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61
천하제일 시한부 (61)
양노진.
그는 짐승들을 잡아 가죽을 벗겨 팔아먹고 사는 사냥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족했지만, 그래도 아버지께 배운 활 솜씨로 배를 곯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운 좋게 나이 열 살이 되기도 전에 그는 꽤 유명한 무사의 눈에 들게 되었다.
“좋은 눈을 가졌구나.”
무사는 단번에 양노진의 자질을 알아봤다.
“그 눈. 보통 선천적으로 ‘시각’을 가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거든.”
그때부터 무사는 양노진의 집에 빌붙어 살다시피 하며 그를 가르쳤다.
“풍신결. 바람을 읽고 재고…… 용의주도하고 꼼꼼한 네게 있어 가장 알맞은 무공이 아닐까 싶구나.”
그 무사의 말처럼, 풍신결이란 무공은 양노진에게 또 다른 세상을 가져다주었다.
노진은 바람이 좋았다.
또 그 바람을 이용하는 풍신결이란 무공도 좋았다.
하지만.
세상일이 언제나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비극은 너무도 겹겹이 쌓여 나중에는 감당도 하지 못할 만큼 불어났다.
“파천궁황. 염노제.”
그 날.
처음으로 자신을 가르쳤던 무사님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활 한 자루로 종횡무진 휩쓸고 다녔던 궁황이라던가.
화르륵!
그런 궁황을 잡기 위해, 파견된 수많은 무사들은 양노진의 마을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온통…… 검은 연기만 가득했다.
노진은 그 모습을 눈에 가득 담았다.
무뚝뚝했지만, 언제나 자신을 챙겨 주던 아비.
그들 모두가 잿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으……아.”
양노진은 울 수 없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계속해서 그를 보듬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을 품은 바람은 계속해서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우득.
그는 활을 잡았다.
그리고 그날.
마을을 집어삼켰던 수천의 화마는, 불어온 바람에 의해 모조리 몰살당했다.
피투성이의 파천궁황은, 자신의 활을 노진에게 건네주며 씩 웃었다.
“노진아.”
그가 웃었다.
노진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네가…… 바람이다.”
“…….”
“하여…… 그분을 찾아가거라.”
점점 스러져가는 생명.
노진은 이제 개미만큼이나 작아진 염노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이내, 염노제의 손이 축 늘어지고 홀로 살아남은 노진만이 구슬피 울 뿐이었다.
* * *
“헉, 헉.”
노진은 숨을 헐떡였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듯한 경험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런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뒤편, 언덕 한쪽이 깔끔하게 베여 나갔다.
‘말도 안 돼.’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똑같았다.
순식간에 엄청난 경력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뭔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풍신결이 아니었다면 아마 단번에 목이 날아갔을 정도로 예리하고 섬세한 경력이었다.
더군다나 그 응집력이란…….
‘화살촉에 담아도 그만한 응집력은 보기 힘들거늘.’
그걸 검에 담아 쏘아 보냈다?
‘저자는 누구지?’
노진은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멀리 이쪽을 향해 몸을 날려 오는 한 사내를 바라봤다.
그는…… 서진이었다.
* * *
“이 기운.”
난 믿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테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언덕을 오르면 오를수록 함께 바람이 움직인다.
아니, 바람 자체가 저자를 향해 돌고 있다.
“풍신결?”
이런 무공을 알고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파천궁황, 염노제.
그의 독문무공이자, 궁황이란 별호를 만들어 주었던 한 줄기 바람.
“이 노옴!”
힘줄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내 사자후가 언덕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간 어디 숨어 있었느냐.”
바람은 아주 찰나간, 기척을 드러냈다 이내 모습을 감췄다.
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염노제가 작정하고 몸을 숨긴다면 당금 무림에 그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는 것을.
“염노제!”
스슷!
염노제의 이름을 말하기 무섭게 바람이 멎었다.
그간 쌀쌀하게 불던 바람이 아예 숨을 죽였다.
“나오거라, 이 개자식아.”
난 다급하게 주변을 향해 기운을 퍼트렸다.
작정하고 숨는다면 절대 찾지 못할 염노제.
하지만 작정하고 찾는다면 그를 찾아낼 수 있는 그 몇몇 중에 나 또한 포함이다.
후웅!
아주 미세한 기척이 일었다.
척!
마침내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알던 염노제가 아니었다.
“너 누구야.”
“…….”
내 앞에 활을 겨눈 한 사내.
강인하고 사내다웠던 염노제와 달리 순둥순둥한 인상의 한 사내.
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활을 확인한 난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넌 뭔데 감히 염노제의 활을 들고 있느냐?”
“…….”
“대답해라. 죽여 버리기…….”
후웅!
확실해졌다.
내 말에 반응하는 저 바람.
선선하게 불어오는 미풍 속에 담긴 이 진득한 살의!
“풍신결…….”
아무래도 제압해서 입을 열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생각과 함께, 그대로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 순간 사내의 반응이 달라졌다.
그가 활을 잡고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것이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자연스러웠던지, 마치 진짜 바람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허.”
허탈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바로 눈앞에 있는 상대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것이다.
아니 모습뿐만 아니라 기척 자체도 사라졌다.
“괴물이로군.”
스가앗!
동시에 발출된 화살.
귀밑을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 한 발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뜻인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은 일단 보내 주지.”
그래, 아직 급할 건 없었다.
후원에는 아직 살수들이 즐비했다.
파밧!
빠르게 후원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촤악!
난 후원에 도착하기 무섭게 살수들을 베어 넘겼다.
