 달 피렌체 로케 촬영 때, 보욜라의 개인 작업실을 촬영 장소로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카메오 출연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래원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내놓은 말에,
홍 실장은 다시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
‘보욜라의 개인 작업실 공개를 요구한다고? JC푸드 구 대표님 말대로 역시 재밌는 친구야.’
홍 실장이 탕에서 나와 가볍게 몸을 씻고 온천을 나서 탈의실로 향했다.
황태수와 래원도 그를 뒤따랐다.
래원은 옷을 입으며 전에 청강하며 봤던 K본부 다큐멘터리 인터뷰 영상을 떠올렸다.
보욜라 매장과 창고, 개인 작업실 등등 곳곳이 공개되었지만,
단 한 곳 ‘세르지오 보욜라의 개인 작업실’ 만은 나오지 않았다.
그가 개인 작업실까지 따라 들어오려는 취재진을 막아섰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
세계 최고의 가방 장인의 은밀한 공간.
래원은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보욜라는 우리나라 패션 업계나 명품 마니아들 사이에서 꽤 유명인사였다.
드라마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할뿐더러, 드라마의 위상을 드높이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제 멀끔한 모습으로 클럽하우스 로비에 나온 세 사람.
홍 실장이 문득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지금 피렌체 시각이··· 오전 11시쯤 됐겠네?”
중얼거리며 영상 통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다른 손을 들어 황태수와 래원를 향해 손짓하자,
두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홍 실장 곁에 다가섰다.
– Pronto?(여보세요?)
이윽고 홍 실장의 휴대폰 화면 속에 세르지오 보욜라가 등장했다.
두 사람은 이탈리어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홍 실장은 젊은 시절 명품 업계에서 오래 몸담아서 그런지 이탈리어에 능숙해 보였다.
“(말씀 주신 것, 도 감독과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드라마 촬영에 당신의 개인 작업실을 빌리고 싶다고 합니다. 카메오로 출연까지 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고요.)”
이에 휴대폰 속 세르지오 보욜라는 굳게 다문 입술을 쭉 내밀며 손바닥으로 뺨을 긁어내렸다.
고심하는 듯, 그의 얼굴 근육 사이로 주름살이 더욱더 깊고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꼴깍-
옆에서 황태수의 침 넘기는 소리가 래원에게까지 들렸다.
이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 10분처럼 느껴졌다면 과장일까?
곧, 화면 속 보욜라가 주름진 두 입술을 열었다.
그의 입꼬리가 엷게 올라갔다.
–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77화 – 리디북스
세르지오 보욜라의 짧지만 힘이 실린 대답.
이에 JC그룹 홍 실장과 황태수 그리고 래원은 안도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장인 정신을 저희 드라마에 담아낼 수 있게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해당 콘티랑 촬영 제안서는 다음 주까지 미리 드리겠습니다!”
홍 실장이 이 같은 래원의 말을 이탈리아어로 전하며 영상 통화를 마무리했고,
황태수는 흡족한 손길로 래원의 어깨를 연신 두드려주었다.
“시장하시죠? 여기 앞에 우럭 매운탕 끝내주는 집이 있더라고요.”
“매운탕 좋지.”
“가시죠.”
황태수가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표정으로 앞장섰다.
래원이 그를 뒤따르며 차여름과 차가을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문자로 전했다.
즉각 답장이 왔다.
[차여름] 이런 대본 수정이라면 격하게 환영입니다 🙂 [차가을] 보욜라의 도움으로 현수 캐릭터가 훨씬 더 프로다워질 거 같아요^^ 넘 좋네요, 피디님 덕입니다! 수고 많으셨어요!래원의 머릿속에 벌써 보욜라의 작업실 장면이 그려지고 있었다.
‘뜻밖의 수확이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얼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제 파악이 된다. 이 관계를 계속 잘 이어 가봐도 좋겠어.’
* * *
한편, 지금 이 순간 프로덕션을 통틀어 유일한 문젯거리로 급부상한 ‘정지예’.
그녀는 자신이 대본 리딩 때 끼친 파장을 깨닫지 못한 채로,
지금 집 침대 누워 얼굴에 팩을 올리고 대본을 보며 뒹굴거리고 있었다.
지이이이이잉—
휴대폰 진동이 울리자마자
기다린 것처럼 반색하며 전화를 받는 정지예.
“어, 오빠아!”
– 어디야 우리 지예?
“나? 지금 집에 혼자 있지.”
– 혼자 아니지! 오빠랑 같이 있는 거야! 우린 떨어져 있어도 함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