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62
천하제일 시한부 (62)
“시, 신기검단주……!”
섬서 연합의 문주들은 단단히 겁에 질려 있었다.
그들은 포박되어 있지 않음에도 마치 포박된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벌벌 떨었다.
“자, 제대로 얘기를 해 보자고.”
난 문주들을 넌지시 바라보며 운을 떼었다.
“너희를 그냥 돌려보내려 했거든? 근데 생각해 보니 이건 너무 손해잖아.”
“…….”
난 일부러 손가락을 까딱이며 거만한 모습을 유지했다.
“각 문파당 보상금 백만 냥, 다섯 개 문파가 여기 있으니까 도합 오백만 냥만 토해 내면 되겠네.”
백만 냥이면 금전으로 일만 냥이나 하는 거금이다.
중소문파에서 굴릴 수 있을 만한 수치가 절대 아니었다.
“커흑, 배, 백만 냥이라니 너무 과한…….”
“과해?”
“아,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만한 돈이 있을 리가 없는걸요.”
문주들이 울상을 지었다.
난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난 살살 달래듯이 말했다.
“백만 냥은 내가 생각해도 과해. 그럼 지금 여기서 일어난 모든 일을 함구하는 걸로 칠십만 냥을 까 주지. 물론 각 문파당.”
“…….”
문주들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칠십만 냥을 까 준다면 실질적으로 내야 하는 돈은 삼십만 냥, 금전으로 삼천 냥이다.
물론 금전 삼천 냥도 엄청나게 큰돈이긴 하다.
내가 이십 년을 굴러서 받은 돈이 금전 오천 냥쯤 되었었으니까.
하지만 문파 단위로 보자면 그렇게 큰돈도 아니었다.
물론 몇 달은 허덕일 수도 있겠지만, 금방 회복할 정도의 수치다.
“삼천 냥이면…… 크흠.”
문주들이 저마다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왜 함구하려 하시는지……?”
문주들이 조심스레 물었다.
“귀찮잖아.”
사실 문주들은 이해 못 할 수도 있었다.
주씨세가가 섬서 연합을 물리쳤다는 소문이 돌기만 해도 주씨세가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불어난다.
주씨세가에게 사업장을 맡기려는 곳도 부지기수일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
마지막 조건 하나를 더 달았다.
사실 백만 냥에서 칠십만 냥이나 까 줬기에, 저들 입장에서는 내가 너그러워 보일 것이다.
“앞으로 주씨세가의 일에 나서지 말 것. 그 어떤 것도 함구할 것이며 우리가 요청 시엔 무사를 파견한다.”
“…….”
문주들은 솔깃했다.
주씨세가라고 들었을 때는 별 볼 일 없지만, 그 안에 무려 신기검단주가 도사리고 있다.
그런 그가 무사들을 요청할 정도의 사건이라면 그 뒤에 따라올 위명이 너무도 달콤하다.
“물론입지요. 언제든 말씀만 주신다면 박박 긁어모아 보내겠습니다.”
문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초영이 입을 떡 벌렸다.
설마하니 문주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구슬릴 줄은 몰랐다.
여태껏 중원에서 그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기검단주만이 가능한 일.’
오직 그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초영은 생각했다.
난 놀란 표정을 짓는 초영을 보며 한쪽 눈을 찡긋해 주었다.
이내 내 신호를 알아챈 초영이 주섬주섬 종이와 먹을 꺼냈다.
“다들 그렇게 알고 여기에 인장을 찍어 주십시오. 인장이 없으신 분은 지장도 상관없습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문주들은 곧바로 노예 계약…… 아니 계약서에 인장과 지장을 찍어 갔다.
“그럼 됐고. 다들 가 봐. 피곤할 텐데.”
난 웃으며 그들을 배웅했다.
문주들도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악안을 떠날 수 있었다.
“대단하시네요.”
초영이 내게 말을 걸었다.
“분위기만으로 북해빙궁에 관한 의문을 모조리 잠재우셨습니다.”
그녀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어차피 거기에 관련된 사안은 무양문주가 더 자세히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가 죽고 난 뒤에 사실 저들은 저마다 살기 바쁠 거고.”