찰나간 삼십이 넘는 살수들이 땅바닥에 몸져누웠다.
“다, 단주님!”
멀리서 봉칠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살수들은 이제 오십도 채 남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에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양문 놈들은 다 빠져나갔다. 네놈들만 여기 남았단 말이지.”
난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나직이 소리쳤다.
“가거라. 그냥 가면 뒤쫓지 않는다. 허나…… 한 놈이라도 덤빈다면 내 신기검단주의 이름을 걸고 너희 모두를 찾아 죽여 버릴 것이다.”
“…….”
그 경고가 통했음인가.
살수들의 눈빛이 무섭게 흔들렸다.
신기검단주라는 그 이름.
마치 그들은 모르고 했던 행동이었던 듯 모두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살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이내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몸을 날려 후원을 빠져나갔다.
“야, 이 개 시러베 놈들…….”
아지는 지친 몸을 뉘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봉칠의 표정에도 억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그냥 보내 주십니까? 저들에게 당한 식구들이 몇인데…….”
봉칠이 울먹였다.
“사상자가 몇인지 잘 헤아려서 보고해. 그리고 북궁설…….”
“당신이…… 신기검단주라고요?”
북궁설이 숨을 헐떡이며 날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빛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왜, 왜…… 그동안 말을…….”
“내가 널 어떻게 믿고. 서로 말 못 한 비밀 한 가지씩은 있잖아?”
내 말에 북궁설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희는?”
“나 여깄어.”
동생을 부르기 무섭게 별채 안에서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다 안채로 옮겨. 얘기할 것도 있고, 일단 상황 정리 좀 해 보자고.”
“예엣!”
아지는 대번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봉칠도 이내 기운을 차리고는 아지와 함께, 말없이 후원을 정리해 나갔다.
난 홀로 있는 북궁설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거 삼켜.”
내가 그녀에게 준 것은 한 알의 요상단이었다.
내력 소모가 극심했기에 비상시에 먹기 위해 들고 다녔던 요상단을 건네준 것이다.
북궁설은 군말 없이 요상단을 집어삼켰다.
이윽고 기운을 차린 북궁설이 날 보며 입을 열었다.
“미리 말씀해 주셨더라면…… 제가 말하지 못했던 것도 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내가 널 믿지 못했다고. 그건 지금도 변함없지만.”
난 천천히 안채로 향했다.
그 뒤를 북궁설이 쫄래쫄래 따라왔다.
“왜 따라와? 안 들어가?”
별채를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모두에게 할 말이 있어요. 그건 당신이 신기검단주가 아니어도 했을 겁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까…….”
“…….”
표정을 보아하니 엄청나게 미안하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차피 내 선택이었다.
“어차피 네가 아니었어도 나와 형, 그리고 동생은 도왔을 거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거든. 그러니까 미안해 하지 말라고.”
그러곤 그녀를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
“어차피 넌 이제 못 떠나. 네가 죽거나 잡히면 상황이 좀 어지러워질 것 같거든.”
물론 뒷말은 삼켰다.
‘사륭회.’
그들이 새외에까지 손길을 뻗쳤다.
아니, 지금이 처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정천맹이 새외 세력들과 그렇게 치고 박고 싸운 그 과정도 사륭회가 조작한 상황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머리 아프니까 일단 들어가라고. 금방 갈 테니까.”
북궁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난 그대로 안채로 향했다.
* * *
안채에 형과 초영을 비롯한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다행히 모두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후, 흑호방은 대체…….”
“아, 내가 따로 지시해 둔 게 있거든. 금방 올 거야.”
내 말에 형의 불만도 곧 잦아들었다.
이내 봉칠이 입을 열었다.
“저희 식구들이 셋이 죽었고 둘은 중상입니다요. 악소패는…….”
“우리 쪽은 열이 죽었고 열넷이 중경상이요. 이거야 원,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는데…….”
아지는 분한 듯 으르렁거렸다.
초영은 말없이 날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단주께선 무슨 생각이신지요? 지금 문제가 좀 커졌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전투는…… 정보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초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난 이내 눈을 감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똑똑!
“가주님, 흑호방주 진청운 대협이 오셨습니다.”
“들어오라 이르시게.”
형의 승낙에 이내 문이 열리고 진청운이 들어섰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헛.”
“그들은…….”
“도망친 무양문의 무사들, 그리고 무양문에 협력했던 문파들의 문주들입니다.”
진청운이 짧게 답했다.
내가 귀면탈혼에게 지시했던 대로 진청운은 금방 내 말뜻을 이해하고 따랐던 모양이었다.
“좋군.”
흡족한 결과다.
난 손해만 보고 이득은 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
청운이 슬쩍 날 바라보며 잘게 몸을 떨었다.
사실 그는 무서웠다.
‘심리전의 대가다. 과연 신기검단주라 이건가.’
자신의 별호를 이용해 적들을 위협하고, 분열시키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풀어 주는 척 완벽히 진세를 흐트려 놓았다.
진청운이 한 것이라고는 그저 우왕좌왕 도망치는 놈들을 잡아 오는 것뿐이었다.
애시당초 무양문이 아닌 이상, 흑호방과 자웅을 겨룰 만한 문파는 단 한 개도 없었으니까.
물론 그들이 단단히 응집했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되었겠지만, 이미 서진의 말에 혼이 나간 그들은 제대로 싸울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이윽고 난 심각한 표정의 청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뭔 생각하냐?”
내 말에 청운이 이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존경합니다, 형님…….”
퍽!
그대로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누구더러 형님이래, 이 건방진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