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8
18.
끼기기!!
“오빠!”
“오지 마!”
마지막 발악인지 갑자기 몸을 일으킨 지네는 이현을 덮쳤다. 다급히 공격을 피한 이현의 검이 지네를 두 동강 냈지만, 팔에 긴 상흔이 남은 후였다.
“큭……!!”
“오빠!!”
이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지네의 독니에 당한 거라면 스친 상처라도 위험했다.
이현이 상처 부위의 독을 빨아내는 동안, 이린은 서둘러 팔 위쪽을 묶어 독이 퍼지는 것을 늦춘 후 절단된 지네의 머리 부분을 찾았다.
다소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마셔서 피에 독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린은 이현에게 지네의 피를 먹였다. 좀 꺼림칙하지만 영물의 피는 도움이 될 테니까. 몸이 마비되기 시작했는지 이현은 팔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오빠, 어서 운기를!”
이린이 이현을 밖까지 끌고 나가긴 어려웠다. 이현이 운기조식(運氣調息)으로 스스로 해독하는 수밖에 없었다.
식은땀을 흘리는 이현의 안색이 흐려지자, 발을 동동 구르던 이린은 그제야 이곳이 어딘지 떠올리고 당장 석실로 달려갔다.
“분명 여기에… 있다!”
자신이 섭취했던 영약. 혹시 없어지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상자는 그 자리에서 이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린은 그것을 들고 와 영약 중 하나를 이현의 입안에 밀어 넣었다. 다행히 영약은 이현의 입속에서 사르르 녹아들었다.
‘이렇게 먹이려던 건 아니었는데.’
“오빠, 내가 지금 먹인 거 영약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대답 없는 이현의 이마에서는 계속 송골송골 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곧 하얗게 질려 가던 안색이 점점 차분하게 돌아오고, 상처 부위도 가라앉고 있었다.
‘어쩌면 지네의 독도, 영약도 단번에 오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운기조식을 도와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아직 무리였다. 그저 또 위험한 무언가가 무방비 상태인 이현에게 다가오지 않도록 주변을 지킬 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는 편안히 숨을 쉬는 이현을 본 이린이 안도의 숨을 내쉴 때, 손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어?”
이현의 부상 때문에 잊고 있던 작은 뱀, 청아였다.
“와아, 너 귀엽다.”
시이―.
이린이 기억하는 청아는 훨씬 컸는데, 지금 이 아이는 너무 작고 깜찍했다.
길이는 어린 이린의 손목에서 팔뚝까지 정도였고, 굵기는 기껏해야 손가락 굵기 정도 될까?
두 사람이 자신을 구해 준 걸 알기라도 하듯 이린의 팔에 몸을 돌돌 말고 올라와 얼굴을 문지르는 것이, 마치 뱀이 아니라 강아지 같았다.
“으차.”
청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이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역시 오늘 다소 무리하긴 했는지 몸이 찌뿌둥했다.
‘어서 돌아가지 않으면 집이 난리가 날 텐데.’
일어나 몸을 풀고 있던 이린은 문득 아까 청아의 근처에 있던 알들을 떠올렸다.
이현의 상태를 잠시 확인한 이린은 다시 한 번 주변을 경계하며 알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20년 후에는 청아밖에 없었는데. 그럼 이 알들은 어떻게 된 걸까.’
지네에게 먹히거나 깨졌을지도.
지금 부화한 게 청아 하나뿐이니 청아만 혼자 도망치는 데 성공하고, 나머지는 저 지네의 먹이가 되었거나 깨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심스레 알을 향해 다가간 이린은 알들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들은 투명했고, 그중 하나만 투명한 껍질 안에 작은 뱀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여기 안에 뱀이 있는 것만 부화하는 건가?’
나머지 알들도 뒤가 비칠 정도로 투명했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몇 개는 지네에게 밟힌 건지 깨진 조각만 남아 있었다. 이린은 그중에서 뱀이 들어 있는 알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차가워.’
뱀의 알은 원래 이렇게 차가운 걸까? 청아는 워낙에 차가웠으니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알이 부화하려면 온기가 필요한 게 아니었나?
‘게다가 이 아이 색깔이 붉은데.’
고민하던 이린은 뱀이 들어 있는 알을 포함해 투명한 알들을 품에 안았다. 이곳에 두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떨어지지 않게 품에 잘 갈무리해 돌아서자, 눈을 뜨고 있는 이현의 모습이 보였다
“린아.”
“오빠! 이제 괜찮아?”
“응. 덕분에.”
다정하게 웃는 이현의 모습에서는 어딘지 이전과는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이린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다치고.”
훌쩍이는 동생을 끌어안으며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덕분에 내공도 오르고 깨달은 것도 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지도. 이런 경험은 돈 주고도 하기 힘들 거야. 그러니까 울지 말고.”
“응.”
운기조식 중에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기에 이린은 이제야 오빠 품에 매달렸다. 이린을 안아 올리는 이현의 어깨 위로 꾸물꾸물 무언가가 올라탔다.
“……?”
“아, 청아. 이리 와.”
“청아?”
“응. 여기 있던 뱀이야. 귀엽지?”
이린의 손에 푸르스름한 빛깔의 자그마한 뱀이 잡혀 있었다. 이린의 팔을 꾸물꾸물 감고 있는 모습이 마치 장신구 같기도 해서 이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귀엽네. 어디서 났어?”
“여기서 주웠어.”
“…주웠어?”
“응. 내가 키울래.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 빨리 나가야지! 잠깐만 기다려!”
청아를 자신에게 넘긴 이린이 석실 쪽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며 이현은 잠깐 고민했다.
‘아버지가 싫어하시지 않을까.’
시이―.
