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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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궁여지책.
“꼭 정확한 정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짐작가는게 있으시다면….”
“유성훈이 지금까지 유형적으로 취해온 부당이득은 규모만 따지면 최소 1조 길드 이상, 피해액은 추산조차 불가능 할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그는 더이상 저희 신시의 탑랭커가 아니라 단순히 내부에서 살을 파먹는 기생충에 불과합니다.”
“생포하거나 결정적으로 포획에 영향을 끼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신분께는 연합에서 이천억길드와 보유중인 최고급 엘리트 아이템 풀세트를 지급하고 화랑대주의 자리를 약속합니다!”
“…대박인데?”
지치지도 않는지 한블록마다 자리잡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서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내건 보상도 헉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대단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그가 감탄한것은 바로 연합이 이번일에 보이는 의지 때문이었다.
“얼마나 원한이 쌓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반길드원부터 동맹관계에 있는 세력, 화랑대까지? 그냥 도시를 메워버린 수준인데?”
단순히 유지비만 해도 일반인 입장에서는 상상을 하지 못할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일텐데 이 전력을 미션에 투입했을때 생길 기회비용까지 생각해보면 대체 어느정도까지의 적자를 기록할지 생각하는게 두려워질지경이었다. 게다가 이게 하루이틀만 이어지리라는 예상을 벗어나고 벌써 오일이 넘도록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걸로보면 진짜 ‘독하게’ 마음 먹은게 분명했다.
“이거 받아가세요.”
“아, 괜찮습니다.”
펄럭펄럭.
잠깐 외출한 사이에 얻은 여섯장이나 되는 전단지를 양손에 들고 부채처럼 펄럭이자 전단지를 건냈던 남자는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살짝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 계속해서 외치는 사람, 인파속에 파묻혀서 은밀히 사람들의 면면을 훑어보는 사람.
농담하지않고 그야말로 일반인 반, 연합인 반이라고 할정도로 도시 어느곳에서는 연합의 눈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그 정도로 강무한과 유백우가 이번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수 있었다.
물론 그건 그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발걸음을 옮긴 그가 향한곳은 중소길드가 모여있는 거리였다. 지금은 재료 아이템을 전문적으로 수급하는 꽤 규모가 상당한 중소길드를 이끌고 있었으나 몇개월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서준은 사기와 공갈을 주업으로 삼는 이른바 범죄길드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우연한 계기를 통해 이렇게 새롭게 탄생했으니 정말 사람일이라는게 알다가도 모를일이었다.
“서준씨? 이 시간에 보다니 참 별난일도 다있네요?”
“제가 여기 있는게 그렇게 신기합니까?”
“아니, 분명 연합의 발주에 맞춰서 대규모 재료 수급을 맞추겠다고 길드 전부가 미션에 틀어박히기로 한거아니었어요? 그래서 몇일전부터 미션하러 가느라 당분간은 못보겠구나 싶었는데.”
우연히 마주친 연금술사 길드장의 말에 이서준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원래 그럴 계획이었는데 알다시피 그거 있잖아요. 그거.”
이서준이 흔들고 있는 전단지를 확인한 길드장은 바로 이해했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 아니 유성훈 사건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또 도시를 비워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일단 미션을 하는건 당분간 미뤄두기로했어요.”
“그럴만하지. 그럼 부족한 물량은 어떻게 하게요?”
“창고를 탈탈 털든가 웃돈주고 구하든가 해야죠. 어휴, 왜 이런 일이 생겨서 자꾸 골머리를 썩게 하는지. 그쪽은 요새 어떄요?”
“이쪽은 호황이랄까? 연합에서 갑자기 가격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면서 최고 품질의 포션을 공급해달라고해서. 다들 자진해서 밤을 새고 각성제 먹으면서 일에 몰두하고 있어.”
그 뒤로 두세번정도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나누는, 전혀 이상할것이 없는 평범한 대화를 마친 이서준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자신의 길드가 위치한 건물의 문을 열고 느릿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핏!
“움직이지마.”
딱히 자만심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었지만 이서준은 자신이 어디가서 무시받을정도로 허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특이점은 없다지만 공식랭킹에서 네자리수에 들어갈수있을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도 문이 닫힌순간 목에 닿은 칼의 존재는 전혀 감지해내지 못했다.
“저, 저기 이것 좀 치워주시면 안될까…요?”
“…조용히해.”
