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Writer In A Fantasy World RAW novel - Chapter 690
■ 689화. 시련 (1) □ ᓚᘏᗢ
“자유다! 드디어 자유라고!”
군만두형을 넘어 통조림형까지 당한 로만이 예배실 밖으로 뛰쳐나오며 환희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교황청에 있던 예배실에서 튀어나온지라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로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듯이 달리다가 교황청 밖으로 달려나갔다.
-아아! 진짜 태양이다! 진짜 태양이라고! 루미너스 님이시여! 자비에 감사합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쨍쨍한 태양에게 기도를 올리는 로만이다.
엄숙해야 할 교황청도 아니고 바깥에 나가 저러니 그 누구도 쉬이 제지할 수 없었다.
더구나 저런 사람이 한두 명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고행을 거친 후에 깨달음을 얻어 간혹 저러는 편이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로만이 땅에 키스를 하거나 태양을 향해 기도를 올려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듯했다.
“그렇게 좋은가?”
그 사이 나는 로만과 함께 있던 예배실에서 나왔다. 두 손에는 두툼한 원고가 쥐어져 있다.
로만이 하루빨리 원고를 완결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며 루미너스에게 용서까지 받아줬다.
대신 루미너스도 작품을 완결하는 것으로 모든 죄를 용서하겠다고 했을 뿐. 나는 옆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칼즈처럼 될까봐 풍경까지 보여줬는데.’
폭포수가 흐르는 숲의 풍경도 보여주고, 깜깜한 밤하늘에 모닥불만 타오르는 풍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화이트 노이즈 즉 백색 소음이라고, 단순히 소음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들까지 보여줘서 집중력을 올려줬다.
로만도 처음에는 만족스러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우울해지더라.
어차피 이 모든 것들이 허상인데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고. 자기는 진짜 삶을 살고 싶다나 뭐라나.
“끝나셨나요?”
원고를 대충 확인하고 있을 때 케이트가 나에게 다가왔다. 기대에 찬 표정하며 목소리다.
통조림 속의 시간은 대략 1개월이 흘렀다. 완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나 로만이 안에서 딴청을 피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깥 시간은 5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두툼하게 쌓인 원고를 보여주면서 대답했다.
“네. 전부 끝났습니다. 저택에 돌아가서 다시 검수해야겠지만요.”
“그, 그러면······”
내 말에 케이트가 잔뜩 기대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손을 꽉 맞잡은 걸 보면 서둘러 거사를 치르고 싶은 모양이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케이트는 다른 애인들에 비해 다소 급한 것 같다.
때가 오면 하겠지~ 라는 마인드였던 애인들과 다르게 하루빨리 이어지고 싶다는 느낌.
종교적인 색채가 잔뜩 끼여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녀에게 더욱 특별한 날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해야 할 일은 아직 남아있다. 우선적으로 체리부터다.
“안 돼요.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체리와 상의해야 된다고 했잖아요. 특히 그녀의 가문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필수에요.”
“체리 개인은 몰라도 어째서 가문과 상의해야 된다는 거죠?”
“체리는 귀족이니까요. 더구나 체리는 분위기만 그렇지, 미적으로 상당히 아름답기도 하고요. 어쩌면 지금도 혼약이 오고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체리의 아버지, 레티시 백작은 체리와 내가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 알고 있다. 스승과 제자에 가깝게 보이겠지.
하물며 현재 나는 결혼을 한 몸이지만 수많은 애인들을 거느리고 있다. 공공연한 비밀이라 숨기는 건 크게 의미없다.
그러니 레티시 백작, 정확히는 딸을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껄끄러울 것이다. 가문 입장에서도 그렇고.
비록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애가 망가지긴 했지만 말 그대로 잘못된 교육이었을 뿐, 그녀를 향한 애정은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그녀의 미래를 존중하자는 거예요. 레티시 백작을 설득한다고 한들, 체리가 거절하면 의미가 없다는 거죠.”
“체리를 설득하면 레티시 백작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까?”
“레티시 백작에게 납득이 갈만한 이유를 대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미친 사람 취급할 걸요?”
솔직히 말해서,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부지리에 가깝다. 스타비르크에서의 일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적절한 진실이 섞인 구라를 통해 세간 사람들에게 오해 아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크기를 키워나갔으니.
케이트가 교리이니 뭐니 했을 때는 양심이 얼마나 찔렸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훗날 나를 중심으로 둔 사이비 종교가 탄생하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신은 몰라도 종교는 조금······’
신으로서 숭배받는 것과 하나의 종교로서 숭배받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지금도 신앙심을 가진 채 나를 숭배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이건 신들이 알려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종교로 바뀐다면 몹시 당황스러울 것이다. 종교는 인종을 초월시키는 문화이자 철학의 시작점이니까.
거짓말로 포장된 종교는 결코 진실된 종교라 할 수 없다. 지구의 예수님과 부처님을 모욕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작 님을 미친 사람 취급한다면 그 즉시 성전을 선포할 겁니다.”
내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케이트가 폭풍한설이 흩날리는 어투로 말했다.
그 말에 오싹해지는 건 나다. 벌써부터 적대감을 가진다면 케이트 성격상 진짜로 성전을 선포할지도 모른다.
이에 그녀가 오해를 풀 수 있도록 적당한 말을 골라 입을 열었다.
“제, 제 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무조건 그렇다는 게 아니에요.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잖아요? 이건 케이트 씨가 조심하셔야 될 부분이에요.”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이작 님은 대동하지 않으실 겁니까?”
