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special! Dungeon Master RAW novel - Chapter 74
74
오페라 공연은 화려했다.
아마 영상이 아닌 실제 공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수 효과 면에서는 현대의 기술력을 월등히 뛰어넘은 화려함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메드세디아와 지구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 그건 대부분 마법에서 기인하곤 했다.
전쟁도, 기술도, 의술도, 어느 분야든 간에 마법이라는 특수성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이 세계는 지구와는 많이 다르다.
예를 들면, 전쟁을 자주 겪는 나라는 조금 다르지만, 라메리안 왕국처럼 비교적 평화로운 나라는 화포 같은 화약 병기의 발전이 거의 전무했다.
마법과 연금술의 존재로 인해 훨씬 더 강력한 화약을 제조하는 것이 가능한데도 말이다.
화포 같은 무기 체계보다 훨씬 편한, 걸어 다니는 대량 살상 무기인 마법사의 존재가 훨씬 사용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마법과 기술을 접목시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기술적 부족함을 마법으로 때우다 보니 기술은 제자리에 서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적어도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와아……!”
내가 오페라를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 있는 세 명의 여인들은 입을 벌리고 공연에 과하게 몰입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연극이나 오페라, 뮤지컬같이 현장에서 관람하는 종류의 공연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공연은 그런 내가 봐도 상당히 재미있다는 걸 인정할 정도로 훌륭했다.
세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흔하디흔한 소재로 최근 수도의 호사가들 사이에서 극찬을 받는다고 해서 궁금했었는데, 직접 보고 있으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특히 내가 놀란 부분은 사운드와 연출이었다.
이 넓은 공연장 안을 가득 채우는 소리와 현대를 뛰어넘는 무대 연출은 마법이 아니면 불가능한 기술이다.
짜악!
여주인공이 뺨을 맞는 장면에서는 바로 옆에서 울린 것처럼 찰진 소리가 울렸다.
“어머.”
그 현실감 넘치는 소리에 에일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탄식을 뱉었다.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레이넬이 내 약혼자라는 걸 알면서 어떻게, 어떻게 내 가장 친한 친구인 네가……!”
“오, 내 사랑하는 친구 가젯, 너의 말대로 나는 몹쓸 사랑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아니, 우리의 사랑이 몹쓸 사랑이겠지. 너에게 용서를 구할 자격조차 없는…….”
“닥쳐! 우리라는 말을 어떻게 내 앞에서 꺼낼 수가 있어!”
주인공의 친구인 가젯은 정말 처절한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래하는 그녀의 등 뒤에서는 검은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비현실적인 연출은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가젯의 뒤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아우라가 마침내 무대를 전부 뒤덮었다.
그리고 그 검은 아우라 위에 오롯이 서 있는 건 가젯이 유일했다.
“흑, 흑, 흑.”
간헐적인 울음을 연기하는 가젯은 정말이지 가련하고, 또 처절했다.
막을 내렸다가 올리는 연출조차도 없이 환영 마법으로 시야를 제한하는 식으로 장면을 전환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고, 또 장면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관객의 집중이 끊기는 것을 막아 줬다.
“하아……!”
나도 모르게 감탄 섞인 한숨이 쉬어졌다.
루시아에게 선물하려던 것이 의외로 내가 더 집중해서 보게 되는 것 같다.
“레이넬, 오, 레이넬……. 멜리사, 멜리사…….”
검게 물든 무대에서 가젯은 자신이 사랑하는 약혼자와 그와 붙어먹은 주인공, 멜리사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꼈다.
그 비극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는 순간에는 흐르던 음악도 침묵했다.
그저 마법에 의해 확대된 가젯의 흐느낌과 물기에 젖은 그녀의 대사에 가까운 노래만이 극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이후로 점차 절정을 향해 달려간 그들의 사랑은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화가 날 정도였다.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보다, 끝까지 애처롭게 버림받는 가젯에게 더 마음이 간 탓이다.
“가젯이 너무 불쌍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루시아도 눈시울을 붉히며 가젯을 동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엘라는 이미 울고 있었다.
어린애도 참는데 칠칠치 못하기는.
“후우.”
깊은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앞에 놓인 다 식은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비싼 좌석인 만큼 관객을 위해 차려진 음식들은 하나같이 눈이 돌아갈 만큼 비싸고 고급스러웠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먹힌 것이 없었다.
그런 곳에 신경을 쓸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한 작품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 * *
“에슬란테 공자님, 준비되었습니다.”
