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54
천하제일 시한부 (154)
안휘를 수복한다?
“허.”
표정이 절로 굳었다.
이건 상황이 조금 달랐다.
그간 변천을 비롯해서 저들은 목적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거합은 자신의 본 목적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더군다나 수복한다는 뜻은 곧 잃어버린 뭔가를 다시 되찾겠다는 데에 있다.
“안휘가 네 거냐? 수복은 염병…….”
말과 함께, 검을 뽑아 들었다.
쾅―!
거합이 곧장 발로 대지를 찍었다.
묵중한 중압감과 함께, 스산한 살기가 휘몰아쳤다.
일련의 동작만으로 그의 주변에 늘어선 무사들이 일제히 이쪽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고도로 훈련된 놈들이다.’
자릿한 긴장감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빙궁을 칠 때도, 남만 독곡을 칠 때도 느껴 보지 못했던 전율이었다.
‘이것이 사륭회?’
그래, 변천은 너무 허접했다.
이놈들부터가 진짜다.
터엉―!
거합이 그 육중한 체구를 쏜살같이 날려 왔다.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거합.
‘이형환위.’
이전과 다르다.
난 다급히 검을 세로로 세워 날아드는 일격에 대비했다.
터엉―!
거합의 대검과 내 검이 부딪치고,
울컥.
순식간에 내부가 진탕했다.
“이런 개 같은…….”
치직―!
내 신형이 절로 십여 보를 밀려났다.
그럼에도 충격이 미처 해소되지 못해, 전신이 저릿저릿했다.
우웅―!
다급하게 전하결을 운용했다.
‘좋지 않다.’
난 표정을 굳히고 진중하게 전투에 임했다.
“단주님.”
종서가 괜찮냐며 조용히 날 부축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난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서를 밀어냈다.
“넌 지금부터 이곳을 벗어난다.”
“단주님!”
종서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신기검단이 전투에서 빠진 적은 없었다.
하물며 종서는 부단주였다.
그의 기분을 알 법도 했지만, 지금은 다른 것이 필요했다.
“단주님과 저라면 저들쯤은…….”
종서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미소와 함께, 종서를 다시금 밀어냈다.
“종서야.”
뜬금없이 부드러운 목소리에 종서가 입을 다물고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내 몸 상태가 예전과 같지 않다.”
“예? 그게 무슨…….”
종서의 눈빛이 흔들렸다.
“천마, 그 자식이 내게 독을 썼거든.”
아무래도 종서는 알아야 할 듯했다.
현재 상황에서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충직한 수하였기에.
“그게 무슨…… 대체 무슨 독이길래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겁니까?”
종서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일정 경지에 오른 무인은 독에 대한 내성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내기의 벽이 두꺼워지면서 어지간한 독기는 고유 내공의 벽에 막혀 내부를 잠식하긴커녕 그냥 스러지고 말 테니까.
난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그런 상황까지 설명해 줄 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의왕각주님도 알고 계신 겁니까?”
“알고 있다. 해서 떠난 것이다.”
내 말에 종서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는군요.”
종서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런 눈빛 하지 마라.”
“죄송합니다, 단주님.”
이제 알아들었을 것이다.
종서는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저들을 유인할 것이다. 최대한 강소성으로 유인해 볼 테니, 여화와 설이를 데리고 뒤를 잡아.”
“차라리 안휘의 문파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는…….”
“안 돼.”
난 가차 없이 고개를 저었다.
“더 솎아 내기 어려워지게 된다. 안휘에 저들과 협력하는 문파가 있을지도 몰라.”
또한, 아직 중원 무림인들은 사륭회에 정체에 대해 모르고 있다.
그들에게 혼란을 주어선 안 된다.
그럼 정말 비극이 벌어지게 될 테니까.
“그럼…….”
종서가 알아들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몸을 날렸다.
난 돌아서서 거합을 향해 눈을 빛냈다.
“제대로 시작해 보지.”
스릉―!
검날이 빛을 발했다.
“크흐, 기대되는군.”
