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94)
“어이, 로메로! 가자.”
“네? 저요?”
“그래. 인터뷰다.”
“이, 인터뷰···! 드디어! 마침내!”
경기가 끝난 뒤.
가자는 코치님의 말에 로메로가 괴성을 지르더니, 만화처럼 제자리에서 펄쩍 뛴다.
“이얏호!”
···뭐야.
쟤, 저렇게 높이 뛸 줄도 알았나.
“헤헤헤!”
그렇게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던 로메로는, 갑자기 날 가리키더니 말했다.
“미안하다! 두 천재 라이벌의 대결! 오늘은 나의 승리인 것 같다!”
···뭐라는 거야.
그런 녀석을 어이없다는 듯 빤히 바라보자, 로메로는 흠칫하더니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저, 정색하기는! 알겠어··· 무승부로 하자···”
혼자 아주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다.
로메로는 코치님과 함께 필드 밖으로 향했고, 나는 셔츠로 땀을 닦아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참 다행이다.
로메로가 해트트릭을 기록한 덕에, 카메라 앞으로 끌려가는 일은 오늘 없겠다.
사실 그걸 어느 정도 노리고 녀석에게 패스를 몰아준 감도 없지 않아 있다.
뭐 평소에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오늘만큼은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왜 하기 싫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일단 기본적으로 미디어는 멀리해야 한다는 게 내 좌우명이 되어가고 있기도 했고.
오늘은 특히 더 불안하기도 했다.
왠지 꼭 물어볼 것만 같아서 말이다.
골을 넣은 뒤 카메라에 대고 했던 그 세레머니에 대해서.
뭐, 뻔하지 않을까.
그 손짓의 의미가 뭐였냐.
혹시 누군가에게 보내는 비밀 메시지냐.
중요한 것도 아닌데 꼬치꼬치 캐물었겠지.
내가 뭐, 어?
그거 대답하는 게 창피해서 그런 게 아니다.
경기 후 인터뷰라면 당연히 오늘 경기에 관련된 이야기만 해야지, 맨날 쓸데없는 것만 물어보는 게 싫어서 그런 거다.
진짜로.
나는 우리 팀의 승리보다 내 말 한마디가 더 주목을 받는 게 싫다.
감독님이나 선배들에게 죄송하기도 하고, 그냥 좀 그렇다.
어쨌든··· 그 인터뷰를 오늘은 하지 않게 되었으니 다행인 일이다.
만약 카메라 앞에 서서, 기자가 세레머니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했을까?
흐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거기서 갑자기 그 기억이 왜 났는지 말이다.
그냥, 정말 갑자기 생각났다.
사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지만, 교체를 위해 터치 라인에 서 있을 때까지도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필드에 들어간 이후론 당연히 세레머니 생각이나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고.
그러다가 골을 넣은 뒤.
골대 가까운 쪽에 카메라가 보이길래 일단 걸어갔고··· 그 순간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왜 뜬금없이 그 기억이 떠오른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순간, 그 날의 기억이 마치 먼지 쌓인 앨범을 펼친 것처럼 떠올랐다.
지읒과 이응.
자기 이름과 내 이름의 초성이 같다면서 기억해 두라던 지우의 모습이 말이다.
그래서, 그 세레머니를 했다.
흐음.
근데 잘 모르겠다.
지우가 알아봤을지는 말이다.
사실 나도 갑자기 생각난 거지, 평소엔 머릿속에 남아 있지조차 않았던 일이라.
지우가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 전혀 기억 못 할 것 같은데.
애초에 기억하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하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
4년도 넘지 않았나? 진짜 어릴 때긴 했네.
“···”
그 시절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은 걸까.
자꾸 어릴 때의 기억을 추억하게 된다.
···그나저나, 왠지는 모르겠지만 지우도 기억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왜냐면··· 이 세레머니의 뜻을 내가 내 입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창피하니까.
그래.
그러니까 그런 이유로··· 지우도 지금 나와 같은 때를 떠올리고 있길, 나는 바랐다.
ㆍㆍㆍ
“이젠 진짜 내가 누나네?”
“···”
“앞으로 세 달 동안은 누나라고 부르도록.”
“싫은데.”
“어어? 이거 이거 버릇없는 거 봐. 한 살이나 많은 누나한테 감히.”
“너라고 부를 거야.”
“와, 어이없어. 넌 열여섯 살이고, 난 열일곱 살이야.”
참나.
어이는 누가 없는데, 지금.
나는 자꾸만 누나라고 부르라는 지우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조그만 숟가락으로 판나코타(이탈리아식 푸딩)을 깨작거렸다.
