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on the protagonist's flower path RAW novel - Chapter (92)
7. 방학을 즐기는 방법 (8)
* * *
나는 사기꾼의 크게 뜨여진 눈을 보고 괜히 웃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는 거 말이야, 생각보다 힘들더라.”
“너…”
“쉿. 일단 들어줘.”
나는 검지손가락을 사기꾼의 입술위에 툭 가져다 대며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러자 그가 붉어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 나는 태어나지 않은 편이 좋았을까? 내가 태어나서 무언가를 해서, 누군가가 크게 다치거나 죽은 게 아닐까?”
“그건…”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나도 알아. 그런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어. 애초에 기억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이 세상의 이레귤러라는 뜻인걸.”
내 말에 사기꾼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래. ‘이레귤러’. 너는 이 말에 짚이는 게 있을 터다.
강나현은 갑작스레 나타난 예상치 못한, 뛰어난 재능의 엑스트라니까.
나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파도가 몰아치는 새까만 바다를 바라봤다.
앞으로 내가 할 말에 그가 나에게 어떤 감정을 보일지 잘 모르겠어서.
“그래.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다 쳐. 그런데 뭐, 그래서 어쩌라고?”
“……”
“나는 내 의지가 아닌 채로 태어나, 그저 살아갔을 뿐이야. 누군가 나를 갖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태어났고, 가족을 가지게 되었고, 살고싶어졌어.”
나는 왜 내가 환생했다는 사실까지 꺼내서, 이 녀석을 위로하려드는지 생각해보다가 한 가지 사실에 도달했다.
“너도 그렇지 않아? 네 의지로 이곳에 온 게 아니잖아. 넌 그저 태어났을 뿐이야. 그리고 살아갔을 뿐.”
“…나는…”
나는 이제 이 쓸데없이 여리기 짝이 없는 녀석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이 몸을 빼앗은거야. 그리고 나유리를 속였어.”
“……그래서, 이제 다 그만두고 싶어? 죄책감이 드니까?”
“그건,”
“너, 네가 빙의하고 속였다는 게 잘못했다는 걸 알고도 계속 나유한인채로 살고싶으니까 죄책감을 느끼는거 아니야?”
나는 여러 감정이 감도는 사기꾼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 말에 주먹을 꽉 쥔 그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 이 삶이 좋아. 그래서, 안 된다는 걸 알면서, 나는…!”
“왜 안 되는데?”
후덥지근한 바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밤을 닮은 그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내 말에 사기꾼이 놀란 듯 나를 바라봤다.
“그야, 그야…”
“그게 옳으니까? 주인에게 몸을 돌려주는 게 마땅하니까?”
“그래.”
“그럴지도. 그래. 그럴지도 몰라. 누군가는 너를 원망하고, 저주할지도 몰라.”
내 말에 사기꾼이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눈을 내리감으면서.
그런 그의 양 뺨을 가볍게 잡았다.
그가 갑작스러운 접촉에 눈을 떴다.
그의 타오르는 불꽃을 닮은 루비색 눈이 나와 마주쳤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야. 그리고 네가 말한 유리도 아니야.”
“……”
“뭐, 네가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는 내 말에는 공감하지 못 한다는 건 알겠어. 그러니까, 대신 이렇게 말해줄게.”
나는 그 루비색 눈이 정말 금방이라도 깨질 듯 유약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에는 빛나는 밤하늘 아래 눈을 휘며 활짝 웃는 내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이 세계에 태어난 걸 축하해, 나유한.”
나는 그렇게 나유한을 보며 웃었다.
정말 환하게, 그에게 축복을 속삭이면서.
“네가 이곳에 있어서 나는 정말 기뻐.”
그가 숨을 들이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내 진심이었다.
나는 그 뭔지모를 진짜 나유한보다, 내 눈앞에 있는 ‘나유한’이 더 좋았다.
이 나유한이 있어서 나는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이 세상에서 살아가줘.”
나는 나유한을 꼭 끌어안았다.
잠시 멍한 채로 손을 놀리던 나유한은 이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여 내 등을 감싸안았다.
그가 내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는 것이 느껴졌다.
“나, 나는…나같은게,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거야?”
“당연하지. 태어난 걸 축하해. 나유한.”
한방울, 두방울. 그의 눈물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울음을 참으려 애쓰던 그는 한 번 울음이 터지기 시작하자 둑이 터진 것 마냥 나를 끌어안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를 토닥이며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걱정마라. 그 진짜 나유한이라는 놈이 네 몸을 내놓으라해도 난 네 편이니까.
