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87
월미도88이 활짝 함박웃음을 지었다.
래원이 그를 만난 이래로 가장 밝은 표정이었다.
자신의 드라마가 누군가를 이토록 웃게 할 수 있다는 것에서 묘한 흥분과 뿌듯함이 일었다.
지이이이잉—
래원은 진동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
[세르지오 보욜라]“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작가님, 제가 보욜라 선생님 소개해 드릴게요.”
래원이 바로 받으려고 했으나 휴대폰의 신호가 잡혔다 말았다 하면서 전화가 끊어졌다.
“어···? 뭐지?”
“안 터져요? 여기가 좀 그럴 때가 있어요.”
월미도88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고
래원은 답답해서 휴대폰의 통신 설정과 전원을 껐다 켜보았다.
“중요한 전화였을 거 같은데, 아···. 계속 안 터지네요?”
통신 신호가 계속 깜박이며 바뀌기를 수차례,
지이잉—
문자 한 통이 왔다.
액정에 미리 보기 화면이 떴고,
[찬] 형, 에미상 노미네이트 결과 나왔다!기대했던 보욜라는 아니었으나,
기다리고 있었던 또 다른 소식에
래원은 문자 전문을 보기 위해 침을 꼴깍 삼키며 액정 화면을 슬라이딩했다.
[찬] 우리 LA 갈 수 있게 됐어. 에미상 찢으러 가즈아!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85화 – 리디북스
“헉!”
“왜요? 피디님, 무슨 일 있으세요?”
래원이 휴대폰을 멍하니 보고 있자, 월미도88이 물었다.
“네···. 무슨 일이 생겨버렸네요.”
“···?”
“에미상. 제 전작이 에미상에 노미네이트 됐대요, 작가님!”
“와아우! 축하드립니다. 그거 TV 쪽에서는 거의 오스카 아카데미상 급이잖아요?”
이에 래원은 술이 확 깨는 듯했고,
휴대폰 전화번호부에서 대리운전을 찾았다.
“··· 저 지금 이럴 때가 아닌 거 같아요. 작가님, 정말 죄송하지만, 술자리는 다음에 더 해도 될까요? 일정 맞추려면, 그 전에 편집 많이 해놓고 시상식 출국 해야 하거든요.”
“하하. 아쉽지만 못 잡겠네요. 제 자식 같은 작품으로 드라마 잘 만드시겠다고 이렇게 애쓰시는 피디님한테···.”
그렇게 갑작스럽게 파투가 나버린 래원과 월미도88의 술자리.
“작가님, 다음에 제가 거하게 쏘겠습니다!”
“아유, 됐습니다. 얼른 가셔서 일 보세요. 제 새끼 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래원은 대리 기사님께 운전대를 맡긴 채,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월미도88에게 연신 인사를 건넸다.
월미도88은 시야에서 사라지는 래원의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런 열정의 감독이라면 내 다른 새끼들도 맡기고 싶어지네···.”
* * *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래원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용마루에게 문자를 보냈다.
[래원] 용마루 선배님, 어쩌죠? 제 전작이 에미상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10월 중순에 LA 일정이 픽스됐습니다. 시상식 스케줄 소화하려면 10월 초에는 편집실에서 살아야 할 것 같고요, 10월 말에는 다른 예능 선약이 잡혀 있어서, 아무래도 이번에는 출연이 힘들 듯합니다. 이런 회신 드리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흥얼흥얼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대리 기사의 물음에 래원은 그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무심코 휴대폰 인터넷 창을 켠 그때,
!!!
포털 사이트 구석에 뜬 한 줄짜리 헤드라인에,
래원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세르지오 보욜라, 이탈리아 패션계의 큰 별이 지다. ]“마..말도 안 돼!”
래원은 곧장 아까 걸려왔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보욜라의 목소리이길 바랐다.
– Pronto?(여보세요?)
하지만 아니었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래원은 대신 영어로 답했다.
“··· 여보세요? Hello?”
그러자 상대도 짧은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 (저는 세르지오 보욜라 선생님의 변호인입니다. 선생님의 부탁으로 도 감독님께 연락드렸습니다.)
“(소식.. 정말인가요? 정말로 선생님께서···.)”
– (네, 선생님은 이곳 시각 오늘 새벽 3시경 타계하셨습니다.)
“······.”
래원은 순간 손에 힘이 주르륵 빠지며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이를 다시 주워들고는 말을 이었다.
“(가실 때 편안하게 가셨나요?)”
– (미소 짓는 얼굴이셨습니다.)
“(다행이네요···. 혹시 떠나시기 전, 제 드라마는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 (보셨습니다. 아주 좋아하셨어요.)
“다행이네요. 정말···.”
