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97
제97화. 용마족
서늘한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하늘 위.
확실히 남쪽으로 갈수록 기온이 내려간다는 게 체감이 됐다.
“에취!”
익숙지 않은 한기에 추위를 느꼈는지 메이가 코를 훌쩍였다.
이에 겉옷을 벗어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벨져 님!”
메이는 내 옷을 꽉 쥐면서도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겨우 반 팔 티 하나로 찬바람을 버티는 내가 신기한 모양이다.
“벨져 님은 안 추우신가요?”
“뭐, 그냥 그럭저럭 버틸만한 정도네.”
이 몸의 원래 체질인 건지, 아님 용사 시절에 하루가 멀다고 했던 맨몸 훈련의 효과가 남아있는 건진 몰라도,
썩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키유웅!”
그때 잘 날던 와이번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하마터면 떨어질 뻔한 걸 간신히 고삐를 잡았다.
“뭐야? 얘 갑자기 왜 이래?”
다른 와이번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넘어가면 안 되는 금단의 영역에 왔다는 듯, 그들은 제자리에서만 날개를 퍼덕일 뿐,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일단은 땅으로 내려왔다.
“와이번들이 못 나가는 걸 보니, 아무래도 상위 종족의 영역에 들어선 모양이네요.”
우리를 뒤따라오던 이사벨이 와이번에서 내리며 말했다.
상위 종족의 영역.
그 말은 즉, 우리의 목적지인 칼코스 산맥에 도착했다는 거겠지.
곧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척박한 고원과 그 뒤로 끝이 보이지 않는 험준한 산맥이 눈앞에 드리워졌다.
고지대로 와서 그런진 몰라도, 어쩐지 숨쉬기가 불편해진 느낌이다.
“동행은 여기까지예요. 당신들은 그만 와이번을 수습해서 본가로 복귀하세요.”
“이사벨 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이사벨은 함께 따라온 수행인단에게 복귀 지시를 내렸다.
대표로 보이는 금발의 마족은 아무런 반발 없이, 그녀의 명을 따르려는 듯했다.
그러다 대뜸 내 쪽을 보더니,
“이사벨 님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게 정중한 인사를 올리며, 그녀를 부탁한단 말을 전했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돌렸다.
수행인단이 돌아가자마자 바로 이사벨에게 물었다.
“저분은 누굽니까?”
“로베르토 번스타인이라고, 제게 처음 정령 마법을 가르쳐준 마족이에요.”
아, 혹시 예전에 연회장에서 그녀가 퍼밀리어 대신 부르려고 했던 그 마족인가?
마법을 가르쳐줬다면 일종의 스승 같은 존재라는 건데,
어째 사이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저쪽은 신경 끄고, 이제 우리 앞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이사벨은 그런 날 보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 말에 나는 남은 일행들을 쭉 둘러보았다.
나, 이사벨, 메이, 세나, 제임스까지.
든든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의 파티(?)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쯤이면 ‘여긴 용마족의 영역이다! 이곳에 온 용무를 밝혀라!’ 하며 문지기 한 명 정돈 나타날 줄 알았는데,
어째 조용한 느낌이다.
“벨져 님 저기 좀 보세요!”
타이밍 맞게 메이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음.
문지기가 있긴 있네.
“이런 곳에 웬 꼬마 아이가…….”
남색 머리에 대충 8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보호자도 없이 혼자 흙 놀이를 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짠하게 느껴졌다.
곧 꼬마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우리를 돌아봤다.
꼬마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미간이 움츠러들었다.
위협적일 만큼 커다란 뿔을 가진 것에 이어 귀와 꼬리가 굉장히 특이하게 생겼다.
이제 보니 등에는 자그마한 날개까지 달려 있었다.
“용마족의 아이인가?”
사뭇 피어오른 신기한 마음과 함께 한 걸음 다가간 순간,
“히익!”
꼬마는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우리를 피해 달아났다.
하필이면 가파른 절벽이 있는 쪽이었다.
“거긴 위험해, 꼬맹아!”
급히 달려가서 만류하려 했지만, 내가 가기도 전에 꼬마는 절벽 아래로 과감히 몸을 던졌다.
뒤늦게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지만,
-휘이잉
공허한 바람만 불뿐, 꼬마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낯선 이가 접근한 것에 경계한 모양이군요.”
