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429)
EP.429 렌카 조교일지 5
“일어났니? 잘 잤어?”
미유키와 사이좋게 1층으로 내려오니, 앞치마를 입은 미도리가 우릴 반겼다.
살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순간 알몸 에이프런이라도 한 줄 알고 식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놀랄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말이다.
“예,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새집 진 거 멋있네?”
아주머니도 예뻐요.
특히 티셔츠 안으로 검은 브라가 살며시 비치는 게 너무 야합니다.
라는 말을 삼킨 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와서 앉아. 금방 차려줄게.”
“알겠습니다. 아저씨는요?”
“일찍 나갔어.”
그럼 집 안에는 남자가 나 한 명밖에는 없다는 뜻이로군.
지금이 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거실에 삼삼오오 모여 도수가 약한 술을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적인 주제로 살짝 넘어가면 그림이 아주 좋을 텐데… 통탄스럽기 짝이 없다.
식탁에 앉아 부스스한 눈으로 미유키와 손을 꼬옥 잡은 나는, 카나가 내려오자 아침 특유의 힘 빠진 미소를 지어보였다.
“안녕하세요, 누나.”
“응. 안녕.”
카나의 입장에서 나는 남인데,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할 생각조차 않는 게 웃기다.
친남매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가?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꼴린다.
“잘 잤나보네?”
미유키의 맞은편에 앉은 카나의, 약간의 익살스러움이 섞여있는 말투.
이에 미유키가 앉은 자리의 식탁보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카나의 몸이 움찔했다.
입을 살짝 벌려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는 동생을 노려보는 것을 보아, 미유키가 허튼 소리를 하지 말라며 발로 꼬집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미유키의 집 식탁보는 길었다.
이 안에서 발로 내 것을 만져주는 상황이 뜬금없이 떠오르는데, 갑자기 성욕이 확 올라온다.
이런저런 야한 생각을 하는 사이, 잘 구워진 고등어를 마지막으로 아침 준비를 끝낸 미도리가 의자에 앉았다.
“맛있게 먹으렴.”
잠이 덜 깬 아침이라 그런가, 목소리가 더욱 다정하게 느껴진다.
저런 말투로 옳지, 옳지 하며 내 골반을 두드려주고 사정을 유도하는 미도리가 상상되어 미칠 것 같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친 나는, 어제 미유키가 2층 욕실에 둬놓은 내 칫솔로 양치를 끝냈다.
이후 미유키의 방으로 돌아가, 침대를 정리하고 있는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어제 이불이랑 침대보는 어떻게 됐냐? 빨았어?”
“응.”
“언제?”
“어제 바꿨을 때 세탁기 돌려놨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빨래터에 널어놨어.”
“아주머니가 뭐라고 안 하셔?”
“왜 빨았냐고 물어보긴 했어.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고 하니까 그러냐고 했구.”
미도리의 성격상 눈치를 챘을 것 같긴 한데, 아침 식사 자리에서 눈치를 주거나 한 적은 없었으니 상관없겠지 싶다.
이렇게 천천히 스며들어가는 거지.
“그러냐? 오늘 뭐할 거야? 집에만 있어?”
“응. 나 힘들어.”
“왜 힘든데.”
의미심장함이 가득 담겨있는 말에, 미유키가 힘 빠진 웃음을 터뜨렸다.
“나 공부도 해야 돼.”
“뭔 방학 초기에 공부야?”
“공부는 꾸준히 하는 거라고 말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아니다, 너답다.”
“마츠다 군은 지금 집에 갈 거야?”
히요리가 운동을 하러 오는 시간은 저녁이다.
그때까지 계속 있고 싶긴 하지만, 계속 처박혀 있으면 염치가 없지.
머무는 시간이야 다음에 늘리면 되니, 오늘은 이쯤하고 돌아가야겠다.
“그러려고.”
“응. 그러면 갈 때 반찬 챙겨가. 엄마가 싸준대.”
“알았다.”
**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간만에 렌카와의 교감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시청했다.
방치 플레이를 코앞에 둔 터라 교감이 필요한가 싶지만, 끝난 이후를 대비해서 시간이 빌 때 감상을 하는 게 맞지.
돌아올 때 사온 주전부리를 입에 넣으며 묵묵히 TV를 보고 있던 나는, 약간 열어둔 창문 사이로 찐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바깥을 보았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슬슬 히요리의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그런 생각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우웅-!
[나 출발.]히요리의 통보 식 메시지가 도착했다.
기분 좋은 우연의 일치. 그러나 저 말투는 조속한 교육이 필요하다.
