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50
***
감나무의 특이점을 발견했다.
이것은 『인연』 특전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가령, 우리 집에 온 손님과 상극의 성격으로 마찰을 빚을 것 같으면 감나무는 그저 바람결 따라 휘날리기만 할뿐 특전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 예로 우리 집을 찾아온 부동산 아줌마가 그랬다.
“산수 마을이 요즘 인기가 많아요. 제가 저번에 가격을 너무 싸게 불렀죠? 선생님께서 이 집을 매물로 내놓으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얼마 정도 생각하시나요?”
산수 마을의 특별한 약초 덕에 집값이 조금 올랐단다.
하긴, 저번에 지역 언론에 올라간 기사로 귀촌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고 하는데, 좋은 기사를 써준 기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한데, 집값을 올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집주인의 의지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10억이요.”
“예?”
“너무 싼가요?”
“………”
아줌마의 표정이 떫은 감을 씹은 듯 했다.
“한 여름에도 감나무의 감이 열린 거 보이시나요?”
“어머. 정말 그러네요.”
“감나무가 그럽니다. 자기 몸값은 50억이라고.”
“하하, 사장님 농담도 참.”
“······.”
“네. 그럼 이만.”
부동산 사장님께 매몰차다고 할 순 있겠지만, 똑 부러지게 얘기하는 게 서로 좋다.
감정평가사로 근무한 기간이 몇 년인데, 조금의 여지도 남겨둬서는 안 되지.
부동산 사장님이 나가자마자 감나무의 처진 가지가 반듯해지더니 감잎에서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감나무야. 우리 집을 잘 지켜줘!’
감나무가 인연의 특전을 발휘해줄 때마다 내 심장이 요동쳤다.
오늘은 또 누가 찾아왔을까 하는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도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 집에서만 인연을 찾을 수 있다는 거니까.
그래서 해가 깜깜해질 무렵 집 밖을 나섰다.
나도 누군가의 인연이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람이 나였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찾아간 곳은 경훈이네 술집이었다.
아주 당연하게도.
화색을 띠며 소주를 바로 꺼내 준다.
역시 나의 친구다.
“경훈아. 새로 나온 안주 맛 좀 보게 내줘봐.”
“오케이! 기다려라!”
술집 외부 테이블에 홀로 앉아 경훈이가 안주를 내줄 때까지 기다렸다.
저녁시간 이라서 그런지 내부에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장사는 어때? 괜찮고?”
“그럼. 이상하게도 네가 금전수를 선물한 이후부터는 손님이 줄어들질 않아.”
아, 그랬다.
경훈이에게 부의 특전을 발휘하는 금전수를 선물했었다.
카운터 앞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금전수가 나를 보며 인사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 또한 우리 집의 흙과 물을 머금은 금전수라 그런지, 자식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금전수 잘 있었냐?”
때마침, 금전수에서 부의 특전이 발휘되었다.
경훈이는 이런 신비한 현상을 못 보겠지만, 내 눈에는 금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의 물결을 볼 수가 있었다.
술집 내부 곳곳에 스며드는 황금빛은 이내 오로라처럼 발광을 하다가 사라졌다.
“도일아 철수 부를까?”
“근처면 오라고 해. 간단히 술이나 먹게.”
“오케이!”
전화를 하자마자 5분 안에 철수가 튀어나왔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급히 나온 기색이 역력하였다.
“더운 날에는 소주가 제격이지.”
“제수씨 허락은?”
“너 만나러 간다고 하면 100%야.”
철수와 소주 한 잔을 나눴다.
크으.
입안에서 맴도는 알콜향이 오늘 하루의 재미난 감정을 곱절로 만든다.
“야, 대박 사건 하나 터졌다.”
철수는 별안간 소주 한 잔을 비우며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혀를 날름거리며 얼마나 뜸을 들이는지 답답증이 도질 뻔했다.
“빨리 말해 인마. 뭐야?”
때마침, 경훈이가 우리 테이블에 앉았다. 이제 말할 때가 됐다는 듯 비장한 표정을 짓는 녀석이다.
그리고 철수가 말했고, 경훈이는 제대로 듣질 못하였는지 듣고서도 의심을 하는 건지 다그쳐 되물었다.
나도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인연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이토록 넓은 세상에서, 하필이면 이토록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는 희숙이를 만나 결혼을 했다.
남들은 간혹 희숙이를 만난 것을 후회하느냐 묻는데, 사실 그건 매우 실례되는 질문이다.
딸 연이의 탄생을 부정하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내 결혼은 어떤 후회도 없다.