뒤늦게 찾아온 공복감을 달래기 위해 식은 로스트비프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있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온 직원이 귓가에 속삭였다.
루시아를 위한 다음 이벤트 때문에 온 자였다.
“어머니, 갈 데가 있어요.”
나는 몸을 일으켜 아직도 공연이 끝난 무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에일라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 네? 어디를……?”
에일라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지만, 나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루시아, 그만 갈까?”
“아, 네, 오라버니. 그런데 엘라가…….”
“…….”
엘라는 이제 아예 끅, 끅, 하고 목 멘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제 딴에는 울음을 참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역효과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빨리 진정하긴 글렀어. 그냥 데리고 가자.”
“아, 네. 엘라 일어나 봐, 우리 이제 가야 된대.”
저거 아무리 봐도 반대로 바뀐 것 같은데.
엘라는 훌쩍이면서 루시아의 손을 잡고 걸었다.
처음에는 눈시울을 붉혔던 루시아는 옆에서 엘라가 서럽게 우는 모습에 정작 자신의 슬픔은 잊은 듯했다.
“이곳입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안내하던 직원은 화려한 오페라 극장에 안 어울리는, 전혀 특색이라곤 없는 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전부 내가 부탁했던 대로였다.
아무리 돈을 줬다고는 해도 이런 부탁까지 들어주는 것을 보니 확실히 용 문양이 효과가 대단하긴 한 것 같다.
“어머니, 루시아, 들어가 보세요.”
내 말에 영문 모를 얼굴을 한 두 명은 문으로 손을 뻗었다.
처음 질문은 물론이고, 오면서도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기에 궁금함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헉.”
문을 연 에일라는 물론이고, 그 틈으로 안을 바라본 루시아가 깜짝 놀란다.
“어서 오세요!”
안쪽에서는 우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환영 인사를 했다.
오페라에 등장했던 여배우들이 편안해진 차림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는 여배우들의 대기실이었다.
보고 싶어 하던 공연을 보여 주고, 그 배우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는 것.
내가 루시아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었다.
“오라버니! 가젯이랑 멜리사예요!”
눈을 동그랗게 뜬 루시아가 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눈을 나를 보고 있지만, 루시아의 손가락은 대기실 안쪽에 있는 여인을 가리키고 있었다.
“들어가서 만나 봐.”
“그래도 돼요?”
“되니까 여기에 왔지.”
“오라버니는요?”
“여기는 여자만 들어갈 수 있어.”
뭐, 옷을 갈아입는 중도 아니고, 나는 안 된다는 얘기를 들은 건 아니지만, 여배우들의 대기실이에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뭐랄까, 속옷 가게나 화장품 가게보다 더 꺼려지는 느낌이랄까.
내가 한 걸음 물러서는 걸 본 루시아는 잠시 아쉬운 얼굴을 했지만, 곧 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는 사람한테 부탁 좀 했죠. 들어가서 루시아랑 같이 있어 주세요.”
나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는 에일라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부터는 저한테는 얘기해 주세요. 갑자기 공연을 보자고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랐단 말이에요.”
에일라는 볼멘 소리를 했지만, 나는 그것마저 웃으며 슬쩍 넘겨 버렸다.
곧 나를 제외한 세 명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 옆에 기대어 서서 안에서 들리는 왁자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너무 귀여우세요.’, ‘생일 축하드려요.’ 같은 말들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곧이어 노래 소리도 들려왔다.
수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오페라 극장의 배우들이 오직 루시아를 위해 불러 주는 생일축하 노래였다.
이 작은 만남을 위해서 알마이어의 권력을 빌려 쓰기도 하고, 극장은 물론이고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꽤 큰 후원금을 쥐여 줬지만, 이 정도 서비스라면 돈이 아깝지 않았다.
격한 공연 후라서 피곤할 텐데도 배우들은 꽤나 오래 루시아를 위해 시간을 할애했다.
흔히 말하는 팬심 혹은 흑심을 품고 배우 개인에게 후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짧은 만남을 위해 여배우 개개인에게 후원을 일괄적으로 하는 귀족은 아마 지금까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배우들의 친절 속에는 타산적인 계산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 해도 루시아, 에일라, 그리고 짜투리로 엘라까지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낸다면 그걸로 됐다.
안쪽에서 들리던 왁자한 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요란한 축하가 끝나고 평범한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의외네요.
