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terminally ill genius survives RAW novel - Chapter 166
◈ 구현 (2)
“무슨 짓입니까?”
마광익주로서 무림맹주에게 처음 뱉은 말이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단명의 체질을 알아본 듯한데, 거기에 대한 경악과 별개로 정연신은 포옹 같은 걸 상상도 못 해 보고 살았다.
난산으로 별세한 어머니 때문이다. 스승인 입황성주가 보듬어준다면 또 모르겠다. 아니, 그조차도 아주 부끄러울 듯했다.
‘성품이 괴이하지 않은 절세고수는 성주님뿐일까.’
검성의 지위와 배분이 높다는 게 불쾌감을 감출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정연신의 미간이 살짝 모였다.
“이런.”
검성 현소백의 입매가 살짝 내려갔다.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비쳤다.
그야말로 아차 한 표정인데, 품행의 어디를 놓고 봐도 권위 따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엿한 입황성의 대주에게 무례를 범했군. 해량해 주게. 내 얼굴 거죽이 이렇다 해도 다 늙은 노인네라네. 젊은 날에는 제법 재지가 번뜩였는데, 요즘은 예전 같지가 않아. 없던 손주를 본 것마냥 애달팠네. 자네가 쌓은 무위의 적공이 놀라워서 더욱 그러했지.”
슬쩍 웃는 모습이 자못 익살스럽다. 괴팍한 달인의 면모가 보였다.
유아독존.
정연신은 검성의 기질을 직감했다.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자였다. 세대를 풍미한다는 절세고수다.
정연신의 경지와 체질을 깊숙이 통찰하고 연민을 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몹시 자유롭다. 무림맹주가 아니라 검성이란 별호가 더 어울렸다.
현소백이 턱을 쓰다듬었다.
“어디 보자, 해가 바뀌면 고희로군. 노부의 세월도 참으로 두꺼워졌어.”
“고희……?”
정연신은 무심코 되뇌었다. 두보가 지은 곡강시(曲江詩)에서 비롯된 말이다.
칠십 해의 삶이 드물다는 의미. 일흔 살을 가리켰다. 천하에 명족이 내려온 이후로는 흔히 쓰이지 않는 단어였다.
중요한 건 달리 있다. 검성의 나이는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마광익주로서도 아직 접하지 못한 정보였다. 지금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소년은 의구심을 숨기지 않았다.
“명족 혼혈이십니까?”
“반로환동을 어중간하게 해 버렸다네.”
고매한 노인이 잘생긴 중년의 얼굴로 웃었다.
“공력이 몸을 이끄는 대로 놔두었다간 수십 년 연마한 근력을 잃겠다 싶었지. 낭인으로서 그쯤 살면 도처에 널린 게 원수라네. 생존이 걸린 문제란 말일세.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하려거든 적당히 젊어져야 했네. 자네 쪽의 입황신창은 굳이 이러지 않은 듯한데, 명가 특유의 탄탄한 공력 덕분이겠지. 부러운 일이야.”
늙수레한 말투로 별세계의 이야기를 논한다. 언행에서 초월적인 내공 화후가 느껴졌다.
주책스러워 보이는 일면에 극강을 추구하는 검객의 모습이 있다.
완전히 무학에 미친 달인이었다.
“자네 정도의 자질은 천하에 없을 테지. 허나, 그만한 경지에 이르는 데 얼마나 큰 노력과 수라장이 있었나? 천형(天刑:하늘이 내린 벌)을 뒤로하고 묵묵히 정진하는 후배가 몹시 기껍고 정이 가더군. 그래서 주책을 부려 봤네. 맹의 혈기방장한 검 자루 백 개를 모은다 한들 자네 하나만 못할 터인데, 두려움을 뒤로하고 쌓은 무위가 너무도 출중하지 않은가?”
무림맹회의 지고한 절대자가 말했다. 가만히 서 있는 정연신의 존재 자체가 손주의 재롱으로 다가온다는 표정이다.
괴이하고 소름이 끼쳤다. 검으로 하늘을 넘본다는 고수는 세력의 역학 구도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무(武).
정연신의 체질과 무공만을 본다. 입황성과 무림맹의 관계가 안중에 없는 듯했다.
검성이기에 보일 수 있는 호감이다. 십삼천의 주력 고수들 속에서 십삼천주의 목을 베어 민초들을 지킨 대협객.
다른 말로 초월자였다. 정연신을 온전히 담은 눈동자에서 끊임없이 스치는 광망이 있었다.
“걸음 균형이 몹시 특이하군. 웬만큼 고절한 보법도 무게중심을 앞으로 두기 마련인데, 자네는 전방위로 분산되어 있어. 천부적인 균형감 덕분이겠지.”
“…….”
