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400)
EP.400 두 번째로 맞이한 여름방학
“마츠다 군, 매점 가는 거야?”
“어. 같이 갈래?”
“나 다음 수업 교보재 가지러 가야 돼. 딸기우유 하나만 사줄 수 있어?”
“알았어.”
“고마워.”
미유키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교실 밖으로 나간 나는, 그녀와 헤어지고 매점으로 향했다.
왜 1교시가 끝나면 매점으로 사람들이 몰릴까?
그러한 고찰을 해보면서 줄을 서고 있는데,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츠마츠.”
고개를 돌리니 히요리가 미호와 함께 날 쳐다보고 있었다.
매점에 둘이서 오는 건 간만 아닌가?
허리를 꾸벅 숙이는 미호에게 인사를 건넨 내가 히요리에게 물었다.
“뭐 살 거 있어서 왔어?”
“넹.”
어제 내게 키스를 해온 사람치고는 굉장히 천연덕스럽다.
없던 일로 여기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을 텐데… 저의가 궁금하다.
“나 스이츄 하나만 대신 사줘요. 돈 줄게요.”
갑작스럽게 물건을 사 달라 부탁하는 히요리.
의아한 표정을 지은 내가 내 옆을 가리켰다.
“같이 줄서면 되는데 왜?”
“화장실 급해.”
“다녀오고 나서 왔어야지 그럼.”
“갑자기 급해졌어요.”
이상한 핑계를 대는 걸 보니 애써 태연하게 굴려 하고 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눈을 마주치고는 있었지만, 그리고 티는 안 내고 있었지만 부끄러운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히요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 내가 대답했다.
“알았다.”
“고마웡.”
“미츠시마, 너는 뭐 먹을래?”
미호에게 나긋한 기색으로 저리 묻자, 그녀가 어리둥절해하더니 입을 열려고 했다.
“아, 저는…”
그때, 히요리가 그녀의 팔을 잽싸게 잡아끌었다.
“무, 뭐야…? 왜 그래?”
눈을 동그랗게 뜨며 히요리의 이상행동을 캐묻는 미호였으나, 대답은 당연히 들려오지 않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 게 딱 저 모습인 것 같다.
건물 쪽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린 나는, 여러 먹거리들을 사고 히요리에게 메시지를 남겨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다.
때마침 들어간 건물 신발장 앞에서, 히요리가 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사왔어요?”
내가 가는 곳마다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이템을 요구하는 게, 마치 학교를 무대로 한 공포게임에 나오는… 퀘스트를 주는 학생 귀신 같다.
“어. 근데 미츠시마는 왜 없냐?”
“미호는 교실로 돌아갔는데요.”
먼저 보낼 줄 알았다.
미호가 좋아할만한 간식거리를 사길 잘했다고 생각한 나는 자그마한 봉투를 히요리에게 내밀었다.
“자.”
“웬 봉투에요?”
“같이 먹으라고 이것저것 샀어.”
“그래요? 얼마에요?”
“됐어. 사주는 거야.”
“왜요?”
“캐묻지 말고 어른이 주면 주는 대로 받아라.”
“1년밖에 차이 안 나면서.”
“안 준다?”
“아 싫엉…!”
내 손에서 봉투를 낚아채듯 가져간 히요리의 낯이 희희낙락해졌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 손에 들려있는 딸기우유를 본 히요리가 물었다.
“딸기우유는 뭐예요?”
“미유키 거.”
“저 줘요.”
심보 고약한 것 좀 봐라. 표정에 욕심이 그득하다.
수학여행 때 미유키와 나름 잘 어울려놓고선 당당하게 손을 내밀며 딸기우유를 빼앗으려고 하다니…
물론 농담이겠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엉덩이를 때찌해야하나 싶다.
“안 돼.”
“내놔.”
“그거 먹기 싫어?”
“그걸로 협박하는 거예요? 줬다 뺏는 게 얼마나 나쁜지 몰라요?”
“그럼 처신을 잘해. 오늘은 치마 예쁘게 입고 왔네?”
그녀의 눈이 순간적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머릿속에서 어제 일이 그려진 모양이었다.
무릎 아래를 덮는 자신의 치마를 내려다본 그녀가 화제를 돌렸다.
“마츠마츠, 곧 방학이잖아요.”
“그렇지.”
“방학 때 선배네 집에 자주 놀러가도 돼요?”
“와. 대신 뜬금없이 찾아오지 말고 연락을 해.”