조용한 복도에서 시선 둘 곳을 찾던 중에 벨로제가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오랜만에 말을 걸어온 벨로제의 목소리에 처음 든 생각이 ‘차단을 안 해 놨었나?’라니.
나는 그게 묘하게 우스워서 혼자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의외라니?
-마스터가 주변 사람을 이렇게 신경 쓸 줄은 몰랐거든요.
벨로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사람은 원래 사회적인 동물이야. 아무리 차가운 사람도 주변에 아무도 없는 삶이 이어지면 시들기 마련이고.
-우와, 엄청 안 어울리는 거 알고 있으시죠?
안 어울리긴 하지.
건방진 벨로제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알지, 알아. 덕분에 아수라 백작이 된 기분이다.
-아수라요? 마스터는 아수라도 아니고 백작도 아닌데요?
-그런 게 있다.
감정이 움직일 만큼 훌륭한 공연을 본 이후여서 그런지 몰라도 감상적인 상태가 된 것 같다.
내 어두운 비밀을 알고,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존재라고는 벨로제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조금 쓸쓸하게 느껴지다니 말이다.
여기엔 SNS가 없어서 망정이지, 이런 상태에서 손가락을 잘못 놀렸다가는 평생 잊기 힘든 흑역사가 박제될 수도 있다.
내가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준 상대가 몇 명이나 되지?
루시아, 리엔, 엘라, 크리스.
에일라는… 아직까지는 그냥 연민이 가는 사람 정도인 것 같고.
비올카나 카이네, 카마로는 비즈니스적인 관계에 가까우니 제외하고.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다시 혼자서 킥킥거리며 웃었다.
여기까지는 내 사람이니 하얀색을 칠해서 울타리 안에 넣고, 어찌 되든 상관없는 사람들을 검은색을 칠해서 울타리 밖으로 내몬다.
내가 생각해도 참 편리한 성격이다.
-마스터… 오늘 좀 미친 사람 같아요.
-야, 미친 사람은 좀 너무하지 않냐? 그래도 오늘은 좋은 날이라 특별히 봐준다.
-정말, 정말, 진짜로 이상해요!
항상 구박만 받던 벨로제는 시종일관 이어지는 부드러운 태도가 더 무서운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시끄러워.
나는 벨로제에게 5,000 네거티브 포인트를 전송하는 동시에 연결을 차단해 버렸다.
모자란 악마는 보너스나 먹고 떨어져라, 이 말이야.
나는 가끔 지나치는 사람을 제외하면 한없이 한적한 복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곱씹었다.
* * *
배우들과의 만남으로 잔뜩 신이 났던 루시아는 이어진 저녁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에일라의 무릎에서 꾸벅꾸벅 졸더니, 결국에는 곤히 잠들어 버렸다.
“이렇게 오래 밖에서 돌아다닌 적이 없어서 피곤했나 봐요.”
에일라는 따뜻한 눈으로 루시아를 바라보며 머리를 쓸어 넘겨 주고 있었다.
저런 모습만 보면 평소에 루시아를 엄하게 대하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루크.”
루시아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에일라가 나를 불렀다.
굳이 엘라를 마부석에 앉힐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요즘 루시아가 얼마나 밝아졌는지 몰아요. 밝게 웃으면서 내일은 오라버니가 오는 날이라고, 그렇게 들뜬 모습을 보면 가끔 두려워져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연 아이인데, 예전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게 너무 무서워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지금 당장 기억이 돌아온다고 해도 이 관계는 깨지지 않습니다.”
나는 확신을 주기 위해 단호히 단언했지만, 에일라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로 확신을 주기에는 받아 온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것이다.
“저를 다시 미워해도 좋아요. 하지만 루시아만큼은 계속해서 여동생으로 생각해 줘요. 이렇게 부탁할게요…….”
에일라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에일라의 성격에 이 짧은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너무 상처가 큰 사람은 갑자기 찾아온 행복을 순수하게 누리지 못한다.
행복이 부서졌을 때 찾아올 고통과 슬픔을 더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더 아플 것을 알기에.
“약속하겠습니다. 루시아가 힘들면 가장 먼저 의지할 수 있는 오빠로 남을 테니 걱정 마세요.”
내 대답을 들은 에일라는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끝내 눈물을 보이진 않았다.
에일라는 지금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마워요…….”
에일라의 마지막 한마디는 덜컹거리는 마차 소리에 묻힐 만큼 자그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