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Disaster-Class Necromancer Retires RAW novel - Chapter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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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공식 기자회견을 연 나는 테이블 위의 스펙터, 아니 분노의 정령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바로 분노의 정령입니다. 그리고 이 분노의 정령이 분노 투구 안에 들어가 학생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분노 학습법의 핵심입니다.”
그렇게 내가 분노의 정령에 대해 설명하는 중에도 분노의 정령은 끊임없이 테이블을 통통 튀어 다니거나 갸우뚱하는 등 귀여운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오오!”
“귀여워!”
그래.
그 반응이지.
“이 분노의 정령은 제 소환수 중 하나로,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대상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각성자지만 그 이전에 사업가입니다. 그런데 비즈니스 파트너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 저한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쓸모가 없다 생각해 내버려 뒀던 겁니다. 그러다 이번 아이디어가 떠올라 추진한 게 바로 세론 에듀이고요.”
나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간에서 최면술이니 뭐니 떠들며 사람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종할지도 모른다 우려들을 하는데, 이놈은 최면술이랑 비슷할지는 몰라도 완전히 다른 놈입니다. 최면술은 사람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지만 이놈은 드는 것밖에 못 하니까요. 그것도 분노 한정으로.”
그러자 한 기자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분노를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분노한 사람을 진정시킬 수는 없다는 말입니까?”
“정답입니다. 한마디로 우려하는 것처럼 제가 마음대로 사람을 조종할 수는 없다 이겁니다.”
분노 유발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걸로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걸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게 바로 이번 기자회견의 목적.
“만약 정말로 조종이 가능했다면 굳이 외적으로 보기 좋지 않은 분노라는 방법을 들고 올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냥 최면술로 홀려서 열심히 공부해라 이렇게 암시하면 끝인데.”
그때 분노의 정령이 폴짝 뛰어오르더니 한 기자의 머리 위에 올라선다.
그러자 기자가 멍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건 너무 귀여운데?”
하지만 분노의 정령을 만지려던 기자의 손이 분노의 정령을 스쳐 지나간다.
“분노의 정령은 실체가 없습니다. 당연히 만질 수도 없죠. 게다가 이렇게 돌발 행동도 자주 하고요. 제가 굳이 투구를 매개체로 써서 그 안에 넣어 두고 사용하게 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돌아와.”
그러자 다시 점프해 테이블에 착지한 분노의 정령.
물론 이것도 전부 연출이었다.
“아무튼 분노의 정령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거랑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물론 이걸로 적대적인 사람의 분노를 증폭시켜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발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제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최강의 각성자이자 재벌인 나 아닌가.
“힘이면 힘, 돈이면 돈, 다른 수단과 방법이 넘쳐 나는데 최면술이라 손가락질당할 걸 감수해 가며 굳이? 아시겠지만 전 욕먹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것 안 따지는 사람이었으면 그냥 스켈레톤 무차별로 뿌려서 일자리 전부 독차지해 돈을 빨아들였겠죠.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진짜 그 정도로 전능한 최면술 능력자였으면 사업은 뭐 하러 합니까, 전부 다 최면술을 걸어 버리면 끝인데.”
내 말에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래.”
“최면술을 거니 마니 할 시간에 그냥 박살 내 버리는 게 빠르지.”
얼추 설득이 된 듯 보이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튼 이 분노의 정령은 앞으로도 어디까지나 공부 보조용으로만 활용할 겁니다. 이건 스켈레톤과 다르게 일자리 침해도 없으니까요.”
지금이야 마치 모든 걸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학원들이 반발하지만, 애초에 암기를 주력으로 내세우는 학원 따위가 세상에 어딨어?
암기가 필요하면 숙제로 내 주지, 그걸 학원 정규 수업 시간에 외우라 시키면 학부모들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을걸?
한마디로 기존 학원과 세론 에듀는 충분히 공존이 가능하다는 거다.
학원은 이해력 위주로 나가고 세론 에듀는 그간 집에서 외우던 암기 부분을 분노 학습법으로 강제 주입 하고.
여기에 세론 에듀는 앞으로 수많은 강사들이 필요하니 강사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없던 일자리가 늘어난 셈이나 다름없지.
“물론 저는 늘 그렇듯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습니다. 제 설명을 듣고도 반대하신다면 세론 에듀 전면 철수도 고려하겠습니다.”
자.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이제 알아서 하라고.
아.
그 전에 마케팅 마무리는 해야지.
나는 분노의 정령을 내 손바닥 위에 올리며 말했다.
“아무튼 제 소환수인 분노의 정령, 절대 나쁜 놈 아니니 귀엽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분노의 정령을 공개하며 연 기자회견.
이 기자회견의 후폭풍은 아주 거셌다.
특히 분노의 정령에 대해서 말이다.
