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81)
EP.381 수학여행 전초전
“보드마카? 색상별로?”
“예.”
“잠깐만.”
친절한 교사가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더니 보드마카를 몇 개 꺼내, 내게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덕담을 건넸다.
“요즘 아주 잘하고 있어. 앞으로 더 발전할 여지는 충분하니까 열심히 하자.”
종종 교무실에 올 때마다 이런 말을 듣고는 한다.
성적이 좋아서, 그리고 사고를 안 치니까 그런 거다.
기쁘긴 하다. 그러나 여교사가 칭찬을 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예.”
“그래. 혹시 선도부는 할 생각 없어? 학생회에는 내가 추천을 해주마.”
음음. 여태 날 봐온 교사치고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구나.
그러고 보니 저번에 미유키도 선도부를 하라고 하지 않았었나?
단칼에 고개를 가로저은 내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왜?”
“일찍 일어나는 게 싫어서요.”
“알았다. 가봐.”
“수고하세요.”
목례와 함께 허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한 나는 교무실을 나와 교실로 돌아갔다.
이후 부반장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미유키의 책상에 받아온 마커를 올려놓았다.
“뭐야? 이것밖에 없었어?”
“어. 그냥 주는 대로 받아온 건데.”
“그래? 알았어. 고생했어.”
내 등허리를 토닥거리며 의자를 빼주는 미유키.
갑자기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는 미유키에게 피식한 내가 자리에 앉자, 그녀가 돌연 내 한쪽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에 움찔한 내가 미유키를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자신이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여전히 부반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쉽게 말해 본능적인… 의지할만한 곳을 찾는 행동이라는 거다.
왜 미유키의 애정표현은 받으면 받을수록 신선한 기분이 들까.
레퍼토리는 거의 같은데.
아마 그녀가 사랑스러워서 그렇게 느껴지나보다.
그렇게 오후수업을 끝낸 나는, 미유키와 함께 교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학생회실로 가는 그녀와 복도에서 찢어지려고 하는데,
“어…? 거기! 잠깐만요!”
제자리에 서서 나와 대화를 하며 복도 난간을 의미 없이 흘끔거리던 미유키가, 밑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뭔가 싶어 고개를 내밀어보니, 복도 난간의 틈 사이로 짧은 치마를 입은 누군가가 미유키의 말을 듣고 도망을 가는 게 얼핏 보였다.
순간적으로 금발이 살짝 비춰졌는데, 히요리가 분명했다.
“아사히나! 너 아사히나 맞지! 거기 안 서!?”
미유키 또한 정체를 눈치챈 듯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히요리를 부르고 있었다.
히요리는 당연히 미유키의 말을 무시했고 말이다.
“저게…! 마츠다 군, 아사히나 동아리가 패션 디자인부였지?”
완전히 사라져버린 복도로 내려간 미유키의 물음.
인상을 팍 쓰고 있는 그녀의 뒷목을 진정하라는 듯 주무른 내가 대답했다.
“그렇지. 지금 가려고?”
“응. 딱 걸렸어.”
“뭐가 걸렸는데?”
“치마. 교칙 위반이야.”
“벌점 주게?”
“당연하지. 왜? 말리려구?”
눈에 쌍심지를 켜는 미유키를 보니 하렘은 한참 멀었구나 싶다.
양손을 어깨 위로 살짝 들어올린 내가 말했다.
“아니.”
어차피 히요리는 미유키가 도착하기 전에 치마를 갈아입을 거다.
그녀는 순순히 벌점을 받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도 구경은 하고 싶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따라가봐야겠다.
“좋아.”
콧김을 훅 내뿜은 미유키와 함께 패션 디자인부로 향한 나는, 한발 뒤로 물러나 그녀를 지켜보았다.
패션 디자인부의 부장에게 자신의 직책을 소개하고, 허락을 구한 뒤 부실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곧 히요리를 발견했다.
“아사히나. 잠깐만 이리 와봐.”
“넹?”
미호와 함께 책을 보고 있던 히요리의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대답.
그에 콧방귀를 끼려던 미유키는,
“…. 응?”
히요리의 하반신을 보더니 무척이나 당혹스러워했다.
그녀의 치마가 무릎을 살짝 덮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맛자락을 본 미유키가 순간 혼란에 빠진 듯 눈을 동그랗게 뜨자, 히요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 치마 잘 입었네…?”
“치마요? 치마가 왜요?”
“아니… 그… 너 아까 복도 계단참 쪽에 있지 않았어? 1학년 복도 쪽에…”
“거긴 매일 가는 곳이잖아요. 정확히 언제요?”
“한… 3분 전에.”
“아뇨? 저 여기 온지 5분 정도 됐는데요?”
아주 태연하게 발뺌을 하고 있구나.
연기인지 진짜인지 나조차도 분간이 힘들 정도다.
“그, 그래…?”
히요리의 거짓말에 홀라당 넘어간 미유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히요리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더니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이신데요?”
“아니… 어떤 금발머리 여자애가 치마를 짧게 입고 있다가, 내가 부르니까 도망가길래…”
“그래서 저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금발 여자는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잖아요.”
기분이 약간 상한 듯한 히요리의 어감에 찔끔했을까?
미유키가 순순히 사과를 했다.
“미안해. 오해했어.”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무안해하고 있는 미유키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존재했다.
그건 바로 미호의 치마가 무척이나 짧다는 거다.
서로 바꿔입었나본데… 히요리에게만 집중을 하고 있어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패션 디자인부의 부원들도 다 공범인가?
아니, 눈빛을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모르는 눈치다.
히요리가 시간을 얘기할 때도 애매하게 5분이라고 해서, 미유키가 말한 시간보다 큰 차이가 없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완전히 히요리의 독무대구나.
