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Disaster-Class Necromancer Retires RAW novel - Chapter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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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후우. 도대체가 조용히 넘어가는 일이 없디.”
혁명정부의 수장 박결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 더러운 김씨 일가 잔재들이…….”
차관 제공의 핵심은 비핵화인데, 김씨 일가의 추종자이자 비핵화에 반대하는 세력이 핵 관련 기술을 빼돌리려다 미국에게 적발이 되며 또다시 차관이 중단된 상황.
미국은 그 추종자가 혁명정부와 연관이 없는지 확실하게 밝혀지기 전까진 절대 차관을 제공할 수 없다며 진상 조사에 들어갔고, 당연히 차관 제공이 늦어지며 달러가 고갈되어 버렸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 주라우, 이제는 김씨 일가가 아니라 혁명정부의 세상인 걸.”
“알갔습네다.”
“한 회장에게 연락했네?”
당연히 박결이 말한 연락이라는 건 상환을 유예해 달라 부탁하는 것.
처음엔 상환 걱정으로 한숨을 푹푹 쉬던 박결의 혁명정부였지만, 그간 한지혁이 한국에서 보여 준 유화적인 스탠스와 만기가 지났음에도 동포라며 흔쾌히 기간을 연장해 주는 모습을 보며 점점 상환 유예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기는 했는데 한 회장에게서 답이 아직 오지 않았습네다.”
처음엔 직접 찾아가 읍소했던 이철진이 이제는 핸드폰으로 연락을 보낼 정도로 말이다.
“답이 오지 않았다고?”
“그게, 이번에 만기가 끝난 대출이 이미 한 차례 유예를 받은 적이 있던 거라서 말입네다. 그래서 고민 중인 게 아닐지…….”
계약 기간 6개월을 넘어 이제는 2개월 추가 유예를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던 혁명정부가 이제는 그 2개월 유예를 받고도 돈을 갚지 못하게 된 상황.
하지만 박결은 태연했다.
“뭐, 유예해 주지 않갔네?”
한국에서 법을 준수하며 일자리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평판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 온 한지혁인 만큼 한국 정부와 친화적인 혁명정부를 자극할 만한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
“앞으로 같이해야 할 일이 널렸는데 우리랑 얼굴 붉힐 일을 하갔어? 아무튼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김씨 추종자 놈들 모조리 잡아다 정치범 수용소에 넣어서…….”
그렇게 너무나 당연히 유예받을 걸로 생각하고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던 그때.
“바, 박결 동무!”
부하가 경악한 표정으로 집무실 안에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하, 한지혁이 양각도 경기장에 나타나 시설물들을 전부 점거하고 있습네다!”
그 말에 박결이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뭐, 뭐라고? 양각도 경기장?!”
양각도 경기장은 평양의 양각도에 위치한 경기장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하는 대규모 행사 때나 국제 대회 때 사용되는 주 경기장이었다.
동시에 만기가 된 이번 대출의 담보로 잡힌 물건이기도 했고.
박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당장 앞장서라우!”
* * *
“이야. 제법 그럴싸하네.”
양각도 경기장은 국가 행사가 있을 때 사용되는 일종의 과시용 시설이다 보니 외관도 깔끔하고 규모도 상당했다.
주 경기장 말고도 그 옆에 테니스나 축구 연습장들이 줄줄이 달려 있는 거대한 시설.
“이, 이건 북조선의 귀중한 재산…….”
나는 반항하는 양각도 경기장 관리자에게 말했다.
“그거야 돈을 갚았을 때 이야기고, 돈을 못 갚았으니 이제는 내 겁니다.”
이 양각도 경기장을 담보로 잡으며 내가 제공한 돈은 한국 돈으로 대략 4천억 원 정도.
고작 5천억으로 평양의 여의도라 불리는 양각도의 경기장을 통째로 가져오면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지.
그때 경기장에서 축구를 하던 한 무리 사람들이 스켈레톤에게 잡혀 끌려 나온다.
“이거 놓으라!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네!?”
북한에도 축구 리그가 있지만, 이 경기장은 국제경기 같은 대규모 경기를 위한 경기장이다 보니 연고로 하는 구단이 없는 상황.