김덕배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분노의 정령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귀여운 척 연출을 한 덕분일까, 직접 분노의 정령을 보고 싶다며 난리다.
“역시 외모가 중요하구나.”
사기 덩어리 유령 언데드가 외모를 성형하고 귀여운 척하니 순식간에 인기 캐릭터가 되어 버린다.
“외모도 외모지만 직접 볼 수 있는 정령이란 타이틀에 더욱 환호하는 것 같습니다.”
“정령 소환 하는 각성자가 없었나요?”
“물론 있기는 하지만 직접 볼 기회가 없지 않습니까, 소환계 각성자 자체가 워낙 소수이니.”
“하긴.”
“아무튼 잠깐이라도 좋으니 투구 사용 전에 분노의 정령을 나오게 해 주면 안 되냐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면술 걱정은 안 된답니까?”
“분노의 정령이 한 일이라 마케팅을 하니 분노조차도 귀엽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귀여운 분노의 정령이 들어 있는 투구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니 순식간에 논란이 사그라든다.
귀여운 정령이 날 화나게 했던 거였어? 라며 오히려 기특해하고 귀여워하는 사람들.
“재미있네. 그 정도야 해 주죠, 뭐.”
투구를 착용하면 분노의 정령이 튀어나와 착용자 얼굴을 확인한 다음 투구로 돌아가는 연출이면 충분하겠지?
“아. 그리고 분노의 정령 팬클럽이 생기며 2차 창작물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스펙터 출세했네.
이런 대접을 받는 날이 올 줄이야.
그나저나 2차 창작물이라.
그건 캐릭터성이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부회장님, 분노의 정령 상표 출원 하고 본격적으로 한번 키워 보죠?”
“키운다고요?”
“잘 만든 캐릭터 하나 열 회사 안 부럽다잖아요.”
IP가 가진 힘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니까.
마우스 랜드의 마우스가 그러하고 수십 년째 여아 문구 시장을 굳건히 장악하고 있는 일본의 여자 고양이부터 빨간 모자 배관공 게임 등이 그걸 증명한다.
캐릭터 하나 잘 만들어서 수십 년 동안 우려먹고 또 우려먹어도 여전히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회사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세론 랜드에 분노의 정령 관련 놀이 시설 만들고, 세론 신발에선 분노의 정령 프린팅된 옷이랑 신발들 생산하세요.”
그런데 심지어 분노의 정령은 현실에 실존하고 직접 볼 수도 있으니 그 파급력은 더욱 클 수밖에.
그렇게 분노의 정령을 캐릭터화해 인지도가 쌓이면 돈도 벌고 논란도 잠재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혹시 압니까? 분노의 정령이 우리 세론 그룹 마스코트가 될지. 한번 밀어 보자고요.”
* * *
분노의 정령 놀이 시설이 나오고 분노의 정령이 프린팅된 각종 굿즈 제품들이 쏟아진다.
심지어 언제든 세론 에듀에 등록만 하면 직접 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분노의 정령 인기.
그렇게 분노의 정령이 인기를 얻자 세론 에듀의 학생들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덕분에 세론 에듀의 첫 강사인 임효일은 분노 1티어 강사라 불리며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제2의 임효일을 노리는 강사들이 앞다퉈 세론 에듀의 문을 두드린다.
물론 여전히 교육적으로 좋지 못한 모습이라며 거부하는 사람이 제법 있지만, 애초에 모든 사람을 전부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무튼 그렇게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세론 에듀.
“이제 세론 에듀는 알아서 잘 클 테니 직원들에게 맡기면 되고……. 이제 뭐 하지?”
나는 회계장부를 보며 말했다.
“돈은 제법 쌓였는데.”
정제 능력을 끌어올린 세론 정유에서 정제된 원유를 팔며 막대한 돈을 버는 데다, 스켈레톤 장기 렌트 등 다른 사업까지 활기를 띠며 통장 잔고가 순식간에 가득가득 채워져 간다.
여기에 세론 에듀도 본격적으로 가동되었으니 돈은 앞으로 더욱 빠르게 쌓여 나갈 터.
“언데드 군단 재건에 좀 더 투자할까? 아니면 신규 사업?”
쌓인 자금의 사용처를 두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말했다.
“그래. 그냥 언데드 군단에 투자하자.”
여유 자금이 있을 때 미리미리 만들어 둬야지.
돈이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또 벌릴 테니까.
“고위 몬스터 사체 모조리 사 모아야겠다.”
미트 골렘은 차근차근 완성되어 가고 있으니 군단의 병사와 최고위급 언데드 사이를 이어 줄 허리도 만들어야지.
그렇게 계획을 짜 나가던 나는 흠칫하며 말했다.
“…나 여유 생기니까 바로 다음 일 할 걸 찾고 있네?”