들릴락말락하게 귀에 파고드는 자그마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사종원이었다. 이서준을 제압하고 문에 귀를 기울인채 한참을 대기하던 사종원은 곧 바깥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대로 칼을 거뒀다. 그래도 명색이 이 건물의 주인인데 너무한 대접이라고 생각해 한 마디 해줄까하던 이서준은 그림자속에 녹아드는 사종원의 날카로운 눈빛을 확인하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자존심보다는 목숨이 중요하지!’
닭살이 돋은 팔뚝을 쓰다듬으며 위로 올라가던 이서준은 층마다 보이는 낯선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기를 붙잡고 살기를 가다듬고있거나 끊임없이 저주의 말을 중얼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평범한 채집계열 중소길드에 소속된 자들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방금전 만난 연금술사 길드장에게 말한 사실과는 달리 진짜 길드원들은 이미 오일전에 전부 대규모 재료 수급을 위해 미션을 하러 떠났으니 말이다. 지금 이 건물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연합이 눈에 불을 키고 찾으려고 드는 무명길드원들이었고 제일 꼭대기층에 위치한 원래 자신의 방에는 지금 우스갯소리로 걸어다니는 로또용지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그 사종원이라는 소년한테 한 마디 해주면 안됩니까? 매번 볼떄마다 목에 칼을 겨누니 실시간으로 수명이 깎여나가는것 같다구요1”
“네가 좀 이해해. 뒷통수 한번 거하게 맞고 눈에 보이는게 없는 상황이라서 지금 설득하는것보다 그냥 네가 이해하고 넘어가는게 더 빠를거거든. 그건 그렇고 내가 사오라는건 사왔냐?”
“…여기 있습니다.”
신시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제일 핫한 사나이라고 할수 있는 유성훈이 도넛과 커피를 행복한 모습으로 먹는것을 바라보며 이서준은 헛웃음을 지을수밖에 없었다.
신시에서 기습을 당할거라고는 생각하지조차 않았는지 명목상의 경계병만 세워놓은 연합의 건물안에 잡혀있던 부하들을 구출해내는것은 너무나 쉬운일이었다. 처음에는 반만 구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본래의 8할에 해당하는 인원, 그리고 엄중하게 봉인되어있던 볼프까지 구하는데 성공할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디로 가야하지?’
외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없고 완벽하게 안정을 보장받고 싶다면 적당한 미션을 골라서 수행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너무나 단순무식한 선택이었다. 굳이 유백우가 아니더라도 머리만 굴러가면 각 임무소 앞마다 정예라는 정예는 전부 깔아두고 신원확인을 할테니 말이다.
신시 밖으로 벗어나는건 어느정도 정보 수집도 가능하고 은거나 도주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보급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느쪽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위험을 감수해야 그만한 보상을 얻을수 있는법. 결국 성훈이 모두를 이끌고 도착한곳은 바로 이서준의 길드였다.
“당분간 이곳에서 신세 좀 지게 생겼는데, 괜찮지?”
“길드원들이 전부 가서 상관없긴한데…가 아니라, 에에에엑?! 가, 갑자기 뭡니까?!”
“뭐긴 뭐야? 같이 돕고 살자는 거지.”
멸망의 시작이라는 악성 재고 아이템을 사기로 떠맡게되고 그 분풀이를 하기 위해서 움직이던 당시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이서준. 성훈이 구축한 모든 정보망과 은신처는 전부 엘리가 알고 있고 연합이 손을 쓴 상황이지만 적어도 이서준만큼은 안심할수 있었다.
충동반 장난반으로 맺어놓은 인연이었고 그 후에 이어진 자금 제공 또한 엘리나 길드를 거치지 않고 개인자금을 이용했다. 만약 아무 힌트도 없는 0부터 시작해서 자신과 이서준의 관계까지 밝혀낼수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더 이상 자신이 어떻게 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믿어도 되는거야?”
“엘리 누나도 배신했어요. 그런데 생전 처음보는 저 사람을 어떻게 믿고 숨어있어요?”
처음에는 이서준과 마주할때 미리내와 사종원은 당연히 순순히 믿을수 없었다. 2년이라는 세월동안 같이 동고동락 해오며 사선을 넘어온, 가족이라고 할수 있는 사람이 배신한 상황이다. 누구라도 믿지 못하는 불안 상태에 빠지는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성훈은 단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누굴 믿어? 내가 얘를 믿는다고?”