영악하기 짝이 없다.
“그럼… 확인했으니까 갈게.”
“넹. 근데 마츠마츠 선배는 왜 온 거예요?”
친근한 애칭으로 날 부르는 히요리가 못마땅했을까?
미유키가 무어라고 대답을 하려는 내 손목을 붙잡더니, 패션 디자인부 부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부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제 마츠다 군은 검도부실로 가. 다른데 들르지 말고.”
대놓고 히요리를 신경 쓰는구나.
정녕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날은 없는 걸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어떤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벤트가 나와주지는 않으려나 싶다.
아니면 직접 만들어야하나? 그래야할 수도 있겠다.
“알았어.”
“응.”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돌연 폴짝 점프를 하더니,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딪치는 미유키.
그냥 까치발을 들면 되는데 격하게 뛰는 모습이 웃기다.
다소 강하게 입술이 부딪쳐 아팠는지 자신의 입가를 꾸욱 꾹 누르는 그녀를 보며 피식한 나는, 끝나면 연락을 하라는 말을 남기고 건물을 나섰다.
**
다음날.
오랜만에 혼자 아카데미에 간 나는, 주차를 마치고 건물로 들어가려다가 메시지가 오자 멈칫했다.
[도착했어요?] [어.] [그럼 바로 매점으로 와줄 수 있어요? 꾹꾹이 했던 곳.]그냥 어제 매점 근처 골목으로 오라 하면 되지, 하필 꾹꾹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저의가 궁금하다.
답장을 보내고 그쪽으로 향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히요리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츠마츠.”
오는 동안 시야엔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어디 숨어 있다가 날 보고 모습을 드러냈나보다.
몸을 돌린 나는 긴 치마를 입은 히요리를 보고 피식했다.
“치마 긴 거 입었네?”
“넹. 괜히 트집 잡히면 벌점 받으니까요.”
미유키가 히요리를 신경 쓰듯, 히요리 또한 미유키를 의식하고 있다는 게 티가 난다.
“잘했어.”
“오늘은 마귀랑 같이 안 왔어요?”
“마귀?”
“하나자와 선배요.”
이거 미유키가 들으면 진짜로 화를 내겠는데.
단추가 잘못 꿰어져도 아주 단단히 잘못 꿰어진 것 같다.
히요리의 등을 툭 두드린 내가 말했다.
“미유키는 학생회 회의 있어서 먼저 일찍 갔어. 그리고 그렇게 부르지 마. 말 예쁘게 하랬잖아.”
“여자친구라고 챙겨주는 거예요?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건가요?”
“챙겨줄 생각이었으면 어제 너랑 미츠시마가 치마를 바꿔 입었다고 말했겠지.”
“눈치챘었어요?”
“챘지.”
“근데 말 안 한 이유는 뭐예요? 절 보호하려구요?”
“그런 것도 있고, 둘이 친하게 지냈으면 해서.”
“그건 힘들 것 같아요.”
“왜? 서로 조금만 양보해주면 잘 맞을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히요리가 갑자기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뭘 하나 싶었던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한쪽 눈과 귀만 찔끔 연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런 목소리로 말해도 안 돼요.”
“무슨 목소리?”
“설득하려는 목소리요.”
“내가 그랬어?”
“네.”
그냥 네가 내 목소리를 멋대로 그렇게 받아들인 거 아니고?
라는 말을 삼킨 나는, 주머니에서 어제 사놓았던 레몬 맛 막대사탕을 하나 꺼냈다.
“이거 줄게.”
“뭐예요?”
“사탕.”
“뇌물 줘봤자 소용없는 건 알죠?”
“저번에 받은 거 갚는 건데.”
“그럼 좋아요.”
사탕을 홱 가져가 포장지를 뜯는 그녀.
달달하고 상큼한 맛이 느껴졌는지 입에서 막대사탕을 이리저리 굴리는 히요리를 보며, 내가 말했다.
“그리고 소용이 있길 바라면서 주는 게 뇌물 아니야?”
“뇌물을 고작 사탕으로 줘요?”
“맛있게 먹고 있으면 뇌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는 거지.”
“맛없는데요?”
“그럼 다시 줘.”
“뺏어서 뭐하게요?”
“내가 먹으면 되지.”
“제가 먹던 건데요? 침 마구마구 발라놨는데?”
“뭐 어때. 세균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답이 나름 마음에 들었을까?
히요리의 한쪽 입가가 씰룩거렸다.
사탕을 이빨과 입술 사이에 놓고, 막대를 손으로 잡고 좌우로 굴리면서 사탕을 쫍쫍 빨아먹던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뇌물이 마음에 드네요. 한 번 생각은 해볼게요.”
“그럼 다행이고. 근데 왜 불렀냐?”
“심심해서요.”
“그럼 수업 전까지 시간 좀 때우다가 갈까?”
“좋아용. 아, 혹시 수영복 사진 볼래요?”
“웬 수영복?”
“이번에 산 거 입어봤거든요. 어떤지 봐봐요.”
내가 사준 키링을 짤랑거리며 휴대폰을 들어올린 히요리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더니 화면을 보여주었다.
집 화장실 거울에서 찍은 듯한 히요리의 수영복 차림을 본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수영복이 무척이나 어른스러웠기 때문.
달리 말하자면 노출이 심했다.
“그렇게 입고 가려고?”
“넹.”
저 저 노출광을 어찌 교육해야 좋을까?
어차피 나와만 놀 예정이라 뭘 입든 상관은 없긴 하지만, 그래도 가디건은 걸치라고 해야겠다.
이 수학여행 때 미유키와 히요리의 관계에 발전이 있어야한다.
이대로라면 두 사람은 날마다 으르렁댈 거다.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잘 생각해보면서, 이벤트가 일어나기를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