다만, 아쉬울 뿐이지.
그래서 그런가.
“봉선이가 드디어 재혼을 한단다!”
철수의 입에서 터져 나온 대박 사건은 내게 별 감흥이 없었다.
재혼이 뭐?
이토록 넓은 세상에서,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짝 골라 재혼하는 게 뭔 특별한 일이라고.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다음 얘기였다.
“10살 연하란다. 10살 연하!”
철수가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말했다. 10살 연하라.
흠···
“봉선이 능력이면 10살 연하든 20살 연하든 만날 수 있지. 암만 그렇고 말고.”
경훈이가 안주 하나를 집으며 말했다. 닭똥집 볶음이 매운 연기를 풀풀 날리고 있었다.
내가 경훈이의 말에 대꾸했다.
“와, 10살 연하면 84년 생 아니냐?”
“맞아.”
“앞에 8자 들어가는 녀석이랑 재혼을 한다고?”
“어. 봉선이도 이제 갈 때가 됐지.”
“갈 때가 된 건 맞겠지만, 봉선이 성격에 10살 연하는 좀 충격적인데.”
그때, 철수가 손을 내저었다. 이번에도 할 말이 있다는 듯 알코올에 젖은 입술이 달짝지근 달아올랐다.
이런 가십은 훌륭한 안주거리겠지.
“봉선이 녀석 그 남자에게 푹 빠져가지고 헤어 나오질 못 해.”
“푹 빠졌다니? 얼마나?”
“저번에 시장에서 팔짱 끼고 걸어가는 거 봤거든? 서로의 궁둥이를 조물조물, 보는 내가 숭하더라.”
“그 예의 바른 봉선이가?”
“그럼.”
“어르신들의 생생한 눈동자가 살아 있는 곳에서 애정행각을?”
“그렇다니까. 충격이지?”
“격세지감일세.”
경훈이가 적절히 받아쳤다. 철수는 한 술 더 떠.
“봉선이가 차도 뽑아 줬어.”
“와···남자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국산도 아냐. 외제차.”
“대박이네. 이러다가 건물도 주겠다?”
“브라보. 이미 법무사 통해서 알아보고 있나보더라고.”
경훈이가 손뼉을 치며 봉선이의 적극성에 감탄했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니까. 얘들아. 정리하자면, 시장에서 궁둥이 조물조물, 봉선이는 남자에게 외제차를 줬고 건물은 줄 계획.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뭔가가 빠진 것 같지가 않아?”
“뭐?”
“그 남자는 뭐하는 놈인데?”
철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읍내로 이사를 온지 얼마 안 됐다고 들었어.”
“외지인이라는 거네?”
“맞아. 시장 사람들에게 듣기론 학교 선생님 하다가 온 분이라고도 했고, 어떤 사람은 소설가라고도 했고, 아무튼 분위기를 봐서는 딱 배운 사람 같다고 하더라고.”
“배운 사람?”
“어감이 좀 그렇긴 하지?”
“배운 사람이 수많은 어른들 있는 시장에서 자기 여자 궁둥이 조물거리나.”
“쩝.”
“참 신기하네. 봉선이는 재혼 생각이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혼자 된 시간이 꽤 길잖아. 걔 삼십대에 결혼해서 7년 살다가 이혼했어. 그러니까. 지금 혼자 살고 있는지가 딱 5년 차네.”
봉선이와 이혼한 시기가 비슷했고 혼자된 시간도 비슷했다.
“그렇구나. 아무튼 참 좋은 소식이네. 봉선이가 잘 됐으면 좋겠다. 좋은 남자였으면 좋겠고. 봉선이를 잘 대해줬으면 좋겠어.”
“나도 그래. 도일이 네가 봉선이를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 친구들도 봉선이를 아끼거든. 아끼는 정도야? 경훈이는 은인처럼 모시고 살 생각일걸”
“나는 모셔야지. 암 그렇고 말고. 봉선이가 내게 도움을 준 게 얼마인데. 크크크.”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어!”
나는 녀석들을 두고 가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봉선이가 좋은 남자를 만나 재혼을 한다는 데 기분이 왜 뒤숭숭할까.
왜인지 모르게 썩 기쁘지가 않다.
마땅히 기뻐해야 하거늘.
-뾱.
손을 씻던 비누가 내 손을 삐져나와 바닥으로 데구루루 굴렀다.
비누를 주워 담으려다가 실수로 ‘쿵’ 머리마저 세면대에 찧었다.
“아오! 씨.”