“왜요? 야한 일 하는 중간에 들이닥치면 곤란해서?”
가소로운 도발을 하고 있구나.
속으로 실소를 터뜨린 내가 반문했다.
“어떤 야한 일을 말하는 건데?”
“네?”
자신의 큼지막한 눈을 끔벅이는 히요리.
설마 내가 반격을 해올 줄은 몰랐던 것 같은 얼굴이다.
“그 야한 일이 어떤 거냐고.”
“뭐… 딱 떠오르지 않아요?”
“아니?”
“뻥치지 마요…!”
천연덕스러운 내 표정을 읽어내고는 쑥스러움으로 가득한 앙탈을 부리는 게 깜찍하다.
양팔을 허리 아래로 쭈욱 뻗고는 고개를 치켜든, 어른에게 대드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내가 말했다.
“아무튼 연락하고 와. 다른 건 몰라도 다른 사람 집에 갈 땐 그러는 게 기본적인 예의잖아.”
“싫은데요.”
“그럴 수 있지?”
“…. 네.”
어차피 말을 아주 잘 들을 거면서, 렌카처럼 꼭 한번은 튕기는구나.
만족스런 미소를 지은 나는 히요리의 얼굴을 빤히, 아주 빤히 쳐다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입술이었다.
“무, 뭐예요…!”
내 시선이 닿아있는 곳을 알아차리고는 무척이나 당황해하는 그녀.
애써 기를 세워보지만 티끌도 티가 나지 않는 게 웃기다.
그 귀여운 행동에 씨익 웃어보인 나는, 내 아랫입술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물었다.
“입술에 바르는 거 색 바꿨냐?”
“네?”
“색이 평소랑 좀 달라서.”
“아, 네. 쿨숭아라고 틴트 따로 있어요.”
“쿨숭아는 뭐야?”
“쿨한 복숭아.”
“그게 틴트 이름이야?”
“맞아요.”
그냥 쿨한 분홍 톤이라고 하면 되지…
화장품 계열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이름을 짓는데도 무척 힘들 것 같다.
그나저나 복숭아라… 치나미가 몹시 좋아하겠는 걸?
기억해뒀다가 사주든지 해야겠다.
“손톱은 왜 그렇게 광택이 심해?”
“팁 붙였으니까요.”
“별 걸 다 하고 다니는구나.”
“오늘은 귀 피어싱도 하나 더 뚫으러 가요. 요기.”
우리 히요리는 방학 때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폭주하면서 온갖 치장거리를 다 하러 다닐 것 같아.
자신의 옆머리를 넘기며 한쪽 귀를 보여주는 그녀의 바보털을 툭 건드린 내가 말했다.
“그런 건 적당히 하자. 안 해도 예쁜데 뭘 그렇게 주렁주렁 달려고 하냐.”
그저 툭 던진, 지나가는 듯한 칭찬.
그에 히요리의 귀가 살짝 달아올랐다.
“뭐래용. 할 거예요.”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나는 안다.
히요리가 오늘 피어싱을 뚫으러 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예전처럼 확 드러날 정도로 쑥스러워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지금 저렇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하는 표정이 몹시도 꼴린다.
방학 때 히요리와 첫 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그림이 좋지 않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해본 나는 히요리의 어깨를 잡고 돌렸다.
그리고는 계단을 향해 그녀의 등을 약하게 밀었다.
“들어가라. 수업시간 다 됐다.”
콧속으로 살랑거리며 들어오는 레몬 향이 마치 여름방학의 신호탄 같다.
몸에 힘을 빡 주는 히요리를 가볍게 나무란 나는, 그렇게 그녀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
“머리!”
쩌억-!
간결하게 기합성을 내뱉은 렌카의 죽도가, 그녀의 동급생의 머리에 닿는다.
격자부위에 깔끔한 타격. 보나마나 한판이었다.
“한판!”
예상대로, 심판을 봐주고 있던 고로 감독이 깃발을 들어올렸다.
요새 대회가 코앞이라 그런지 대련을 하는 날이 많아졌는데, 타격 소리 덕분에 마음이 상쾌해진다.
그 정도로 렌카의 공격은 시원시원했다.
“손이 근질근질하신가보지요?”
구경을 하고 있는 내게 다가온 치나미의 물음.
볼 때마다 꼭 안고 싶은 그녀를 사랑스런 눈으로 내려다본 내가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니네요.”
“아쉽군요.”
“그런데 스승님은 따로 대련 같은 건 안 하나요?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몇 번 했었던 걸 빼면 본 적이 없네요.”
