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9)
유난히 밝은 날 -3
‘언제 나오는 거야···’
한산한 관중석 한 켠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김지우는 초조한 듯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거의 5분마다 한 번씩 시간을 확인했다.
전반전이 끝나고, 벌써 몇십 분이 지났는데도 이지안이 나오지 않았다.
경기 전,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오늘 상대가 약한 팀이라 에이스인 자기는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더니.
정말 오늘은 나오지 않는 건가, 초조함과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어··· 지안이다···!”
마침내 이지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벤치에서 세 명의 선수들이 나와서 몸을 풀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이지안이 있었던 것이다.
“지안···!”
김지우는 반가운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괜히 소심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어 주의를 끌진 않았다.
“휴···”
두 손을 모은 김지우는 경기장의 흰 선을 따라 뛰며 몸을 푸는 이지안을 바라봤다.
어깨를 빙빙 돌리기도 하고, 무릎을 가슴까지 들어 올리기도 하고, 짧게 전력 질주를 하기도하고.
금세라도 경기에 들어갈 것처럼 몸을 푸는 이지안을 보니, 괜히 자신의 가슴이 미칠 듯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정작 저 멀리 이지안의 얼굴은 덤덤해 보이는데 왜 자기가 더 떨리는 건지.
손이 땀으로 흥건해질 정도였다.
“언제 나와···?”
그렇게 몸을 풀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을 때도 아무런 변화가 없길래, 김지우는 거의 울먹이듯 중얼거렸다.
아니, 애를 준비시켜놓고 왜 아무도 신경 안 쓰냐고! 애가 저렇게 열심히 몸을 푸는데!
저러다 애 힘 다 빠지겠다!
그 감독님이든 누구든 빨리 지안이 들여 보내라니까?
자기도 모르게 험한 말이 막 튀어나오려 할 때였다.
“어···!”
이지안이 입고 있던 조끼를 벗었다.
그리고 경기장으로 들어가려는 듯 흰 선 앞에 섰다. 이윽고 경기가 잠시 멈추더니, 보라색 유니폼 한 명이 천천히 경기장을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빨리 나와, 이 자식아!’
우리 지안이 빨리 들어가야 되는데. 괘씸했지만 그래도 같은 편이라 속으로만 생각했다.
어쨌든, 그렇게 이지안이 경기장을 향해 뛰어나갔다.
‘미친! 진짜 들어갔어!’
이제 심장은 거의 터질 것처럼 뛰고 있었다.
이상했다.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긴장 같은 것도 해본 적 없는 성격이었고, 친구들이 배우든 아이돌이든 덕질을 할 때도 이해를 못 했던 김지우였다.
그런데, 이지안이 경기장에 들어서자 마치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듯 가슴이 철렁했다.
자기가 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동시에 지안이가 저 금발 머리들을 다 물리치고 골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안이한테 줘, 지안이! 지안이한테 공 주라고···!’
공 좀 줘라, 이 코 큰 놈들아!
너네들은 이미 실컷 공 찼잖아, 응?
방금 막 들어온 애가 있으면 공 좀 차라고 주고 그래야지, 애들이 인심이 없······
“어, 어, 어! 그렇지! 공! 잡아! 지안아!”
간절한 바람이 닿은 걸까, 공이 이지안에게로 흐르자 김지우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이지안이 공을 향해 달린다.
동시에 덩치 큰 녀석 하나가 그 뒤를 바짝 쫓는데, 되게 무서웠다.
저 덩치로 뒤에서 들이받으면 지안이는 그냥 튕겨 나갈 것 같은데.
그딴 짓거리 하면 가만 안 둔다, 진짜!
“···와!”
하지만 이지안은 김지우의 생각보다 빨랐다.
공을 잡자마자 잽싸게 돌아서며 덩치를 따돌리는 이지안은 마치 날쌘 고양이 같았다.
그리고 이지안이 계속해서 공을 몰고 올라간다.
계속해서, 쭉쭉.
저렇게 빨리 달리는데 공이 발에 붙어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어느 누구도 이지안을 붙잡지 못했다.
뻐어어어어엉-!
그리고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눈, 코, 입 모두 최대 크기가 된 김지우는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슈우우우우웅-
아니, 느낌이 아니야.
진짜로 막 시간이 느리게 갔다니까?
‘막으면 죽는다!!’
이지안의 슈팅을 향해 키가 엄청 큰 골키퍼가 뛰어서 손을 뻗길래 김지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까는 막 세 골씩 먹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잘 막으면 죽는다, 진짜!
뭘 먹고 팔이 저렇게 긴 건지, 그 긴 팔에 공이 막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 달리, 공은 이미 막을 수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철썩-!!
그 순간 김지우는 알 수 없는 방언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
“Ho dett-! Puoi farl-! Nessun proble-!”
“이, 이봐! 진정해!”
루카 코치가 벤치에서 튀어 나가려 하자 토니 감독이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진정시킨다.
“보세요! 저거를!”
“알겠으니까 좀··· 아이들이 보고 있잖아.”
“아, 후··· 예. 훠우-!”
토니 감독의 만류에도 자제가 잘 안 되는지, 얼굴이 시뻘게진 루카 코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5분 전쯤.
지노를 빼고 누굴 넣을지에 대한 토론에서 지안을 넣자고 주장했던 게 루카 코치였다.
토니 감독은 아직 이른 것 같다며 걱정했는데, 루카 코치가 강력히 주장한 게 통한 거다.