만나면 사심도 채울 겸, 히요리의 둔부를 때찌하면서 훈육을 해야겠다.
[어딘데.] [카페에요. 친구들이랑 지금 헤어졌어요.] [그래.]히요리가 연락을 해온 직후부터 우리 집에 온 시간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딩-동-!
경쾌하게 울리는 종소리에 밖으로 나가 대문을 열고,
“안녕하세용.”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히요리를 보자마자 내가 한 행동은, 그녀의 목 뒤에 팔을 두르고 그대로 내리눌러 헤드락을 거는 일이었다.
“아 왜요…! 왜!!”
팡-!
“아! 아파!! 나 이거 한 번 당했던 것 같은데?!”
상체를 수그린 채 내게 꼬옥 붙들린 히요리의 비명.
그녀의 등짝을 가볍게, 그러나 약간의 통증을 느낄 정도로 몇 차례 때린 내가 말했다.
“너 내가 옷 이렇게 입지 말랬지?”
그러자 내게 머리를 꽉 잡혀있는 상태의 히요리가 뚱한 투로 반박했다.
“이게 어때서요!”
“어떠냐는 말이 나오냐?”
“선배 말대로 다 가렸는데 왜 난리에요…! 팔 때문에 그래요? 여름인데 긴팔을 입을 수는 없잖아요…!”
그 말마따나 히요리의 몸은 대부분이 가려져있었다.
바지도 발목까지 덮었고, 복부가 살짝 드러나긴 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옷차림이 문제였다.
오늘 히요리의 의상은 레깅스였던 것이다.
몸에 딱 달라붙어 엉덩이와 가슴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재질의 의상.
이렇게만 딱 입고 왔다면 조금 머리가 띵하긴 하겠지만, 잔소리를 몇 번 하고 넘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저 상태로 친구들과 만났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몇 번이나 조신하게 입고 돌아다니라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 정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마침 대문 앞 우편함에 신문이 돌돌 말려 꽂혀있는 걸 확인한 나는, 그것을 집어 히요리의 상체를 더욱 수그리게 하고 그녀의 엉덩이를 마구 때려댔다.
파앙! 팡!
“아악! 왜 때려! 하지 마 멍청아!”
“뭐 임마?”
“아, 아니… 잘못…”
파앙!
“히익! 진짜 아파요…! 그만 때려…!!”
워낙 탱글탱글한 부위라 그런지 타격감이 찰지다.
파앙!
손목 스냅을 활용해 엉덩이를 후려치는 것을 마지막으로, 꾸깃해진 신문지 끝을 집 안으로 가리킨 내가 말했다.
“들어가.”
“씨이…”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할 생각도 않고 날 노려보는 히요리.
오기가 잔뜩 서린 눈빛이 귀엽다.
“씨? 너 방금 욕하려고 했냐?”
“아니거든요!”
“얼른 안 들어가?”
“가고 있잖아요…!! 짜증…”
“말 예쁘게 안 해?”
“그럼 때리질 마 이 돼지야!”
“이걸 확…”
신문지를 다시 단단하게 돌돌 말자 화들짝 놀란 히요리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뒤 문창을 열고 후다닥 들어가는 모습이 천적에게 쫓기는 햄스터 같다고 생각한 나는, 혹시라도 이웃들이 소란을 지켜봤는지 주변을 살피다가 아무도 없자 안심하고는 대문을 닫았다.
“빨리 옷 갈아입어. 왜 너만 만나면 자꾸 이 얘길 해야 되냐 내가?”
질린 기색이 잔뜩 서려있는 내 말에, 히요리가 코웃음을 쳤다.
“말을 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근데 잠깐만…”
말끝을 흐린 히요리가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티셔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그녀의 기이한 행동에 살짝 당황한 내가 물었다.
“뭐하냐?”
“선배한테서 이상한 냄새나요.”
“무슨 이상한 냄새? 땀?”
“아뇨. 유전적으로 불쾌한 냄새에요. 오늘 나갔다 왔어요 혹시?”
미유키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자두 향을 맡은 모양인데, 그걸 두고 유전적으로 불쾌한 냄새라니… 과장이 심하다.
연적의 냄새라서 그런 건가 싶다.
“미유키네 집에 다녀왔는데.”
“뭐라구요?”
“미유키 집에 다녀왔다고.”
“뭐라구요?”
“들었잖아.”
“아니, 왜 제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가요?”
너무 자연스럽게 화를 내듯 말해서 순간 휘말릴 뻔했다.
잤다고 하면 땅이라도 치면서 우는 건 아닌가 몰라.
멋쩍게 뺨을 긁으려던 행동을 멈춘 내가 대답했다.