그런 경기장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북한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나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자, 질서 정연하게 나가 주세요. 세론의 사유 시설을 함부로 사용하면 고발 조치 하겠습니다.”
그때 끌려오던 한 남자가 나를 보며 외쳤다.
“네가 이 해골들 주인이네?!”
“그런데요.”
“내래 혁명정부 일등 공신인 S급 각성자 동생이야! 박결 동무와도 안면이 있는 나를 평양 한복판에서 남조선 각성자가 이런 식으로 핍박을 해?! 죽고 싶네?”
“높은 분 가족이시구나. 그런데 저 모릅니까? 스켈레톤 하면 딱 하고 떠오르는 게 있을 텐데?”
“뭐?”
“세론 그룹. 한지혁. 평산군 개발.”
이 정도면 알아듣고 조용히 하겠지란 생각에 정체를 밝힌 나.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남자는 나를 전혀 모르는 눈초리였다.
“그거가 나랑 무슨 상관이네!?”
“……?”
“당장 이것 풀으라우! 그렇지 않으면 당장 형님에게 말해서 네놈 모가지를 따 버리갔어!”
“뭐야. 피래미잖아?”
혁명정부 고위급의 가족이라더니 S급 각성자 가족을 등에 엎고 날뛸 줄만 아는 떨거지였다.
그게 아니라면 혁명정부의 핵심 과업인 평산군과 그 사업을 진행 중인 세론의 이름을 듣고도 저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으니까.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쫓아내, 더 말하기도 귀찮으니까.”
그렇게 다시 스켈레톤들이 남자를 질질 끌고 가자 계속해서 발악하는 남자.
“당장 놓으라고 말하지……!”
그런데 그때, 이쪽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누군가가 뛰어온다.
그 사람은 바로 혁명정부 수장인 박결과 그의 최측근 이철진.
“박결 동무!”
그들의 등장에 남자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놈 좀 보시라요! 지금 이놈이 혁명정부의 자산을 자기 멋대로 점거하고……!”
그때 박결이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지?”
자신을 못 알아보는 듯하자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접네다, 저번 승전 축하식 때 만났던 김윤기 형님 동생!”
“아아. 김윤기 사촌 동생?”
심지어 친동생도 아니었어?
“기, 기억하셨다니 영광입네다! 아무튼 저 남조선 간나 새끼가 지금 우리를 이렇게 핍……!”
그렇게 남자가 내 욕을 하려던 그때, 박결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용.”
“예?”
“조용히 하라고 했다. 너 따위가 함부로 욕을 할 사람이 아니야.”
그러곤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박결.
“박결입네다. 그간 직접 찾아뵙고 싶었는데 워낙 공사가 다망해서.”
제법 예의가 바르네.
주제도 모르는 저놈과 다르게 말이지.
아무튼 예의 바르게 나오면 나도 예의를 차려 줘야지.
“이해합니다. 국가 지도자가 바쁜 건 당연하니까요.”
그 모습에 남자가 경악하며 말했다.
“바, 박결 동무가…….”
나는 그런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 쫓아내도 됩니까? 괜히 방해만 될 것 같은데.”
“당연합네다. 알아서 하시라요.”
박결과의 친분을 과시했지만, 박결의 묵인하에 힘없이 끌려가는 남자.
그렇게 방해꾼을 치우자 박결이 말했다.
“…그나저나 너무 성급하신 것 아닙네까? 충분히 말로도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말로 해결한다는 건 결국 또 유예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이미 약속도 어기고 유예도 한 번 해 드렸는데, 또 유예를 하라는 건 저한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라는 뜻인데요. 저 사업하는 놈입니다. 손해 보고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경기장을 점거한 겁네까?”
“예. 채권자가 돈을 못 갚았으니 담보를 가져가는 건 당연한 거니까요.”
“후우.”
한 차례 한숨을 내쉰 박결이 말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겁네까?”
“자꾸 같은 말 하게 하시네요. 돈만 제때 갚았으면 제가 이렇게 했을까요.”
“돈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만 이야기하죠. 아무튼 저는 담보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고, 그에 따라 이 경기장은 이제 제 겁니다.”
“도대체 이 경기장으로 뭘 하려는 겁네까?”
