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village life with herbal elixir RAW novel - chapter 78
“도일아!”
이장님께서 들국화를 채집하다 말고 내게 다가오셨다.
이미 꽤 많은 양을 작업하신 것 같다.
“감국이 잘 익었네요. 축제에 내놓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요.”
“올해 감국이 풍년이다. 바람도 날씨도 완벽해.”
“네.”
“잠시 시간 좀 낼 수 있을까?”
“네. 언제든지요!”
이장님과 나는 들국화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봐도 아무리 답이 나오질 않는데, 도일이 자네가 좀 도와주면 안 되겠나?”
“어떤….?”
“우리 마을의 슬로건 말일세. 그러니까, 들국화와 하수오를 대표로 내놓긴 하는데, 마땅한 슬로건이 생각나질 않는다는 말이지.”
“아, 슬로건이요. 이장님이 생각해두신 건 있으세요?”
“나야 뭐, 들국화와 하수오를 먹으러 오세요?”
“……”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하긴, 이제 여든의 연세다.
요즘 감성을 모를 때지.
물론 나라고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약초 축제라고 해서 연세 지긋하신 분들만 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난 게 있었다.
들국화라 함은 외모에 좋은 꽃이었고, 하수오라 함은 탈모에 좋지 않은가?
[예뻐지고 싶으면, 축제를 오라!]“우리 마을의 대표 슬로건을 이것으로 하자고?”
“네. 어떠세요. 이장님?”
이장님께서 마른세수를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이건 어떤가요?”
“어떤….?”
“성형이 필요 없다! 약초로 미용하자!”
“크흠.”
“마음에 안 드시나요?”
“그게 아니고,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가 싶은데 말이야. 우리가 무슨 가짜 약을 판매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가짜약이 아니면요?”
“뭐?”
“정말 예뻐지고 머리털이 숭숭 날 수도 있잖아요!”
“허허. 정말 그렇다면, 올해 축제는 우리 산수마을이 주인공이 될 것이야.”
“정말 그렇게 될 거예요. 흐흐. 그럼, 예뻐지고 싶으면, 축제를 오라! 이걸로 정하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고. 그렇게 하세.”
산수 마을을 대표하는 슬로건으로 딱 알맞지 않을까 싶었다.
들국화의 효능도 미용과 관련이 있었고, 하수오 덕에 우리 마을의 어르신들 대부분이 머리가 풍성했으니 말이다.
“제가 홍보 한 번 제대로 해볼게요.”
“홍보를?”
“제가 이래 봐도 너튜브 구독자가 50만 명이거든요.”
“뭔 튜브?”
“너튜트요!”
“자네가 알아서 혀라. 난 뭐가 뭔지 통 모르겄다.”
이장님께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시곤 들국화가 핀 들판으로 내려가셨다.
걸어 내려가는 이장님을 보며 소리쳤다.
“군청 관계자들하고 줄만 좀 놔줘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오냐! 알아서 혀!”
“언제 만날 수 있어요?”
“오늘!”
“예!”
* * *
군청 관계자들이 우리 약초원에 찾아온 것은 당일 오후였다.
이장님께서 축제 관계자들에게 너튜브 이야기를 꺼내니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단다.
군청 관계자 중에서 나이가 어린 40대 여성이 내게 말했다.
“김도일 선생님의 너튜브가 워낙에 유명해서요. 광고 영상을 좀 올려볼까 하는데, 선생님께서 괜찮을까요?”
축제 홍보를 위해서 나의 너튜브를 적극 이용하고자 함이었다.
나도 원하는 바였다.
그래서 나도 그들의 목적과 취지에 맞게 미리 준비해 둔 게 몇 가지가 있었다.
“괜찮고말고요. 군을 위한 일인데요. 그래서 어떤 광고를 생각하고 계세요?”
“아…아직은 선생님과 일단 상의 후에 진행될 프로젝트라서요. 선생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그때부터 전문 광고 업체를 붙여서.”
“그냥 저희 끼리 하죠.”
“네?”
“광고 업체를 붙일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서요. 제가 생각해둔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사람들이 나의 말에 놀란 반응이었다. 허락만 맡으러 왔다고 생각했거늘, 이미 나는 광고 제작까지 머릿속에 완성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너튜브 몇 번 찍어봤다고, 나름 자신감이 생긴 상태랄까.
“그러면..어떤 영상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국화 (4)
“요즘 트렌드가 광고는 짧고 강렬하게 끝내는 게 요즘 젊은 층의 시선을 확 끌 수 있거든요.”
50만 너튜브 채널 주인장 답게 나는 자신감있게 말했다.
“아하!”
“저의 너튜브가 50만 구독자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도 긴 영상보다는 짧은 영상 위주로 올렸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번 축제 홍보 영상도 짧고 강렬하게! 15초 내외로 끝낼 수 있게끔 해보는 게 어떨까요?”
“저희야 당연히 좋죠! 그런데, 선생님께서 홍보까지 맡아주신다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저희가 해야 할 일인데….”
공무원이든, 시민이든, 누구든 간에 산청을 사랑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괜찮습니다. 약초 축제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니까요.”
이건, 공무원들 입장에서 감동에 벅차오를 만한 새마을 정신이 아닌가.
민원만 낼 줄 알았던 시민들이 앞장서서 축제 홍보를 나선다니.
그들이 우수에 찬 눈빛을 하며 말했다.
“선생님의 소문은 군수님에게도 누누이 들었어요. 아버님이 마을에서 굉장히 유명한 약초꾼이라고 들었거든요. 3선 국회의원을 하신 최창훈 의원님의 폐암도 치료하셨다는데, 명성대로 정말 대단한 집안이신 것 같습니다.”