“저는 렌카와 따로 하고 있답니다.”
“그래요? 언제?”
“최근 하교하고 렌카의 집에 들르는 일이 잦아요. 렌카의 집에는 따로 검도를 위한 수련방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해요.”
“흥미롭네요. 거기서는 꼭 검도만 해야 하나요?”
“넷? 무슨 말씀이신가요?”
치나미의 고개가 한쪽 방향으로 갸웃했다.
내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굳이 자세히 설명해서 순수한 치나미에게 속세의 나쁜 면을 심어주지는 말아야겠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회가 끝나면 저희 집에서 하루 묵겠다고 한 약속은 잊지 않았죠?”
“낫…! 그것은 고민을 조금 해봐야할 사항인데요…”
“저번에도 같은 말을 하지 않았어요?”
“아, 아직 생각 정리가 잘 안 돼서요…”
순식간에 수줍어진 치나미를 보니, 말랑쫀득 마사지를 해주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린다.
사랑스러운 그녀를 내려보며 방긋 웃은 나는, 때마침 대련이 끝난 렌카가 다가오자 인상을 구겼다.
그러자 자신의 얼굴에 맺혀있는 약간의 식은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던 그녀가 화를 냈다.
“뭔데? 너 뭐야…!”
“뭐가요.”
“왜 사람을 보면서 인상을 써? 죽을래?”
미유키의 집에서 하루 묵으며 서로를 향한 사랑을 더욱 키우고, 히요리와의 첫 관계 도전에, 친자매보다도 더욱 친한 두 사람과의 쓰리섬, 그리고 렌카의 방치 플레이까지…
음음. 방학 때는 할 게 많겠다.
“야…! 너 나 무시해?”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걸 알아차렸는지, 렌카가 주변 눈치를 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렌카가 이럴 때면, 치나미는 어김없이 그녀를 말린다.
“친우님, 후배님한테 죽을래가 뭔가요? 말씀이 너무 험하세요.”
“아니, 치나미…! 왜 나한테만 엄격해…! 쟤가 너 안 보이는 데에서 나한테 썩은 표정을 지었단 말이야…!”
치나미가 정말이냐는 듯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이에 어깨를 으쓱인 내가 천연덕스럽게 핑계를 대었다.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려는 걸 부장이 오해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지요?”
“그럼요.”
렌카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쳤다.
북 치고 장구 치는 우리가 답답해 미칠 것 같은 모양이었다.
셋이 있을 때 대화를 나누다보면, 치나미가 내 편을 드는 일이 잦다.
하지만 이건 다 렌카가 자초한 거다.
왜? 그녀는 치나미와 단둘이 있을 때 내 뒷담화를 했을 테니까.
양치기 소년… 아니, 소녀의 말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업보다, 업보.
저렇게 억울해하는 렌카를 보는 것도 좋다만, 내가 무시를 하니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 또한 보고 싶다.
어떤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지 기대가 굉장히 크다.
가슴을 쿵쿵 때리며 자신의 진실함을 토로하는 렌카.
그런 그녀의 등허리를 사근사근 토닥인 치나미가 말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복숭아를 먹도록 해요.”
그러고 보니 여름은 복숭아의 제철이다.
치나미가 아주 행복해하겠구나. 집에 산더미만큼 쌓아놓고 어머니인 모모카와 함께 줄여나가겠지.
모모카를 생각하니 렌카의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분명 렌카와 똑 닮았을 거다.
가벼운 해프닝을 즐긴 나는 부활동을 끝내고 미유키와 만났다.
방학을 목전에 두어 학생회 일이 바빠졌는지 약간 피로한 표정인데, 오늘은 푹 쉬게끔 해줘야겠다.
“마츠다 군, 검도부는 이노오 선배가 부장이시지? 나나세 선배가 매니저고.”
조수석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은 미유키의 물음.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킨 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그럼 두 분한테 내일 검도부에 들른다고 말씀드려줄래? 감독님한테도.”
“검도부는 왜?”
“다음 학기 예산 조사차 방문할 예정이야.”
“회계 업무는 네가 하는 거 아니잖아.”
“검도부는 내가 하겠다고 했어. 오랜만에 마츠다 군이 검도복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서.”
미유키만의 방식으로 튀어나오는 애정표현은 언제 들어도 좋다.
싱거운 콧바람을 내쉬며 웃은 나는, 그렇게 정문을 나가면서 오늘의 평화로운 아카데미 생활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