– (그걸 보시고는 도 감독님께도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저한테 유언이요?”
– (저희 로펌 측에서 해당 유언장 원문과, 한국어 번역본을 선생님 메일로 드렸습니다. 확인해주시고 회신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고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그의 말대로 알 수 없는 이탈리어로 시작되는 메일이 와있었다.
스크롤을 내려 번역본을 확인했다.
「 당신이 보내준 드라마를 보자마자 이 편지를 씁니다.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어를 배워둘 걸 그랬어요. 나는 아쉽게도 방영이 될 때까지 살아있기는 힘들 듯하네요. 드라마 장인의 손에 나와 내 가방들, 작업장이 영원히 남았으니 이제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사후 세계가 있다면 당신을 지켜보고 응원하겠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남겨주어서, 보람되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지금 같은 열정과 장인의 자세를 잃지 말고 좋은 작품 많이 만들어주세요. 당신의 드라마에서 풍기는 사람 냄새를 앞으로도 계속 간직했으면 합니다. 」
래원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차창 밖에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까만 하늘에 별이 총총총 박혀있었다.
래원의 눈에 눈물이 핑 돌며 그 별빛들이 번져 보였다.
이윽고 고였던 눈물이 주륵 떨어졌고,
그렇게 밤하늘에 빛나던 거성 하나가 져버렸다.
* * *
SBC 드라마국 국장실.
이 국장이 홀로 잔뜩 굳은 표정이 되어
창가에 놓인 난 잎을 닦고 있었다.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찾으셨어요, 형님?”
이 국장 라인의 핵심 멤버인 문겸 CP와 임장호 PD가 들어왔다.
이 국장이 두 사람을 흘깃보더니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소식 들었냐?”
“아, 네···.”
“겸아, 내가 말했잖냐. 용마루 그 자식 불안불안하다고. 덩치는 산 만해서 주둥아리만 나불대는 자식···.”
“······.”
“장호 넌? ‘조선의 소울메이트’는 잘 되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명 작가랑 호흡은 어때?”
“작가님 대본이야 뭐, 나무랄 데 없이 좋습니다. 제가 잘 찍어야죠.”
“둘 다 정극 스타일이라 잘 맞겠다 싶었는데 다행입니다.”
서로 이 같은 대화를 나누며 안도하는 눈빛으로 바뀌는 세 사람.
“그래, 이번에는 잘 좀 해보자. 그 드라마에 우리 자존심이 걸렸어. 알지?”
도래원의 와 임장호의 는 지난 상반기 JC그룹의 250 억 원 투자 유치 때부터 사내 경쟁 구도였다.
래원이 전작 ‘시간을 돌리는 사물함’에서 하인혁의 ‘스페이스 캐슬’과 경쟁하던 것과는 스케일부터가 달랐다.
그때는 두 PD끼리 의식하던 것이었고,
결국 ‘표면적으로는’ 같은 ‘김 부국장 라인’ 안의 경쟁이라 다른 드라마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선의의 경쟁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드라마국의 두 라인 사이의 격돌이었다.
[이 국장 – 문겸 부장] 부터 임장호 PD까지 닿는 라인과, [김 부국장 – 최지철 부장 – 황태수 부장] 에서 도래원까지 이어지는 라인.물론 황태수와 도래원은 뒷짐 쥔 다른 손에, 배미란 사장의 금 동아줄 라인도 쥐고 있었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현재 드라마국이 이러한 구도를 그리고 있었다.
이 국장이 입술을 잘근 깨물며 말했다.
“겸아, 우리 배우들 주연, 조연 가릴 거 없이 예능 스케줄 최대로 잡고, 인터뷰 다 잡아.”
“네, 일단 마루한테 연락해서 우리 드라마 특집으로 구성해달라고 부탁한 상태입니다. 신경 팍팍 써줄 모양이던데요?”
“그래? 자기도 미안하긴 한가 봐? 아무튼 괜히 튕기지 말고 받아주는 곳은 전부 내보내! 우린 노출도로 승부한다!”
SBC 드라마국의 11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사내 경쟁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 * *
“LA, LA···. LA 가려면 이거 다 해야 갈 수 있다. 유찬, 정신 차려. 할 수 있어···.”
편집기에 양손을 올려놓은 채, 누렇게 뜬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리는 유찬.
그 옆에 역시 누렇게 뜬 얼굴로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래원.
두 사람은 며칠째 SBC 모텔에 갇혀서 이곳 편집실, 수면실, 샤워실 그리고 구내식당만 오갔으니 그럴 만했다.
“아아···. 씨···. 이상한데···.”
유찬이 답답한 얼굴로 영상을 앞으로 돌렸다가 뒤로 보냈다 하며 뭔가가 걸리는 듯 보았다.