아픈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상하게도 거울에 비친 나의 찡그린 얼굴을 보자마자 떨떠름한 내 기분의 이유를 알게 됐다.
그것은 질투심 때문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봉선이의 남자가 되었다면, 그런 해괴한 생각을 해서도 아니었다.
‘내가 봉선이보다 못난 게 뭐가 있어?’
10살 연하, 나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충분하고말고. 아니, 10살도 우습다.
20살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할 일이 많고 일이 바쁘고, 여러 가지 약초 배합의 재미에 빠져 살기에 그렇지, 지금도 줄선 선자리가 4열 종대 앉아 번호로 마을 2바퀴다.
“봉선이 이 자식. 멋있네.”
비록 어떤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지 구체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자기가 좋아 하는 사람에게 플렉스할 수 있는 건 재력이 있어야 가능한 거니까.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봉선이에게 전화를 해볼까 했다.
내 전화라면 한 번에 받을텐데, 그리고 한달음에 이곳까지 와줄텐데.
‘아무래도 그 남자하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선뜻 스마트폰에 손이 가질 않는다.
괜한 오해로 봉선이가 난처해지면 안 되니까. 그러려니, 그러고 말았다.
그렇게 화장실 밖을 나왔을 때.
“도일아 안녕?”
봉선이가 술집을 찾아왔다.
***
마침 이 근처를 지날 때 들렸다고 한다.
경훈이는 손님의 안주 요리 주문이 들어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봉선이 맞은편에 앉아 물었다.
“봉선아. 네가 만난다는 그 남자는 뭐하시는 분이야?”
“그냥. 이런저런 글도 쓰고,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작가야.”
“작가? 대단한 분이네.”
“그런데 작가 일을 하면서도 화가 일도 겸하고 있어.”
“문학가에 화가라. 예술적으로 사시는 분이구나. 나도 어릴 때 시를 좋아하긴 했는데. 시인이면 성함이 어떻게 되셔?”
“구한교.”
“구한교?”
“처음 들어볼 거야. 최근에 개명을 했거든.”
“그렇구나.”
“나하고는 완전 정반대의 삶을 살아 온 거지. 나는 연장을, 그이는 펜과 붓을 쥐었던 거야.”
펜과 붓을 쥔 작가이자 화가라.
봉선이가 반할 거리를 단단히 움켜쥔 남자였다.
“한 번 불러봐.”
“지금? 시간 괜찮을까.”
“저녁인데 뭐 어때. 쉬고 있을 텐데. 큰 일 없으면 소개 좀 시켜줘.”
“정식적인 자리도 아닌데.”
“우리 사이에 그런 게 뭐가 필요하냐. 그리고 좁은 시골이잖아. 읍내 돌아다니다가도 마주칠게 뻔한데, 그전에 미리 얼굴 알아둬야지.”
봉선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남자에게 전화를 하러 나간다고 했고, 몇 분 뒤에 들어오더니 봉선이의 남자가 곧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
‘잘 생기긴 했네.’
봉선이의 남자는 젊고 잘 생겼다.
피부가 하얗고 시골 사람 같질 않았으며, 긴 장발의 머리가 웨이브를 타고 넘어간 것이 비싼 돈 주고 미용을 한 것 같았다.
“소식 들었습니다. 특히 도일 형님 얘기는 봉선 누나에게 자주 들어요. 언젠가 뵙고 싶었는데, 제가 미리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 아뇨. 괜찮아요.”
그로부터, 우린 남자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나는 대화를 통해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됐다.
아니, 내가 생각이 짧을 수도 있고 다소 편협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남자는 남자를 알아보는 법.
때마침 철수가 담배를 피러 나간다고 했고, 나도 그의 뒤를 졸졸 따라나섰다.
담배를 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철수에게 말했다.
“생긴 건 잘 생겼는데, 왜 찜찜한 걸까.”
“너도 나하고 같은 생각이구나.”
철수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왜 그럴까.”
“잘생겨서 그래.”
“그런가.”
“잘생기면 뭐든 질투 나거든.”
“나는 아닌데.”
“너도 잘생겼으니까.”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면 뭐야.”
“느낌이 세하다. 초면에 좀 미안한 얘기지만, 막말로 한량이 아니냐?”
한량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표현했다. 그러자 철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한량이야. 한량이가 돈 많은 이혼녀를 만나는 건 목적이 뚜렷한 편이지.”
“목적이라면?”
“돈.”
“그치? 이게 좀. 내가 편협한 생각을 하는 건가 싶었거든”
“아냐. 다들 그렇게 생각해.”
