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55
천하제일 시한부 (255)
강서성, 악안.
강서성의 성도인 남창과 비교해서 상당히 작은 규모의 도시였다.
사실 도시라고 말할 수도 없을 만큼 작은 곳이었다.
그런 그곳이 떠들썩해졌다.
다름 아니라 주씨세가에서 펼쳐진다는 오대세가의 회합 때문이었다.
오대세가가 무엇인가.
정파 무림을 지탱하는 구대문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실상부 무림 최고의 명문가다.
명문세가니, 오대세가니 하는 것은 허투루 붙는 수식어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무림이 생긴 이래 여태껏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켜 왔고 지금도 당당히 그 위세를 뽐내고 있다.
때문에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버렸고, 악안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주씨세가의 정문이 활짝 열렸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진을 치고 오대세가 사람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뭐 하는 짓일까?”
난 멀리 연무장에서 그들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시간 아깝게 왜 저렇게 서 있는 걸까?
하면서 말이다.
옆에 있던 초영이 슬쩍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오대세가의 가주님들이 오시는 자리니 당연히 궁금하겠지요. 어쩌면 평생가도 한번 보기 힘든 분들일 테니까요.”
“그거 봐서 뭐 하는 건데? 이해가 안 되네.”
“후후, 소가주님도 다른 지역에 가면 저런 인파가 충분히 몰리실 텐데요?”
말과 함께, 초영은 슬쩍 소매에서 작은 서찰 하나를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뭐야, 이게?”
“무림 내 서열을 재정립한 표입니다.”
그러고 보니 초영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무공 실력을 믿지 않았었다.
개방 내에서 허락된 정보만 취하던 입장이다 보니, 의도적으로 노걸개가 가린 나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셈이었다.
“오호, 난 몇 위쯤인데?”
“이 서열이라는 게 꼭 무공 실력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닙니다.”
초영이 서찰을 쫙 펼쳤다.
그곳에는 이름이 꽤나 익숙한 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럼 일 등이 누구야?”
“당연히 일 등과 삼 등은 삼신분들께서 차지하고 계시지요.”
그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이것 또한 못 믿을 정보다.
“그 양반들 반 죽어서 실려 왔던 거 기억 안 나?”
“그래도…… 그런 사실을 발표해 버리면 사람들이 믿고 있는 삼신분들에 대한 믿음을 깨 버리는 일이 되니까요.”
결국 저 서열록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된다.
“쯧, 됐다. 관심 없어.”
난 이내 서열록을 걷어 버렸다.
현재 세가 내부는 떠들썩하다 못해 난리도 아닌 상황이었다.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동시에 회합을 찬성했고, 뜻을 모아 한날한시에 방문하겠다고 전한 것이다.
그에 따라 당연히 준비할 것도 상당했다.
“팽 가주님은 철산 곡차를 즐겨 마신다고 했으니까…… 이것도 준비해야 하고.”
주방에서는 서희가 다른 하인들과 함께, 연신 복작거리며 대접할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왜 네가 해? 그냥 나와.”
“아, 오라비.”
서희가 싱긋 웃으며 날 돌아봤다.
그러고는 대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내가 해야지. 오라비 손님인데.”
그리 말하는 서희의 표정이 조금 좋지 못했다.
“팽 할아버지…….”
“아아, 그렇지.”
팽가의 태상가주, 팽효.
그분은 서희를 퍽 아꼈었다.
자신의 손녀보다 더 챙겼다면 챙겼을 것이다.
“당 가주님은 독공 수련 때문에 미각을 잃어서 자극이 쎈 독차밖에 못 드신다고? 음 이건 집에 없는데…….”
난 준비에 열심인 서희를 등지고 서둘러 주방을 나왔다.
주방은 완벽한 서희의 영역이 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세가 밖이 시끌시끌 해졌다.
“당가가 도착했습니다.”
문을 지키던 방천각의 무사 하나가 다가와 속삭였다.
