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36
136.
“헌오 어머니의 친구분이요?”
“응. 내가 헌오 돌보러 갔다 마주친 적이 있어. 헌오도 아는 사람인 거 같더라고.”
“이 동네분은 아니신가요?”
“그럼, 이 근방 사는 사람이면 내가 알았을걸.”
그렇게 말하며 부인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처음으로 목소리를 낮춰 이린에게 속삭였다.
“손버릇 나쁘고 변변치 못한 남편 때문에 집에서 뛰쳐나왔대. 친구라고는 죽은 헌오 엄마뿐이었는데 그렇게 일찍 가 버려서 가끔 헌오가 잘 있나 보고 싶어 찾아온다고.”
“그런데 왜 헌오는 그 사실을 몰랐죠?”
헌오가 알았다면 이 동네 사람도 아닌 이에게 서신을 전해 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헌오는 아무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할 수 있는 애는 아니었으니 잘 몰랐을 거야. 게다가 멀리서 찾아오는 걸 아이한테 말하면 부담스러워할 테니 그 사람도 아이에게 그리 자세한 얘긴 안 했겠지. 아픈 아이를 괜히 신경 쓰게 하는 어른이 어디 있겠어?”
“그건 그렇네요.”
“게다가 나한테도 헌오 아버지가 알게 되면 남편에게 연락이 갈지 모르니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고. 그 왜, 헌오 아버지가 원래 좀 대단한 분이라며. 그래서 그런가 워낙에 좀 꼿꼿하신 양반이잖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음, 그렇죠.”
부인의 말에 이린은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사실 실제로 만나 본 적은 없어 어떤 사람일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대단한 분이라니 금시초문인데 서문제우 아저씨는 뭔가 알고 계실까?
“헌오도 어렸으니 잘 몰랐겠지. 그래도 서신까지 쓴 걸 보면 많이 따랐던 모양이네. 하긴 제 어머니 얘길 해 주는 사람이 워낙 없을 테니.”
“부인께선 헌오 어머니에 대해 모르세요?”
“이 동네로 이사 올 때부터 부자 둘뿐이었어. 그래서 아이 엄마 친구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지.”
“그렇군요.”
본인이 태어나서 연가장을 떠난 일이 별로 없어서인지 당연히 헌오도 여기서 태어났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로, 헌오 어머니의 친구일 가능성도 있지만.’
이린은 어쩌면 그 여인이 뭔가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무림맹에서 이미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확인차 물었다.
“저기, 혹시 예전에 헌오네 떠나고 난 후 찾아온 사람들이 그분을 찾진 않았나요?”
“응? 그 무서운 사람들?”
“네.”
이린의 질문에 부인은 몸서리치듯 고개를 저었다.
“어휴, 그런 무서운 사람들한테 말했다간 뭔 큰일 날 줄 알고? 그냥 다 모른다고 했지. 사실 그땐 너무 놀라서 생각이 안 났거든. 나도 뭐 아는 것도 없는 데다가, 솔직히 찾아봤자 괜히 애먼 사람 들쑤시기밖에 더 하겠어? 안 그래도 부러질 듯 가녀린 사람이라 안쓰럽더라고. 우리 집에서 밥 좀 먹고 가라고 붙잡았을 정도라니까? 참, 아가씨도 아직 식전이죠? 한술 뜨고 가요.”
“아뇨, 아뇨. 가 봐야 해서요. 그렇죠?”
“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주머니의 거리감 없는 친화력에 이린이 도와 달라는 뜻으로 뒤를 돌아보자 남궁청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답했다. 당자혜는 남 일처럼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실제로 남 일이긴 했다.
“아유, 훤칠한 총각이 목소리도 좋네. 얼굴도 잘생겼을 거 같고, 정인이야?”
“아뇨.”
“아닙니다.”
동시에 나오는 다급한 대답에 아주머니는 눈을 초승달로 만들며 호호 웃었다.
그냥 젊은 남녀가 있으니 막 던진 말인데 반응이 쏠쏠한 것이 귀여웠다.
면사를 쓰고 있어도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 둘 다 단정한 얼굴인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으니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선남선녀일 것 같은데, 얼굴이 가려져 있는 것을 아쉬워하며 말린 해바라기 씨를 깠다.
