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76)
나는 기본적으로 생각이 많은 편이다.
평소에도 그렇고, 특히 경기장 안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기선 어떻게 플레이하는 게 최선일까, 다음 플레이는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상대의 약점은 무엇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들을 하느라, 필드 위에 있을 때면 가끔 몸보다 머리가 더 바쁘다는 느낌까지 받곤 한다.
다만, 가끔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일 때도 있다.
방금이 그랬다.
“뭐냐,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새삼스럽게 왜 그래. 막내 하루 이틀 보나.”
“맨날 보는데도 방금 건 놀라웠다.”
“대체 몇 수 앞까지 내다보는 거야? 거기서 공을 띄워서 수비 키를 넘기고, 바로 때리는 각을 본다고?”
내게 몰려든 선배들이 완벽한 계산이었다며 한마디씩 하는데, 그게 사실은 아니지만 굳이 정정해주진 않았다.
사실 옛날엔 이런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었다.
머리로 계산한 플레이가 아니라 몸이 알아서 움직여 만들어낸 플레이 말이다.
뭔가 내 실력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력이라면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와도 똑같이 플레이할 수 있어야 실력인 건데, 이건 그렇지 않으니까.
뭐랄까. 어려운 문제를 계산해서 푼 게 아니라 찍어서 맞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기쁜 마음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먼저였다.
괜히 더 거품이 쌓이는 것 같아서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루카 코치님이 해주셨던 말씀, 필드 위에 우연은 없다는 말을 항상 되새기고 있기도 했고.
또···
“어이.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다···”
“···무슨 비밀?”
“방금 그거, 뽀록이지? 뽀록이여야만 해!”
오늘 함께 선발 출전한 리카 로메로가 내게 와서 질투심 가득한 얼굴로 속삭인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뽀록? 아니. 이건 푸마의 기술력이라고 하는 거다.”
“뭣···!”
“푸마만의 넷핏 시스템은 언제 어디서든 강력한 슈팅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니까.”
이게 다 푸마 덕분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반은 농담이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여, 역시 푸마인 건가···!”
관계자분들이 아셔야 할 텐데.
푸마를 위해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
“체력은 좀 어때. 괜찮아?”
“네. 괜찮아요.”
“좋아.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지치면 언제든지 손을 들어.”
“네.”
후반전이 한창인 무렵.
잠시 경기가 멈춘 틈을 타 물로 입을 적시고 있는데 코치님이 말씀하신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뒤 물통을 제자리에 놓고 다시 내 자리로 향한다.
전광판의 시간을 확인하니 78분.
스코어는 2대0이다.
내 선제골에 이어 리카 로메로가 추가 골을 넣었고, 그렇게 잡은 리드를 잘 지키고 있는 상태.
오늘 상대인 토리노는 확실히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수비는 뭐 그렇다 치는데, 공격이 특히 위협적이지 않았다.
상대를 얕잡아 보려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수비가 그만큼 좋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역전을 당할 것 같다는 위기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지키지 말고 더 득점을 뽑아내라는 지시도 하셨다.
경기는 여전히 우리의 통제하에 있었다.
그러니 이쯤에서 내가 빠져도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였다. 나 하나 빠진다고 약해질 우리 팀도 아니고, 힘들기도 꽤 힘들긴 했다.
하지만, 왠지 손을 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적당히 교체로 그라운드를 나가 쉬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다는 얘기다.
더 뛰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이런 내가 신기하긴 하다.
더 뛰고 싶은 욕심이라니.
이건 어떻게든 경기에 나서야 한다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절박함과는 조금 달랐다.
그냥, 순수하게 축구를 더 하고 싶을 뿐이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변했나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나 스스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경기, 한 경기를 거듭할 때마다 성장하는 것 같다는 느낌 말이다.
불과 아까 전만 해도 그렇다.
예전이었다면 그런 골에도 기쁨보단 불안함을 먼저 느꼈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하루하루 동안 흘린 땀방울이 나를 바뀌게 만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
경기 종료까지 남은 10분이라는 시간 속에 또 어떤 깨달음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주 경기를 치르고, 매번 같은 규칙 속에서 90분의 경기를 펼치지만.