내 말에 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내게 물었다.
“밖에 무양문의 무사들은 어찌하죠? 수가 제법 되는데…….”
“왜? 혹시 처형식이라도 할까 봐?”
이미 겁에 질릴 대로 질린 무사들이다.
그들은 앞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초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지만, 혹시 흡수하실 생각이십니까?”
난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제 쟤네 갈 데도 없잖아?”
“흠, 하지만 저들이 승낙할까요? 저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는데, 또 위치적으로도…….”
“그거야 천천히 이주시키면 될 거고. 날 적으로 상대했으니 지금 심적 부담감도 엄청날 거란 말이다.”
난 무사들의 심리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이십 년 동안 정천맹에 있으면서 참 많이도 싸우러 다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무사들의 생각 같은 것도 알 수 있었다.
“떠날 놈들은 떠나도 돼. 확실히 할 생각이 있는 놈들만 흡수하면 되니까.”
오히려 그게 더 좋다.
내 말에 초영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내 말을 듣고 있던 형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북해에서 왔다는 저 여인은 어찌할 테냐? 뭐 입하나 더 늘어난다 해서 손해 볼 것도 없지만, 데리고 있기에는 영 불안한데.”
“오래 데리고 있을 생각은 없어. 그냥 알아볼 것이 좀 생겼거든.”
내 말을 끝으로 회의는 제법 짧게 끝났다.
다들 지친 데다가 다친 이들도 있어 아무래도 모두 며칠은 쉬어야 할 것 같았다.
“후…….”
형의 집무실을 나오기 무섭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안에서 말은 못 했지만, 계속해서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그 활잡이.’
후원의 정리가 끝나기 무섭게 난 주변 반경 일대를 기감으로 덮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마치 귀신처럼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그놈이 또다시 돌아온다면…….’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아무래도 방비를 단단히 해야 할 듯싶었다.
* * *
난 곧장 앞마당으로 향했다.
내가 나오기 무섭게 무양문의 무사들이 일제히 차려 자세를 유지한 채,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경직된 자세를 바라보며 난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았다.
‘이류와 일류가 반반씩인가. 쓸 만은 한데…….’
하지만 지금 당장 써먹을 구석은 없다.
무엇보다 저들을 먹여 살릴 마땅한 생산수단이 없다는 점이 가장 컸다.
물론 섬서 연합을 통해 어느 정도 자금이 수급되긴 하겠지만, 그걸 홀랑 다 까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그거고…….”
그래도 저들을 거둔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상당한 이득이다.
별다른 무사 모집이나 선별 절차를 걸치지 않고 나름 증명된 무사들을 흡수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흠.”
생각이 많아졌다.
저들을 거둬 놓고 아지패와 삼거리파로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체계부터 정비해야겠군.’
확실히 제대로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 보니, 섬서 연합과의 싸움에서 쉽사리 침입을 허용케 했다.
그나마 북궁설이 시간을 벌어 줬기에 사상자가 적게 나올 수 있었다.
“너희 무양문은 해산한다.”
난 무양문 무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문주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하는 너희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려는 주지.”
“…….”
그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신 무양문을 해체하고 너희는 오늘부로 주씨세가에 소속될 것이다.”
좌중이 술렁였다.
아마 무사들 입장에서는 쉽사리 믿기지 않을 것이다.
문파간 전투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하지만 아쉬운 것은 내 쪽이었다.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강요는 하지 않겠다. 떠날 이들은 지금 즉시 나가도 좋다. 하지만…….”
난 일부러 말을 끌었다.
무사들이 침을 꿀꺽 집어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쪽이 피해가 좀 크거든. 개개인에게 다 보상을 받을 생각이다. 그것도 후하게.”
내 말에 무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단 한 명도 꿈쩍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모두가 잔류를 선택한 것이다.
“어차피 문파도 없어진 마당에…….”
“살려 주시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거늘 도리어 거두어 주신다니…… 크흑, 분골쇄신해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맞습니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신기검단주님의 명이라면 뭐든 따르겠습니다!”
그들은 금세 밝은 얼굴로 소리쳤다.