케이트가 의아함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 하기야 그녀로서는 어째서 내가 직접 찾아가지 않는 건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만큼은 대리인을 통해 의견을 전달해야 된다.
괜히 내가 직접 나서봐라. 이게 무력 시위지 아니면 뭐겠나.
‘그냥 협박이지.’
내 여자가 되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주겠다. 이런 의사를 표명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체리 성격상 완강히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여러 번 기회를 줬음에도 그녀는 멀리서 지켜보기로 정했다.
따라서 내가 설득하는 것보다 케이트가 설득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상징적으로든, 효율적인 면에서든 말이다.
“제가 직접 나서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게다가 체리 같은 경우는 케이트 씨가 원하는 거잖아요?”
“아이작 님께서는 체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저에게 순수한 사랑을 바라는 여인에게는 언제든지 보답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리나도 이런 저런 변명을 댔지만 나를 향한 마음은 순수했다. 마리조차 기꺼이 받아들일 정도로 말이다.
체리는 자존감이 바닥을 찍다 못해 나락을 뚫고 있어서 그렇지, 기회는 언제든지 열려 있다.
“꼭 체리를 설득시킬 필요는 없어요. 원하신다면 케이트 씨 혼자······”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말씀을 듣고나니 더욱 결심이 서는군요. 반드시 설득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케이트가 결의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최근들어 체리와 자주 붙어다니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강경하게 반응하는 건지 모르겠다.
“체리가 케이트 씨에게 도움을 주기라도 했나요?”
“저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돕고 있습니다.”
케이트조차 불가능한 일을 돕고 있다. 그게 뭔지 궁금해진다.
일단 육체적인 일은 절대 아닐 것이다. 체리는 일반인, 그것도 마나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이다.
나는 한때 기사 훈련을 받았기에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일반인은 대체로 마나 사용이 힘들다.
앞으로 기계문명이 더 크게 발달될 테니 그런 경향이 더 강해질 터. 과연 미래에도 마나를 사용할지 의문이다.
“알겠어요. 그럼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체리와 관련된 사안은 전적으로 케이트 씨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저를 찾아와주세요.”
“······전적으로 저에게 맡긴다고 하셨습니까?”
“?”
케이트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그녀를 바라봤다. 대체 어느 부분에 포인트를 잡은 건지 깜짝 놀란 표정이다.
나는 살짝 떨떠름해졌으나 어디서 오해를 한 건지 몰라 대답부터 꺼냈다.
“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직접 나서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체리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음······”
이제야 대충 가닥이 잡히네. 앞으로도 자신을 대리인으로 세울 거냐는 질문인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었지만, 골똘히 생각해보니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괜히 신들이 교황을 통해 의지를 피력하겠나.
직접 말을 건네기도 힘들고, 말을 건네는 순간 그 파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머스크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고, 그 편지의 내용이 언론에 밝혀지는 순간 세상이 난리나는 것처럼 말이다.
‘당분간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건 피해야 되나?’
이제 한 마디 한 마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세상이 종말론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케이트를 대변인으로 내세우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케이트는 무려 루미너스 교단의 추기경이었으니까.
물론 적당한 개연성이 필요할 것이다. 루미너스의 추기경이면서도 내 입장을 밝히는 건 모양새가 이상하다.
“그리 하세요. 대신 루미너스 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겁니다. 케이트 씨는 루미너스 교단 소속이니까요.”
“아이작 님은 신들께서 데려온 영혼이니 괜찮을 겁니다. 루미너스 님의 의지가 곧 아이작 님의 의지고, 아이작 님의 의지가 곧 루미너스 님의 의지이니.”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나는 피식 웃으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지구로 따지자면 예수와 부처를 동시에 믿는 사람일까.
물론 지구에서 그러면 짜디 짠 시선으로 바라보겠지. 하지만 루미너스, 정확히는 신들과 나는 ‘연관성’이 매우 깊다.
악마 숭배자의 개짓거리로 내가 이곳으로 넘어올 때 직접 보필한 자들이 신들이니까. 개연성만큼은 확실하게 보장돼 있는 것이다.
‘야훼와 예수랑 비슷한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케이트가 두 손을 맞잡으며 눈을 감았다.
보아하니 내 허락을 듣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은······
“목소리를 낼지어다······”
“······케이트 씨?”
“아이작 님.”
불길함이 들어 그녀를 부르자 천천히 눈을 뜬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전보다 훨씬 맑아진 눈동자다.
“아이작 님.”
“······말씀하세요.”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뭘 노력한다는 거야. 사람 불안하게.
그래도 노력한다니 칭찬 정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
나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케이트를 응원해줬다.
“······기대할게요.”
여기서 내가 알아야 했던 건.
“응원에 필히 보답하겠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이다.
* * *
아이작의 응원 한 마디로 스스로에게 사명감을 짊어진 케이트.
가장 먼저 그녀가 할 일은 소중한 친구이자 동반자, 체리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사명을 도와주는 동반자로서 그녀에게도 아이작의 은혜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저 따위가요······?”
“체리. 아이작 님은 목소리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체리도 아이작 님에게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요?”
“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아닌데······”
“으음······”
처음부터 ‘시련’을 마주해버렸다.
‘어째서 체리를 설득시키라고 한 건지 알 것 같네요. 이게 첫번째로 내려주신 시련이겠죠.’
물론 케이트의 사고회로는 그쪽으로 돌아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