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scammer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4
34화. 나 역시 그곳에 몸을 담았었다
“출혈이 꽤 심한데.”
그게 로메인이 레바르센을 보고 처음 내린 진단이었다.
물론 나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의학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아 모르긴 몰라도, 저대로 두면 곧 죽을 것만 같았다.
로메인은 나를 돌아다보며 물었다.
“아는 사람인가?”
모르는 사람이거나 적이라면, 처리해버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눈빛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는 사람이다.”
“흠. 그럼 일단 안으로 옮기지. 지금 같은 찬 밤공기에 내버려 두는 건 썩 좋지 않거든.”
그의 말에, 나와 디아즈도 함께 붙어서는 레바르센을 실내로 데려다 놓았다.
“허억……허억……”
밝은 곳에서 보니, 그녀의 상태는 생각보다도 더 안 좋은 것 같았다.
호흡도 엉망이고 어디선가 계속 흐르는 피도 멋질 않았다.
로메인은 그녀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고는.
찌지직!
출혈 지점으로 예상되는 곳의 옷을 찢었다.
그러자, 그의 추측대로 큰 상처가 드러났다.
“흠. 칼인가? 아닌데……발톱? 그쪽에 더 가까운 느낌이로군. 어딘가 야생동물에게라도 당한 건가?”
그는 자신의 옷으로 손에 묻은 피를 대충 닦고는,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구급약들을 챙겨왔다.
하지만 여건이 여건인지라, 괜찮은 약품은 딱히 없었다.
기껏해야 붕대와 약초들뿐.
‘이걸로 살릴 수가 있나?’
의문이 들던 그때.
로메인이 중얼거렸다.
“이거론 어렵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상처를 틀어막았다.
나는 머리가 지끈해지는 걸 느꼈다.
‘잠깐만. 여기서 메인 캐릭터가 죽으면……골치 아픈데……’
대침공이 시작되면, 결국 가장 큰 전력은 지금 누워있는 레바르센이 될 터였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빨리 죽는다?
이건 내 예상에는 없던 시나리오였다.
‘원래의 스토리대로 흘러갔다면……아마 레바르센이 여기로 오진 않았을 거다.’
그녀는 내 이름을 정확히 부르고는 쓰러졌다.
아마 내가 없는 원래의 시간 흐름대로였다면, 여기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럼 오히려 그 근처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아 살아났을 텐데……
‘나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억지로 오느라 오히려 꼬인 거 같은데.’
이건 레바르센이 진짜 죽게 될지도 모른다 싶었다.
중간의 과거가 바뀌었으니, 미래도 바뀔 수 있지 않겠나.
더불어 그녀가 죽는다면……앞으로 다가올 내 미래도 크게 바뀔 수 있었다.
시간 흐람상의 핵심적인 인물 하나가 아예 소멸해버리는 것이었으니까.
로메인이 필사적으로 응급 처치를 하던 것을 보던 나는, 내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안에 있던 붉은 포션을 꺼냈다.
‘찾았다.’
그것을 들고 로메인에게 향한 나는.
“이걸 쓰면 차도 있겠나?”
로메인에게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먹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일단 상처에 뿌려두는 것만 해도 도움이 될걸세. 반만 뿌리고 반은 억지로라도 먹여보자고.”
“알겠다.”
“근데 말이야. 이거 써도 괜찮겠나? 나름 귀한 물건인데.”
맞는 말이긴 했다.
나 역시 알고 있었다.
파오갓에서 포션이 갖는 값어치를.
게다가 로메인이 내게 줬던 이 포션들은, 상중하 등급 중 중급 정도에 해당되는 물건이었다.
실질적으로 상급 포션은 스토리가 끝날 때까지 한 손에 꼽을 정도만 나온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중급 포션도 결코 함부로 쓸건 아니란 소리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미래를 아는 입장에서는, 앞으로도 포션은 구할 방법이 있긴 했었다.
반면 레바르센은, 죽으면 그대로 끝이었고.
레바르센의 중요성을 아는 나로서는, 지금 포션을 아끼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걸 너무 잘 알았다.
“사람 살리는 게 먼저다.”