‘좋군.’
난 흡족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 숫자는 총 백 명 남짓.
굳이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 꽤 많은 숫자의 무사들을 손쉽게 흡수했다.
“단 하나, 조건이 있다.”
난 검지를 쭉 펴 높이 치켜들었다.
“오늘 일은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 즉, 내가 신기검단주인 것과 섬서문파들과 일어났던 분란에 대해서는 절.대 함구해야 한다는 것.”
“명심하겠습니다!”
그들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동시에 소리쳤다.
내내 죽을상이던 무사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좋아. 그럼 다들 할 거 하라고.”
난 가볍게 손짓으로 저들을 해산시켰다.
어차피 호구조사 같은 귀찮은 것은 봉칠이랑 초영이 알아서 할 테니까.
빠르게 일을 마친 난 곧장 후원으로 향했다.
북궁설에게 중요한 볼일이 남아 있었다.
* * *
“줘.”
난 다짜고짜 북궁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뭘요?”
북궁설이 퉁명스레 되물었다.
입이 삐죽 나온 걸 보니, 삐져 있는 것 같았다.
“삐졌냐?”
“아뇨. 제가 왜요.”
“내가 신기검단주라고 말 안 했다고 삐진 거 아냐?”
“그럴 수도 있죠. 절 못 믿었다면서요.”
“응.”
난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궁설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 하고 한숨을 쉬었다.
“좋은 사람인 줄 알고 말해 줬는데…….”
“나 좋은 사람 아니야. 그리고 내가 말했지. 중원에서는 원래 그런 호의가 사람 잡는 법이라고.”
내 말에 북궁설이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굳이 답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실은 좀 의심했거든. 나랑 북궁환…… 아니 빙궁주랑 사이가 안 좋은 건 알 테니까. 근데 그 빙궁주의 딸이 날 찾는다는데 내가 순순히 말할 수 있겠냐?”
“…….”
“솔직히 너도 이런 상황이었어 봐 믿겠냐? 그리고 난 좀 조용히…… 아니, 잠깐.”
생각하니 짜증 났다.
“내가 이걸 왜 설명하고 있는 거야.”
난 다짜고짜 북궁설의 어깨를 잡았다.
“으윽.”
순간 그녀가 앞으로 푹 상체를 숙였다.
“뭐, 뭐야?”
이제 보니 그녀의 전신이 흠뻑 젖어 있었다.
지금은 가을의 초입이다.
절대 땀을 흘릴 만한 날씨는 아니었다.
“너…….”
그녀의 밑 입술은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중독 반응?’
그제야 정신이 확 들었다.
“그, 금방 나아요.”
북궁설이 황급히 고개를 틀었다.
난 북궁설의 맥문을 잡았다.
불규칙적으로 유동하는 진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후.”
빠르게 진기를 불어넣어 내기를 안정시켰다.
다행히 북궁설이 요상단을 먹었기에, 날뛰는 독기는 일차적으로 잠재울 수 있었다.
이제 보니 그녀의 몸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살수들과 싸우면서 생긴 상처 같았다.
“살수들이 무기에 독을 발랐군. 싸구려 독이니까 해약은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독기의 정체를 파악한 나는 안심하며 잡았던 손목을 놓았다.
조금만 요양하면 북궁설의 몸 상태는 최적으로 돌릴 수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사실은 빙궁의 보물인가 뭔가 하는 것을 받으러 왔다.
어차피 내게 맡길 것이었으니 내가 봐도 상관없지 않은가.
지금 당장 확인해 볼 것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좀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아직 시간은 있고 또 아픈 애한테 괜히 부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였다.
덥썩!
북궁설이 나가려는 내 팔목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품을 뒤져 내가 원했던 주머니를 건넸다.
“이거…… 원하셨죠.”
북궁설이 희미하게 웃었다.
“드릴게요. 빙궁과 중원을 막고 있는 협곡. 그 협곡을 여는 열쇠예요.”
오오, 주머니를 열지도 않았는데 시리도록 찬 한기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내 북궁설이 마저 입을 열었다.
“만년빙정. 혹한의 정수를 담은 북해 최악의 재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