뒤따라온 제임스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용마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우리로선, 첫 만남부터 좋지 않은 인상을 줘버렸다.
-콰아아!
그때 저 멀리 산 쪽에서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는 대여섯 무리의 생물체들이 보였다.
문지기들이 드디어 온 모양이다.
우리는 그들이 오기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쿵!
-쿵! 쿵! 쿵! 쿵! 쿵!
선두로 오던 놈이 땅에 안착한 것에 이어 나머지 다섯 명도 뒤따라 안착했다.
곧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안개가 일어났다.
안개가 걷히자 다섯 명의 용마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리더로 보이는 주황색 머리의 마족이 턱을 치켜들며 나섰다.
“신원미상의 마족들이여! 긍지 높은 용마족의 영역에 발을 들인 목적이 무엇이냐?”
“우리가 누군지 묻기 전에 본인들부터 신원을 밝히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이사벨이 자연스럽게 나서며 역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차갑고도 냉정한 눈빛은 우락부락한 거구들을 상대로도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가만! 그대들, 이제 보니 왠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인데!”
뒤늦게 우리 정체를 파악한 그는 ‘아’ 하며 탄식을 내질렀다.
“아, 기억났다! 그대들은 우리 그룸 님과 경쟁하는 마왕 후보들이로군! 몰라봐서 미안하다! 난 식탐의 종주이자, 우리 용마족의 대표이신 그룸 님을 지키는 용마 근위대의 부단장 ‘하르곤 굴라’라고 한다!”
고막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다.
텐션 왜 이래 이놈?
일단 우리를 불청객으론 안 보는 것 같으니, 썩 나쁠 건 없겠지.
“우리를 따라와라! 그룸 님께서 너희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건 또 뭔 소리?
덩달아 놀란 이사벨이 물었다.
“그룸 후보라면, 리고 섬으로 떠난 거 아니었나요?”
“우리 그룸 님은 너희 같은 저급한 마족들과 다르게 아량이 넓으신 분이다! 리고 섬으로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날 후보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셨으니, 너희는 무조건 응해야 한다!”
만찬?
철없는 애마냥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책 없는 후보인 줄만 알았는데,
그래도 손님 대접 정도는 할 줄 안다는 건가?
먼저 호의를 베풀어 준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초대를 거절할 멍청이는 없나 보군! 좋다! 그럼 우릴 놓치지 않게 잘 따라와라!”
-후웅!
음?
이 용가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쟤네 우리 안 태워 가?”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던 세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따라오라고만 했지, 태워준다고는 안 했으니까요. 그래도 좀 당황스럽긴 하군요.”
제임스조차 머쓱함을 느꼈는지 이마에서 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음. 뭐랄까?
당장 검기를 날려 저놈들을 모두 추락시켜버릴까 하는 나쁜 생각(?)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룸 녀석. 마족 중에서도 최강의 신체를 가졌다더니만, 두뇌는 최강이 아닌 건가?
손님맞이가 아주 개판이네?
“제피로스(Zephyros)!”
골 때리는 기분을 느끼는 와중, 이사벨이 바람의 정령을 소환했다.
정령은 이사벨의 지시를 따라 우리를 태울 수 있는 바람의 요람을 생성했다.
“일단 이걸 타고 따라가 보기로 하죠.”
안 따라가서 귀찮은 일 생길 바에야, 우선은 따라가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는 정령의 인도를 받으며 용마족의 뒤를 유유히 따라갔다.
* * *
먼 과거, 마계에 아직 디아펠리스라는 명칭이 붙어지기 이전,
이 대륙의 주인은 드래곤이었다고 한다.
지상 최강의 종족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시대를 보냈고, 시간이 흘러 새롭게 정착한 순혈 마족에게 주인 자리를 넘겨주고 신계로 승천했지만,
마계 대륙에 미련이 남은 일부 드래곤이 마족과 합을 이루어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고 하니,
그 흔적이 바로 용마족이다.
가뜩이나 인간보다 월등한 스펙을 지닌 마족의 몸에 드래곤의 피와 유전자가 섞였다?
더 말할 필요가 없는 하늘 아래의 절대 종족이라고 볼 수 있겠지.
달리 말하면 자신들을 향한 자만감과 우월감에 찌들어 있는 종족이란 거고.
일단 내가 아는 건 대충 이 정도.