“아유. 한창 좋을 때지 뭐. 아무튼 나도 거의 잊고 있던 일인 데다 이젠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니까 뭘 말해 달라고 해도 알려 줄 게 없어.”
“그렇군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이 아는 것이 없다는 것과는 별개로, 그냥 한두 번 찾아온 사람이었다면 헌오가 서신을 부탁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린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그분이 어디 계시는지는 알 수 없을까요?”
“글쎄, 우리 집에서 식사할 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어디 도관에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아, 그래서 그런가, 되게 뭔가 교양 있어 보이고 그러더라고. 어디였는지는 들었나 못 들었나? 잘 모르겠네.”
“그렇군요. 그럼 아쉽지만 마지막 서신은 전해 주지 못하고 돌려줘야겠네요.”
이린은 겨우 대화를 끝내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어릴 적 진사린과 만났던 경험이 없다면 저 끝없는 수다에 넋을 놓았을지도 몰랐다.
‘정말, 경험은 소중한 거구나.’
헌오를 찾아왔다는 그 여인도 어쩌면 말할 생각 없는 것까지 본의 아니게 털어놓은 게 아니었을까.
“저분 모셔다가 훈련시켜서 정보 담당 부서에 넣어 보고 싶군요. 자연스럽게 잘 빼낼 거 같아요.”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알게 될 것 같지만요. 응? 왜 그러니?”
이린이 용무를 얼추 다 끝내고 곧 떠날 듯 보이자 계속 길을 안내해 주었던 소년이 이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저기요. 키 큰 누나. 혹시 지금 헌오한테 서신을 쓰면 전해 줄 수 있어요?”
“물론이지. 너무 오래 걸리지만 않는다면.”
이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달려갔다.
이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남궁청휘와 당자혜 역시 아는 이가 거의 없는 마지막 한 사람에 대해 이상함을 느낀 듯했다.
“추연이라는 여인이 혹시 그곳과 관련이 있는 걸까요? 하지만 무림맹에서 이미 조사를 했을 테니 그 여인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이의 부친 몰래 집안에 드나들었다면 다른 이들은 모를 수도 있어요. 남들 눈에 거의 띄지 않았으니 방금 우리가 만난 저분 외엔 아는 이도 없었고요.”
당자혜의 말에 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오의 아버지는 학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몸이 아픈 아이는 종일 혼자 집을 지키는 날이 많았어요.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구라며 집을 드나들고 있었다면 아버지는 모르고 아이만 알았을지도 몰라요. 게다가 아까 들은 것처럼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않도록 당부했다면, 헌오는 조숙한 아이였으니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게다가 당시 아이는 아팠으니 누구도 아이만이 알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거죠. 무림맹도 굳이 아픈 아이에게서까지 정보를 얻으려 하지는 않았고요.”
동네 사람들조차 잘 모를 정도로 몰래 왔다 갔다고 하니 말할 것도 없이 수상쩍었다.
‘직접 찾기엔 단서가 부족하고 따로 의뢰를 넣어서 알아봐야 하나.’
직접 탐문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저기, 누나. 누나!”
“아, 왔구나.”
얼굴에 멍이 든 소년이 손에 꾸깃꾸깃 접힌 종이를 쥐고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었다.
아까까지는 멀쩡했는데.
놀란 이린이 다가온 소년의 얼굴을 붙잡자 마찬가지로 놀란 아이가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을 잡은 누나는 키만 큰 게 아니라 힘도 셌다.
“으아? 왜 이래요.”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다쳤어?”
“아, 별거 아니에요. 아버지가 또 술을… 아, 하하하.”
동네 사람들은 뻔히 아는 사정이라 저도 모르게 입이 가벼워졌던 아이는 뒤늦게 웃음으로 이를 무마시키려 했다.
“술만 안 마시면 평소에는 괜찮아요. 이젠 나도 슬슬 키도 컸고 맞고 있지만은 않으니까. 오늘은 이거 쓰느라고 방심해서 그만. 헤헤.”
이린이 걱정스러운 듯 멍이 든 이마를 쓰다듬자 생각지도 못한 부드러운 손길이 어쩐지 낯부끄러워 아이는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구겨진 종이를 편 후 다시 반듯하게 접어 이린에게 내밀었다.
“헌오한테 전해 주세요. 나중에 얼굴 볼 때까지 답장은 안 보내도 된다고요.”
