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79
“아 뭐양···!”
– 대본 리딩은 잘했고?
“고러엄. 누구 여친인데!”
– 처신 잘하고 있지? 스킨십은 절대 노노!
“알겠엉”
– 남자 배우나 스텝들한테 절대로 먼저 인사하지 말고.
“도도하게 잘 하고 있당. 오빠가 시키는 대로.”
– 굿잡, 정도도!
“근데 함현우랑 붙는 씬이 많아서 걱정이야. 딸 바보, 아빠 바보 캐릭터거든.”
– 딸바보, 아빠 바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스킨십은 다 빼!
“그래도 되..나?”
–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어딜 감히 연기를 빙자해서 내 지예를 함부로 만지려 들어!
“그럼 대본에 그렇게 쓰여있는데 어떡해?”
– 우리 지예가 이렇게 순진해! 어떡하긴, 대본을 바꿔야지.
“대본을···?”
– 촬영은 기한 맞춰서 해야 하고, 배우가 연기를 못하겠다는데··· 지들이 어쩔 거야? 대본을 배우한테 맞게 바꿔줘야지.
“연기를 못하겠다고 하라고···?”
– 말로 하라는 게 아니라. 과한 스킨십에 울렁증이 있다고 해도 되고, 살짝 쓰러져도 되고··· 방법은 많잖아?
“······.”
– 지예야? 너 설마 지금 망설이는 거야? 난 내 지예가 TV 속에서 다른 남자랑 붙어 있는 꼴 절대 못 봐. 너 오빠 안 보고 싶어? 헤어질래?
“··· 아니. 그건 싫어.”
– 나도 그래. 그러니까 잘하자. 사랑해 지예야, 쪽!
“나..나도. 쪽!”
그렇게 통화를 마친 정지예는,
대본을 빠르게 넘기며 살펴보았다.
그리고 함현우와 붙는 씬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체크하기 시작했다.
* * *
한가로운 오후의 SBC 드라마국.
“아··· 뭐였을까? 대체 왜 그랬지?”
래원은 자리에 앉아 대본 리딩 때의 황당했던 상황을 복기하고 있었다.
‘정지예랑 함현우 사이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정지예가 그렇게 대놓고 함현우와 거리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함현우가 오랜만에 복귀한 거긴 하나, 그래도 정지예한테는 십몇 년 선배인 데다가 실제 나이 차도 띠동갑 이상이었기 때문.
‘너무 선배라 불편해서 그랬나···? 아냐, 그런 거리감이나 경외심과는 완전 달랐어.’
래원의 생각은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만큼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한숨을 푸욱 내쉬는데,
휴대폰이 요란하게 래원을 불렀다.
“네, 기자님.”
– 도 피디님, 간만입니다. 유럽 로케 답사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잘 지내셨죠?
연예 매체 ‘디스타임’의 박 기자였다.
디스타임은 집요하고 크리티컬한 자체 기획 기사로 유명한 매체다.
지난 1월1일에 ‘샤이닝 보이즈’ 리더 ‘기용’의 대마초 혐의와 사내 열애설을 터뜨린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박 기자는 드라마 때, 래원이 미연에 문제의 캐스팅을 바꿀 수 있게 정보를 주며 도와준 사람이었다.
당시 신기중의 음주 운전 사고를 귀띔해주고, 지난 삶에서도 래원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던 사이.
“아휴, 정신없습니다. 요새.”
– 상견례랑 대본 리딩 잘 마쳤다고 들었습니다.
“네, 덕분에요.”
– 축하드립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하반기 기대작 아닙니까? 저도 사심 가득 기다리는 드라마고요.
“하하.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 간만에 피디님 목소리도 듣고 싶고, 기삿거리 던져주실 거 없나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글쎄요, 아직 촬영 전이라 특별할 게 없네요. 이슈 생기면 박 기자님께 제일 먼저 연락드리겠습니다.”
–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도 피디님.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 서로 잘 부탁하는 걸로 하죠. 크하하. 그럼 들어가세···.
“잠깐만요, 박 기자님!”
– 네?
래원은 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다른 드라마국 식구들을 피해서 자리를 옮겼다.
“혹시, 정지예 배우에 대해서 뭐 아는 거 없으세요?”
– ··· 정지예요?
래원의 물음에 전화 너머로 박 기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뒤집히는 게 느껴졌다.
“네, 정지예.”
– 맞다. ‘소철않’에 정지예 나오죠! 함현우 딸로.
“네,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될 만한 거나, 제가 감독으로서 알아둬야 할 게 있나 싶어서요.”
– ··· 정지예, 특이하게 굴죠? 막 철벽치고?
“··· 그걸 어떻게?”
– ··· 피디님, 다음에 꼭 ‘소철않’ 기삿거리 단독으로 던져주셔야 합니다.
“여부가 있나요!”
– 정지예가 이상해진 게 남친을 사귀고 나면서부터라면, 믿으시겠어요?
박 기자의 설명은 이러했다.