이윽고 무사가 막 뒤를 돌 무렵, 저 멀리서 당 가주가 번쩍 손을 들었다.
“으하하! 단주님! 나 왔…….”
“…….”
채신머리 없어 보이는 행동이지만, 진짜 반가워서 나오는 행동이다.
난 피식 웃어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소가주님이라 그랬던가? 하여튼 이리 다시보니 반갑습니다, 껄껄.”
당 가주가 한달음에 달려와 내 손을 붙잡았다.
“고생했겠소.”
“고생이랄게 있나. 마땅히 달려와야지. 참, 가주님은 어디 계신가? 주씨세가의 가주님을 처음 뵙는 자린데, 이리 채신머리 없이 굴면 안 되지. 큼큼.”
답지 않게 옷매무새를 정돈한 당승평은 초영의 안내로 안채로 향했다.
당가는 무사단을 딱 하나만 이끌고 왔다.
당가가 자랑하는 철독단과 그들을 이끄는 당가의 장녀 당하린까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당하린이 슬쩍 주변을 살폈다.
“오늘도 종서는 없어. 내가 심부름 좀 보냈거든. 좀 멀리.”
“누, 누가 뭐랬나요?”
내 말에 당하린은 얼굴을 붉히며 안채로 사라졌다.
당하린이 종서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슬슬 올 시간이네, 준비하자.”
그렇게 당가를 시작으로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 * *
거대한 사자가 음각된 초상을 배경으로 거대한 대전에는 한 사내와 그 수하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대세가가 움직였습니다.”
“역시 주씨세가 인가?”
“그러합니다.”
수하의 말에 사내의 입가 한쪽이 씰룩였다.
“오대세가가 움직였다면 눈치만 보던 세가들도 확실히 마음을 굳히겠군.”
“아마, 그럴 것으로 보입니다. 오대세가가 한 번에 움직인 경우는 없었으니까요.”
수하의 답에 사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내 그가 옆에 있던, 건곤여의를 잡아들었다.
“그렇다면 내 친히 선물을 내려 줘야겠지.”
건곤여의의 주인, 구중룡의 입가가 잔혹하게 빛을 발했다.
그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그의 뒤편으로 그림자 네 개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양천이 자랑하는 최강의 무력, 태상신장이었다.
네 명으로 이루는 검진은 소림의 나한진조차 깨부술 정도로 위맹했고, 그들 개개인의 무력도 양천 내에서는 구중룡을 제외하고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그런 그들이 구중룡의 명을 기다렸다.
“주씨세가에게 경고만 날려 주고 와라. 명심해라. 주서진이 어떤 놈이건 절대 직접 검을 섞지 말거라.”
“…….”
태상신장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마치 안개처럼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우웅!
이내 구중룡이 한 손을 치켜들었다.
그의 손 안에서 번쩍이는 푸른 구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구중룡은 이내 그것을 꾹 움켜쥐었다.
“무위의 정수. 이것이 있는 한 주서진 그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내 적수가 되지 못하지.”
구천의 하나, 양천.
그들의 위명은 무력이었다.
천생신력을 타고난 자들을 선별해, 주승룡에게 직접 정수를 하사받은 자.
그들이 바로 아홉 명의 천제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무위를 가진 양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주씨세가의 후원.
난 후원을 꽤나 공들여 설계했다.
예전 모습을 간직한 후원을 만들고 싶었기에, 연못도 있었으며 꽤 큰 정자도 놓았다.
그곳에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날은 좀 쌀쌀했지만,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제법 쏠쏠한 운치를 자랑했으니까.
“이것 또한 절경이군, 나도 돌아가면 후원을 이렇게 꾸며야겠어.”
팽 가주는 뒷짐을 쥔 채, 우두커니 서서 연못을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큰 연못은 아니지만, 오히려 한눈에 담을 수 있기에 더욱 정겨운 연못이다.
그런 점이 팽 가주의 마음에 쏙 들었던 듯싶었다.