“너희 집에도 가면 되지.”
“넹…?”
히요리의 날카롭던 표정이 순식간에 얼빵하게 변했다.
벌어진 입을 보니 설마 내가 이런 답을 내놓을 줄은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평소처럼 딴지를 걸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길 줄 알았나보지?
“다음에 같이 가자.”
“…. 그건 무슨 의미?”
“뭔 무슨 의미야. 너희 부모님한테도 인사드릴 겸 네 동생도 보고 싶으니까 그런 거지.”
“이유는 그것 뿐?”
“은근슬쩍 말 놓지 마라.”
기분이 좋아진 듯 입꼬리를 씰룩인 히요리가 요 위에 벌러덩 누웠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짓을 그녀가 하니까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다.
장롱에서 옷가지를 꺼내 히요리의 몸 위에 살포시 얹은 나는, 왜 이걸 갈아입어야 하냐며, 자기가 입고 온 건 땀 흡수가 잘 돼서 운동하기에 좋은 거라며 투덜거리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야.”
“…..”
“내 말은 들을 생각이 아예 없구나?”
“몰랑.”
“히요리.”
내 입에서 이름이 훅 튀어나오자 심드렁한 태도가 온데간데없어지고 눈을 크게 뜨는 그녀.
놀란 눈망울이 다람쥐처럼 귀엽다고 생각한 내가 말을 이었다.
“옷 조신하게 입어라. 그럴 수 있지?”
입을 앙다문 그녀의 얼굴이 점점 빨개지는 걸 보니, 이름이 불린 게 듣기에 좋았나보다.
방법을 바꾼 게 주효했구나. 역시 인간관계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배합해야한다.
“대답 안 할 거야?”
“아니… 그럴게용…”
“맨날 알겠다, 알겠다 해놓고 이렇게 입지 말고. 너도 매일 잔소리 듣는 거 귀찮잖아.”
“…. 잘 대답해도 뭐라 그러네…”
“대들래?”
“아뇨…”
“약속 하나 하자.”
“약속이요?”
“일단 걸어.”
히요리의 얼굴에 새끼손가락을 편 주먹을 내밀자, 그녀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자신의 손가락을 내 것에 걸었다.
여름임에도 시원하게 느껴지는, 미유키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피부.
살갗으로 전해져오는 그녀의 냉기를 느끼며, 내가 말을 이었다.
“옷 조신하게 입고 다녀. 오늘을 마지막으로 난 너한테 옷 얘기 안 할 거야.”
“벌써 제가 질린 거예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그런 말이 튀어 나오냐? 대신 약속했는데도 또 지금처럼 입으면, 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혼을 낼 거야. 알았어?”
“어떻게 혼낼 건데요?”
궁금하면 한 번 더 이렇게 입어보든가.
사실 입으라고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거다.
진짜로 상상 그 이상의 혼을 내주고 싶어서 말이다.
“말대꾸하지 말고, 알았냐니까?”
“아 알았어요… 되게 뭐라 그러네.”
마지못한 척 대답을 하는 히요리의 이마에 아주 약한 딱밤을 때린 나는 반대쪽 손으로 욕실을 가리켰다.
“갈아입어.”
“넹.”
새끼손가락을 건 손으로 내 엄지에 자신의 엄지를 꾸우욱 누른 히요리가 몸을 일으켰다.
내가 챙겨준 옷가지를 들고 총총걸음으로 걸어가는 그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운동 준비를 하려던 나는, 휴대폰에서 또 다시 진동이 울리자 멈칫했다.
미유키가 연락을 해왔나 싶어 화면을 바라보니, 뜻밖의 인물이 메시지를 보내온 게 보였다.
[야, 쓰레기.]다름 아닌 렌카였다.
[예.] [내일 점심에 시간 돼?] [갑자기요?] [피규어 구경 간다며. 아키하바라에서 보든지.]내가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를 곱씹다가, 마음에 걸리니까 연락을 해온 게 틀림없다.
아아… 우리 렌카는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 짓만 골라서 할까.
치나미와는 다른 귀여움을 풀풀 풍기는 게 너무나도 좋다.
여기서 방치 플레이를 위해, 굳이 번거롭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답장을 보내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봐야 감정을 알 수 있는 법이라고, 렌카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상태를 즐길 수 있는 기회인데 만나지 않으면 안 되지.
내가 하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려 하고 있구나.
칼자루를 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기고만장해하기는.
일단은 받아주도록 하마.
[고마워요.] [어.]오랜만에 렌카와의 외출 데이트인가?
코디는 적당히, 정성을 쏟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으로 입어야겠다.