나 진짜 완전히 일 중독 다 됐구나.
뭔가 갑자기 허무해진다.
“돈이 이렇게 많은데 쉴 시간이 없구나.”
사업할 때는 사업하느라 바쁘고, 사업이 좀 한가하면 언데드 만드느라 바쁘고.
그간 언데드 군단을 재건하면서도 틈틈이 은퇴를 위해 전국 이곳저곳에 별장을 매입해 두었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 가 본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하아.”
원래 계획했던 은퇴 자금을 아득히 넘어설 만큼 돈을 벌었지만 은퇴는 아직도 요원한 상황.
그렇게 잠시 내 처지를 떠올리고 한숨을 쉰 나는 말했다.
“어쩌겠어, 내가 벌인 일이니 내가 수습해야지. 그래, 다시 마음 다잡고 움직이자. 아무튼 이 자금은 언데드 군단 재건에…….”
그런데 그때.
“회, 회장님!”
김덕배가 창백해진 표정으로 회장실에 들이닥치며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요?”
잠시도 쉴 틈이 없구만.
“왜요. 뭐, 사고라도 터졌습니까?”
“쿠,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한국에 쿠데타가 터졌을 리는 없고.
“설마 베네수엘라?”
“아, 아닙니다!”
“아니면 동남아?”
사업의 기반이었던 세론 신발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줬던 동남아의 쿠데타.
“그쪽이 아닙니다! 위쪽입니다!”
“위쪽? 중국? 러시아? 어? 잠깐만.”
위쪽이라면…….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북한?!”
* * *
북한에서 터진 각성자들의 쿠데타.
SS급 각성자가 은밀히 세력을 끌어모아 조선혁명군이라 명명한 뒤 평양의 주석궁을 기습한 거다.
하지만 그 기습에서 간신히 김씨 일가는 목숨을 건졌고, 본격적으로 내전에 들어간 북한.
당연히 세계 모든 나라는 그런 북한의 쿠데타에 초유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러시아와 중국의 경제가 개방되며 북한은 사실상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진성 공산주의 국가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이어진 치열한 내전.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 조선혁명군은 공식 성명을 통해 새로운 정부 설립을 공표하였으며…….
조선혁명군의 승리였다.
김씨 일가는 사로잡혀 즉결 처형 당했고, 그들의 측근 역시 모조리 숙청되며 순식간에 몰락해 버린 북한 공산당.
“하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버틴 게 용했지.”
공산주의의 이념은 능력과 상관없이 모두가 똑같이 대우받는 것.
그런데 지금의 지구는 각성자라는, 확실하게 일반인과 차원이 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이 즐비한 세상 아닌가.
물론 북한도 바보는 아니라 각성자들을 특별 대우 해 주긴 했지만, 그걸로 만족할 각성자들이 아니지.
능력대로 살아가는 민주주의야말로 각성자가 활개 치기 가장 좋은 시스템이니까.
-…대변인은 또한 정식 정부가 들어서면 국교 정상화와 경제 개방을 통해 정상 국가화 할 것이라 말하며…….
“중국처럼 개혁 개방을 하겠다?”
비록 각성자들에 의한 변화기는 해도 분명 긍정적이다.
북한은 경제 발전을 할 수 있으니 좋고 한국은 북한이란 불안 요소가 없어지니 좋고.
나 역시 사업하는 입장에서 잊을 만하면 시비를 걸며 변수를 창출하는 공산당 정부가 사라지면 불확실성이 제거되니 좋지.
“나중에 북한에도 에너지 매입 진출해서 싸게 사다 쓰면 되겠네.”
그렇게 북한 정권 교체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진영 청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오! 청장님.”
나와 정부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관리청 이진영 청장의 연락.
-잘 계셨습니까, 회장님.
“저야 잘 있었죠. 바쁘시겠어요? 북한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신지요.
음?
북한 때문에 연락을 줬다고?
“어… 가능은 한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부탁을 좀 드려야 하는데 통화로 하기가 좀 그래서 그럽니다. 시간만 내주시면 제가 회장님 쪽으로 가겠습니다.
부탁이라……. 뭔지 짐작이 안 가는데?
일단 만나서 이야기나 들어 보자.
“알겠습니다. 마침 시간이 비네요. 지금 오시죠.”
* * *
“사실 언론에 발표되기 전부터 저희 정부와 조선혁명군은 계속 긴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요?”
“예. 혁명군이 원하는 건 중국처럼 개혁 개방을 하는 겁니다. 그걸 위해서 핵무기도 포기할 생각이고요.”
“오오! 핵무기 포기. 하긴, 그게 전제돼야 미국이 제재를 풀어 줄 테니까 그럴 만하네요.”