거합 역시 대검을 들고는 그대로 기운을 끌어 올렸다.
내 한쪽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내부가 들끓었다.
자릿한 긴장감은 곧, 희열로 승화했다.
쿠궁―!
대지가 뒤흔들렸다.
전하결이 마치 폭주하듯, 미친 듯이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일식호흡.’
세상을 고루 비추는 빛.
언제나 그 자리에 잔잔하게 내리쬐는 빛처럼.
전하결의 기운은 전신을 편안하게 보듬고.
‘월하무.’
이내 차가운 기운이 전신 혈도를 거쳐 검에 내려앉았다.
“역시 난…….”
콰직!
시야가 넓어졌다.
내 한쪽 눈의 동공이 흐릿하게 일그러졌다.
그건 이른바 ‘광기.’
내가 진심으로 싸우고자 마음먹었을 때 나오는 현상이다.
동시에 터져 나온 맹렬한 불꽃.
‘삼매경혼.’
“싸우는 게 좋아.”
쾅―!
거친 기합과 함께, 난 그대로 거합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북경, 하북팽가.
굉천도성 팽효가 연무장에 들어섰다.
그의 앞에는 잿빛 무복을 걸친 사내가 홀연히 서 있었다.
“활이라…….”
팽효가 사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활을 든 사내, 양노진 역시 긴장하며 활에 시위를 걸었다.
동시에 잔잔한 미풍이 불기 시작했다.
팽효는 처음 양노진을 본 순간부터 궁금했다.
‘무공의 흐름이 마치 평소하는 호흡처럼 뿜어져 나온다.’
무공은 의지에 따라 발현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막고자 하면 호신강기로써, 죽이고자 하면 그건 또 검기와 강기로써 말이다.
하지만 마치 자연과 한 몸이 된 것처럼 보이는 저 무공은 그 흐름 자체가 너무도 독특했다.
“어디 출신이신가?”
팽효가 정중하게 물었다.
단순무식하고 과격하며 오만하기까지 한 팽가 핏줄치고 엄청나게 정중한 물음이었다.
―이름 모를 변두리 화전민 출신입니다, 노 선배님.
노진 역시 정중하게 팽효를 대했다.
그 마음가짐이 팽효를 더욱 흡족하게 했다.
“아깝구나, 마음 같아선 내가 품고 싶으나 이미 대단한 자를 만났으니.”
팽효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고도의 전음술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발휘한다.
더군다나, 입 모양이 조금도 벙긋하지 않았다.
“좋다, 내게 보여 줄 수 있겠는가? 그대의 무공을.”
팽효가 자신의 애병, 참월을 꺼내 들었다.
일반적인 도보다 짧은 도신을 가진 독특한 형태의 도.
파괴력을 주로 하는 팽가의 무공 특성상 맞지 않는 도신이었다.
하지만 파괴력은 떨어지는 대신 기동성이 확보되었다는 장점도 있었다.
후웅―!
이내 잔잔히 불던 바람이 기세를 바꾸어 거칠게 흐르기 시작했다.
‘미풍에서 광풍이라, 호흡의 뒤틀림이…… 역변 수준이거늘 일체의 미동도 없다라.’
팽효의 눈이 가늘어졌다.
느껴지는 풍압은 겉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팽효 정도의 경지에 이른 고수라면 한눈에 무공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배움의 경지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위험할 수도 있었겠어.’
이내 생각과 함께, 팽효가 기세를 끌어 올렸다.
콰릉―!
우레 소리와 함께, 팽효의 두 눈이 청안으로 물들었다.
실제로 물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일 정도로 섬광이 피어났다는 뜻이었다.
“저, 저건.”
멀리서 이 장면을 구경하던 무사들이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오랜만에 팽효가 연무장에 들었다는 소문에 하던 일을 팽개치고 한달음에 연무장으로 달려왔다.
오성의 일인, 굉천도성의 무공을 직접 견식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으니까.
“혼원벽력신공!”
여기저기서 일제히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혼원벽력신공.