“언제라도 네 편이 되어줄게.”
“응…!”
왜 이렇게 울어.
…걱정되게.
나는 그렇게 한참을 우는 나유한을 토닥이며, 그가 제법 내 테두리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파도가 쏴아쏴아 소리치며 출렁이는 것이 들리는 후덥지근하고 어두운,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어제 제대로 못 놀았다는 이유로 오늘도 바다에서 놀기로 한 우리는 호텔 로비에 모였다.
상처나 기타 다른 부상은 포션 등으로 치료해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 놀기 위해 포션을 쓰는 이 상황이 좀 웃기긴 했지만 뭐, 어떤가.
그리고 오늘따라 주목받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뭐야~ 후배님 완전 붕어눈이 됐네!”
“…무슨 일 있었어?”
최수정과 이하나의 말대로 눈이 퉁퉁 부은 나유한이었다.
머리가 부스스한 걸 보니, 제대로 정신 차리지도 못하고 옷만 주워입고 나온 것 같았다.
“그냥 좀….”
나유한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흐렸다.
이하나가 말없이 얼음을 만들어 비닐봉지 안에 담아서 그에게 건넸다. 그가 말없이 꾸벅 인사하곤 그것을 제 눈가에 가져다 댔다.
“그보다, 오늘 저녁은 담력시험 하러 가는 거죠?”
그 말에 나유한의 눈가를 힐끔힐끔 보던 신바란이 펄쩍 뛰었다. 딱 봐도 기겁한 모습이었다.
“그, 그거 꼭 가야 하는 거야?”
“응…! 기대된다!”
신바란의 옆에 있던 민재윤이 냉큼 대답했다. 누가 들어도 기대가 듬뿍 담긴, 잔뜩 신난 목소리였다.
차마 그런 민재윤에게 뭐라 할 수 없었던 신바란이 입을 뻐끔거리더니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듯 의기양양하게 핑계를 댔다.
“원래 심령 스팟 같은 곳은 사유지라 가면 안 된대! 그러니까…!”
“아, 우리가 갈 곳은 제가 샀어요.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리고 나유리의 호쾌한 소비 스케일을 알게 되며 침몰했다.
배신감 어린 눈으로 나유리를 보는 신바란의 모습이 좀 웃겼다.
“별일 없을 거야. 너무 그렇게 걱정 마.”
“으으윽… 안전제일이라고…!”
무서워서가 아니고?
나 참. 나는 빙긋 웃으며 신바란을 토닥였다.
그런 신바란의 모습을 질투 어린 시선으로 보던 나유리가 내 뒤로 슬쩍 다가와 매달리며 말했다.
“나현 씨, 어서 가죠! 오늘은 스쿠버 다이빙이에요!”
“그래.”
나는 살풋 웃으며 아이들을 끌고 바다로 향했다.
날은 더웠지만 하늘은 맑았고, 바다는 시원했다. 우리는 바닷속 깊이 잠수하며 푸른 물결과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다.
…그동안 나유한은 튜브에 매달려 둥실거렸지만.
잔뜩 부었던 나유한의 눈이 슬슬 다 가라앉고, 최수정이 무지막지한 파도를 일으켜서 그를 실컷 가지고 논 다음.
나는 지쳐서 파라솔 아래로 돌아온 나유한에게 제안했다.
“유한아, 수영 배워볼래?”
그늘 아래 널브러져서 얼음물을 들이키던 그가 퍼뜩 고개를 나에게 향했다.
“수영?”
“응. 혹시 어제 같은 일이 또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이번 기회에 배워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내가 도와줄게!”
“음….”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나유한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나유한과 나의 수영 강습이 시작됐다.
나는 근처 가게에서 구매해온 수영 보조판을 나유한에게 쥐여주고, 그의 손을 잡아서 적당한 깊이의 물속으로 이끌었다.
더위 탓인가, 나유한의 손은 꽤 뜨거웠다.
“우선 보조판을 이용해 물에 떠서 움직이는 방법을 시도해보자!”
“…그 정도는 할 줄 알아.”
“정말?”
“수영, 약간은 배웠거든. 배우다 그만뒀지만.”
나유한이 투덜대듯 말하면서 수영 보조판을 쥐고 물속에서 발을 뗐다.
그의 몸은 보조판과 함께 안정적으로 물 위에 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할 줄 안다는 것을 증명하듯 발로 수면을 박차며 조금씩 움직였다.