“거 참, 분위기 잡지 마시고 빨리 앉으시라니까! 술맛 떨어지게 거.”
“…….”
거나하게 취한 채, 팽 가주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이가 바로 당승평이다.
술도 못하면서 어떻게 독공을 익혔는지 웃기긴 했으나, 그의 독공이 무림의 일절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인지라 비웃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제갈 가주님께서는 여전히 말씀이 없으십니다?”
제갈선.
내 물음에 그가 슬쩍 웃음을 짓고는 시선을 돌렸다.
“오대세가가 한자리에 모였는데, 남궁은 왜 오질 않는 거요? 그 가주 대리가 있지 않…….”
당승평이 말과 함께, 얼른 입을 닫았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것이다.
현재 남궁세가는 방계의 일원이 세가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예전 같지 않다는 평도 많았다.
하지만 이곳에 남궁가의 마지막 직계혈족이 남아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가주들은 얼른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귀가 밝은 무림인들 특성상 어딘가 있을지 모를 차기 남궁 가주를 의식함이라.
“안 그래도 소개하려 했습니다.”
난 말과 함께, 뒤에 공손히 시립해 있는 초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짓을 받은 초영이 이내 안채로 사라졌다.
“오호라,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마침내 보겠구려.”
제갈선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뒤이어 팽 가주와 당 가주도 호기심을 숨기지 못한 채,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이번 가주는 좀 젊습니다.”
난 이내 피식 웃었다.
그들의 반응이 새삼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가장 뒤늦게 도착한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진이 입을 열었다.
“난 거리가 멀어, 오대세가와는 자주 만나지 못했기에 자리가 조금 어색하긴 하오만.”
모용진.
멋진 사내다.
품위 있는 행동과 꽤나 솔직담백한 말투는 뭇 여인들의 마음을 울리기에는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꽤나 애처가였는데 아내 또한 그런 모용진을 존중하고 둘의 달콤한 연애 얘기는 무림에서 꽤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나저나 안주인께서는 왜 오지 않으셨소? 항상 붙어 계시다 들었는데.”
당승평의 물음에 모용진이 피식 웃었다.
“중요한 얘기를 논하려는 자리가 아니오? 또 거리가 멀기도 했고.”
“오호라, 안주인께서 먼 길에 고생하실까 걱정하셨구먼. 껄껄.”
당승평이 채신머리 없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소가주님.”
그때, 초영의 음성과 함께 모두의 목소리가 씻은 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한 녀석.
“남궁진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가주님들.”
남궁진.
오대세가의 수장, 남궁가의 가주가 될 녀석이다.
* * *
“…….”
사위가 조용했다.
가주들은 떡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이가…….”
“이제 곧 약관입니다.”
“아직 약관도 아니란 말인가?”
남궁진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허어, 성취가 엄청나오. 어찌…….”
초절정 상위.
곧 있으면 화경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절대고수의 반열.
그것이 바로 남궁진의 현 위치였다.
“남궁가의 위세가 벌써부터 눈에 선하구려.”
제갈선 역시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더군다나 남궁진 역시 나름 사글사글하게 가주들을 대했다.
비록 아직은 정식으로 가주직을 승계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누구도 그의 정통성을 의심할 수 없기에 여기서는 모두가 그를 가주로 인식했다.
또 마땅히 그래야 했고 말이다.
“그럼 중요한 문제를 논해야 할 시간이군요.”
내 눈짓을 받은 초영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등장에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닫았다.
“전 개방의 초영, 한때 후개였으나 현재는 주씨세가의 총관을 맡고 있습니다.”
“오호, 그럼 초 총관인가? 껄…… 크흠.”
당승평이 장난치다 모두의 눈초리를 받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초영은 이름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거지니까요.”
“노, 농담일세.”
초영의 진지한 대응에 당승평의 얼굴색이 새빨개졌다.
이내 초영이 웃음을 머금고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방천보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방천보.
그 이름 뒤에 숨은, 양천.
그놈들을 끝장내기 위한 한 걸음이 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