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31
31.
“괜찮아? 정신이 들어?”
“어떻……게…… 된…….”
어울리지 않게 긁히는 듯한 쇳소리를 내며 아이가 힘겹게 말을 잇자 이린이 차를 따라와 아이의 입술을 적시고 입가에 조금씩 흘려주었다.
이린이 따라 주는 차를 꿀꺽꿀꺽 마신 아이는 작게 한숨을 쉬며 다시 눈을 깜빡였다.
이린은 물에 적신 천으로 눈가를 닦아 주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산길에서 폭주하고 있는 마차를 발견한 우리가 널 구해 내서 주주에 있는 객잔까지 데리고 온 거야. 몸 상태가 아직 좋지 않은 것 같으니까 무리는 하지 마. 알았지? 내 말을 알아듣겠으면 눈을 한 번만 깜빡여 봐.”
아이가 눈을 한 번 천천히 감았다 뜨는 것을 본 이린이 안도하며 질문을 이어 갔다.
“네가 탄 마차를 쫓고 있는 이상한 남자들을 봤는데 네가 아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이린의 질문에 아이는 초조하게 눈을 여러 번 감았다 뜨며 아니라는 답을 했다.
“그 사람들이 왜 너를 쫓는지 알고 있어?”
그 말에는 아무 반응 없이 이린만을 응시했다.
“모르겠다는 거야?”
깜빡.
긍정이었다.
“곤란하네. 어디로 데려가야 할까. 관아에 맡기는 게 좋을까?”
“일단 우리는 장사로 가야 하는데. 이 아이는 가야 할 곳이…… 같은 모양이구나.”
이현의 말에 어떻게 입을 열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를 보며 이린은 다시 천천히 물을 먹였다. 이번에는 아까에 비해 더 제대로 물을 마신 아이가 작게 속삭였다.
“연가상단…… 진……명현……에게…… 데려다…….”
“연가상단 진……명현?”
누구야, 그게?
질문이 담겨 있는 이린의 눈빛에 이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가상단 장사 지부에 있는 유명한 야장(冶匠: 대장장이)의 이름 같은데, 맞니?”
“네…….”
조금 안도한 듯한 아이의 목소리에 이현은 그 이상 묻지 않고 아이 옆에 붙어 있는 이린을 안아 들었다.
“마침 장사에 가는 길이니 데려다주마. 안심하고 좀 더 쉬렴.”
“감사……합니다…….”
후우, 하고 작은 한숨을 쉰 아이는 힘들어서인지 그게 아니면 긴장이 풀린 것인지 실이 끊어지듯 눈을 감았다. 다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우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깬 걸까?”
“글쎄.”
약간 찔리는 구석이 있는 이린의 말에 이현은 작게 웃으며 이린을 안아 든 채로 침대까지 데려다주었다. 아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이린은 내내 청아를 어깨에 얹은 상태였다. 그런지라 청아 역시 이린에게 딸려 함께 침대 위로 떨어졌다.
“앗, 오빠 뭐 하는 거야!”
키이이-!
“아이는 이제 자야지. 내일도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까르르 웃으며 아웅다웅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희미한 눈으로 보며,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아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부럽다…….’
* * *
“마차가 비어 있었다니, 대체 아이는 어디로 간 거지?”
“도중에 숲에서 튕겨 나갔거나 아니면 미리 눈치채고 도망쳤거나 둘 중 하나겠지.”
“젠장, 숲을 뒤져야 하나.”
“다시 주주로 돌아갔을지도 몰라.”
“어린애라지만 보통이 아닌 손속이다. 방심하진 마라.”
저마다 손에 날붙이 하나씩을 든 흉흉한 무사들은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고 아이를 찾아 마차가 지나간 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 슬슬 포기하고 산을 내려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마차 하나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원래 그리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길은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곤 마차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라!”
히히힝!!
갑자기 앞을 가로막은 괴한들 때문에 놀란 말이 요동치자 마부석에 앉아 있던 사내가 차분히 말을 달랬다.
“워어~ 워. 뭔가? 자네들은.”
“그 마차 안을 확인해야 할 것 같으니 좀 비켜 보거라.”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어르신들이 네놈을 손봐 줄 것이다.”
“묘령의 미인도 아니고 사내놈이 면사라니 재수 없구만, 퉷!”
한눈에 봐도 질이 좋지 않아 보이는 일당들을 보며, 죽립에 면사까지 쓰고 있던 사내는 헛웃음을 쳤다.
“뭐야, 산적치곤 좀 이상한데?”
“저것도 산적이에요?”
마차 안에서 갑자기 작은 머리통 하나가 쏙 나오더니 사내에게 물었다. 갑자기 들려온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무사들은 흥분해 무기를 들었다.
“어린애다!”
“어린애가 있어!”
위협하던 자들이 금방이라도 덮쳐 올 듯 흉험한 분위기를 풍기자 사내는 서둘러 아이를 다시 마차 속으로 밀어 넣었다.
“뭐야, 어린애한테 환장하는 미친놈들인가?”
“닥쳐! 자세한 건 알 거 없다!!”
“그 아이를 넘기면 네놈은 그냥 넘어가 주마!”
“허허어. 호남이 이런 무법천지가 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사내들의 위협을 비웃듯 사내는 태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면사로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사내가 웃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우스워 보이나?”