오, 움직일 수는 있구나?
나는 그래도 나유한이 완전히 몸치는 아니라는 점에 플러스 점수를 줬다.
“어때?”
“굉장해! 수영도 금방 배우겠다!”
수영 보조판 괜히 사왔다. 돈 아까워.
그래도 썩 나쁘진 않았다.
당연히 생각한 대로 내뱉을 수야 없고, 나는 그저 환히 웃으며 나유한을 칭찬했다.
칭찬을 들은 나유한의 얼굴에 위풍당당한 미소가 들어찼다.
“물 위에서 나아가는 법은 문제없구나! 그럼 보조판을 빼고 물 위에 뜨는 법을 연습해보자!”
나는 상냥하게 웃으며 그에게 어떤 방식의 수영을 배우고 싶냐 물었다. 그는 고민하더니 자유형이라 답했다.
“그럼 살짝 엎드리면서 발을 떼 봐!”
“…불안한데.”
“괜찮아. 몸에 힘을 빼고 물에 온몸을 맡기는 거야. 그럼 뜰 수 있어.”
“음….”
나유한은 물에 발이 닿은 고양이처럼 수면을 노려보다가 조심스레 몸을 수면에 기대고 발을 바닥에서 떼었다.
그리고 가라앉았다.
몸에 너무 힘을 준 탓인 듯했다.
“어푸, 어푸!”
“괘, 괜찮아, 유한아?”
나는 그를 일으켜주며 그를 살폈다.
그를 일으키다 그의 맨살에 내 손이 닿자, 그가 놀란 듯 흠칫 몸을 떨었다.
“…그,”
“왜?”
“괜찮아. 그러니까 손, 좀….”
“아, 응!”
나는 그가 다치지 않은 듯 보이자 얼른 손을 떼어내고 그를 살폈다. 다행히 그는 물을 좀 먹어서 콜록댈 뿐 멀쩡한 것 같았다.
뭐, 그래. 처음은 누구나 힘든 법이니까. 하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쿨럭!”
그러나 그는 한참이 지나도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다시 말하는데, 나유한은 정말 몸치였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눌러 삼키며 애써 다정하게, 그리고 걱정스럽게 웃었다.
“괜찮아?”
“응.”
근데 이 녀석, 왠지 자꾸 내 손을 피한단 말이지. 왜 이러는 거야?
자꾸 그러는 게 은근히 신경 쓰였지만, 그보다 아무래도 커리큘럼을 재편할 때인 것 같아서 나는 다시 나유한에게 주의를 집중했다.
“유한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그래. 나도 내가 이렇게 몸치일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일단 먼저 물에 온몸이 뜨는 감각을 익히자!”
내 말에 나유한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의 표정이 그리 말하는 듯했다.
나는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다 방법이 있지!
* * *
“…잠깐,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 우리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아까 쓴 보조판이라든가.”
“왜? 보조판을 쓰는 거랑 이렇게 실제로 뜨는 느낌은 달라. 그리고 이편이 내가 봐주기 편하니까!”
“그, 으음….”
나는 어이가 없었다.
몸이 물에 뜨는 감각을 알려주려고 손으로 상체를 지탱해준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이 난리를 친담.
하여간 모솔 자식.
“너무 긴장하지 마.”
나는 이상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는 나유한의 배를 가볍게 쓸었다.
이그드라실과의 지옥 훈련 덕에 적당히 근육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근육에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러니까 못 뜨지.
나는 한 손으로 그의 배를 가볍게 쓸며 말했다.
“몸에 힘을 빼야 해.”
“으극….”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되려 이를 악물었다. 왜 이래. 어디 아픈가?
“…유한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치고는 터질 듯 붉어진 얼굴의 그가 몸을 부들거리며 가까스로 내게 말했다.
“나현아, 그, 내가 지금 좀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도 될까?”
살짝 눈물까지 맺힌 그의 얼굴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재빠르게 내 손을 밀어내며 물 아래 땅에 발을 디뎠다.
그가 눈가를 박박 문대며 작게 말했다.
“….고마워.”
“그렇게 안 좋아? 가서 쉴까?”
하긴 나유한은 각성자이긴 하지만, F급이라서 육체적인 힘 자체는 일반적인 성인 남자 정도다. 체력에 비해 물속에 너무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실수한 건가 싶어 걱정스레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가 쉬자는 말에 어째서인지 그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거부반응을 드러냈다.
“아니, 괜찮아! 정말 괜찮아!”