매번 경기는 다르게 흘러간다. 모든 상황이 동일하게 흘러가는 경기는 없다.
100번의 경기를 하면 100번 다 다른 경기가 펼쳐진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1분 1초를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의 1분, 1초가 모두 이전엔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들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 경험을 놓치는 손해를 보기가 싫었다.
과거의 1분 1초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 앞으로의 1분 1초가 미래의 나를 결정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욕심이 나는 게 신기한 게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헤이!”
“여기!”
나는 남들보다 부족함이 많은 아이였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도 많았다.
남들에겐 당연한 게 나에겐 배울 거리고 깨달음이었으니까.
옛날엔 부족하기만한 내가 싫었는데, 이젠 그것도 나름 감사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앞으로 더 성장할 여지가 많다는 뜻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성장한 내 모습을 보는 건 즐겁고 중독성 있는 일인데, 부족하다는 건 아직 그걸 느낄 날이 더 많다는 거니까··· 감사하다면 감사한 일인 거지.
나는 그동안 꽤 많은 걸 배웠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럼에도 모르는 건 여전히 많았고 새로운 깨달음은 계속해서 찾아왔다.
그렇다는 건 아직도 깨달아야 할 게 많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그 끝이 없을 수도 있다. 죽을 때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다.
파아앙-!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잡는다.
공이 왼쪽에서 한참을 있다가, 단번에 넘어온 전환 패스라 공간이 널널한 상태에서 공을 받았다.
그러니 고민할 것 없이 빠르게 치고 들어간다.
타타탓-!
앞을 가로막는 상대 풀백을 향해 치고 들어가다가··· 그 너머를 슬쩍 확인한 뒤 왼쪽, 그러니까 중앙을 향해 접고 들어간다.
타탓-!
박스 라인과 수평을 그리듯 들어간다.
그러다 충분한 각이 보였을 때···
뻐어어어어어엉-!
왼발에 체중을 실어 그대로 감아 때렸다.
골대의 좌측, 빈공간을 노리고 바깥쪽으로 감은 슈팅인데···
맞은 순간 이미 어느 정돈 예상할 수 있었다.
발끝에서 이런 감각이 느껴졌을 때 대부분은 골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자신감이란 건 성공해 본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슈우우우우우웅-
철썩-!!
골대를 벗어날 듯 날아가던 공은 휘어져 골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고, 관중석에선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온다.
관중들이 골이 터질 때마다 매번 저렇게 환호를 하는 것도, 세상 아래 같은 골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야아아아아!”
“궤적 미친 거냐! 한 게임에 원더골 두 개를 때려 박으면 어쩌자는 거야!”
이러니까 나도 욕심을 안 부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라 생각해 일찍 교체로 그라운드에서 나갔다면, 이러한 경험을 나는 영원히 놓치고 말았겠지.
“젠장, 또 푸마냐!”
“물론이지. 최첨단 니트 소재의 기술력은 접지력을···”
“알았어! 살 테니까 그만해!”
이러다 정말 욕심쟁이가 되어버리면 어쩌지.
흐음.
나도 모르겠다.
이런 욕심이라면, 좀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ㆍㆍㆍ
몸은 힘들지만, 기분은 여느 때보다 상쾌했다.
경기도 이겼고 모든 것이 좋았다.
지우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있잖아, 오빠.”
“···”
“오늘은 학교에서 뭐 했냐면, 오빠.”
“···그만해.”
“뭘? 오빠?”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그만하라고···”
“그니까 뭘 그만하냐구. 오빠.”
얄밉게 생글거리는 지우 때문에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그 농담을 던졌던 건, 내 인생 최악의 실수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중이다.
지우는 저녁 내내 말끝에 오빠를 붙이는 중이었다.
오빠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온몸이 간지러운 기분이라, 잘못했으니 그만해달라고 몇 번이나 빌어도 지우는 듣질 않았다.
오히려 내가 괴로워할 때마다 더 재밌어하며 나를 괴롭혔다.
···맞아.