“휴우.”
“왜?”
“봉선이 쟤 어뜩하냐. 하여튼 남자 보는 눈이 썩은 동태 눈깔만 못해.”
“맞아. 인정해. 담배 다 폈다. 들어가자.”
우리는 다시 술집 내부로 들어갔고, 구한교라는 양반이 봉선이의 옆구리를 살살 간질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철수와 내가 자리에 앉아도 옆구리를 풀 생각 않는다.
철수가 헛기침을 크흐흠하자, 한교라는 양반이 그제야 옆구리를 풀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때, 봉선이가 남친을 보며 말했다.
“한교 씨, 도일이도 시를 좋아한대. 한교 씨가 지어준 시 한 번 낭송해줘.”
“그래요. 궁금하네요. 저도 옛날에 시를 좋아해서 소여물 주면서도 읽고, 골방에 앉아서도 읽곤 했거든요. 그래서 시인을 존경해요. 저만의 독특한 감성을 만들어줬거든요. 한 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 주제 넘는 짓이지만 이 아름다운 술 자리에서 한 수 올리겠습니다.”
봉선이의 남자, 구한교가 목을 풀었다.
그걸 바라보는 한 여자, 봉선이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지었다는 시를 읊었다.
“나는 신의 둘레를, 태고의 탑 둘레를 빙빙 돌고 있다.
천 년이나 돌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모른다. 내가 한 마리의 매인지. 하나의 폭풍우인지. 아니면 하나의 대단한 노래인지.”
시 낭송을 끝내자 봉선이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철수도 마찬가지였다. 매우 낮은 음으로 천년, 폭풍, 매, 태고, 신의 둘레와 같은 단어를 읊조리니 대단히 분위기가 있어보였다.
오직 나만이 이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충격을 머금었다.
왜냐하면.
‘저 시는 릴케의 시인데.’
저 시는 내가 잘 안다.
릴케의 시다.
‘갖가지 사물위에 펼쳐져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다.’로 시작되는 시였다.
시골 사람들이라고 시를 모를 줄 아나보다. 어릴 적에 골방 한편에 누워 시를 얼마나 읽었는데.
한적한 봄의 들판에서 여름을 노래하면 여름이 왔다.
눈 쌓인 마당 한 구석에서 봄을 노래하면 봄이 왔다. 내게 시는 그랬다.
특히 릴케의 시는 나의 유년 시절을 함께 했던 시였다.
심지어 릴케를 알게 된 이후부터는 식물을 함부로 꺾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릴케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장미꽃을 꺾다가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릴케의 시를 자신이 썼다고 거들먹거리다니. 저 인간은 사기꾼이다.’
철수와 경훈이는 멋도 모르고 넋이 나간 듯 바라본다.
아마, 시를 읽지 않은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으니까 모르겠지.
이걸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까.
녀석이 또 한창 시를 읊을 때, 어디선가 멍멍하는 개소리가 들렸다.
‘멍! 멍!’
남자는 이내 인상을 찌푸린다. 시낭송을 하는데 감히 개소리가 들리니까 짜증이 치미겠지.
그런데, 개 소리가 뭔가 익숙하다.
왜 익숙하지.
맨날 듣던 소리인 것 같은데.
나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어둠이 짙은 한적한 골목을 뚫고 나온 이가 있었다.
황복이었다.
심지어 목에는 망태기를 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이고.
“황복아!”
나는 황복이를 보며 외쳤다.
친구들 또한 황복이를 발견한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멍!
황복이가 내게 달려들었다.
덩치가 갈수록 커져서 그런지 사람을 안는 기분이다.
친구들이 황복이를 보며 화색을 띠었다.
어째서 이곳까지 왔을까.
황복이가 사람들 앞에서 흥분됨을 참지 못하고 빙그르르 돌았다.
봉선이가 황복이의 목에 걸린 망태기를 바라봤다.
“황복아 갑자기 여길 왜 왔어. 망태기는 왜 걸고 왔어.”
봉선이가 황복이의 양 볼을 붙잡으며 물었다. 그러자, 월! 월!, 봉선이를 보며 짖는 게 아닌가.
“내가 한번 볼게.”
나는 황복이의 목에 걸린 작은 망태기를 꺼내어 속을 살폈다.
‘어? 이건 꽃이잖아?’
망태기 안에는 꽃잎이 있었다.
종류가 네 가지였다.
봄의 매화
여름의 작약
가을의 국화
겨울의 설강화였다.