“그래. 꼭 전해 줄게.”
서신을 보내기에도 꽤 먼 곳이니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건만 그리 말하는 아이의 얼굴이 빛나 보여 이린은 저도 모르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년은 제 머리를 쓰다듬어 준 이린이 서신을 조심스럽게 가방에 챙겨 넣는 것을 보며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저기요, 혹시 아까 그 도관 찾는 거면 나 짚이는 데가 있어요.”
“어떻게?”
“예전에 헌오한테 갈 곳 없는 여자들을 받아 주는 도관이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나중에 혹시 필요할지 몰라서 어디 있는지 여기저기 물어서 알아 놨었어요.”
이린은 아이의 이마에 있는 멍 자국과 관련이 있을 듯해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붓 정도로는 안 되겠는데.”
“네?”
“아니, 고맙다고. 너는… 이곳을 떠날 생각은 없니?”
“아직은요. 어머니도 계시니까요.”
아이의 말에 이린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언젠가는 떠날 생각이고?”
“사내가 글을 배웠으면 마땅히 입신양명(立身揚名), 청운의 꿈을 품어야죠!”
아이는 멍이 든 얼굴로 히죽 웃었다. 이린은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으나 그걸 막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만 기다리렴.”
“?”
잠시 고민했지만, 아이는 충분히 총명해 보았기에 이린은 지니고 있던 손수건을 하나 꺼내 아이의 이름자를 적은 후 은자와 함께 손에 쥐여 주며 당부했다.
“꼬마야.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항주에 있는 연가 상단의 지점으로 찾아와서 이걸 보여주며 연이린이란 이름을 대렴. 뭐, 헌오에게 서신을 보내고 싶을 때도 괜찮고.”
과거 준비를 하고 싶을 때도 괜찮고.
“누가 꼬마예요? 근데 누나 이름이 연이린이에요?”
아이는 손수건에 수놓아져 있는 이름을 읽으며 물었다.
“그래. 하지만, 내 이름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이야. 네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좋아요.”
이렇게 말하면 가벼운 용건으로 찾아올 것 같지만, 이 마을과 연가상단의 지점이 있는 곳은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으니 아이가 어지간한 일로는 찾아오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 때 기댈 곳이 있다는 건 나쁘지 않겠지.
세 사람은 아이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떠났다.
“그런 거 알려 줘도 되겠어요? 기껏 얼굴도 가려 놓고.”
“어차피 누가 알려고 하면 금방 알아내지 않겠어요? 덕분에 수고를 덜었는걸요.”
본래라면 개방에 의뢰를 하든, 발품을 팔든 해서 도관을 찾아야 했을 텐데, 소년 덕분에 시간을 크게 아낀 셈이었다. 물론 그 도관이 맞다는 전제하의 얘기지만.
“하지만 의외로 유명하네요.”
아이가 말한 도관을 찾아가던 중 근처의 다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점소이에게 물어보니, 왕모묘(王母廟)에 가시는 거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곳을 찾는 분들이 많은가 봐요?”
“이름부터 서왕모(西王母)를 모시는 왕모묘잖아요? 여인들만 받아 주는 곳이라 오갈 데 없는 부인들이 종종 찾으세요. 설마 세 분도 출가하시는 건 아니죠?”
“아뇨, 사람을 좀 찾고 있어서요.”
그리고 점소이의 그 말은 즉 남궁청휘까지 여인으로 착각했다는 뜻이었다.
줄곧 대화를 주고받고 있던 이린과 자혜 둘 다 키가 큰 데다, 세 사람 다 상반신 전체를 가리고 앉아있다 보니 일어난 일이었다.
주문을 받은 점소이가 사라지자 청휘를 제외한 두 사람은 덕분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하. 어쩌죠, 공자?”
“푸후후후후. 같이 들어가도 안 들키는 거 아니에요?”
“…그만하세요. 두 분.”
청휘는 억울했다. 챙이 넓은 죽립에 면사를 두르고 있어 어깨까지 가려졌다지만, 어딜 봐도 여인으로 오해받을 일은 없는 몸이건만.
저 점소이의 눈이 크게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여인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라니, 남궁 공자께선 밖에서 기다리셔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설마 들어가는 것조차 안 되겠습니까.”
“아니면 여장이라도 하시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