집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아르노 강(Fiume Arno) 옆에 자리한 한 디저트 가게에서 이른 저녁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식사와 케이크 촛불 불기가 전부였던 소박한 생일 파티는 집에서 아빠와 함께 했고, 아빠가 지우랑 같이 나가서 시간을 좀 보내라길래 그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저러나, 지우는 여전히 누나 소리에 집착한다.
“누나라고 불러보라니까.”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뭔데?”
“친구한테 누나라는 말이 듣고 싶어? 난 친구가 오빠라고 부르면 속이 안 좋을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돼서 물으니 지우는 혀를 찬다.
“누나 소리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누나니까 누나라고 부르라는 거지. 맞잖아?”
“안 맞아.”
“뭐가 안 맞는데.”
“···몰라.”
뭐,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하다.
여기선 생일로 나이를 따지니까.
지우는 엄연히 17살이 되었고, 나는 아직 16살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누나라고 부를 순 없다.
“누나라고 해 봐.”
“싫어.”
“누나~”
“싫어~”
“안 되겠다. 엄마한테 일러야지. 나이도 어린애가 자꾸 너라고 부른다고.”
당치도 않은 실랑이를 벌이던 중, 지우가 그렇게 말하곤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든다.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데······
“여보세요? 엄마!”
···진짜 엄마한테 전화를 건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나도 모르게 차렷 자세가 되었고, 지우는 통화를 이어가는 중에도 시선을 내게 두며 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어, 어. 근데 엄마. 잠깐만. 내가 영상통화로 다시 걸게. 응, 응.”
그러더니 전화를 끊고는, 다시 전화를 건다.
그 틈에 나는 괜히 불안해져서 다급히 말한다.
“가, 갑자기 영상통화는 왜···”
“뭐가. 엄마랑 영상통화 하는 것도 안 돼?”
“아니··· 지금 한국은 새벽일 텐데.”
“우리 엄마 원래 늦게 자. 아, 됐다. 엄마!”
기어이 전화는 연결이 되고, 지우가 핸드폰에 대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방금까지 통화를 했으면서도··· 얼굴을 보니 또 새로운 걸까.
지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안부 인사부터 주고받았고, 오늘 자기 화장이 어쨌느니 살이 좀 찐 것 같지 않냐느니 하는 말들을 하며 아이 같은 웃음을 피웠다.
방금까지만 해도 누나인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엄마 앞에선 17살이 아니라 7살 같은 모습이 되는 지우다.
그런 와중에, 엄마 엄마 하는 지우의 말이 내 가슴에 와서 콕콕 박힌다.
음······
“아, 엄마. 다른 게 아니고 있잖아. 나 지금 지안이랑 있거든? 얼굴 보여줄까?”
어디 한번 혼나 봐라, 라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말하는 지우에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핸드폰 너머에선 너무 보고 싶다는 지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우는 고개를 끄덕인 뒤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핸드폰에다 대고 말이다.
“아, 안녕하세요.”
-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아들! 아줌마 진짜 오랜만이지? 나 기억은 나니?
“다, 당연히 기억나죠.”
-그래? 어머 어머, 다행이다. 나는 우리 지안이가 아줌마 홀랑 잊어먹었을까 봐 걱정했는데!
지우와 너무나 닮은 미인이 화면 속에서 입을 가리며 웃는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우리 아들’이라는 소리에,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어색함은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내 입가에 자리 잡는다.
“잊어먹을 리가요.”
-다행이네!
잊어먹을 리가 있나.
이렇게 어머니와 똑같이 생긴 지우를 맨날 보는데.
심지어 목소리나 말투도 빼다 박은 수준이다.
지우가 우리 지안이, 우리 지안이 하는 것도 어릴 때 지우네 집에 놀러 가면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었다.
-아이고, 우리 지안이한테 항상 고마워서 어쩌니. 우리 지우 잘 챙겨줘서 아줌마가 항상 지안이 위해서 기도하고, 고마워하고 있어.
“가, 감사합니다. 잘 챙겨주긴요. 하하···”
-얘, 지우가 맨날 뭐라는 줄 아니? 오늘은 지안이랑 어디 놀러 갔다, 오늘은 지안이가 뭘 사줬다, 오늘은-
어머니의 말이 이어지던 중, 지우가 핸드폰을 홱 가져가더니 쏘아붙인다.
“아, 엄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얘 혼 좀 내달라니까! 1살이나 어린 게 누나라고 안 부르고 자꾸 너라고 부른단 말이야.”
그리고는 다시 화면을 내 쪽으로 돌리는데, 화면 속 어머니는 혀를 차며 웃으실 뿐이다.
-누나는 무슨. 김지우 쟤 웃긴다, 그치?
“맞아요.”
-서방님으로 모셔도 모자랄 판에 누나 같은 소리 하고 있어. 안 그러니?
“···예?”
예상치 못한 단어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어머니가 지우처럼 웃으신다.
