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6)
아직은 아닙니다 -2
“어··· 아, 저기다.”
좌석을 찾는데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워낙 오래된 경기장이라 좀 불친절한 탓도 있는데, 좌석이 상당히 앞쪽에 있어서 그랬다.
경기장 앞쪽, 필드와 가장 가까운 좌석이 우리 자리였다.
“와아, 자리 좋다. 엄청 가까워.”
그 자리에 지우와 나란히 앉았다.
와, 되게 가깝네. 얼마나 가깝냐면, 필드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 얼굴이 자세히 보일 정도다.
오래된 경기장이라 확실히 작긴 작구나.
“와, 두근두근. 왜 내가 떨리지?”
그래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작은 경기장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
뭐랄까, 좁은 만큼 모든 게 더 생생히 느껴진다고 할까.
반대편에 앉은 관중들이 부르는 응원 소리도 바로 앞에서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응원 소리에 앉은 자리에서 진동이 느껴질 정도고.
Ahi ahi ahi-!
Magica Viola-!!
È triste il mio cuore lontano Da te-!
Magica Viola alè-!!
관중석을 온통 물들인 보라색 물결.
그 물결이 파도를 칠 때마다 힘찬 함성을 내지르는데, 정확히 이해할 순 없어도 우리 팀 응원가라는 건 알아들을 수 있었다.
Magica는 뭐 말 그대로 마법 같은, 이라는 뜻이고. Viola는 우리 팀 애칭이니까.
“와··· 미쳤다. 그치?”
“응.”
“이제 이탈리아에 온 것 같아···”
지우가 입을 살짝 벌리고 관중석을 둘러보며 말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탈리아에 온 것 같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보통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하면 되게 감정이 풍부하고, 쉽게 흥분하는 다혈질이고 그럴 것 같은데. 여기 피렌체 사람들은 그렇기보단 한층 차분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근데 여기 와서 보니까 피렌체 사람들도 이탈리아 사람이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들 여기서 저렇게 폭발을 시키고 가니까 밖에선 차분할 수밖에 없지.
사실 축구 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려고 오는 것 같은 모습들이다.
“근데, 우리 지안이 괜찮겠어?”
“응? 뭐가?”
“이런 데서 축구 할 수 있겠냐구.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말야. 우리 지안이는 엉엉 울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울긴 누가 울어.”
지우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정곡을 찔렸다.
이런 데서 어떻게 축구를 하지?
아니, 경기장이 워낙 작아서 터치 라인 근처에 서 있으면 관중들이 하는 말이 들릴 것 같을 정도다. 만약 실수라도 하나 하면 온갖 욕을 그대로 다 들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걸 떠나서, 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축구를 한다면 얼마나 긴장될까.
내가 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 온몸이 굳고 머릿속이 새하얘질 것 같다.
“···.”
그러고 보니, 감독님이 그러셨었지.
경기 보러 가서, 내가 저기서 뛴다면 어떨 것 같을지도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흐으음. 글쎄.
모르긴 몰라도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니, 적응을 할 수는 있을까.
그나마 오늘 와서 경기장이 이런 분위기라는 걸 알았으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모르고 있었으면 나중에 큰일 날 뻔했다.
뭐··· 내가 여기서 뛰는 건 몇 년이나 뒤의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잠깐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서 지우가 물었다.
“저기 선수들, 다 알아? 아는 사이야?”
“저기?”
지우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우리 팀 1군 선수들이다.
음··· 잘 모른다. 1군 경기는 챙겨본 적이 없어서. 이름을 보면 몇 명은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얼굴만 봐선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나 참.
그래도 우리 팀이고, 다들 선배님이니까 관심 좀 가져야 되는데.
어떻게 한 명도 모르······
“···어?”
“왜?”
“아는 사람 있다!”
“누군데?”
다 모를 줄 알았는데, 반가운 얼굴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같이 훈련했었던 지노의 얼굴이 보인 것이다.
“지노라고, 나보다 1살 형인데. 얼마 전까지 같이 훈련했었거든.”
“1살 형이면 열일곱? 와아, 엄청 잘하나 보다.”
“잘 하지.”
와, 지노가 잘 한다는 거야 알고는 있었지만.
19세 팀으로 올라간 게 한 달 전쯤 아니었나?
그 한 달 만에 다시 1군까지 올라갔다니. 대박이다.
뭐 우리 팀은 선수단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가끔 이런 컵 대회에 스쿼드 일부를 유스 선수들로 채운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그래도 어쨌든 신기하긴 신기하다. 대단하기도 하고.
와··· 역시 지노는 다르구나···
“그럼, 너가 그냥 축구 천재면 저분은 축구 왕왕천재야?”
“···응?”