“방금 보인 신법도 비범했네. 전신 발경은 나도 구상만 해봤지, 감히 시도할 엄두는 내지 못했거든. 미세 근육으로 경파를 일으키는 게 가당키나 한가 말이야. 노부가 보기에는 자네의 육체 덕분인 듯싶군. 잘 짜인 정도를 넘어섰어. 몸 자체가 하나의 신공이야. 연성법이 몹시 궁금하구먼.”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겠다는 듯이 입맛을 다신다. 정연신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노부의 견식이 제법 풍부한 편인데도 들은 적 없는 무학들이야. 당연히 자네가 창안했겠지? 소림의 동자승으로 거두어졌다면 칠십이절예가 두세 배로 늘어났을 터. 방장이 자네를 보면 땅을 치고 아쉬워하겠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말이 무시무시했다. 흥미와 예기를 동시에 띠고 있었다.
입황성 율령대보다 날카로운 식견으로 정연신을 통찰한다. 천하에 몇 없을 달인의 눈썰미였다.
‘과묵하지 않은 절세고수가 혈염교주 말고 또 있었구나.’
소년이 묵묵히 생각하는 와중이었다.
선룡 제갈현은 맹주의 이 같은 모습을 처음 봤다.
수뇌 회합에서 사람 좋은 얼굴로 고개만 끄덕여 주던 호인이 아니다.
저토록 빛나는 안광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직무에는 무관심하시더니.’
맹회의 젊은 무인들이 본다면 깊은 박탈감을 느끼겠다 싶을 정도였다.
당장 자신의 마음도 묘하게 허전해졌다. 기껏 무학의 담론에 관하여 입을 연 대상이 입황성의 고수라니.
앞서 연회장의 일을 전해 들었던 제갈현은 맹주와 마광익주의 만남을 함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악 매의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마광익주와의 갈등을 풀 수 있을까.’
맹회가 입황성과 문파대전을 치르지 않는다면.
그때는 양대 세력의 교두보가 될 인물로 저 소년이 유력해질 것이다. 적어도 입황성 쪽 인사는 달리 없다.
마광익주 정연신.
그간 맹의 무인들에게 가르침을 베풀면서 쌓은 평판과 출중한 무위, 사절로서 자리한 경험이 모두 컸다.
애초에 맹주의 눈만 봐도 알겠다. 친손주를 대하는 듯했다.
‘입황성과 친교를 다지는 쪽으로 간다면, 나는 물론 악 매도 마광익주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지. 잘 타일러야겠어.’
그때였다.
“아.”
문득 검성이 작게 탄식했다. 이내 그의 입가에 계면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너무 들떴군. 본래 입황성이라 하면 강호보다 민생을 우선시하는 자들 아닌가. 자네 같은 협사가 노부의 눈에 띄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으니, 본의 아니게 채신머리없는 모습을 보였네. 후배가 감당하기 힘든 수다였을 것을. 이제 공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괜찮습니다.”
정연신이 대답했다. 초면에 드러낸 불쾌감을 지운 지 오래였다.
소년의 눈동자에 안광이 맺혀 있었다. 광륜을 돌리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검성이 마광익주를 평할 때, 마광익주도 검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호수를 들여다보는 사람의 눈에 역으로 맺힌 그림자처럼.
“음?”
검성의 의문 어린 반문은 사소했다.
“검성께서 가만히 서 계신 걸 보는 것만으로 공부가 됩니다.”
정연신은 다시 입술을 뗐다.
“견문이 좁은 탓에 처음 대하는 균형이군요. 제 무게중심이 전방위에 퍼져 있다 하셨는데, 검성께서는 상시로 발과 대지를 연결해 두시는 게 보입니다. 용천혈에서 뻗어 나온 기파가 굳건히 느껴지는 게…….”
소년의 두 눈에서 하늘빛 벼락이 튀었다. 무공을 분석하는 무례는 검성이 먼저 범했다.
깨달음을 쏟아내고 반응을 확인하는 걸로 뭐라 하지 못할 것이다.
검성이 절세고수라 해도 눈앞의 마광익주가 입황성의 사절이란 건 자각하고 있었다.
“검법의 안정성을 따진다면 그 이상의 내공 기수식이 없겠지요. 고갈되지 않는 진기가 부럽기도 합니다. 입황신창 악 선배를 말씀하셨는데, 그분 못지않게 정심한 공력을 쌓으신 게 아닌지. 화후와 별개로 참고할 만합니다.”
검성이 헛웃음을 지었다.
“허……? 이걸 느낀다? 그 체질의 효용이 그 정도인가? 감각이 비범할 줄은 알았는데…….”
“검성께서 취한 자연체가 의미하는 바를 알겠습니다. 전신 기도가 대기를 융통무애하게 흘리고 있군요. 맨손의 검성께 험준한 숭산이 보인다 했지요. 발밑 용천혈의 내공을 강건히 하고 눈 쪽 동자료혈(瞳子髎穴)에 동등히 진기를 배분하니, 검성께 검이 없다 해도 상대를 통찰하여 움직이는 게 어렵지 않은 겁니다.”