나머진 그 용마족의 대표와 직접 얼굴을 맞대어 어떤 성품과 사상을 지녔는지, 직접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나름 진중한 마음을 가지고 산꼭대기에 자리한 그룸의 성에 들어선 지 약 5분.
지금 내 머릿속엔,
다시 나갈까 하는 생각이 반복해서 피어오르고 있다.
“오! 왔나, 벨져 후보! 대충 아무 데나 앉아서 먹고 싶은 거 먹어라! 대화는 만찬이 끝난 다음에 하도록 하지!”
5층 건물은 족히 넘어 보이는 긴 기둥으로 양쪽으로 쭉 늘어져 있는 거대한 방.
방 한가운데엔 장정 100명은 족히 누울 법한 큰 식탁이 자리했다.
식탁엔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수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지만, 음식을 먹는 이는 오직 한 명뿐이었다.
“왜 안 움직이고 멀뚱히 서 있지? 우리 용마족의 엄청난 스케일에 벌써 놀란 건가? 하하! 벌써부터 놀라면 곤란한데? 크하하!”
그룸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면서도 발음은 무척 또렷했다.
식탁의 음식이 비워질 때마다, 시종들이 새로운 음식들을 연이 내놓았지만 그것마저도 순식간에 비워졌다.
전에 연회장에서 처음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대체 저 밤톨만 한 몸에 저만한 음식들이 어떻게 다 들어가는 거지?
급 두통이 밀려온 나머지 나는 머리를 붙잡았다.
정녕 이 답이 안 보이는 종족의 도움을 받아 리고 섬에 가야 하는 건가?
그렇게 한탄을 하던 와중,
“용마족의 영역에 오신 걸 환영해요 벨져 후보님~!”
갑자기 누군가가 내 앞으로 샴페인 잔을 건넸다.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걸로 목이라도 축이세여~!”
상큼한 열대과일을 생각나게 하는 빛깔에 탄산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샴페인.
익숙한 주류를 본 것에 반가움을 느낀 것도 잠시,
나는 긴가민가한 얼굴로 샴페인을 건넨 당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 손엔 검 자루를 쥔 채로.
“여기서 뭐 하십니까?”
“뭐하긴? 나도 만찬을 즐기는 중이지.”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요염한 목소리가 들렸을 때부터 알아봤다.
나와 더불어 게임 참가를 위해 리고 섬에 가야 하는 또 다른 마왕 후보.
색욕의 종주, 루비아 룩스리아였다.
“뭘 좋다고 붙어있어요! 빨리 안 떨어지고!”
깜짝 놀란 이사벨이 뒤늦게 나와 루비아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러면서 특이한 옷(?)을 입은 그녀를 못 보게 하려는 듯, 내 앞을 딱 가로막았다.
“그 옷은 뭐야, 루비아?”
세나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벨져 후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준비한 만찬 의상이라고나 할까? 어때 벨져 후보?”
어떤 미친 마족이 만찬 자리에 메이드 복을 입어!
루비아의 뒤론 조끼 턱시도를 입은 채로, 한 손에 술 쟁반을 들고 있는 미켄의 모습도 보였다.
남매가 아주 가지가지 하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레이디스~!”
그러곤 사뿐사뿐 메이와 세나에게 다가가더니 느끼한 목소리로 오렌지 주스를 건넸다.
두 배로 밀려오는 두통을 애써 진정시킨 뒤,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여긴 왜 오셨습니까?”
“벨져 후보랑 같은 목적이라고 봐야겠지? 나 역시 리고 섬으로 가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래 목적은 같겠지.
하지만 상황까지 같을진 모르겠다.
그녀는 리고 섬으로 갈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걸까?
그런 내 속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루비아는 내 앞으로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벨져 후보는 리고 섬으로 어떻게 갈 생각이야?”
“그걸 너한테 설명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
대답은 이사벨이 대신했다.
“과연 그럴까? 당장 리고 섬으로 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너희에게 없다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 말은 즉, 루비아 그녀는 뭔가 수가 있다는 의미였다.
수상하다 못해 잔뜩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들어서 나쁠 건 없을 것이다.
“어떻게 가실 생각입니까?”
루비아는 대답하려다 말고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서 얘기하긴 좀 그렇고, 있다가 만찬 끝나면 얘기하자! 우리 단둘이~!”
그 말에 불안감이 한층 더 가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