-우리 지안이가 이해 좀 해줘. 쟤가 딸만 셋인 집안 막내잖아. 어릴 때부터 맨날 남동생 갖고 싶다고 그렇게 난리더니. 아직도 버릇을 못 고쳤나 봐.
“아, 하하···”
-쬐끄만 게 누나는 무슨. 그치?
“그러게요.”
죽이 척척 맞는 우리의 대화에, 지우는 핸드폰을 든 채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 내민다.
-아무튼, 염치없지만 우리 지우 앞으로도 잘 좀 부탁할게. 뭐, 부탁하지 않아도 우리 지안이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안 그래도 이번에 생일 선물까지 챙겨줬다며?
“네? 아, 그···”
-아주 자랑을, 자랑을. 태어나서 제일 기쁜 선물을 받았-
“아, 엄마! 쫌!”
어머니의 말씀이 채 끝나기 전에 지우가 또다시 핸드폰을 휙 가져간다.
그리곤 제발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고 앙탈을 버럭버럭.
감히 어머니께 못 하는 말이 없다.
어쨌거나, 이제 끊겠다는 지우의 협박에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만 더 보자는 말이 들려오고.
지우가 다시 화면을 내 쪽으로 내민다.
화면 속엔 어머니가 지우와 똑같은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고 계셨다.
-하여튼 지지배, 성질은. 네가 고생이 많겠다, 지안아.
“그렇죠, 뭐.”
-그래도 잘 좀 부탁해. 어린 나이에 낯선 땅에서 정 붙이고 산다는 게 어떤 것보다 힘든 일이라는 거, 우리 지안이가 제일 잘 알잖니? 지우는 지안이라도 있지, 우리 지안이는 얼마나 힘들었겠어.
“······네.”
어머니의 말에 나는 정곡을 찔린 듯, 잠깐 멍하니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 의외의 말을 들으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찌릿했다.
내가 겪었던 힘듦을, 누군가가 그거 힘든 거 맞다고 말해주는 게 이렇게 위로가 되는 것임을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지우랑 잘 좀 놀아줘. 물론 우리 지안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지만, 지우 쟤도 지안이 때문에 이탈리아로 유학-
휙!
세 번째.
지우가 핸드폰을 세 번째로 휙 가져가곤 뭐라 쏘아붙이더니, 신경질적으로 손을 흔들곤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
“왜 끊어. 인사도 못 드렸는데.”
“쓸데없는 소리를 너무 하잖아. 하여튼 우리 엄마는 말이 너무 많아. 짜증 나.”
“엄마한테 짜증 나가 뭐야.”
“치, 우린 원래 이러고 놀거든요.”
입술을 삐죽삐죽 내밀곤 궁시렁대는 지우를 보며 나는 픽 웃고 말았다.
얼굴이며 성격이며 말투며.
모든 걸 닮은 어머니에게 짜증을 부려봤자 누워서 침 뱉기인 것을.
“야, 나 화장실 갔다 온다.”
“응.”
어쨌거나 지우는 계속 씩씩거리며 화장실로 향했고, 나는 잠시 의자에 등을 기대고 테라스 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잔잔히 흐르는 아르노 강 위로 노을이 내려앉고, 산들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
흐음.
근데 어머니는 마지막에 뭐라고 하시려 했던 걸까.
그리고, 그 전에.
분명 태어나서 제일 기쁜 선물··· 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
나도 모르게 입가가 꿈틀대는 통에, 마른세수로 그것을 지워낸다.
그러는 동안 화장실에서 지우가 돌아오는데, 그런 지우의 얼굴에 황금색 노을이 비췄다.
“뭘 봐.”
“···네 얼굴.”
“왜, 너무 예뻐? 눈을 못 떼겠어?”
“···뭐래.”
“야, 근데 엄마랑 나랑 완전 닮았지?”
지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지우가 위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묻는다.
“그럼 말이야. 우리 엄마 어때? 예뻐, 아니면 안 예뻐?”
“···”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코너 플래그에서 3명의 수비에게 둘러싸인 느낌을 받는다.
빠져나갈 곳이 없다.
안 예쁘다고 하면 친구 어머니를 욕하는 거고, 예쁘다고 하기엔···
“어어, 고민하네? 엄마한테 말할까? 지안이가 엄마 못생겼다고 했다고.”
지우의 재촉에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노을을 바라본다.
노을 때문에 이미 내 얼굴은 붉게 물들어있겠지.
“예쁘시지.”
“그럼 엄마랑 닮은 나도 예쁘다는 거네. 오케이, 확인. 끝. 더 얘기하지 마. 쉿.”
어이없는 눈빛으로 지우를 바라보니 지우는 킥킥 대면서 웃었다.
여자들이란, 꼭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도 확인을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