정연신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보이는 바와 같이 부드럽게 이완된 전신 근육도 즉각적인 출수에 한몫할 듯합니다. 신공절학에 이른 안법의 효용을 깨닫게 해 주시는군요. 몸을 쓰는 법도.”
“…….”
검성의 웃음이 옅어졌다.
소년은 생각했다. 이제 보니 무림맹행 자체가 기연이었다고.
중대한 순간을 맞이했다. 검성은 마르지 않는 영감의 폭포였다.
악수림이 임무 적임자로 정연신을 지명한 순간 예견된 일이다. 정기신의 합일이 아직 멀었다.
무공 기교와 새로운 무학의 창안으로 흑색의 영역을 메워야 했다.
신임 마광익주의 말은 그치지 않았다.
“적수공권의 검성을 뵙고 보니, 검을 드신 모습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만합니다. 낭인이라 하셨지요. 노선배님을 일컫는 말에 구파의 영산들이 들어간 이유를 알겠습니다. 검성께서도 구파의 고수들에게 영감을 얻은 검법을 구사하고 계신 게 아닙니까? 절세의 안법으로 말미암아, 지금 딛고 계신 걸음을 기반 삼아서 말입니다.”
검성 현소백의 입이 살짝 벌어지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검성이 지닌 게 무극을 추구하는 열정이라면, 정연신은 타고나길 자신이 상상치 못한 무공에 홀리도록 되어 있었다.
백도 정파 특유의 정명한 오만일까. 검성 현소백은 숨기는 게 없었다.
소년의 눈에 흥미로운 것들이 한가득이다. 천하 진미를 요리할 수 있다고 호객하는 객잔 같았다.
실제로 음식의 맛이 출중하기로 이름을 알린 항주의 대하반점(大河飯店)처럼.
“손이 가벼워 보이십니다. 공력 파동이 유달리 약한 부분이 있군요. 어깨 아래 거골혈(巨骨穴), 팔 관전의 곡지혈(曲池穴)…… 엄지와 검지 사이의 호구혈(虎口穴)이 오히려 강한 듯한데, 쾌검에 어울리는 배치는 아니겠습니다. 허나 찌를 때는 그보다 이상적인 공력 운용이 없겠지요.”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강력해지는 상단전의 공능이 드러난다.
머릿속에서 영감이 격랑처럼 물결쳤다. 앞서 형 같은 수하들에게 검성의 내력을 들은 뒤라서 더 그런 듯했다.
추측과 앎이 감각과 부딪쳐 화탄처럼 터져 나왔다. 모든 게 영감이었다.
내뱉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말로써 한 번 다듬으면 연마된 깨달음으로 돌아왔다.
“신법 풍신의 경파를 발밑으로. 쾌검을 뻗을 때는 파지법을 가볍게 가져가면서 용천혈은 무겁게. 자연체를 그대로 따라 하지는 못해. 쓸만한 안법이 없으니까. 괜찮아, 지금은…… 몸으로 대신하면 돼. 정가동공을 미세 혈도 연마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전방위를 감당할 검법에는 바람의 구결이 있어야겠지…….”
완전히 몰두한 채 뇌까렸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었다.
새롭게 탄생할 검법의 단초다.
이 순간 검공 개변의 뼈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검성에 대한 풍문과 눈앞에 멀거니 서 있는 모습만으로 칼 쓰는 법의 오의를 이해했다.
소년은 끊임없이 궁리하면서 검으로 별자리에 오른 절세고수를 살폈다.
살점을 붙이고 실전에서 가다듬는 일만 남도록.
제자리에서 몇 수 위의 고수를 통찰한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교차시키면서다.
완전히 무아지경이었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상태이기도 했다.
광륜을 정지시킨 채 머리로 생각만 이어간다. 소년의 눈에서 옅은 청염이 연신 번뜩였다.
“저런 자이기에, 남궁세진이…….”
제갈현이 멍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검성 현소백 또한 아연실색한 표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두 사람은 백도 정파의 무인들이다. 소년이 검을 깨치는 모습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저 망연한 얼굴로,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신임 마광익주가 포권을 취할 때까지도 그랬다.
“검성께 감사드립니다. 은혜를 입었군요.”
정연신이 허리를 살짝 숙이면서 두 손을 모았다.
본래 포권지례는 몸을 굽히지 않는 인사인데도 묘하게 어울린다. 단정한 예법이었다.
한데 모인 새까만 소맷자락에서 격조가 묻어나왔다.
진심으로 은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만큼 얻은 게 크다는 의미였다.
검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소 당황한 듯했다.
“노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