중학생 때부터 연기를 시작해서 모범생으로 이미지를 잘 유지하던 정지예가,
올해 갓 성인이 되고 남자 친구가 생기면서 돌변했다는 것.
“그 남친이 누군데요?”
– ··· 김곤이요.
“예? 김곤이요?”
– 네. 나이차도 꽤 나고, 분명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아요.
디스타임에서도 그 자세한 내막을 취재 중이라고 덧붙이며 둘 사이의 통화가 마무리됐다.
래원은 허탈한 듯 웃었다.
“아, 뭐야···. 그럼 정지예가 이상하리만치 함현우랑 거리를 뒀던 게 전부 김곤이 시킨 거였어? 갓 20살 된 애를 조종하고 있었던 거야?”
김곤.
30대 초반의 스타급 남배우.
비교하자면 원준혁, 엄하늘과 비슷한 급이었다.
지금은 전성기라 그러했지만
몇 년 후 이 업계에서 거의 퇴출되다시피 한다.
나르시시트이자 컨트롤 프릭으로 밝혀지는 사건이 대대적으로 터지기 때문.
다수의 어린 여배우들을 가스라이팅하고 조종하며 수많은 프러덕션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이, 훗날 밝혀진다.
“정지예도 김곤 여친 리스트에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다른 여배우들만큼 안 유명해서 안 밝혀진 건가?”
래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하아···. 이거 아무래도 내 입장에서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캐스팅 교체를 하는 게 맞나?”
허나 래원은 왠지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김곤의 여친 리스트로 묻혀버리기에는 아까운 배우였으니까.
스타성은 부족해도 연기력만큼은 분명 아까웠다.
“정지예가 아직 촬영장에서 깽판을 친 것도 아니고, 그냥 내쳐버리면 확실히 우리가 손해야. 연기나 여고생 역에 맞는 감수성, 이미지 싱크로율, 교복이 잘 어울리는 것도··· 여러모로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선택지란 말이지···.”
김곤 따위 때문에 드라마에 손해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한 래원은,
곧바로 다른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 * *
“그러니까요 감독님···. 저희도 지예랑 김곤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습니다.”
정지예의 소속사 대표실.
래원은 정지예 문제를 툭 터놓고 협상하고자 찾아온 이곳에서, 예상치 못한 반응을 맞닥뜨렸다.
대표가 안경을 벗어 던지고 한숨을 푹푹 쉬더니,
빨간 립스틱이 짙게 발린 입을 끔벅이며 오히려 래원에게 하소연을 퍼붓는 것이다.
“아시겠지만, 우리 지예가 원래부터 그렇게 무개념은 아녔어요. 지금 제 마음 같아서는 이걸 전부 확 터트려서 둘 사이를 갈라놔 버리고 싶은데···. 누워서 침을 뱉을 수는 없잖아요, 하아.”
소속사 차원에서도 이미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해결하는 과정에서 꽤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 듯했다.
“도 감독님이 우리 지예, 김곤 그 새끼랑 헤어지게 좀 도와주세요!”
“예? 제가요?”
“네네. 그 자식이 지예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지예가 이젠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요.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았고, 우리가 계약 파기 못 하는 걸 아는 거죠.”
“대표님도 손을 못 쓰셨는데 제가 말한다고 들을까요?”
“네, 들을 거예요. 도 감독님 말씀은 제 말보다 잘 들을 겁니다.”
“······?”
“지예가 감독님 전작들을 좋아했거든요. 이번 오디션도 지예가 직접 넣은 거였어요.”
“아니, 근데 왜 이런 깽판을···.”
“제 말이요! 어휴, 이 기집애가 나중에 정신 차리고 얼마나 후회를 하려고 이러는지···.”
답답한 듯 눈썹이 팔자를 그리며 거의 울상이 되어버린 대표.
래원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결심했다.
“대표님 말씀 다 들으니, 지예 씨가 아직 어린 친구라 앞뒤 분간을 못 하는 거란 생각이 드네요. 일단 제가 한번 직접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난 삶에서 김곤과 함께 폭로됐던 그 여배우들을 생각하면,
정지예도 그 대열에 들어가게 될까봐 걱정이 됐으니까.
자체가 과거에는 없던 드라마였으니, 앞으로도 래원이 경험한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래원은 김곤으로 부터 자신의 드라마를 지키고 싶었고,
이제 갓 미성년자에서 벗어난 정지예가 이상한 놈에게 걸렸다는 이유로 배우의 꿈을 접게 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였다.
‘그래도 안 되면, 그때 캐스팅 교체하지 뭐.’
정지예가 그만큼 버리기에는 아까운 카드였으니까.
* * *
SBC 드라마국의 회의실.
이곳에 래원과 정지예 배우, 단둘이 앉아있다.
래원은 사안이 사안인 만큼 조심해서 나쁠 건 없기에 정지예와의 면담 장소를 이곳으로 택한 것이었다.
양쪽 모두에게 여러 의미로 안전한 장소였다.
회의실 복도에서 투명한 창을 통해 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까.