“그렇잖아. 너보다 한 살 밖에 안 많은데 벌써 저기서 뛰는 거 보면. 너보다 더 천재라는 거 아니야?”
지우가 그렇게 말해 놓곤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댄다.
놀리려고 하는 말인가?
근데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다만···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내가 1년 뒤에 어디 있을 줄 알고.”
괜히 입을 삐죽 내밀면서 허세를 부린다.
속으론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겉으론 지기가 싫네.
“오올. 자신감 뭔데? 그럼 1년 안에 저기서 뛸 수 있다는 거네?”
“뭐, 못할 거 있나.”
“와아, 진짜 축구 얘기만 하면 사람이 달라진다니까. 못하면 어쩌려구?”
“두고 보든가.”
내 말에 지우가 알겠다며 웃었다.
···나 참. 내가 또 무슨 말을 한 거지.
하여튼 요놈의 입이 문제다. 입이.
1년 안에 1군에 들어간다고? 내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지안아···
“와, 시작한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
“골이 안 들어가넹···”
“아까 코너킥에서 그거 넣었어야 되는데.”
“벌써 전반전 끝나가는데. 지금쯤이면 이기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뭐, 그렇긴 한데··· 더 봐야지.”
경기는 예상보다 치열했다.
전반전이 끝나가는데 아직도 0대0.
오늘 상대인 팔레르모는 세리에 B 소속의 팀인데도 쉬운 상대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릴 상대로 끈끈하게 수비를 하며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모습.
피오렌티나의 선수로서 이런 말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상대가 더 대단해 보였다.
원정 경기장에서 저렇게 잘 버틸 수 있다니.
나였다면 기가 죽어서 아무것도 못 했을 텐데 말이다.
“아, 끝났다.”
“끝났네.”
“뭐가 문제였던 거야? 상대 2부 리그 팀이라며. 쉽게 이겨야 되는 거 아니야?”
“2부 리그 팀이라고 꼭 못하는 건 아냐.”
“그니까 설명해줘. 우리 축구 천재가 보시기엔 뭐가 문제였는데?”
“문제? 음···”
지우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전반전의 문제라··· 글쎄.
감히 내가 생각해 보자면, 뭐 골 결정력이나 크로스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 등등이 있겠는데.
그것보다 우선은 공격 패턴이 너무 단조롭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인 것 같긴 하다.
전반전 동안 거의 60퍼센트 이상의 점유율을 가지고 계속해서 공격을 펼쳤던 우리 팀이다.
한데 그 공격 대부분이 사이드 돌파에 이은 크로스였다.
사실 대부분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열이면 아홉 정도가 크로스일 정도였다.
그만큼 공격이 단순하니 상대 입장에서도 수비하기가 편할 터.
뭐, 단순하더라도 날카롭기만 하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못했으니까. 그게 문제였다.
좀 더 창의성 있는 플레이가 필요해 보였다.
“으음, 그렇구나. 사실 난 들어도 잘 모르겠지만.”
내 설명에 지우가 머리를 긁적인다.
사실 뭐, 말이 쉽지.
이렇게 관중석에 앉아 말로만 떠드는 건 누구든 할 수 있다. 그걸 필드에서 직접 해내는 게 어려운 거지.
저기 계신··· 스킨헤드에 되게 무섭게 생긴 감독님이나.
1군 선배들이 나도 아는 걸 모를 리가 없다는 얘기다. 반대로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있겠지.
만약 내가 관중석이 아니라 필드에 있는다면?
저거에 반도 못 하겠지, 뭐.
그저 어버버 대기만 하다가 내 밑천이 다 드러날 거다.
그걸 지우가 본다면··· 으으.
“아, 답답해. 우리 지안이가 들어가면 다 뒤집어 놓을 수 있을 텐데. 그치?”
“어? 어···”
···만약 내가 1군에 올라가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은 최대한 먼 미래였으면 좋겠다.
음··· 아니지.
근데 그럼 또 아까 내가 했던 말이 거짓말이 되어 버리잖아.
에휴.
이래서 사람은 솔직하게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
*
와아아아아-!!
후반 15분쯤이 됐을 때, 경기장이 크게 진동했다.
“와, 들어갔다!”
드디어 우리의 골이 터진 것이다.
고집스럽게 시도하던 크로스가 드디어 우리 팀 머리에 맞았고, 그 헤더가 골망을 갈랐다.
Lorenzo-!!
Lorenzo-!!
Lorenzo-!!
골이 터지는 순간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던 함성이 이내 합쳐져 하나의 이름을 연호한다.
득점한 선수의 이름을 불러주는 거구나.
왠지 모르게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는데, 옆을 보니까 지우 역시 팔을 비비고 있다.