나는 이 꽃의 비밀을 잘 알지.
이 네 가지의 꽃을 배합하여 차를 달이면 『진심』의 특전을 발휘하는 꽃이었으니까.
나는 황복이의 촉촉한 눈망울을 한참동안 들여다봤다.
황복이의 큰 눈망울에, 나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어째서 이걸 내게 들고 왔을까.’
황복이에게 신기가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황궁이가 시킨 걸까.
그런데, 이런 신비한 일도 이젠 익숙해질 때가 됐잖아?
사계절의 꽃과 나무가 자라는 마법의 숲이 있는데, 게다가 그런 숲의 나무와 풀, 열매를 먹고 자라는 동물도 보통은 아니겠지.
어쨌든, 내게 진심의 특전을 발휘하는 네 가지의 꽃잎이 생겼다.
이 꽃차를 먹으면 『진심』의 특전이 발생되어 사람의 속마음에 꽁꽁 숨겨놓은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
이제 이걸 저 사기꾼 같은 녀석에게 어떻게 먹여볼까.
내겐 형제와도 같은 봉선이다.
나는 진심으로 봉선이가 좋은 『인연』을 만났으면 한다.
거짓말로 사람을 현혹시키려 드는 이 남자보다는 더 좋은 남자를 말이다.
답은 빨리 나왔다.
“우리 진실게임하자.”
테이블에 소주병을 놓고 돌린 뒤 소주병이 지시하는 사람이 꽃차를 한 잔 마시고 진실을 토로하는 게임이었다.
“재밌겠네.”
봉선이가 흥미가 돋우는 듯 내게 물었다.
“내가 차를 만들어 줄게. 이 차를 마시면 속이 따뜻해지고 포근해지며, 냉증이 사라짐과 동시에 머리가 맑아져. 그러면 신비한 마법처럼 진심이 우러나오거든.”
“와, 정말?”
친구들은 유치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한데, 의외로 봉선이의 남자친구가 내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그래도 시인 흉내를 끝까지 내고 싶은 건지 감성이 풍부한 이게임을 가짜 시인은 기어코 승낙했다.
“다들 연세가 있으셔서 이런 게임은 상상도 못했는데. 너무 순수하고 좋네요.”
‘연세가 있으셔서? 이 자식이 얻다 대고 연세 타령이야!’
“자 그러면 시작합니다!”
때마침, 철수가 테이블 위의 소주병을 빙글 돌렸다.
진실게임은 간단했다.
질문에 솔직히 답하는 게 전부다.
철수가 돌린 소주병은 한참 동안 테이블 위를 돌더니 이내 봉선이에게 향했다.
“자! 봉선이 당첨!”
봉선이가 ‘아이 씨, 처음 싫은데.’ 하며 꽃 차를 반잔 마셨다.
깊이 음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무슨 진심을 털어 놓으면 될까? 아무거나 질문해 봐.”
봉선이가 물었다. 우리 세 친구는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봉선이에 대한 질문은 아무래도 한교 씨에게 양보를 해야 맞지 않을까 싶었다.
“한교 씨가 봉선이에게 질문 하시죠.”
한교 씨가 씩 웃으며 봉선이에게 질문했다.
“누나는 내가 왜 좋아?”
“왜 좋냐고?”
“응.”
봉선이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옆구리가 많이 허전해. 너란 사람만 있으면 나는 행복할 것 같아. 매일 아침마다 시를 읽어주는 거, 얼마나 낭만적이야?”
“진심이야?”
“어, 내 진심이야.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나는 배움이 모자라거든? 그런데 한교 너는 배움이 깊어. 나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모습이 참 좋은 것 같아.”
“감동적이야 누나.”
둘의 대화를 들으며 느끼한 속을 소주로 달랬다.
그런데,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실감됐다.
나는 한 가지 의문점이 들어 봉선이에게 질문했다.
“옛날에 넌 내가 시를 읽을 때마다 기겁했잖아.”
“그러게. 그때는 남자가 남자다워야지 하는 그런 게 있었나봐.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졌어. 내가 모르는 세계를 탐구하는 기분이 들어. 거기에서 매력이 끌렸나보지.”
“그래. 알았다. 그게 진심이라면 축하해. 너의 진심이 잘 통하길 빌게.”
“이게 끝이야?”
“어, 끝. 너의 진심은 한교 씨에게 잘 전달 됐을 거야. 그렇죠? 한교 씨?”
“그럼요. 봉선 누나의 마음, 제가 잘 받았습니다.”
“철수야 소주병 돌려라.”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