물론 회의실 문은 꽉 닫아두었다.
“오늘 지예 씨를 부른 건,”
래원이 운을 띄우자 정지예가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긴장한 기색으로 쳐다보았다.
“외람되지만 김곤이랑 거리를 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요.”
“···네?”
당황해서 얼굴이 새빨개지는 그녀.
“지예 씨네 회사 대표님께 말씀 들었어요. 지금 지예 씨가 김곤한테 이용당하고 있는 거예요. 아니, 우리 드라마 전체가 이용당하는 거죠.”
래원은 분명하고 논리적이면서도 조곤조곤 따뜻하게 정지예를 설득했다.
감독으로서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어른으로서 걱정되는 마음이 앞섰다.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당장 캐스팅을 교체하고 내칠 수도 있었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젊다못해 어린 정지예에게서 래미가 겹쳐 보였기에, 지금 한 차례의 기회를 주고자 부른 것이었다.
그것이 래원과 드라마의 입장에서도 손해를 피하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지예 씨가 처음에 배우의 꿈을 갖게 된 때를 떠올려봐요. 같이 연기 시작했던 친구들, 지금 얼마나 남았어요? 이 정글 같은 이곳에서 살아남아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한 과거의 자신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미래 걱정은 안 돼요?”
정지예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유찬이 트레이에 커피와 주전부리를 담아서 복도를 따라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유찬이 손을 들어 문에 대고 노크를 하려는 찰나,
– 난 걱정 됩니다. 계속 이렇게 김곤한테 휘둘리다가 지예 씨 커리어 아작나요! 그런 건 사랑이 아닌 거 알죠? 김곤이 지예 씨를 자기 인형처럼 갖고 노는 거지···. 진정 사랑했다면 지예 씨의 일을 존중해줬을 거예요.
유찬은 복도에 난 환기구 틈으로,
안에서 흘러나오는 래원의 상기된 목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헐?! 김곤?”
순간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읊조림에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는 유찬.
‘래원이 형이 헛소리할 리는 없고, 김곤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정지예랑 거의 띠동갑 아닌가? 인형처럼 갖고 논다고?’
유찬은 기겁하며 차마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멀뚱멀뚱 트레이만 들고 서 있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찬아, 거기서 뭐하냐?”
황태수였다.
“왜? 지금 들어가면 안 되는 분위기야?”
그가 물으며 걸어오자, 유찬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오늘 래원이가 정지예는 왜 따로 부른 건데?”
유찬의 반응에 황태수는 더더욱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다가섰다.
– 김곤한테 이렇게 휘둘리려고 힘들게 배우 된 거 아니잖아요. 우리 드라마 오디션도 2차까지 치르고 지예 씨 실력으로 결국 이 배역 따냈는데, 전부 다 망치고 싶어요? 꿈이랑 커리어만 생각하세요. 지금 김곤보다 상대역 함현우한테 집중해야 할 때에요. 지예 씨 자신을 위해서, 지예 씨를 믿어준 우리 모두를 위해서요.
살짝씩 들려오는 래원의 목소리.
래원은 한창 정지예를 설득 중이었다.
“··· 이게 다 뭔 소리냐?!! 김곤한테 휘둘려?!! 뭘 전부 다 망쳐?!!”
놀란 황태수의 물음에 유찬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안에서도 황태수의 흥분한 음성을 들었는지 래원의 말소리가 순간적으로 멈췄다.
저벅저벅-
래원의 말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래원과 정지예 그리고 황태수와 유찬, 네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78화 – 리디북스
래원과 정지예, 둘로 시작했던 면담은 결국 황태수와 유찬까지 합세하여 넷이 되었고,
래원이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그리고 다음 날,
[현세민] 역할과 배우 정지예를 두고 캐스팅 회의가 다시 열렸다.“일단 5명 전부 봐 보자고.”
황태수 CP의 말에 캐스팅 디렉터가 [현세민]역 최종 후보 5명의 오디션 영상을 재생시켰다.
황태수는 팔짱을 낀 채 턱을 긁으며 영상을 뚫어져라 노려보았고,
래원과 유찬 그리고 차여름, 차가을 작가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번에는 황태수가 책임프로듀서로서 캐스팅 회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1번 저 아이, 분명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누구였지?”
“··· 제 친동생입니다.”
오늘 회의 시작 이후 처음으로 래원이 입을 열었다.
“어어, 그래! 예전에 때 잠깐 단역으로 나왔지?”
“네, 선배.”
황태수가 처음으로 CP를 달고 책임프로듀서로 크레딧을 올렸던 작품이었다.
“이제 확실히 기억난다, 기억나. 많이 컸네?”
“네. 벌써 2년이나 됐죠.”
“그땐 중딩이었는데 이제는 고딩학교 들어갔겠구나? 우리 아들내미 또래라 기억해.”
이어 영상을 계속 보던 황태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야, 연기도 많이 늘었는데? 그때 단역으로 잠깐 얼굴 비췄을 때랑은 차원이 다르다, 래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