“하하.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사내로군. 그렇지. 사람보다 물건이 중할 수는 없는 법. 요즘은 물건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놈들이 많아서 이 꼴이 아니겠는가.”
그는 곧바로 치료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포션이라는 고급 아이템에다가 나름 격투가로서 여러 가지 상처들을 마주했던 로메인이 나서니.
응급 처치는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다.
“후! 이제 생명에는 큰 지장은 없을 걸세. 고비는 넘겼어.”
숨을 크게 내쉬며, 그는 손을 닦았다.
“잘 서포트해준 덕에 편하게 했어. 고생들 많았네. 아, 그리고 디아즈.”
갑자기 디아즈를 부른 로메인.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경쟁자가 빡센데? 분발해야겠어. 하하!”
“사, 사부님!”
그녀는 또 귀가 빨개졌다.
‘길라드에 온 이후로 자주 저러는 거 같은데……뭐지?’
왜 저러는지 알 수는 없었다.
* * *
“끄으응……”
레바르센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다.
천장이 보이긴 보이는 게, 길바닥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창문을 돌려 밖을 보니 벌써 해도 중천이었다.
“사, 살아 있는 건가……”
그리고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그래…..그 악마 녀석에게 당하고, 정신없이 도망쳤었어……’
놈의 눈에 품고 있던 독가루를 뿌린 덕에 따돌리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리 숨이 붙어 있겠지.
‘설마 그게 눈속임이었을 줄이야. 덕분에 크게 한 방 먹었네.’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레바르센은, 문득 자신이 크게 다쳤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다급히 자신의 배를 더듬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끝에는 흉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안쪽에 약간 통증이 느껴지긴 하는데……’
이 정도면 거의 완치에 가까운 상태라 할 수 있었다.
당장 운신을 하는데에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
‘어떻게 된 거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치료가 된 걸까?
의아해하던 그때.
끼이익.
문이 열리며, 디아즈가 들어왔다.
“일어나셨습니까?”
하지만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레바르센은 경계를 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지?”
“생명의 은인 비슷한 사람이지요.”
“비슷?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당신 살리는 걸 도왔으니까요. 물론 그것도 로한 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소용없었겠지만. 왜 그 상처가 말끔히 나았는지 궁금해하시는 것 같은데.”
레바르센이 옆구리를 문지르는 걸 본 디아즈가, 답을 알려주었다.
“로한 님께서 귀한 포션을 당신에게 쓰셨습니다. 상처가 얼마나 깔끔히 나았는지를 보면, 로한 님께서 쓴 포션이 어느 정도로 귀한 것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
반박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이 정도의 포션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까.
디아즈는 말을 이었다.
“저는 로한 님의 부관인 디아즈라고 합니다. 성기사입니다.”
“디아즈……”
“제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그쪽은 누구 신지?”
“나는 레바르센. 소위 말해, 도적이야.”
“……도적?”
그 말을 들은 디아즈의 표정에 어렴풋이 살기가 돌았다.
어렸을 적 숱하게 도적놈들에게 당했던 그녀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얼굴을 자주 마주한 레바르센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도적이랑 사이가 별로인가 봐? 뭐, 하긴. 도적이랑 사이 좋은 게 보통은 더 이상하긴 하지?”
넉살도 좋게.
그 당당한 모습이 오히려 더 기분이 나쁜 디아즈였다.
도적인 게 뭐가 자랑이라고……
디아즈가 한 마디 받아치려던 그 순간.
로한의 목소리가 뒤에서 끼어들었다.
“노이아 결사단인 거 다 알고 있다.”
그에 처음으로, 여유만만하던 레바르센의 표정이 굳었다.
“……!”
노이아 결사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디아즈는 어리둥절해할 수밖에 없었다.
* * *
노이아 결사단.
먼 옛날, 악마들이 중간계를 탐하며 감히 발을 들였던 때.
역사상 유일하게 중간계의 생명체들이 모두 힘을 모았던 과거가 있었다.
당시 중간계의 생존자들은 악마의 무지막지한 전력에 경악을 했고.
악마를 겨우 쫓아낸 것에 불과했던 그들은, 차후 이런 일이 또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노이아 결사단이라는 이름의 결사단체를 창설하기에 이르른다.
다만 이것은 인간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일이 아니었다.