“보잘 것 없는 약초꾼 집안이에요. 너무 높게 평가하시면 제 손이 부끄러워지네요.”
“하하. 혹시 저희가 도와드릴 만한 일이 있을까요? 선생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있다면,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지원토록 할게요.”
도움이라…
어떤 게 도움이 될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한 가지가 있었다.
“그러면, 제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뭐죠?”
“지원비 좀 부탁드려요.”
“아이고! 그거야 당연한 거죠. 지원비야 저희가 충분히 지원해드릴게요.”
“그렇다면, 마음껏 찍어보겠습니다.”
마음껏 찍어보겠다고 하니 저들이 다소 부담되는 눈치인 것 같았다.
아무렴, 공무원이 아니던가.
최고 결정권자에게 구두 결제라도 받아야겠지.
“일단 군수님과 통화 한 번 해보겠습니다.”
“네!”
축제 관계자가 통화를 하는 동안 나는 외양간으로 향했다.
외양간의 구석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황궁이와 황복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람쥐는 상수리나무에 올라가 있는지 보이질 않았고, 황묘는 자유로운 영혼답게 어디론가 외출을 한 것 같았다.
때마침, 통화가 끝난 관계자가 내게 다가왔다.
“지원은 부족함 없이 해주신다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조만간 군수님께서 표창을 수여하신다고 해요. 군의 발전을 위해서 이바지하는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시네요.”
“표창이요? 그럴 수는 없어요.”
“네?”
“이번 광고 영상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거든요. 저는 촬영만 할 뿐이고.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어요.”
“그러면….?”
“산수 마을이 주인공이죠.”
* * *
촬영을 위한 준비는 머릿속에 완성된 상태.
짧은 15초 영상에 많은 걸 담아야만 했다.
총 세 가지의 컷을 담을 예정이다.
산수 마을 어르신들의 건강한 치아와 들국화를 먹고 자란 맑은 피부, 하수오의 특전으로 풍성해진 머리였다.
이 세 가지의 콘셉트로 짧은 영상을 만들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미남 미녀들이 필요했다.
“광고를 찍자고? 우리 더러? 우리 면상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팔출 어르신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난색을 표했다.
나는 어르신들과 함께 축제의 광고 영상을 촬영하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약초 효험의 산 증인이 아니던가.
“산수 마을을 대표하는 미남 분들이 왜 그러실까요.”
“내가 미남이여?”
“그럼요.”
“어딜 봐서 미남이여!”
“요리보고 저리 봐도 왕자 같은 미남이죠.”
팔출 어르신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옆에 앉은 순임 할머니가 팔출 어르신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바깥양반이 미남이면 나는 공주인가? 깔깔깔!”
“그럼요 어머님! 머리숱이나 피부 하나 만큼은 산수 마을의 어르신들이 가장 좋을 걸요? 이게 어떻게 할머니 할아버지 피부예요?”
어르신들이 나의 말에 머리와 피부를 스스로 쓰다듬었다.
“그려! 도일이 말이 맞다! 산수 마을서 앞으로 살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뒤로 빼고들 그려?”
이장님이 대표 격으로 나서자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이장님!
“그래서 뭐부터 하면 될까?”
“다들 속 비우고 오셨죠?”
* * *
“갈비를 뜯으세요!”
마을 회관의 거대한 식탁에 한상 가득 차려진 갈비.
어르신들이 먹기가 가장 불편한 음식 중 하나가 뼈 있는 갈비가 아니던가.
약초 축제의 홍보 영상인 만큼 어르신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내세울 생각.
그 중 하나가 치아였다.
“그려! 갈비를 뜯어보자고!”
이장님을 필두로 어르신들이 뼈 있는 갈비를 무자비하게 뜯기 시작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어르신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았다.
가장 리얼하게 잡수시는 어르신은 바로 이장님.
하얗고 건강한 치아를 드러내며 악어처럼 저작하는 이장님의 표정이 이번 영상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
“다들 이장님 표정을 따라 해보세요!”
나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어르신들에게 말했다. 어르신들이 이장님의 표정을 보고, 이에 질세라 갈비를 공격적으로 뜯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의 표정에 넋이 나가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갈비가 동 나기 직전이었다.
이제 준비된 멘트를 할 차례.
나는 이장님을 향해 외쳤다.
“이제 광고 멘트 나갈게요! 이장님 큐!”
이장님이 갈비를 뜯으며 계획된 대사를 읊었다.
“갈비를 제대로 뜯고 싶다고? 우리 산수마을의 약초 맛을 보면 제대로 뜯을 수 있다니까! 모두 약초 축제로 오세요!”
대사 한 톨 틀리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컷! 이장님 배우 해도 되겠다. 대사가 어쩜 그렇게 자연스러우세요?”
“크흠. 내가 마을 대표 아닌가. 이정도면 괜찮았을까?”
“완벽한 대사였어요!”
그렇게 갈비 한 상을 다 해치웠다. 다들 배가 부른지 꺼억, 꺼억 트림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아까는 그렇게 난색을 표하더니, 영상 촬영이 재밌는지 무언가 아쉬운 표정들이었다.
심지어.
“아무래도 내 표정이 가장 리얼하지 않았나 싶은데 말이야. 내가 이번 홍보 영상의 대표 모델이 되는 게 낫지 않을까?”
“무슨 소리여! 자네는 갈비를 고작 세 개 뜯었다면 나는 다섯 개나 뜯었다고!”
“허허, 이보게, 사이즈가 다르잖어! 사이즈가! 나는 열 개 같은 세 개라고”
다들 자신의 모습을 대표 영상으로 써달라고 난리였다.
촬영 영상은 총 30분.
이 중에서 써야 될 영상은 단 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