팽가가 자랑하는 가전무공으로써 기운을 삼성만 운용해도 벽력이 치는 듯한 굉음이 들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크하하!”
팽효가 양노진을 향해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노진은 표정을 굳히며 그대로 자세를 낮췄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세 발의 화살이 들려 있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예전 스승이었던 염노제의 말이 떠올랐다.
‘시위를 꺾고, 비트는 것만으로 상대에게 궤적의 착시를 줄 수 있다.’
그의 말처럼 노진은 착실하게 걸었던 시위 줄을 일정 각도로 비틀었다.
화살촉의 각도가 조금 뒤틀렸다.
“호오.”
이 모습을 본 팽효가 이내 자세를 낮췄다.
‘마지막, 풍신결은 제압하는 것이 아닌 보듬는 것이다. 수하처럼 거느리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같이 서는 것이지.’
화악―!
노진의 바람을 읽은 풍신결이 세 발의 화살을 읽어 냈다.
바람의 움직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화살의 의지.
‘멸한다.’
친구가 부탁한다.
그런 노진의 뜻을 담은 풍신결이 거칠게 울분을 터트리듯 포효했다.
콰우우웅―!
이내 광폭한 바람을 머금은 화살이 쏘아졌다.
번뜩!
팽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것!”
그래, 이거다!
팽효의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무공의 구결들이 스치듯 흘러갔다.
풍신결.
남의 무공에서 자신이 가진 무공의 위쪽 경지를 살필 수 있었다.
콰앙―!
혼원벽력신공이 광폭한 뇌전을 흩뿌렸다.
콰직! 콰앙! 쾅!
세 줄기의 벼락.
그리고 떨어져 내린 조각난 화살들.
노진의 화살 세 발이 완벽히 무력화됐다.
동시에 팽효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저릿저릿한 감각이 그를 설레게 했다.
“으흐흐.”
화살을 감싸고 움직이는 그 바람.
광폭함 속에 스민 부드러움은 혼원벽력신공의 파괴력을 일절 해소시켰다.
동시에 자신에게 반탄력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이거 귀한 기연을 얻었구나.”
거기서 얻은 큰 깨달음.
뇌전은 조절하지 못한다.
하지만 바람은 조절할 수 있다.
바람을 머금은 뇌전.
동시에 자연스레 호흡하듯이 내뿜는 무공까지.
팽효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무공 이론들이 박살 나고 재구축되길 반복했다.
고작 한 수.
단 한 수만에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팽효가 노진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당황한 노진이 마주 포권을 취했다.
“한번 봐 주시게.”
쿠궁―!
팽효가 일제히 기운을 거둬들였다.
혼원벽력신공이 빛을 잃고 수그러들었다.
동시에 마치 잔잔한 바람처럼 꽤나 포근한 기류가 불기 시작했다.
“어?”
주변에 있던 무사들이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살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기운.
동시에 그 속에 담긴 잔혹한 살기.
“이, 이건…….”
그 중, 팽효의 아들이자 팽가의 가주인 팽량의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패, 패, 패왕연혼진기!”
가공할 무공명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세인들이 말하더군. 팽가인은 무식하고 과격하며 싸움밖에 할 줄 모르는 무지렁이라고.”
팽효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자신의 전신을 내려다보았다.
패왕연혼진기의 가공할 거력이 몸속 구석구석에서 힘차게 뻗어 나왔다.
“단 한 줌 머금은 기운만으로도 혼을 불사를 패왕의 신력.”
콰앙―!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단한 연무장 바닥이 푹 꺼져 내려앉았다.
동시에 흩날려야 할 부서진 파편들이 일제히 가루가 되어 가랑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알려 주마.”
팽효가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그렇게 우뚝 선 팽효에게서 감히 범접치 못할 패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의 머릿속에 일전에 자신의 한쪽 눈을 앗아 갔던 거합의 모습이 뚜렷이 각인되었다.
“싸움밖에 모르는 무지렁이가 한번 꽂히면 어떻게 되는지.”
스릉―!
그의 애병, 참월의 도신이 주인의 각성을 축복하듯 잘게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