“할 거야 많죠, 세론 그룹이 만드는 상품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여기에 프로티지 명품 매장 하나 내고 SR 전자랑 세론 신발 상품 들여놓고. 아! 그리고 스켈레톤 리그도 도입하려고요.”
“스, 스켈레톤 리그?”
스켈레톤 리그와 세론 랜드를 앞세워 문화 공격으로 거부감을 낮추고 전방위적으로 모든 사업을 도입하는 전형적인 방식.
“일단은 한국 팀들 경기를 이쪽에서 열어서 북한 주민에게 보여 준 다음 장기적으로 북한 주민 출신 선수랑 팀도 만들 생각입니다.”
그렇게 내 계획을 밝히자 침묵하던 박결이 말했다.
“한국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네다.”
내가 한국 국민들에게 극도로 온화한 스탠스를 취하는 걸 알기에 북한 주민이 아니라 한국 국민을 언급하는 박결.
물론 상관없다.
“강제로 재산권 발동해서?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미 그전부터 뉴스 기사로 북한에 돈을 빌려준 세론 그룹이 돈을 떼어먹힐 위기다!
이런 식으로 언플을 모두 해 둔 상황이었으니까.
좋은 마음으로 돈을 빌려주고 유예까지 해 줬는데, 그럼에도 도저히 어쩔 방법이 없어 재산권 행사를 하게 되었다란 스토리가 이미 완성된 상태란 말이지.
“선수들의 북조선 입국과 상품 수입 모두 내 허가가 있어야지만 가능할 텐데요.”
“허가를 안 해 주시면 저도 어쩔 수 없죠. 그런데 그럼 저도 좀 극단적인 방법을 쓸 생각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극단적인 방법?”
“마침 부지도 넓고 평양을 관통하는 대동강에 있는 섬이니 리버 뷰가 딱이네. 싹 밀어 버리고 고급 아파트 지어 버리죠, 뭐.”
내 말에 박결이 창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 경기장은 국가 행사를 주관하는 경기장입네다! 평양 주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그거야 찍어 누르면 되죠. 게다가 지금 이것만 걱정하고 있으실 때가 아닐 텐데요.”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담보로 잡힌 물건이 한둘이 아닌데 그걸 줄줄이 재산권 행사 하면 볼만할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니 저라면 이걸 걱정할 시간에 다른 담보라도 지킬 고민을 할 것 같은데.”
* * *
한번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법.
양각도 경기장을 시작으로 담보로 잡은 부동산들을 줄줄이 압류해 온다.
압류 방법은 간단했다.
스켈레톤 배치하고 이제 내 거다 선포하면 끝.
당연히 갑작스러운 소유권 이전에 그곳에서 살고 있거나 그와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는 평양 주민들이 반발하였으나, 그런 반발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재산권을 행사한 곳엔 오직 전투용 스켈레톤만 배치되어 있어 그들이 직접 항의를 할 수 있는 소통 창구 자체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되자 평양 주민들은 그렇지 않아도 맘에 들지 않았던 혁명정부를 성토하기 시작했고, 그런 주민들의 반발은 고스란히 혁명정부에게 압력으로 작용한다.
아무튼 이렇게 본격적으로 평양 부동산 몰수에 들어가고 평양 주민들의 반발을 이용해 혁명정부를 압박한 다음 그 부동산을 이용해 내 마음대로 사업을 진행하려하던 그때, 이진영 청장이 나를 찾아왔다.
“평양 부동산에 재산권을 행사하고 계시다고요.”
“혁명정부가 중재라도 해 달랍니까?”
“맞습니다. 정식으로 요청이 왔습니다.”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산권 행사는 세론 그룹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정부가 뭐라고 하든 간에 저는 제 돈을 지켜야겠습니다.”
그렇게 미리 엄포를 놓는데 이진영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응?”
“요청이 온 건 사실이지만 한 회장님을 말릴 생각으로 온 게 아닙니다.”
오호?
말릴 생각이 없다고?
“애초에 한 회장님께 북한에 진출해 달라 부탁한 건 혁명정부가 한 회장님과 세론의 재산을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히 적중해 혁명정부가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진영이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이 혁명정부를 지원하는 건 어떻게든 이 기회에 코를 꿰어 두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북한 최대 도시인 평양 한복판에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세론의 것들이 들어선다? 이거야말로 저희 정부가 가장 원하는 바입니다.”