물론 토니 감독도 실전을 뛰는 이지안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나, 이지안의 태도가 바뀐 것이 불과 2주 전.
혹시라도 급하게 내보냈다가 긴장과 부담을 못 이기고 다시 소극적인 모습으로 돌아갈까봐 망설인 것이다.
하지만 루카 코치는 비주전조에서 이지안을 관찰 한 바가 있기에 밀어붙였다.
확실히 달라졌다고, 마음을 제대로 먹은 것 같다고.
심지어 3대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보다 부담 없는 기회도 없지 않느냐며 토니 감독을 채근했다.
오히려 열심히 했는데 경기에 내보내지 않으면 의욕이 꺾일지도 모른다며 주장을 꺾지 않았다.
그 결과, 봐라.
해내잖아.
사실 경기장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딱딱히 얼어 있길래 잘못 생각한 건가 싶긴 했다만.
막상 들어가니 훈련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나와 버리잖아.
저게 재능이라니까, 저게.
“후우···”
토니 감독이 긴 한숨을 내쉰다.
토니 감독 역시 루카 코치의 말이 맞았음에도 기분이 좋았다.
애초에 이지안의 재능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 게 토니 감독이니 당연한 일.
사실, 솔직히 말하면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비관적인 입장의 토니 감독이었다.
사람의 성격이라는 게··· 생각만큼 쉽게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실력이 바뀌는 게 더 쉽다고 생각했다.
딱히 큰 재능이 없어 보이던 아이가 경력을 쌓으며 포텐이 터지는, 그런 경우 말이다.
그런 케이스는 종종 봐왔던 토니 감독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케이스는 손에 꼽아도 손가락을 남을 정도.
그래.
바꾸는 게 아니고 이겨내는 거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고, 그렇기에 응원했었다.
어려운 것에 도전하는 어린아이를 어떻게 응원하지 않을 수 있겠나.
“후우, 속이 다 시원하네. 진짜.”
주먹을 불끈 쥔 채, 마치 자기 일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루카 코치를 보며 토니 감독이 피식 웃었다.
선수 시절부터 루카 코치와 함께해 온 토니 감독은 그가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선수 시절, 트라우마 때문에 고생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얘기하자면 긴데, 간단히 말하면.
루카의 실수 때문에 우승컵을 놓친 일이 있었다.
근데 하필 그 시즌이 그의 은사였던 당시 감독님의 은퇴 시즌이라.
은사님에게 바칠 마지막 선물을 제 손으로 날려 버렸다는 생각에 루카는 충격을 받고, 한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진 일이 있었다.
이게 이지안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부담감에 시달리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점에선 일맥상통하는 얘기라.
경우는 달라도 고통은 같을 수 있는 거다.
토니 감독은 루카 코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겨낼 거야.”
“그럼요. 제가 저 어린 나이에 시달렸으면 아마 못 이겨냈을 겁니다. 근데 쟤는 저보다 더 강한 거예요. 저래 보여도 강한 녀석입니다.”
“알아, 알아. 진정해. 나 못 믿나?”
“당연히 믿죠.”
슬럼프에 빠졌던 선수 루카 카파로니를 다시 끌어올렸던 게 당시 코치였던 토니 감독이다.
“다음 경기엔 선발로 내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선발이라.”
“얼마 안 남지 않았습니까? 재계약. 조만간 디렉터 양반이 꼬장한 얼굴을 하고 올 텐데.”
“타이밍 괜찮네.”
“이왕이면 프로 계약 해버렸으면 좋겠는데요.”
“예쁘게 포장해놔야겠는걸.”
“아뇨.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할 겁니다.”
루카 코치와 토니 감독.
둘은 이지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역시 다른데!”
“좋은 슈팅이었어!”
“다르긴 다르구나!”
내 슈팅이 골망을 들썩인 뒤.
아이들이 내게 달려와 축하를 건넸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긴 힘들었는데, 어쨌든 축하는 축하 같았다.
이탈리아어를 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 뭐가 역시 다르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다.
아니,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들어갔다.
그것도 첫 번째 슈팅이.
사실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림이었다.
지노의 움직임, 그리고 상대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내가 들어간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계속해서 생각했던 게 방금의 움직임이었다.
수비를 끌고 나오며 내려가, 훈련 때 했던 대로 도미니코와 스위칭을 하며, 빠른 턴 동작으로 중앙을 파고든 뒤 그대로 슈팅.
내가 그린 그림이긴 했지만, 그게 첫 터치 만에 완벽히 실현될 줄은 나도 몰랐다.
너무 얼떨떨해서 골을 넣은 뒤에도 멍청히 서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관중석을 둘러 봤다.
골을 넣으면 지우부터 찾기로 약속했었지.
어디쯤 있으려나···
아.
지우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관중이 얼마 없어서 그렇기도 한데···
저렇게 방방 뛰면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 못 찾기도 어렵지.
이거 뭐··· 인사라도 해줘야 할까.
적당한 방법을 생각해 보다, 두 손가락을 펴서 경례를 보낸 뒤 돌아섰다.
······너무 폼 잡았나?
*
“야. 다시 해 봐.”
“···뭘?”
“아까 그거. 골 넣고 나한테 한 거 있잖아.”
“···그걸 왜.”
“다시 해보라니까? 왜? 부끄러워? 어? 어?”
···왜 그랬지.
아무래도 흑역사 하나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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