“맞습니다. 그 대가로 혁명군은 북한에 대한 모든 제재 해제와 국가 개발을 위한 차관 제공 그리고 해외 기업의 북한 진출을 통한 외자 유치를 원하고 있고요.”
딱 중국의 경제 발전 레퍼토리 그대로네.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려 인프라를 확충한 뒤 저렴한 인건비와 노동력을 미끼로 해외 기업을 유치하고, 그걸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그럼 다 해결인 것 아닙니까? 이미 김씨 일가는 전부 숙청되었고 미국과 북한 모두 의견이 일치하니 진행만 하면 되는구만.”
“예. 의견도 일치하고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 모두 적극적이니 정부 차원에선 아무 문제도 없지요. 문제는 시간입니다. 분명 북한의 노동력은 매우 저렴합니다. 노동자 한 명당 세금을 모두 포함해도 130달러, 한국 돈 20만 원이 안 되니까요. 아마 시간만 충분하다면 기업들을 유치해 성과를 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래서는 너무 늦습니다.”
이진영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워낙 오랜 기간 독재를 하다 보니 김씨 일가는 숙청됐지만 그들의 잔재가 사방에 남아 있고, 각성자를 중심으로 한 혁명정부다 보니 북한 주민들의 반응도 애매모호합니다.”
한마디로 쿠데타를 성공하기는 했지만 아직 불안하다 이거지?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건 가시적인 확실한 성과입니다. 혁명정부의 경제적 성과가 드높아져야 북한 주민들에게 지지를 받아 지금 정권이 더욱 안정적으로 굴러갈 것이고, 동시에 북한이 한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면 될수록 북한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 역시 커질 테니까요.”
“그럼 기업들이 진출하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지금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을 대량으로 활용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만한 사업은 결국 큰 기술이 필요 없는 섬유 같은 경공업인데, 한국의 경공업 분야는 지리멸렬한 지 오래니까요.”
“어?”
잠깐만.
경공업?
“게다가 북한에 대뜸 공장을 세워 직원을 추가 모집 했다고 발주량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당연히 기존 발주량을 신규로 설립할 북한 공장과 나눠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한국 공장 직원들 일감이 줄어드니 함부로 그렇게 진행할 수도 없고요. 당연히 경공업이 아니라 그 어떤 사업이든 간에 일반 기업은 북한 진출에 속도를 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진영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론은 다릅니다. 경공업 기반으로 성장하였으며 이미 세계 최대의 제조사로 자리 잡았…….”
“잠깐, 잠깐.”
나는 이진영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지금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들어 봐요. 그러니까, 북한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대규모로 공급할 노동 집약형 사업이 필요하다 이겁니까?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그 정도 규모의 사업을 하는 건 세론뿐이고?”
“맞습니다.”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설마 나보고 세론 신발을 북한에 진출시켜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 쓰라는 소립니까? 스켈레톤 대신?”
이진영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맞습니다.”
“내가 왜요, 아무리 북한 노동력이 저렴해도 스켈레톤에 비할 바는 아닌데. 게다가 스켈레톤이 24시간 주말 없이 해 오던 작업량을 사람 직원으로 대체하려면 몇 배나 되는 인원이 필요한데, 그 많은 사람을 내가 왜 떠안아야… 아.”
이진영이 굳이 날 찾아온 이유를 이제 이해했다.
“…스켈레톤 한 개가 할 작업을 북한 노동자들에게 나눠서 공급해라?”
스켈레톤은 24시간 주말도 없이 일을 한다.
이걸 하루 8시간 근무하는 사람으로 대체해서 똑같은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대략 5배에 달하는 인원이 필요하지.
현재 세론 신발이 부리고 있는 스켈레톤의 수는 무려 4만 개.
그러니 산술적으로 이 스켈레톤을 사람 직원으로 대체하면 무려 20만 개의 일자리가 튀어나온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일반 직원과 다르게 스켈레톤은 해고에서도 자유로우니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공장을 옮기고 새로운 직원에게 물량을 몰아줄 수 있으니까.
즉, 혁명정부의 안정을 위해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한 한국 정부 입장에서 세론 신발만큼 빠르고 대규모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기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이진영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한국의 아킬레스건인 북한에 친한국 정부를 세우고, 대륙과 육로로 연결될 수 있으며, 또한 한반도 비핵화를 이룰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전부 다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딱 1만 개만이라도 부탁드립니다.”
“스켈레톤 1만 개 일거리를 북한 노동자 5만 명에게 나눠 달라?”
“예.”
“나는 그 대신 인건비랑 각종 부대 비용 손해 보고?”
“…각종 대출이랑 세금 감면 해택을 드릴 생각입니다.”
“제가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진영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면목 없습니다. 하지만 회장님 말고는 부탁할 곳이 없습니다. 가장 대규모로 고용 인원을 창출할 수 있고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세론뿐이니까요.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한번만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