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519
악당이 살아가는 방법 외전-46화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도 이 마을에서 여러 가지 우연한 일이 일어 났었다.
얼마 전 신시의 길드원 중 한 명이 이 마을에서 싸움을 일으켰거나, 때맞춰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찾아왔다거나, 이 근처에 중소 길드 하나가 합동 훈련을 벌이고 있는 등의 사건이 말이다. 그리고 오늘 밤 일어날 일이 바로 대망의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모두 특별히 말조심하고 스킬도 시동어가 아니라 직접 발동시켜라.”
“알고 있습니다. 한두 번 해본 일도 아닌데요.”
“좋아. 그럼…….”
시퍼렇게 빛나는 검을 뽑아 든 송일학은 환하게 웃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전원 돌격!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우와아아아아!”
“전부 죽여 버려!”
송일학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총 50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가 고함을 내지 르며 스피넬을 향해 돌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끔 필드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를 막기 위한 돌담이나 목책 정도는 설치되어 있 었지만 고작해야 그런 것으로 엄선된 정예들을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리고 그들이 마을에 돌입하기 직전 마법사가 미리 준비하고 있던 주문이 완성됐다.
“망령의 진혼곡!”
일반적으로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공격 마법과 달리 이 망령의 진혼곡이라는 마법은 일정 범위 안에 여러 가지 디버프 효과를 거는 마법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상대에게는 걸리지 않고 능력치를 깎는 게 아니라 정서 불안, 불쾌감 상승, 판단력 저하 등의 상태 이상을 유발하는 것이라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마법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주 적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뭐야 모두들…… 컥!”
“고, 공격이다! 공격이야! 모두 일어나!”
비명 소리와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뒤늦게 건물 안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보고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충격을 받았다기보다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동 안 지속되었던 긴 평화의 시기도 한몫 하기는 했지만 이런 공격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해하든 이해하지 않든 살육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촤악!
반원을 그리며 휘둘러진 검이 멍하니 있던 여자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피분 수를 뿜어내며 몸뚱아리가 쓰러지고 머리통은 쓰레기처럼 바닥을 나뒹군다.
그리고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던 한 남자는 시체의 눈동자를 바라본 순간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들고 외쳤다.
“조합이나 상성은 상관하지 말고 일단 동료들이랑 짝을 맺어! 부상자는 뒤로 빠 지고 이열을 구성해서 전열이 적을 막는 사이 후열은 장비를 착용한다! 모 두…….”
“죽어어어!”
“꺼져!”
장비라고는 오로지 기다란 태도 한 자루 뿐이었지만 남자는 송일학마저도 무심 코 감탄을 터트릴 정도의 검술을 자랑하며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뒤로 쳐 내 버 렸다.
남자가 벌어 준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무리 느슨 해졌다고 한들 수많은 미션과 강제 미션, 그리고 전쟁을 경험한 백전 연마의 전 사들이다.
근접 계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맷집을 믿고 맨몸으로 공격을 받아 내며 최대한 시간을 끌었고 원거리 계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장비를 착용하고 지원 사격을 날려 태세를 가다듬을 시간을 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송일학은 가볍게 혀를 찼다. 전문적인 전투 집단이 아니라고 해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으로 자연히 실력은 쌓이기 마련이었다.
‘생각보다 대응이 빨라. 쳇, 절반 이상은 죽이고 들어갔어야 하는 건데.’
“모두 진격! 원숭이 놈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전부 죽여 버린다!”
“이 새끼들 한국인들이야! 이런 식으로 비겁하게 뒤통수를 쳐 이 비겁한 놈 들…….”
“쳐라!”
“치긴 누굴 쳐! 공격!”
“으아아아아아!”
병장기가 부딪히며 시끄러운 소음을 발생시키고 각양각색의 스킬들이 발동되며 공간을 현란하게 수놓기 시작한다.
특별히 고르고 고른 실력자들이 기습까지 가했음에도 전황이 동세를 이루어가자 송일학이 이마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놈들의 대응이 시기적절한 것도 있지만 지금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이유는 이쪽이 제약을 안고 싸우는 이유가 컸다.
신원을 감추기 위해 평소 입고 다니던 무복 대신 움직임에 지장을 주는 거추장 스러운 갑옷을 걸쳤고 무공과 경공, 진법을 봉인하고 단타성 스킬을 위주로 사 용하며 싸움에 임하고 있다. 이러니 싸움이 고착 상태를 맞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잠깐 뒤로 물러나 전선을 살피던 송일학의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탱커 전진! 마법사들은 도적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계속해서 지원 사격을 날려!
적의 허리를 끊는다!”
‘저놈이군.’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저항하기 시작했던 남자. 화려한 사무라이 갑옷을 걸 치고 있는 남자는 일반적인 전사와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듯 두세 명의 부하들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다독여 전선을 대등하게 유지해 가고 있었다.
머리만 치면 나머지는 자연히 흩어질 거라는 계산을 끝낸 송일학은 검을 고쳐 잡고 남자를 향해 뛰어들어 검을 휘둘렀다.
“응”
공격을 쳐 내려는 의도로 휘두른 태도가 마치 접착제로 붙어 버린 듯 송일학의 검에 딱 붙어 버렸다. 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심코 앞으로 튀어나온 남자는 그 제야 떨어지는 검을 보고 송일학을 조용히 응시했다.
“네놈이 대장이로군.”
“…….”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여기 있는 놈들보다 몇 수 이상 앞서는 실력을 가진게 훤히 보인다.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벌이는 거지”
“…….”