“만약 그러다 평양 주민들 반발로 혁명정부가 무너지면 큰일 아닙니까?”
그러자 이진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걸 두고 볼 한 회장님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렇지.
혁명정부가 있어야 북한이 개혁 개방을 할 거고, 동시에 혁명정부로부터 넘겨받은 권리가 지켜질 테니까.
즉, 나는 내 재산이 북한에 많으면 많을수록 혁명정부가 존립되길 원하게 되고, 그렇게 나와 혁명정부가 상호 의존을 하면 할수록 한국 정부가 북한에 채운 세론이란 목줄이 더욱 견고해진다 이거지?
나는 이진영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거, 오늘은 말이 참 잘 통하는 것 같네요. 그럼 앞으로 돈 더 빌려줘도 되는 겁니까?”
“오히려 더 많이 빌려주고 더 많이 가져오길 희망합니다.”
“미국은요?”
“미국도 같은 생각입니다.”
오케이.
완벽하네.
“그럼 그것도 가능합니까? 제가 요청하면 차관 제공을 늦춘다든지 그런 거요.”
“물론 가능합니다. 애초에 그걸 제안하려고 온 거니까요.”
세론이 혁명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담보를 잡는다.
그런데 그때 그렇지 않아도 돈이 부족해 허덕이는 혁명정부를 상대로 한국과 미국이 차관으로 장난질을 해서 돈을 갚지 못하도록 적극 유도 하면 상황은 더욱 쉬워지지.
“정확히 한국 정부가 원하는 게 뭡니까?”
“한국 기업의 주도로 진행되는 지금보다 훨씬 급진적인 개혁 개방. 그리고 그로 인한 북한의 자본화입니다.”
중국이 개혁 개방을 하며 서방 국가들과 돈으로 엮였던 것처럼 북한도 똑같이 하겠다는 거지?
중국이야 워낙 거대하게 성장해서 그렇게 엮인 것이 이제는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북한은 성장 한계가 뚜렷하기에 종속화가 가능하니까.
“접수했습니다.”
나는 이진영과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눈치 안 보고 팍팍 움직일 테니 서포트 좀 잘 부탁드립니다.”
* * *
“제 요구 조건은 간단합니다. 제가 압류한 것들에 대한 특별 허가를 혁명정부가 해 주는 것.”
나는 테이블에 올려진 지도에서 양각도 경기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저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세론 상품 입점과 스켈레톤 리그 도입을 허가해 주시죠. 그럼 저도 밀어 버리지 않겠습니다. 추가로 북한에 국제 행사가 있으면 빌려드릴 수도 있고요. 솔직히 나쁜 제안은 아니지 않습니까? 옛날 로마가 콜로세움을 열어서 시민들의 불만을 스포츠로 달랬던 것처럼, 스켈레톤 리그가 도입되면 평양 주민들이 처음엔 거부감을 가져도 분명 재미있어할 테니까.”
내 말에 혁명정부 대표로 온 이철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말씀대로만 된다면 좋겠지만…….”
“그다음은 이겁니다.”
나는 이번엔 압류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입지가 좋아서 재건축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고급 아파트 제작은 세론 건설 경험이 부족해 다른 회사에 하청 줘서 만들려고요. 아무튼 그렇게 사업이 시작되면 한국의 분양 시스템을 도입해 북한 주민들에게 팔 생각입니다.”
한국의 분양 시스템은 건물이 완성되기도 전에 미리 분양권을 팔아 치우는 방식.
당연히 자금을 빨리 수혈할 수 있으니 딱이었다.
“북한은 부동산 거래가 불법입네다!”
“원래도 알음알음해 왔었잖아요. 솔직히 불법으로 하자면 못 할 것 없는데 법 지키는 걸 좋아해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차피 개혁 개방 하는 거, 특구만 열어 줄 게 아니라 제 부동산들에도 예외 조항 달아 주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게다가 지금 살고 있는 주민들이 반발할 것 아닙네까.”
“허가만 해 주신다면 그건 제가 큰 트러블 없이 처리해 드리죠. 주민들에게 입주권 한 장씩 나눠 주고 부족한 돈은 제가 빌려준다 하면 주민들 입장에서는 한국식 최고급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건데,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하지만 만약 이것도 거절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주민들 모두 쫓아내고 일단 재건축한 다음 암시장에 파는 수밖에.”