“진짜 모르겠네···. 여긴 괜찮은 거 같고.”
“왜? 뭐가 문제인데?”
“모르겠어. 벌써 몇 번째 돌려 보는데···.”
유찬이 헤드셋을 벗고 외부 출력으로 설정한 후 래원에게 도움을 청하자,
래원은 의자를 끌고 유찬의 옆으로 다가와 유찬이 보던 편집본을 대신 만져보았다.
“너무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그러냐?”
“어! 바로 그거야. 툭툭, 감정선이 부드럽게 안 이어져. 어떡하는 게 좋을까, 형?”
유찬이 미간 사이를 더욱 찌푸리며 래원에게 SOS를 청했다.
“으음, 이건 너무 짧게 잘라서 문제가 생긴 거 같은데? 스피디하게 몰아붙이는 것도 좋지만, 여긴 네 말대로 감정선이 더 중요한 시퀀스니까.”
“그럼···?”
“앞뒤로 한 프레임씩만 더 붙이자, 찬아.”
“오케이! 나도 방금 그렇게 생각했어.”
유찬의 반응에 래원이 피식 웃었다.
다시 얼굴을 편 유찬.
자기 자리로 돌아간 래원.
두 사람은 또 각자 헤드셋을 끼고 침묵의 편집 수련을 이어갔다.
편집실 안에는 말없이 딸깍거리는 버튼 소리만 연이어 들릴 뿐이었다.
툭툭툭—
누군가 래원을 등을 두드렸다.
보나 마나 유찬이겠지.
“왜, 또.”
“SOS···.”
래원은 풀이 죽은 유찬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찬의 자리로 가서 편집본을 살폈다.
“여기 몽타주로 바꿔서 디졸브로 하면 어떠냐?”
“으흠. 괜찮겠네!”
“그래, 그럼 해봐.”
“디졸브 그림은 형 전공이잖아. 형이 해줘.”
“야, 너도 잘할 줄 알아야지.”
“형이 메인 연출이잖아.”
“이건 네가 찍은 거잖아. 네가 찍은 건 네가 끝까지 책임져라. 언제까지 내 밑에 있으려고 그러냐, 유찬?”
“아, 왜애! 좀 있으면 안 되냐? 나 같은 조연출, 나 같은 B팀 감독이 어딨다고!”
래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진지한 눈빛으로 유찬을 지그시 보았다.
“그러니까 더더욱 내 밑에 있으면 안 되는 거야, 넌.”
“······?”
“찬이 너도 네 이름 건 작품 만들 준비, 이제 슬슬 해야 하지 않겠냐?”
“······.”
“왜 말이 없어.”
“난 아직 멀었어. 형 작업하는 거 보면 그런 생각 들어. 난 아직 멀었구나···. 이번에도 처음으로 B팀 감독하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고. 나는 모르는 게 왜 이렇게 많은지···.”
“··· 야, 처음에는 다 그래! 엄살 피우지 말아라. 나랑은 딱 한 작품만 더 하는 거야, 너. 그다음은 무조건 입봉이야.”
“··· 내가? 할 수 있을까?”
“형이 도와줄게.”
유찬은 지난 생과 이번 생을 관통하는 유일한 래원의 편이기에,
래원은 그의 성장을 도와주고 싶었다.
유찬이 과거에 래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유찬을 키우는 과정은 래원의 성장에도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 자명했다.
함께 날아야 더 높게, 더 멀리, 더 오랫동안 비상할 수 있는 업계에서,
래원은 혼자 나는 새가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어쩐지 보욜라의 유언도 떠올랐다.
* * *
SBC 예능국.
래원은 입사 동기로 낯익은 얼굴들에 묵례를 건네며 이곳에 들어섰다.
맞은 편에서 한 덩치 하는 남자가 걸어왔다. 용마루였다.
“안녕하세요.”
래원의 인사에
용마루는 래원을 훑다가,
“도 피디님, 이쪽입니다!”
뒤따라오던 김우태 PD를 보고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래원은 모른척 웃으며 묵례를 건넨 후, 뒤돌아 김우태를 따라갔다.
김우태PD가 래원을 데리고 간 곳은
[우리 집에 왜 왔니?]라고 써 붙어져 있는 회의실이었다.
오늘 래원은 10월 말에 촬영 스케줄이 잡힌 이 프로그램의 사전 미팅을 위해 이곳에 왔다.
조만간 LA로 출국하기 전에 소화해야 할 중요한 일정 중 하나였다.
회의실 안에는 MC 가온, 그리고 구성작가가 래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래원이 얼굴을 비추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두 사람.
“안녕하세요, 드라마국 PD 도래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죠! 다른 프로에서도 탐내는 분이시던데···. 안녕하세요, 가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