노이아 결사단은 엘프를 주축으로 하여 세워진 단체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레바르센은……종족이 하프 엘프였지.’
때문에 외형상으로 보기에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굳이 특이점을 찾자면, 이질적으로 아름다운 외모 정도?
그 덕분에 꽤나 많은 유저들이 직업 선택 창에서 도적을 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얼굴을 실제로 보니.
‘진짜 예쁘긴 하네……’
솔직히 처음 봤을 때도 흠칫 놀랄 정도긴 했는데.
그땐 지하 감옥이라 제대로 안 보였던 것도 있었다.
그런데 밝은 날에 가까이에서 실제로 보니까,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얼굴 숨기고 다닐만해.’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구해준 건 아니긴 하다만.
한편, 내 말에 깜짝 놀란 레바르센이 말을 더듬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설명하자면 긴데. 다음에 하도록 하지.”
“아니. 지금 듣고 싶은데.”
퍽 난감했다.
어떻게 알긴.
원작을 플레이해봤으니까 아는 거지.
그러나 어찌 이렇게 말을 하겠는가.
‘뭐라고 둘러대지……’
고민을 하던 나는, 검증을 할 수 없는 대답으로 넘어가는 수를 택하였다.
“오래전. 나 역시 그곳에 몸을 담았었다.”
“……그걸 나더러 믿으란 건가?”
“믿지도 못할 거면 뭣 하러 물어본 거지?”
“……”
내 말에 뼈를 맞았는지, 입을 다문 레바르센.
그녀는 , 잠시 생각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보통의 인간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나는 디아즈를 슬쩍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에 디아즈가 부연 설명을 보태었다.
“로한 님께선, 보통의 인간과는 조금 다릅니다. 제가 경을 처음 만난 건, 13년 전. 그때도 로한 경은 지금의 모습 그대로 셨습니다.”
“그게 무슨……”
이제 내가 다시 나섰다.
“네가 누군지도 몰랐다면, 내가 그 귀한 포션을 쉽게 썼을까?”
“……나 같은……하프 엘프라도 되는 거야?”
“뭐라고?”
“아, 아니야. 못 들었으면 말고.”
강하게 나가니, 아직 미간이 조금 찌푸려져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믿는 눈치였다.
뭐, 나 같아도 쉽게 믿긴 힘들었을 것이니까 이해는 되었다.
그러나 레바르센 역시 당장 확인을 할 방법은 없을 터였다.
도적으로 플레이를 해보면 안다.
노이아 결사단은, 은밀하게 움직이는 만큼 내부의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결사단원끼리도 못 알아 볼 때도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파고든 나였다.
그리고 그 판단은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레바르센이 자신이 겪은 일을 풀어놓기 시작한 것이었다.
“악마들의 침공이 준비되고 있어. 나는, 우리 결사대는 그걸 막으려는 중이었고. 그러다가……불의의 기습에 당했어. 조력자들이 있었던 거지.”
어라?
이거 어쩌면 내가 노리던 방법이랑 같은 건가 싶었다.
‘대침공을 미루는 실마리가……여기서 나오는 건가?’
내가 굳이 이 발트라스 왕국으로 온 이유.
실은 뭔가 챙길 게 없을까 하고 원작의 내용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던 게 그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뜻밖의 대사가 하나 떠올렸던 것이다.
‘세인트 트라발에서 놈들을 저지했다면 반격이 좀 더 쉬웠을 것이다, 라고 말했었지. 노이아 결사단의 장로가.’
그게 내가 이곳에 발을 들인 까닭이었다.
하나 아쉽게도 그게 뭔지 정확히 나오지는 않았었다.
플레이어의 시점에서는 이미 과거이고, 과거를 탓해봤자 무엇하겠느냐는 말과 함께 그냥 넘어가 버린 것이다.
때문에 나는 흥미가 돋았다.
아예 의자를 끌고 와, 그녀의 앞에 앉았다.
“더 자세히 듣고 싶군.”
“모든 건 세인트 트라발에서 시작되었어. 사람을 홀리는 그 악마의 장난이.”
한 번 입이 열린 레바르센은, 모든 걸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들은 나는, 세인트 트라발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우리 셋은 함께 세인트 트라발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