마차를 둘러싼 인원이 적지 않음에도 정작 포위당한 사내는 여유롭게 자신을 겁박하고 있는 자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상하군. 산적들이라기엔 꽤 단련된 자세에 같은 무공을 익히고 있네? 게다가 산적 주제에 꽤나 좋은 검에, 자세도 제법 잡혀 있고.”
“스승님 빨리 끝내시면 안 됩니까? 저 배고픕니다.”
“제자라는 놈이 이리 인내심이 없어서야, 이 스승이 부끄럽지 않느냐.”
“배가 불러야 부끄러움도 아는 거 아닙니까.”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듯한 날선 분위기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조금은 긴장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죽립을 쓴 사내와 그 제자는 한 치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이자는?’
‘어째서 이런 상황에 이렇게 당당한 거지? 설마…….’
마차를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고민하기 시작할 무렵, 사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슬슬 무거운 엉덩이를 좀 움직여 보실까.”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움직일 수가, 없다!’
전신을 압도하는 강렬한 위압감!
어째서 깨닫지 못했을까. 눈앞의 사내는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의 고수였다.
털썩-!
털썩, 털썩.
마차를 포위하고 있던 일행들은 순서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스르릉-
사내의 허리춤에서 서늘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모처럼 어린 제자와 함께 즐겁게 유랑을 좀 해 볼까 했는데 이리도 방해를 받으니 본좌의 심기가 제법 불편하구나.”
그리고 그보다도 더 차가운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한 마디는 그들이 살아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 * *
“으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운기조식을 하는 이현의 곁을 지키던 이린은 아직까지 미동도 없이 정신없이 잠들어 있는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푹 쉬어서인지 아니면 역시 어제 먹인 영약 덕분인지 많이 편안해진 얼굴을 보며 슬쩍 이마에 손을 짚었다.
‘아직 미열이 조금 있는 거 같은데.’
그래도 영약까지 먹였는데 아직도 회복이 안 되다니 걱정이었다.
하기야 놀랐겠지. 이렇게 어린아이가 독에 당하고 괴한들에게 쫓기기까지 했다면 보통은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든 일이었다.
이린 자신도 어린아이일 때 그런 일을 당했다면 무서워 덜덜 떨었을 것이다.
소박한 옷을 입고 있기는 해도 깨끗하고 해진 곳이 없는 걸 보면 떠도는 아이는 절대 아니니, 분명 일행도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이 아이의 일행은 살해당한 건가? 아니면 아이를 두고 도망갔을까. 그것도 아니면.’
일행이었던 자들이 이 아이에게 독을 먹인 장본인일까.
‘그러고 보니 일행을 찾지는 않았지. 함께 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게 아니라면 눈앞에서 살해당했을지도 모르겠네.’
이린 자신은 둘 다 겪은 일이었다. 배신당하고, 눈앞에서 친밀하던 사람이 살해당했던 기억이 강해서일까. 이 어린아이가 믿고 있던 일행에게 배신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게다가 이 어린아이가 독이라니.
‘아직 이렇게나 어린데 얘 인생도 썩 편해 보이진 않네.’
그나마 지금 좀 멀쩡한 건 이린이 먹인 영약 덕분이겠지.
묘한 기분이었다. 이린과 마주치지 않은 예전의 이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대로 붙잡혔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연히 다른 기연을 얻어 더 좋은 기회를 잡았을 수도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봤자겠지만.”
키이-?
어깨 위에 올라와 있던 청아가 이린의 중얼거림에 되묻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아, 잠깐 이리 와 볼래?”
이린은 청아가 얹어져 있는 어깨에서 서늘함을 느끼며, 청아를 들어다 아직 미열이 있는 아이의 이마 위에 슬쩍 얹었다. 요새 이상하게 점점 더 차가워진다 했더니 실은 영약 섭취의 부작용이었나.
키이-
“그렇게 뜨겁지는 않지? 물수건보다는 나을 거 같으니까 잠깐만 있어 줄래?”
키이-
이린의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던 청아는 호기심이 생긴 듯 자신이 앉아(?) 있는 이마의 주인을 내려다보았다.
이린의 눈에는 보기 드물게 고운 얼굴이었지만 청아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잡아먹으면 안 된다~”
키이~
잡아먹는 것보단 잡아먹힐 것을 걱정해야 할 수준으로 작디작은 청아를 톡톡 건드리며 장난치던 그때였다. 이마에서 서늘함을 느꼈는지 작게 한숨을 내쉰 아이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눈꺼풀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아.”
키이?
“배…, ~~!!!!”
바로 눈앞에 있는 뱀을 보고 비명을 지르려는 아이의 입을 이린이 다급하게 틀어막았다.
“청아, 이리 와.”
자그마한 뱀이 부르는 대로 꼬물꼬물 사람의 팔 위로 기어가는 것을 보고 혼란 상태로 굳어 있는 아이에게 이린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미안, 지금 눈뜰 줄은 몰랐어. 얘는 뱀이지만 위험한 애는 아니니까 놀라지 마. 응?”
곤란한 듯 웃으며 사과하는 이린과 눈을 마주치며 아이는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였다. 생각보다 금방 차분해진 아이를 보며 이린이 재차 당부했다.
“다른 사람들 놀라니까 비명은 지르지 말고. 알았지?”
“…응. 알았어.”
이린이 천천히 손을 떼자 아이는 조용히 눈썹을 깜빡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쫓기는 몸이니 더 조심스러운 건 아이 쪽이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역시 아직까지 뭔가 긁히는 목소리가 신경 쓰인 이린은 잠시 기다리라며 어제 옆에 놔둔 차를 다시 따라 아이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