송일학은 침묵을 유지했다. 말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간신히 익힌 몇 마디를 제외하면 한국어는 전혀 구사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을 겨누자 남자는 살짝 입술을 깨물고 투기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적의 정체가 무엇이든, 의도가 무엇이든 지금 중요한 건 일단 살아 남는 것이다.
“흐아아아아아!”
“……큭!”
눈 깜짝할 사이에 펼쳐진 혼신의 힘을 담은 난무를 아무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검술만으로 전부 쳐 냈다.
보통 실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남자는 본격적으로 스킬을 써 가며 덤비기 시작했고 송일학은 검과 도가 부딪히는 순간 낮은 신음을 흘리며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강하다. 상위 랭커, 어쩌면 탑 랭커급일 수도 있어. 하지만 잡을 수 있다!’
“잠력 격발! 망자의 갑옷! 천신의 검!”
숨겨진 힘이 몸을 타고 흐른다. 화려한 갑옷 위에는 음울한 회색빛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휘황찬란한 빛이 태도를 감싸기 시작한다.
지금이라면 설사 탑 랭커가 상대라 하더라도 밀리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을 느끼며 남자는 최대한 빨리 싸움을 끝내기 위해 승부를 걸기로 했다.
기운을 갈무리했다 단 한순간에 모든 것을 터트리는 발도술. 검강을 덧씌워 길 이, 위력, 속도 모든 것을 끌어올린 이 기술에 베이지 않을 상대는 없다.
기이하게도 검을 집어넣자 생과 사가 갈리는 전장 한복판에 놓여 있음에도 마음 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치 컴퓨터 화면 너머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는 것처 럼 주변의 모든 것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남자는 송일학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아니 조금만 더, 지금 아냐 좀 더, 지금 아니 한 발자국만 더.’
생각하고 휘두르면 늦는다. 날카롭게 갈고닦인 본능이 신호를 보내는 순간 검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남자는 본능이 보내는 신호에 날카롭게 캐치해 냈다.
‘바로 지금!’
서걱!
날카롭게 연마된 검은 질긴 가죽과 뼈를 푸딩처럼 가볍게 가르며 자신의 예리함을 증명해 냈다. 결의에 찬 표정 그대로 바닥을 나뒹구는 남자의 머리통을 바라 보며 송일학은 들릴락 말락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뻔히 보이는 기술에 걸려 줄 정도로 나는 바보가 아니야.”
서로 실력이 동수를 이루거나 약간 부족했더라면 남자의 공격은 훌륭한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그러나 송일학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남자와 동수를 이룰 정도로 훨씬 더 윗줄에 있는 실력자였다.
예상 밖의 분투에 놀라기는 했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리더 역할을 하던 남자가 죽어 나가자 전열이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일방적인 학살극으로 바뀔 무렵 이변이 일어났다.
지평선 너머에서 나타난 일단의 병력의 빠른 속도로 마을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 했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도적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은 송일학은 그 모습을 보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퇴각! 모두 튀어!”
일방적인 습격에 이은 무차별적인 유린, 그리고 뜬금없는 도주.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같이 웃고 울던 연인이나 친구들이 죽었다는 충격에 사람들은 추격할 생각은커녕 멍한 표정을 짓거나 세상이 떠내려가라 울부짖고 있었다.
물론 그럴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도적이나 궁수들이 전부 죽었기 때문에 추적은 불가능했었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경공을 펼쳐 무시무시한 속 도로 도주한 송일학은 추격이 없다고 판단을 내리고 잠시 휴식 명령을 내렸다.
“물건은 제대로 떨어트렸지 다른 길드 상징물을 떨어트린 멍청이는 없기를 빈다.”
“저희가 바봅니까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게.”
전투가 일어나는 도중 옷자락이나 아이템이 떨어지는 건 흔한 일이다. 이것으로저 마을에 관한 일은 끝난 셈이다.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거나 다소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그 정도는 네브라와 랏시가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슬슬 일어나지. 아직 돌아야 할 곳이 두 곳 더 남았다.”
자유연맹의 대처 능력을 생각한다면 이 작전은 결코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할 수 없다.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타격을 입혀야 하는 것이다.
‘미리내 그리고 유성훈. 너희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면 난 뭐든지 할 수 있다.
뭐든지…….’
마을, 휴양지, 별장, 간이 상설 시장 등 목표물은 많았고 자신 이외에도 특별히 구성된 여러 별동대들이 지금도 열심히 파괴 공작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결코 뒤쳐져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 송일학은 검을 고쳐 잡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송일학이 생각한 대로 곳곳에서 뜬금없는 기습이나 학살이 일어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난리 때문에 비명과 한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도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기습 때문에 절망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막아! 막아! 막으라고!”
“씨발! 명령만 하지 말고 네가 직접 나가서 막아! 저 괴물을 어떻게 막으라고!”
“경찰, 아니 경비병 불러! 지금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고! 저 미친 살인자 새끼 좀 잡아!”
“이런이런.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기는 사람들이 안 온다느니 뒷돈 먹여서 경비병도 얼씬도 안 한다더니 하던 건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지 뭐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도 안 오는 걸 보면 너희들 말이 진짜인 것 같네.”
찌르고, 베고, 뭉개지고, 찢기고, 너덜너덜해지고, 뜯겨 나가는 등 차 한 잔 마실 만한 시간에 다양한 방법으로 동료들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이 지옥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낸 당사자인 성훈은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손가락을 까딱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