“와··· 소름···”
확실히··· 짜릿할 것 같긴 하다.
이렇게 보는 입장인데도 가슴이 웅장해지는데, 만약 저게 내 이름이라면 어떨까.
그 순간만큼은 나도 엄청 짜릿할 것 같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지우에게 물었다.
“만약에 있잖아.”
“응?”
“사람들이 저렇게 내 이름을 불러주면 어떨 것 같아?”
“네 이름을?”
내 물음에 지우가 잠깐 상상을 해보는 듯하더니, 이내 팔짱을 끼고 우쭐한 표정을 짓는다.
“뭐, 엄청 기분 좋겠지.”
“···진짜?”
“당연한 거 아니야? 널 키운 게 이 누나잖아. 막 뿌듯하고 그렇겠지. 사실 사람들은 네 이름 말고 내 이름을 불러줘야 돼.”
“···.”
“뭐야, 표정? 내 말 틀렸어?”
“아냐··· 맞아···”
그래···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
뭐 아무튼.
상상해보니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긴 하다.
지우가 보는 앞에서 모두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뿌듯하겠지?
지우도 그럴까?
나는 문득 지우를 슬쩍 바라봤다가, 지우의 팔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닭살.”
“응?”
“너 닭살 엄청 돋았어.”
지우의 하얀 팔에 솜털이 곤두서 있었다.
그런데, 지우가 손으로 팔을 가리면서 나를 째려본다.
“변태.”
“···어?”
“어딜 보는 거야. 변태야.”
“뭐, 뭔 소리야.”
“이런 식으로 몰래 보고 있던 거야?”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뭐,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얘는.
지우가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날 계속 째려보길래, 나는 고개를 확 돌렸다.
아, 더워.
ㆍㆍㆍ
지우와의 경기 관람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훈련을 빼고 간 거라 그런지, 경기 자체는 그렇게 재밌었던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재밌게 느껴졌다.
전반엔 좀 답답했지만 어쨌든 후반에 2골이 터지면서 우리가 이기기도 했고.
지우와 경기 전에 만나서나, 경기장에서,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밥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낸 것도 재밌었다.
좀 옛날 생각이 나는 기분이었달까.
아무튼 알차게 하루를 보낸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잘 쉬어서 그런지, 수요일인 오늘 훈련을 하는데 평소보다 힘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공도 더 잘 차지는 것 같고, 훈련도 잘 되는 기분.
확실히 잘 쉬는 것도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쭈욱 쉬기만 했었으니까, 쉬는 것의 중요성을 몰랐던 나였다.
물에 들어가기 전엔 공기의 소중함을 알 수 없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그렇게 훈련을 마친 뒤, 나는 감독님을 찾아갔다.
숙제 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어, 그래. 어떻게, 잘 보고 왔어?”
“네. 잘 보고 왔습니다.”
“어땠어. 뭐, 어떻게 이기긴 이겼드만. 그래도 내가 보기엔 문제가 많던데.”
“어··· 그랬나요.”
“팬들 여론도 별로 안 좋아. 답답한 경기력이었다고. 언제부터 피오렌티나가 무지성 크로스만 올리는 팀이 되었냐고 하더군.”
“아···”
“편하게 얘기해 봐. 어떻게 봤는지.”
감독님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내 느낌을 말씀드렸다.
원래는 그냥 좋은 경기였다, 많이 배웠다 정도로 말씀드리려 했었다. 너무 솔직하게 얘기하면 건방져 보일 것 같아서.
근데 감독님께서 먼저 저렇게 얘기하시니, 좀 더 편하게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런 부분에선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보는 입장이랑 하는 입장은 다르겠지만요.”
“그렇게 느꼈구나.”
내 얘기를 들은 감독님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사실 빈첸초 감독님이 요즘 고민이 많아. 너도 봤지? 머리털 다 빠지신 거.”
“···”
왠지 웃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꾹 참았더니, 감독님이 제법인데? 하는 표정을 짓곤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알고는 있는데, 방법이 없으시다더군. 지금 있는 선수들로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고 말야.”
“아···”
“나도 백번 이해하지. 결국 시합은 선수가 하는 거니까. 전술을 선수에 맞추는 수밖에 없거든.”
“네.”
같은 감독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지, 감독님이 미간을 찌푸린다.
“공격진에 창의성을 불어넣어 줄 선수가 없다더라고. 뭔가 좀 의외성을 가진 선수가 있어야 패턴을 다양화 시킬 수 있는 건데, 그런 선수가 지금 1군엔 없으니까···”
“그렇구나···”
“너도 그 부분은 확실히 느꼈지?”
감독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감독님이 마주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내게 물었다.
“그럼, 네가 가서 한 번 해볼래?”
“······네?”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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