이럴 때 괴로워하면 놀리는 입장에선 더 재밌을 뿐이다.
오히려 뻔뻔해야 한다.
뻔뻔하게···
“···”
“왜? 왜 오빠?”
···아니다. 도저히 못 하겠다.
오빠 소리 한 번 더 했다간 반년 시달릴 거 평생 시달리는 수가 있다.
그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선회한다.
“그만하세요, 누나.”
“응?”
“오빠 아니에요. 정신 차리세요. 누나, 누나, 누나.”
너도 똑같이 당해보라고.
친구한테 오빠 소리 들으면 얼마나 몸이 간지러운지···
“헤헤헤.”
···음?
지우가 배시시 웃는다.
내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도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다.
“휴우···”
“알았어, 알았어. 그만할게. 나도 자꾸 오빠, 오빠 거리니까 기분 이상하다.”
“···잘 생각했어.”
“라고 할 줄 알았지? 오빠 소리 듣고 싶어서 그랬던 거 아니었어? 그래서 해주잖아. 뭐가 문제냐구.”
“···”
그만··· 그만···
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려고 하자, 지우는 웃음을 빵 터뜨렸다.
“알았어. 진짜 안 할게. 한 번만 봐준다.”
“···고마워.”
“앞으로 한 번만 더 까불어봐. 평생 오빠라고 불러버릴 테니까.”
이미 많이 후회하고 있으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지우 앞에서 오빠라는 소리는 죽을 때까지 안 해야지. 다짐한다.
흐음.
근데 뭔가 방금 말, 기분이 이상한데.
평생···?
“지안아.”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에서 나온 아빠가 나를 불렀다.
아빠를 바라보자, 아빠는 내게 손짓했다.
잠깐 방으로 들어와 보라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 들어가 보니, 아빠의 표정이 뭔가 진지해 보였다.
“잠깐 앉아 볼래?”
“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분위기를 잡으시는 걸까.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자 아빠가 말했다.
“그··· 그래. 우리 아들.”
“···네?”
“아빠가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좀 더 나중에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젠 더 미룰 수가 없더구나.”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아빠를 보니, 침이 꿀꺽 삼켜진다.
무슨 얘기길래 이렇게 조심스러우신 걸까.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심지어 아빠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데, 그거라면 다행이다.
조바심을 느끼며 아빠를 바라보는데, 아빠가 쉽게 입을 떼지 못하시길래 먼저 물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어··· 그래. 뭐, 별건 아니고. 그래. 별거 아니지. 이렇게 뜸 들일 얘기가 아냐. 그래···”
뜸 들일 얘기가 아니라면서 한참 더 뜸을 들인 아빠는, 마치 큰 결심을 하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우리 아들을 국가대표로 뽑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어.”
“···국가대표요?”
“응.”
아빠의 말에 정신이 잠깐 멍해졌다.
스쳐 갔던 오만가지 생각 중에 이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가대표라니.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응.”
“그렇구나. 대박인데···”
“···응?”
좀 놀랍긴 했지만, 내가 했던 별의별 생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이상하다는 듯 날 쳐다본다.
“괜찮겠니?”
“···뭐가요?”
“어··· 아니, 그러니까. 뭐 좀 부담스럽다거나, 조금이라도 불편한 게 있으면 말해도 돼. 당장 오늘 뭘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아빠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말하고 계셨고, 나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국가대표라니.
듣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자리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아빠는 그게 걱정이시겠지.
하지만 나는 예전과 다르다.
새로운 경험이라면 기꺼이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아빠를 걱정스럽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더 장난스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와, 그럼 아빠 아들이 국가대표가 될 수도 있는 거네.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어··· 그렇지.”
아빠는 나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고, 나도 피식 웃었다.
아빠가 말했다.
“근데 말이다.”
“네?”
“그, 널 뽑고 싶다고 말한 게 있잖니.”
“네.”
“한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음? 무슨 말씀이시지.
내가 고개를 갸웃이자 아빠가 말을 이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널 원한다는구나.”
“···예?”
어라.
잠깐만.
···이건 좀 당황스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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