자신의 손에 감겨 있는 청아가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아, 이현은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하셔도 별수 없지.’
아버지가 언제 이린을 이긴 적이 있으셨나.
수상쩍은 석실에서 무슨 짐을 챙긴 건지 품에 안고 후다닥 뛰어 내려오는 이린을 보며 이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길고 긴 밤이었다.
힘들게 잡은 영물의 사체는 그냥 놔두기 아까웠지만, 서늘한 동굴 안이니 쉽게 부패되지는 않을 듯했다.
내단만 적당히 챙겨서 나온 남매는 동굴 밖으로 나오자마자 떠오르는 태양과 조우해야 했다.
“큰일이네, 진짜.”
“응. 다들 찾고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한 이현은 짐 꾸러미를 이린의 품에 맡기더니, 이린을 안아 들고 절벽 위로 재주 좋게 뛰어올랐다.
“와아!!”
“꼭 잡아. 집까지 달려갈 테니까.”
“응!”
이현이 피를 마신 지네는 천주오공(天誅蜈蚣)이라는 영물이었다.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해 어린 오누이에게 잡혔지만, 그 독과 피를 자신의 것으로 한 이현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덕분에 만독불침까지는 못 되어도 어지간한 독에는 내성이 생겼고, 그 피와 영약 덕분에 이현의 내공 역시 크게 향상되었으니, 이린을 데리고 장원까지 달려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굉장하다. 몸에 힘이 넘쳐흘러.’
하룻밤 내내 고생했으니 기운이 없어야 정상이건만 정반대였다.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직접 느끼는 것은 그냥 알고 있는 것과는 또 달랐다.
‘이것 역시 기연이겠지.’
품 안에 안겨 휙휙 바뀌는 풍경을 즐겁게 쳐다보는 여동생을 꼭 끌어안고 달리는 이현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모두 린아 덕분이구나. 어제 혼자 보내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감탄과 동시에 걱정 또한 밀려들었지만, 이현은 애써 걱정을 털어 냈다.
지네를 잡는 이린의 몸놀림은 결코 검을 모르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아직 서투르긴 했으나, 이린이 기연을 만난 게 얼마 되지 않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지켜야지.’
사랑스러운 여동생이었다. 이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자신이 지켜 주겠다고 맹세했다.
‘아무래도 보통 아이가 아니라 조금 버거울지도 모르지만.’
품 안의 온기를 느끼며 이현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영물의 피를 마셨다곤 하지만, 8세 어린아이가 거대 지네와의 전투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모험이었다.
‘내가 좀 더 강했다면 린아가 그런 위험한 일을 겪지 않아도 됐겠지.’
자신도 아직 15세고, 앞으로 한참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위험한 일이 언제 또 생길지 모르는 일이었다.
‘강해지자.’
적어도 이 어린 동생이 오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도록.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 않도록.
겁 없는 여동생. 이 아이가 강해질 거라는 건 걸음마와 함께 장난감 검을 잡는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사실은 조금, 두근두근하는 기분으로 보고 있는 걸지도.
슬슬 장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벌써 아침이 되어 버렸으니 지금쯤 장원에서 자신들을 찾고 있겠지. 조금 머리가 아파 오는 이현의 마음도 모르고 품 안의 이린은 고른 숨소리를 내며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멀리 보이는 익숙한 연가장의 편액을 보며 이현은 너덜너덜해져서 동굴에 버리고 온 이린의 목검을 떠올렸다.
‘하나 더 마련해 줘야겠네.’
이린이 가지고 싶어 해서 자신이 몰래 마련해 준 검이었다. 이린은 연습용 목검 중 하나를 자신이 빼돌려 줬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사실 이현이 추가로 주문을 넣어 어린 이린에게 맞춰 만든 검이었다.
못 쓰게 된 것은 아쉬웠지만, 이번에 제 몫을 톡톡히 해냈으니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마 전혀 눈치 못 챘겠지.’
이린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즐겁게 웃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문지기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이현은 당당히 귀가했다. 어젯밤에 나가서 아침에 들어온 것뿐인데도, 어쩐지 굉장히 오랜만에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날 아침, 엉망인 차림으로 돌아온 소장주와 아가씨를 본 장원의 호위무사들은 간밤에 두 사람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사실에 충격받아 한동안 엄격한 훈련에 돌입해야 했다.
“선녀 언니 뭐 해?”
“민아가 안 아플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
“정말?”
“응, 그러니까 나가서 자영 언니랑 놀고 있어.”
그날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이린은 극성인 오라버니에게 떠밀려 의원의 건강 검진까지 받아야 했다. 그 결과 지극히 건강. 저를 대체 왜 부르셨느냐는 의원의 어이없는 시선을 받은 후에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그 후 이린은 한동안 동굴에서 가지고 나온 비급들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왜 다 표지가 없을까?’
혹시 지금은 표지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동굴에 있던 비급들은 여전히 하나같이 표지가 없었다. 덕분에 이린은 자신이 익힌 무공의 정확한 이름조차 몰랐다.
‘그건 표지만 없는 게 아니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이린은 표지가 없는 비급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원하는 비급을 찾아야 했다. 그러는 도중에 발견한 몇 가지 흥미로운 비급들은 따로 빼놓았다.
목적했던 심법이 담긴 비급을 찾아낸 이린은 다시 한 번 심법을 훑어보며 민영에게 맞을지 확인했다.
‘정순한 백도의 심법이 맞아.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 같은데. 뭐… 견문은 나보다 서문제우가 넓을 테니 그냥 서문제우에게 건네주면 알아서 하겠지.’
이린은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비급들을 다른 책들 사이에 잘 갈무리해 숨겨 놓은 후 방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