“…예?”
“큼, 뭔가 내 얼굴에 먹칠하는거 같아서 말하기 뭐한데 이 녀석은 나랑 비슷한 녀석이야. 눈곱만큼이라도 더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면 양심이든 지인이든 뭐든 망설임없이 팔아넘길 그런 악당. 지금까지 내가 개인적으로 많이 지원해줬다고 한들 앞으로 연합이 내 목에 걸 보상을 생각하면 바로 배신해도 이상할게 없는 그런놈이지.”
“그러면 지금 당장 죽여버리는게, 아니 되살아날수도 있으니 감금해놓는게 나을텐데요.”
갑자기 쳐들어온것만해도 황당한 마당에 뜬금없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수도 있다는 의미가 내포된 대화가 오가는것을 본 이서준은 미쳐버릴지경이었다. 그리고 병주고 약준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이서준을 구해준것은 다름아닌 유성훈이었다.
“이익에 눈이 멀어 배신하는 놈을 다루는건 간단해. 그것보다 더 큰 이익을 주면 배신하지 않거든.”
상대가 어떤 타입의 인간인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수있다면 그 대상을 제뜻대로 움직이는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훈이 이서준을 다루는게 바로 적절한 예시였다.
“지금 나는 연합에 추적당하는 신세. 연합에서 몇천억 길드를 제시할지, 뭐 레전드 아이템이라도 걸지는 모르겠는데 아쉽게도 지금 그런것과 비견될만한 재화를 약속할수없어. 대신 한 가지는 약속해줄수있지.”
“그, 그게 뭡니까?”
“너에게 연합의 련주 자리를, 아니 연합이 해체될수도 있군. 어쨌든 그와 동등한 자리를 보장해주마. 한번 찍 싸고 끝나는게 아니라 네가 살아있는동안 계속해서 막대한 재화와 권력을 손에 쥘수 있는 자리를 약속해준다는거다.”
‘…그거 부도수표 아닙니까?’
목구멍까지 치솟아오른 말을 간신히 되삼키는 이서준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생각이 짐작된다는듯 쿡쿡 웃은 성훈은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뭐 말로는 련주가 아니라 신으로도 만들어줄수 있겠지. 그래서 선택할 시간을 주겠어. 당분간은 내 쪽에 붙어있으면서 과연 내가 한 제안이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재보는거야. 만약 안될거 같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연합에 가서 신고해서 보상을 챙겨. 그리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계속 붙어있고.”
이서준의 협력이 없이는 이 건물에 오랫동안 머무는것은 불가능하다. 반쯤은 도박이라고 할수있는 제안이었지만 가지고있던것 대부분을 잃어버린 성훈은 도박을 걸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도박은 일단은 성공했다.
“당당하게 연합의 련주, 최소 그와 동등한 자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해줬으면서 어째 요 몇일동안 가만히 틀어박히고만 있습니까? 진짜 제대로 할 마음 있습니까?”
“그만한 책략이 순식간에 생겨나는줄 알어? 시간을 들여서 찬찬히 고안하고 수정해나가는거야. 재촉한다고 쌀이 바로 밥이 되는건 아니잖아?”
“어휴. 하도 자신만만해서 무심코 협력하기는 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이러다가 연합쪽에 붙을수도….”
핏!
상처가 아문지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똑같은 자리에 다시 상처가 생겼다. 쌍검을 들고 자신을 위협하고있는 마검 미리내의 무심한 눈동자를 바라본 이서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애써 태연한 태도로 말했다.
“…있지만 저희 관계가 어떤 관계입니까?! 하하하! 암, 재촉한다고 쌀이 밥이 되지는 않는 법이죠! 예예.”
후룩.
혼자서도 재밌게 노는 이서준을 바라보며 성훈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커피를 삼키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도넛은 벌써 모두 사라져버린지 오래였고 커피도 몇모금 남지 않은 상황. 씁쓸한 얼굴로 컵을 흔들던 성훈은 가볍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리더가 절망하면 밑에 있는 사람들 역시 모두 절망하게 된다. 엘리의 배신, 신시 모든 사람의 적대화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미리내와 사종원, 그리고 길드원들이 절망하지 않고 복수의 의지를 불태우는것은 성훈이 여유만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그건 반쯤은 허세였다.
‘…진짜 막막하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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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없는 인연은 없는 법이죠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