나를 무력적으로 제지할 방법이 없는 혁명정부 입장에서 사실상 선택지는 없었다.
물론 이렇게 채찍질만 하면 안 되니 당근도 제시해야지.
“대신 제가 혁명정부에게 기똥찬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북한은 석유 만성 부족이죠? 개혁 개방 했다지만 사 오자니 달러가 부족하고, 신용도가 낮아 한국과 미국 차관 말고는 돈 빌릴 곳도 없고. 그런데 마침 세론이 정유 사업을 하고 있네요? 세론 정유 석유를 외상으로 팔아 드리죠.”
그 말에 이철진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외상으로 말입네까? 석유를?”
“예.”
미국과 한국에게서 받은 달러 차관을 다른 곳에 사용해 온 혁명정부.
당연히 달러 소비량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에너지와 식료품같이 국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소비재였다.
그런데 그중 가장 비중이 높은 석유를 외상으로 제공해 준다니 눈이 안 돌아가고 배기겠어?
“어디 그뿐인가요? 그것 말고도 저 중앙아프리카의 엄청난 곡창 지대에서 대규모 농사 짓고 있거든요? 제가 올해 식량 생산을 늘리라고 지시해 둬서 식량 생산량이 폭증했는데, 거기서 생산한 식량도 북한에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이것도 외상.”
가장 필요한 걸 전부 외상으로 제공한다니.
외화가 없는 혁명정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최고의 당근이었다.
물론.
“아. 당연히 외상값에 대한 담보는 있어야죠, 아무 보장도 없이 외상을 드릴 수는 없으니까.”
자본주의식 쓴맛이 가미된 당근이지만 말이다.
“다, 담보.”
이미 담보로 설정한 평양의 부동산을 줄줄이 빼앗긴 경험 때문인지 담보라는 말에 치를 떠는 이철진.
하지만 그래 봤자 소용없다.
북한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식량과 석유는 결국 외화를 들여 수입해 와야 되는데, 신용도가 제로인 북한은 미국과 한국의 차관을 제외하면 나 말고 돈을 빌려줄 곳이 단 한 곳도 없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에너지와 식량이 원활하게 수급되면 주민들 생활이 개선되며 혁명정부 기반도 튼튼해질 거고 내수 경기도 살아날 것 아닙니까. 그럼 세수도 늘어날 거니 그렇게 수입이 늘어나면 돈 갚기도 더 수월할 겁니다.”
“으음…….”
너무 데어서 그런가, 혁명정부가 거절할 수 없는 극강의 제안에도 망설이는 이철진.
나는 그런 이철진에게 말했다.
“에이. 인심 썼다. 내가 진짜 한민족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라. 외상값의 절반은 북한 돈으로 받겠습니다.”
“예?!”
지금 혁명정부의 문제는 수입 대금을 지불할 외화가 부족하다는 것.
그런데 무려 석유와 식량 수입에 자국 화폐를 받아 준다니 이걸 어떻게 거절하나.
“세계 어딜 가도 이 정도 제안을 해 주는 곳은 없습니다. 한국이나 미국도 이건 못 해요. 오직 나만 가능한 제안이라 이거죠.”
북한은 외화 아낄 수 있어서 좋고, 나도 어차피 북한 내에서 사업을 하며 북한 돈이 필요하기에 윈윈이지.
물론 이 달콤한 제안 때문에 혁명정부의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쌓여 가겠지만, 원래 부채 없는 나라는 없잖아?
빚내서 경제개발 하고, 그렇게 개발한 경제로 나라가 더욱 부강해지는 게 너무나 당연한 루트니까.
다만 그 빚을 세론 그룹이라는 사기업 하나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동시에 혁명정부는 세론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게 다른 점이지만.
“제가 압류한 부동산에 특별 조항 달아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만 해 주면 국가 운영에 필수인 석유와 식량의 무제한 외상 조달인데, 심지어 대금의 절반을 북한 돈으로 받는다? 캬. 북한 개발에 이보다 좋은 호재가 또 어딨습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철진에게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빨리 도장 찍으시죠, 제 마음이 바뀌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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