지금 하는 꼴을 보아하니 안 괜찮아 보이는데.
내 걱정을 가장한 의심스러운 눈빛을 본 나유한은 어색하게 내 눈을 피하며 이하나가 바닷물로 화려한 얼음 조각상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가리켰다.
“저걸 계속 보고 싶어서.”
“나가서 볼까?”
“여기서! 보고 싶어서!”
“그, 그래.”
결국 나는 그의 알 수 없는 고집에 져 그와 나란히 서서 물 속에서 이하나의 화려한 건축 쇼를 관람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이하나가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기에 나도 마주 흔들며 인사했다.
그녀가 살포시 미소짓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나 선배 멋지지 않아?”
“동해물과… 백두산이… 어? 어. 그렇지.”
정신을 빼놓고 있었는지 답이 늦어진다. 게다가 왠지 모르겠지만 그는 물 위로 고개만 내놓은 채 내내 애국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맛이 간 건가?
어쨌든 그렇게 우리의 정오 일정이 지나갔다.
높이 떠오른 해가 슬슬 서쪽으로 움직일 무렵에는 다 같이 커다란 모래성을 지었다.
신바란과 나유리가 잔뜩 산 피서 물품 중에는 모래성 만들기 세트도 있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
모래성을 완성하고 해가 수평선 저편으로 넘어갈 즈음, 아이들 몇몇이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빠져나갔다.
남은 몇몇은 저녁을 준비하기 전 우리가 완성한 모래성을 감상하고 있었다.
“멋지다…!”
“모래성이라는 게 아쉽네요… 금방 사라지잖아요.”
“그건 그래.”
나는 감탄하는 민재윤과 아쉬워하는 나유리와 신바란에게 말했다.
“사진을 찍는 건 어때?”
그 말을 하자마자 셋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큭, 그 생각을 못하다니…! 당장 하자!”
“기념으로 단체 사진은 어떤가요?”
“너무 좋아!”
신바란은 여태까지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몹시 분한 듯했다.
“그러고 보니, 나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사뒀었어!”
신바란은 그 말을 하고 바로 피서용품 더미를 뒤지러 뛰쳐나갔고, 나유리는 사람들을 모으러 갔다. 민재윤은 방방 뛰며 사진을 찍기 좋은 구도를 찾기 시작했다.
“냐하핫, 사진이라… 내가 원해서 찍는 건 처음이야~”
나유리에게 끌려온 최수정은 사진을 찍자는 제안을 듣자마자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이하나와 팔을 붙잡고 이끌었다.
이하나 역시 최수정에게 끌려가면서도 혼잣말을 했다.
“즐겁네.”
이후 나유한이 도착했다. 나는 머쓱하게 서 있는 나유한의 등을 밀었다.
“유한아, 어서!”
“…그래.”
마지막에 도착한 박시우는 같이 사진을 찍자는 말에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진은 누가 찍지?”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찍히는 기능이 있더라!”
그렇게 모두 모여 높게 쌓은 모래성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즐거워했다.
나도, 즐거웠다.
촬영을 마치자마자 민재윤이 카메라를 향해 뛰쳐나갔다.
“사진이… 많아…!”
“냐하핫, 딱 인원수에 맞네!”
“어쩐지 뭔가 계속 찰칵거리더니 연속 촬영이었나 봐요.”
“응. 설정을 잘못 한 거지만… 이런 형식도 좋은 것 같아.”
이하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한 장씩, 비슷하지만 각자 다른 사진을 가지게 되었다.
사진을 소중히 품은 아이들은 저녁을 먹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은 뭐에요?”
“생선구이~”
“응. 생선구이.”
“맛있겠네요!”
나는 일행들의 덩어리 속에 있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내 입꼬리를 만졌다.
나는 어느새 기쁨을 연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모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끄럽다.
하지만 소음처럼 들리지 않는다.
마치 고아원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있을 때처럼.
나는 문득 방금 찍은 사진을 다시 꺼내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 아른거리는 노을빛에 비쳐 따뜻한 색에 감싸인 우리들의 사진을 보며 무언가를 깨달았다.
모른 척하고, 부정하던 사실을 마침내 마주했다.
“나현 씨?”
“나현아?”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마치 나부끼는 내 마음처럼 내 머리칼을 흩트리다가 사라졌다.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모두를 향해 달려갔다.
“미안,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어쩌지.
나 이 사람들이 좋아.
그래서 모두가 다치치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어느 여름의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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